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아이들

와이파일 2019-08-19 07:00
[와이파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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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에 공장으로 끌려간 소녀는 아흔 살 노인이 됐습니다.
70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날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와이파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아이들

일제 강점기 강제로 끌려가 전쟁터에서, 공장에서, 이역만리 낯선 타국에서 노역에 시달리던 조선의 아이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아이가 강제 노역에 끌려가 고통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당시를 증언해줄 아이들마저 이제는 얼마나 살아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 정부는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관심이 없을 뿐.

1931년부터 일본이 패망하는 1945년까지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2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강제동원 피해자로 정부가 확인한 인원은 10분의 1수준인 218,639명.
2004년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지원법도 생긴 뒤 조사된 피해 인원입니다. 이 가운에 14세 미만 아동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행정안전부 과거사 관련 업무지원단, 담당 부서에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해당 부서는 21만 명의 피해자 명단을 가지고 있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 정보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자료 공개를 거부했고, 단순 숫자만 확인해달라는 요청도 일주일 가까이 걸렸습니다.
답변이 왔습니다. "272명"
정부가 확인해준 14세 미만 아동 강제동원 피해자는 272명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뒤 다시 확인된 인원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만 나이로 계산했다는 겁니다. 실제 출생연도와 호적에 올린 연도가 달라 신뢰할 수 없는 숫자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호적에 등록된 나이로 기준으로 삼아 확인을 다시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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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강제동원 피해 의미 있지만, 따로 조사하지 않는다"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새롭게 교체 중인데, 당장은 어려워도 올해 안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담당 부서에 인원이 단 둘뿐이고, 외주인력에 데이터 시스템 운영을 맡겨 본인들은 직접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정부는 아동 강제동원 피해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확인해야 했습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할머니들은 분명 11살, 12살의 나이에 강제로 끌려갔다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조사 지원위원회에서 활동한 역사가의 자료를 확인했습니다. 11년 동안 3천여 명의 피해자를 만났고, 그 가운데 1천여 명의 여성 강제동원 피해자를 따로 분류했습니다. 14세 미만의 나이로 강제동원된 인원은 모두 42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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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피해조사 위원회 활동 역사가 조사 자료

행정안전부 과거사 관련 업무지원단에 강제동원 피해자로 확인된 21만 명을 모두 조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직접 만나거나 가족을 통해 피해 사실을 확인한 여성 강제동원 피해자 천명 가운데 확인한 14세 미만 피해 아동이 무려 400명 이상이었습니다. 요청할 때마다 숫자가 달라지는 정부 담당 부서의 답변이 얼마나 성의 없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 "12살 소녀는 아버지 대신 공장에 끌려갔다."

어린 소녀들은 군수물자를 만드는 공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있던 일본 군수공장은 무려 7천 개가 넘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선오순 할머니도 12살의 나이에 전남 장성에서 광주의 한 방직 공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감옥 같던 공장에서 2년 동안 일했지만, 돈은 한 푼도 못 받았습니다. 하루 12시간 중노동에 시달렸고, 심지어 야간 노동까지 해야 했습니다. 도망칠 생각은 못 했습니다. 자신이 공장일을 하지 않으면 일본 순사가 고향 집 부모님을 괴롭힐 것을 어린 나이에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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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에 광주 방직공장에 강제동원된 선오순 할머니


■강제동원 피해 지원, 국내 동원 피해는 제외

이제는 까마득히 먼 과거의 일이 돼 버린 그 날.
지금까지 보상은커녕 위로도 없었습니다. 지난 2005년 정부에서 피해자 지원 신청을 받았지만,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지원법이 그랬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은 국외로 동원된 피해자만 대상이었습니다. 피해자 신청도 기간을 정해 받았습니다. 해당 기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와도 피해 신청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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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는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헌법 소원을 제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재정 등을 고려해 결정할 사항이라며 국내 동원 피해 지원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부 자치단체에서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겁니다. 2012년부터 광주와 경기, 전남, 서울 등 6개 광역 자치단체가 조례를 만들어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를 돕고 있습니다. 매달 30만 원의 생활보조비를 지원합니다. 조례가 처음 제정된 2012년을 기준으로 146명이 자치단체에서 지원을 받는데, 숫자는 매년 줄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조례를 제정한 지역 외에 거주하는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는 사실상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제동원 아동은 대다수가 국내 동원피해자

강제동원 아동은 대부분 한반도 내 공장이나 광산, 건설현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체격이 큰 성인 남성은 벌써 전쟁터로 끌려갔고, 남은 건 여성과 어린이들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혹독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아이들도 확인됩니다. 한반도 내 군수 시설에서 일하다 숨졌다고 신고된 1,073명 가운데, 14살 이하 어린이는 32명이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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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반도 내 군수 시설에서 숨진 어린이

하지만 국내 동원이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후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피해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얼마나 많은 아이가 강제 동원됐는지,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는지 제대로 확인된 것이 없습니다.


■관심에서 멀어진 사이 아동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관심에서 멀어진 강제동원 아동들은 지난 수십 년간 자신을 숨기고 감췄습니다. 자신의 아픔을 드러낸다고 해서 지원이 이뤄졌던 것도 아니었고 사회적 관심이 이뤄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괴로웠던 과거를 자신만 아는 비밀로 간직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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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피해자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강제동원

많이 늦었지만, 아직 피해 아동들은 생존해 있습니다. 일제의 반인도적인 식민지배의 살아 있는 증인들입니다. 이제라도 시작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피해조사를 할 기회가 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취재기자: 고한석, 이정미, 홍성욱, 한동오
촬영기자: 김태형, 김경록, 시철우
영상편집: 이자은
그래픽:김민지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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