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로 35년간 복직투쟁을 이어온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노동자를 '소금꽃나무'라고 불렀습니다.
얼마 전 마무리된 '희망뚜벅이' 행진엔 개인의 복직을 넘어, 수많은 '소금꽃나무들'의 염원이 담겼는데요.
사람, 공간, 시선을 전하는 인터뷰에서 김진숙의 삶을 통해, 수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노동 현실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400km 넘는 길을 걸었다.
암이 재발했지만, 치료도 미뤘다.
그는 해고된 지 35년 된 노동자다.
[김진숙 /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 노동자들이 조선소에서 또는 현장에서 일을 하면 땀이 옷에 막 배잖아요. 그런데 그게 마르면 하얗게 '소금꽃'이 펴요. 그리고 그 옷을 입고 있는 노동자들 자체가 '소금꽃나무'라고 저는 생각을 했고.]
안 해본 노동이 없었다.
[김진숙 /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 아마 제가 시내버스 안내양이나, 신발공장이나, 도색공장이나, 신문배달이나, 우유배달이나 이런 일들을 안 해봤으면, 저는 조선소 노동을 하루도 못 견뎠을 거예요.]
1981년, 한진중공업(당시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하자마자 맞닥뜨린 건 극심한 차별이었다.
용접공이던 그는 식당도, 화장실도, 통근버스 좌석도 이용할 수 없었다.
[김진숙 /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 그 공장을 다니면서도 권리가 뭔지 몰랐었어요. 어떻게 해야 이 삶이 바뀌는지를 몰랐습니다.]
여러 차례 건의도 해봤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부당함을 적은 유인물을 돌렸다가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회사는 해고를 통보했다.
노동자 권리를 함부로 외친 '죄'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없었다.
[김진숙 /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 그냥 한 사람의 노동자로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누구나 다 꿈꿔왔던 그 꿈을 표현했다는 게 '죄'였는데, 그걸 '죄'로 만든 세상에 대해서 제가 굴복할 수는 없잖아요.]
투쟁 과정에서 수배와 투옥, 고공농성 등 온갖 시련을 겪어야 했지만, 정작 비수가 된 건 동료들의 죽음이었다.
수감 중 의문사한 입사 동기 박창수를 비롯, 김주익과 곽재규, 최강서, 김금식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다.
[김주익·곽재규 합동장례식 추모사 (2003년) :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우리가 뭘 그렇게 죽을죄를 지었습니까.]
노동자만 희생되는 것이 문제였다.
영업이익률(2010년 기준 13.7%)이 업계 최고였음에도, 회사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2011년).
김진숙이 크레인에 올라 309일을 버티고, '희망버스'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어 해고자들은 결국 돌아왔지만, 김진숙만은 제외였다.
회사뿐 아니라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까지 나서 그의 복직을 막았다.
2009년부터 올해까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와 인권위 등이 복직을 권고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9년, 한진중공업은 산업은행을 위시한 채권단에게 넘어갔다.
무리한 해외투자로 인한 자본잠식이 원인이었다.
[김진숙 /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 (동료들이 죽은) 2003년부터 지금 2021년까지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25살 아들이 공사장에서 추락해서 죽고, 발전소에서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채 시신으로 돌아오고. 그래놓고도 왜 법안(중대재해처벌법)은 누더기가 돼야 하는가. 이게 과연 민주주의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는 거예요.]
그의 걸음이 무겁다.
자신의 복직만을 담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걸음은 폭이 넓다.
3명으로 시작한 걸음이 수백이 되고, 청와대 앞에선 처절한 단식이 이어졌다.
그래서 그의 걸음은 빠르다.
[김진숙 /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 (단식하는 분들) 상태가 많이 안 좋고 걱정도 많이 되고, 제가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그분들이 미음이라도 한 끼 더 먹을 수 있으니까. 단식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마음이 급해요.]
[김미숙 / 김용균재단 이사장 : (김진숙의) 그런 마음이 많은 사람을 이끌어냈다고 생각하는데,]
[정홍형 / 금속노조 부양지부 수석부위원장 (단식 48일) : (김진숙의) 그 마음을, 그 절박한 마음을 저 스스로 온몸으로 받아안고,]
[김용일 / 남양주시 와부읍 :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김득중 / 쌍용차지부장 : (김진숙을) 보고만 있어도 힘이 됩니다, 저는.]
모두가 김진숙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에 관한 말은 아꼈다.
대신 다른 노동자 이야길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김진숙 /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 자신들의 아픔을 가지고 오신 분들도 많죠, 이 행렬에는. 걸으면서 보니까 너무나 절박하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요. 저에게 집중하기보다는 (그분들을 취재해주세요.)]
[김계월 / 아시아나케이오지부 해고노동자 : 아시아나케이오지부 지부장 김계월입니다. 저희는 6명이 정리해고됐습니다.]
[김전례 / LG트윈타워분회 해고노동자 : (2020년) 12월 31일 날짜로 80명이 다 해고당했습니다.]
[변주현 /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해고노동자 : 저희는 57명이 해고됐습니다.]
[심대인 / 대우버스지회 해고노동자 : 저희 대우버스는 355명 정리해고 당한 사업장입니다.]
[이현서 / 코레일네트웍스지부 해고노동자 : 우리 노동자들이 225명이 해고된 상태입니다.]
[차헌호 /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 해고노동자 : 저희는 178명이 해고됐습니다.]
[채붕석 / 한국게이츠지회 해고노동자 : 저희는 147명이 전원 해고됐습니다.]
김진숙은 이들과 함께 34일을 걸었다.
걷던 중에 정년이 지났지만, 멈추지 않았다.
[김진숙 / '희망뚜벅이' 완주 (2021년 2월 7일) :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를 우리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고맙습니다.]
여정을 끝내고 2주가 지났다.
김진숙은 항암치료와 수술을 앞두고, 기력을 회복 중이다.
해고 12,641일째인 오늘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 땅의 수많은 '소금꽃나무들'이 일터에서 행복하게 '소금꽃'을 피울 그 날을.
제보/ buttoner@ytn.co.kr
버트너/ 이상엽, 박재상, 홍성욱
도움/ 전국금속노동조합,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 황이라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미조직부장, 김수진 님(삽입곡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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