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국조 특위 공청회 ②
[우상호]
다음은 서이현 진술인 진술해 주십시오.
[서이현]
10.29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서형주 누나 서이현입니다. 먼저 참사 직후 우리 가족이 형주를 찾으며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0월 30일 새벽 1시경 이태원에 간 형주와 연락이 안 된다는 소식을 듣고 112, 119에 실종신고 후 위치추적을 요청하여 이태원에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후 이태원에 바로 갔으나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고 순천향병원으로 가면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는 기자의 말을 듣고 병원에 가봤지만 그곳에서도 형주의 신원과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원효로 체육관으로 시신들을 이송했다는 소식을 듣고 체육관을 가려 했으나 곧 다시 변경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태원에 있던 형주의 핸드폰이 경찰서로 이동된 것을 확인하고 용산경찰서로 갔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현재 출입할 수 없고 핸드폰도 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여 경찰에게 총괄 컨트롤하는 타워가 어디 있냐고 물어봤으나 현재 그런 곳은 없고 집에 가서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실종신고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민센터 3층에서 다시 실종신고를 하였고 지하에 가족 대기실이 있다고 하여 그곳에서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면서 몇 차례 공무원에게 진행 상황을 물어봤었고 개별 연락이 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부상자 및 사망자 명단이 뉴스로 나올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뉴스에는 같은 내용만 나올 뿐이었고 한남동 주민센터에서도 부상자, 사망자 신원 확인 및 이송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가족들에게 전혀 설명이 없었습니다.
명단 발표가 아니라도 누구든지 지금 신원 확인, 이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유가족에게 브리핑이라도 해줬다면 동생 소식을 알게 되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막막하고 피 마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전 11시, 3층에 다시 올라가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달라고 항의하였더니 직원이 이름을 물어봤고 검색해 보더니 서형주는 일산 동국대병원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까지도 동생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하고 주민센터 직원에게 명단에 부상 정도가 나오는지 물어봤고 부상 정도는 나오지 않는다 하여 병원 이름만 몇 차례 확인 후 병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바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 중에 형주가 그곳에 있는지 확인했으나 이태원에 온 환자가 없다며 장례식장으로 연결해줬고 장례식장에서도 모르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병원을 잘못 알았다고 생각하여 다시 주민센터로 돌아가 확인해 보니 이름과 병원 이름만 나올 뿐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장례식장으로 전화를 다시 하니 시신 몇 구가 와 있지만 신원 확인이 되지 않아 형주를 확인할 수 없었고 직접 얼굴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그것도 안 된다고 하여 다시 주민센터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오후 1시경 형주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가족에게 개별 연락을 해준다고 하였으나 우리 가족은 장례식장에 도착할 때까지 연락은 없었습니다.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렸더라면 동생을 찾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생이 어떻게 일산 동국대병원으로 가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소방서에 구급일지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방서에는 당시 의식이 없었거나 사망한 사람들의 신원 확인이 안 돼서 구급일지가 없다고 했습니다. 대신 이동 경로는 확인할 수 있었는데 동생은 임시건물에 안치해 있다가 새벽 두세 시 사이에 원효로 체육관으로 이송되었고 6시 50분쯤 일산동국대 장례식장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당시에 신원미상자 18번으로 분류돼 있었다는데 후에 신원 확인이 되었어도 신원 미상자로 구급일지가 없다는 점이 너무 답답합니다.
제 동생은 동행인이 없어서 언제 사망하였는지 이 점이 가장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시체 검안서를 받고 제일 먼저 시간을 확인했고 10시 15분 이전 추정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검안서를 받고 그 시간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가족 모임에서 만난 한 희생자의 어머니께서 따님의 사망 시간은 제 동생과 똑같은 10시 15분 이전 추정인데 따님은 11시 30분까지 맥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검안서에 적힌 시간이 정확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구급일지를 확인하고 싶은데 그것마저도 확인이 안 된다고 합니다.
