사회

[송태엽의 세상읽기] 광화문과 서초동 사이에 토킹 드럼이라도 있다면

2019.10.09 오전 11:30

나이지리아의 다수 민족인 요루바인은 3개의 성조가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 4성조의 중국어처럼 같은 음소가 저음, 중음, 고음으로 발화될 때마다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성조어의 특징을 이용해 요루바인들은 오랫동안 장거리 신호 체계인 토킹 드럼(말하는 북)을 발달시켜왔다.

작은 장구, 또는 모래시계처럼 생긴 토킹 드럼을 옆구리에 끼고 누르면 압력의 정도에 따라 북이 다른 성조의 소리를 낸다. 3가지 성조와 타격의 횟수를 조합하면 다양한 단어를 표현할 수 있다. 부족한 어휘를 보충하기 위해 요루바인들은 비유 언어를 사용했다. “무서워하지 말라”는 문장을 “입까지 올라온 심장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라”라고 말하는 식이다.


토킹 드럼 대화는 일반 대화보다 8배 정도 시간이 더 걸렸지만, 일상의 표현이 거의 다 가능했다고 한다. (제임스 글릭, ‘인포메이션’) 전신, 전화가 없던 시절 10km 이상 떨어진 마을끼리 소통할 수 있었던 토킹 드럼은 막강한 정보통신 도구였다. 북의 모양이나 언어가 달랐지만 서아프리카인들은 대부분 이런 토킹 드럼 언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 토킹 드럼을 치고 있는 아프리카인들 (출처-네이버)

서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끌어간 아메리카 농장주들은 토킹 드럼을 두려워했다. 이웃마을 노예들끼리 단결해 폭동을 일으킬까 봐 북을 금지시켰다. 노예들의 음악인 초기 블루스에 드럼 사운드가 들어가지 않은 이유다. 가장 원초적인 악기이며 스윙과 그루브에 필수적인 북 없이도 서아프리카인은 세계인이 즐기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의 정치인들도 한글이 두려웠을 거다. 한글은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소통의 도구이며, 탄생 과정 자체가 한민족의 높은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내선일체라는 허울 좋은 구호로 한글 사용을 금지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포악성을 드러낸 일이지만, 그 근저에는 일본인의 오랜 문화적 열등감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조선의 학자들, 그리고 이를 목숨 걸고 지킨 일제강점기 선조들에게는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란다. 조상이 남겨주신 빛나는 유산을 더 갈고 닦을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한글을 문화어로, 학문어로, 지구촌의 자유와 평화, 평등을 돕는 세계인의 소통도구로 발전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글의 오염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수입어나 약어 남용도 심각하지만, 그보다는 정치의 언어 왜곡이 더 문제다. 극단으로 갈린 진영 논리 속에 점점 한국어의 소통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직선거리로 10km가 안되는 광화문과 서초동의 언어가 전혀 다르다. 요루바인들에게 토킹 드럼이라도 빌려와야 하는 건가.

송태엽 해설위원실장 [taysong@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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