참사 후 우리 가족은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후 통합지원센터 관련 뉴스에서 의료비 지원에 대해 알게 되었고 문의하여 관련 서류를 준비하였습니다. 제가 알아보기 전에 통합지원센터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연락이 온 적은 없었습니다. 서류 접수하는 과정에서 통합지원센터, 구청, 시청에서 안내하는 사항이 모두 달라서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통합지원센터는 기한 없이 서류를 메일로 보내라 하였고 엄마랑 동생이 거주하는 구청 직원이 갑자기 전화 와서 등본상 주소가 김제인 엄마의 경우에는 김제시청에, 주소지가 서울로 돼 있는 동생은 동대문구청에 서류를 각각 따로 제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엄마 의료비 서류를 김제시청에 제출했는데 직원은 국민연금공단에 직접 신청하라며 아버지를 다시 돌려보냈고 저는 결국 통합지원센터로 모든 서류를 보내 의료비 신청을 하였습니다. 그 과정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최근 이태원 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참사 이후 남은 동생이 심한 우울증을 겪으면서 장해로 인해 대화와 심리상담을 할 수가 없어서 다른 지원 방안이 있는지 문의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센터 한편에 있는 방으로 가서 면담을 했는데 그곳에 유가족들이 얘기하기 위해 마련된 방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다른 유가족들이 오셨냐고 물어보니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저도 그런 곳이 있는지 몰랐으니까요.
왜 우리가 물어보고 찾기 전에 안내하고 챙겨주면 안 되는 겁니까? 왜 유가족을 만나지 않냐 물어보면 유가족이 싫다 했다고 합니다. 왜 공간을 마련해 주지 않냐고 하니 만들었는데 유가족이 다른 곳에도 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누구와 얘기하고 결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사가 난 지 76일째지만 단 한 번이라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유가족을 만난 적도, 사과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유가족은 더 외롭고 힘듭니다.
나라와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힘들겠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유가족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정확한 진상규명과 모든 책임자 처벌이며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우상호]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조경선 진술인 진술해 주십시오.
[조경선]
저희 가족은 7남매입니다. 형제가 많아 항상 집이 시끌벅적했고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 싸움도 많았지만 취미가 서로 비슷해 항상 즐거웠습니다. 오빠는 참사 당일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에 가게 된 것 같습니다. 오빠와 친구들이 밥을 먹기 위해 자리를 이동하던 중 인파에 떠밀려 헤어지게 됐다고 합니다. 11시 24분경 엄마에게 오빠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모르는 사람이었고 오빠가 이태원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오빠 친구와 오빠 친구의 어머니가 새벽 네다섯 시까지 오빠를 찾으러 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실종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빠를 찾으면서 어떠한 안내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오빠 휴대폰의 위치추적을 위해 119에 전화를 하면 다산콜센터로 전화하라고 하고 다산콜센터에서는 정보가 없다며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억울한 게 오빠는 처음부터 끝까지 휴대폰과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왜 아무도 신원을 확인하지 않은 건지 분노가 사그러들지 않습니다.
결국 참사 다음 날 11시가 넘어서 오빠가 성남중앙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왜 그 먼 곳까지 오빠가 갔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성남중앙병원 장례식장으로 가서 안치실에 있는 오빠를 확인했고 엄마는 오열하면서 오빠를 만지려 하자 경찰이 손대지 말라고 제지하며 결국 우리는 오빠를 한 번도 만져보지도 못했고 지금 생각하면 그게 오빠의 몸을 살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뺏겼습니다.
참사 이후 한 달이 되어갈 때쯤 저는 오빠의 행적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11월 28일 정보공개신청을 통해 구급일지를 요청하였습니다. 다음 날 11월 29일 서울소방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현재 많은 분이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있어 그날 다수의 환자가 나오다 보니 신원조회를 할 수 없었고 소지품도 다른 쪽으로 흩어져 있어 그 사람의 것인지 알 수 없어 미상처리를 했다고 말씀하시며 경찰청에서는 인적 사항은 확보했으나 소방청에 공유되지가 않아 매칭 작업을 못 했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저는 왜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매칭작업을 하지 않은 건지 물었고 명단을 어디에, 언제 요청을 한 것인지 물었습니다. 소방청에서는 서울특별시 자치경찰위원회 자치경찰총괄과에 유선상으로 전화를 했고 요청한 유선상으로는 일주일 전, 문서상으로는 결재 중에 있다고 했습니다. 10월 29일 그 참사가 벌어지고 한 달이 지났는데 왜 명단 요청을 일주일 전에 한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저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후 12월 12일 의정부소방서 재난대응과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구급일지에 대해서 서류를 지참해서 보내주면 구급일지를 바로 보내주시겠다고 하셨고 저는 바로 서류들을 준비해서 보냈습니다. 결국 저는 정보공개 청구를 28일날 신청하여 2주가 넘어간 16일이 되어서야 어렵게 자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받은 구급일지도 이태원에서 이동한 구급일지가 아닌 순천향병원에서 성남중앙병원으로 이동할 때의 구급일지였고 내용은 정말 터무니없이 기재되어 있는 게 없었습니다. 또한 충격적인 건 신고 시간이 23시 27분으로 적혀 있었는데 출동 시간은 23시 37분으로 신고를 받은 지 10분이 지나서야 출동했다는 기록이었습니다. 제 상식선에서는 정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간 간격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빠가 사고가 있었던 시점부터 순천향병원까지의 기록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연번 기록이 분실되어 신원 확인이 안 돼 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구급차에 블랙박스도 이미 없어졌다고 합니다. 오빠가 어떤 사고를 당한 건지, 어떤 응급조치를 받은 건지 이제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될까 두렵습니다. 12월 2일, 오빠의 행적을 알아보던 중 경찰에게 행적이나 상태에 대해 들었다는 분의 말씀을 듣고 성남중앙병원 담당 형사께 전화를 드려 우리 오빠에 대한 기록을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기록을 말하는 거냐며 제 말이 이해가 안 된다라는 말만 여러 번 반복하며 저와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수사권은 용산경찰서에서 하고 본인은 수사권이 없다며 사건이 종결되고 난 후 수사 기록이 넘어오면 그때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럼 오빠의 사소한 기록이라도 좋으니 알려달라고 재차 요구했으나 무슨 기록을 말하냐는 둥, 이해가 안 된다는 둥, 화내면 자기가 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가 없다는 말만 하며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에 걸쳐 몇 번의 전화를 계속 하던 중 12월 5일 기록을 보고 싶으면 정보공개청구를 하라고 하면서 청구하면 기록을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경찰청, 용산경찰서, 성남중앙정치서, 국과수에 정보공개신청을 했고 12일 정보공개 요청 결과를 통지받았습니다. 청구 처리는 비공개, 수사 중인 사건의 기록을 보여줄 수 없다는 사유였습니다.
그날 17시 16분 용산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빠의 기록은 용산경찰서에서 처리하지 않았으니 성남중앙경찰서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저는 성남중앙경찰서에서는 용산경찰서에서 문의하라고 답변을 받았다고 하니 알아본다고 하셨고 18시 5분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사건 서류의 성남중앙경찰서에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황당하고 말문이 막히는 상황에 정보공개청구에 기재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왜 안 보여주는지 항의를 했습니다.
담당자는 비공개 처리 사유만 반복적으로 말하며 성남중앙경찰서에서는 수사를 안 하고 있으며 용산경찰서 특수본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용산서에서는 성남중앙경찰서에서 수사를 하고 성남중앙경찰서에서는 용산경찰서에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이런 어이없는 떠넘기기 상황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 오빠는 그때도 지금도 방치되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이후 정보공개청구 비공개 처분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하자 다음 날 성남중앙경찰서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담당자는 경찰서에 날을 잡고 방문하면 기록을 열람하게 해 주겠다며, 대신 이의신청을 취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후 서너 번의 더 전화가 왔습니다. 이의신청 취하 요청을 계속 요구하였고 저는 이의신청을 취하했습니다.
대한민국 경찰은 국민을 보호하라고 있는 거지 국민을 등지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행적을 쫓던 짧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 경찰의 행정 처리와 부실 수사, 수사 방치에 정말 진절머리가 나게 치가 떨림을 느꼈습니다. 저는 지금도 우리 오빠의 행적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아무도 우리 오빠에 대해 수사해 주는 이가 지금 현재까지도 없습니다.
그리고 2차 가해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제일 큰 2차 가해는 뒤에서는 아무것도 도와주고 있지 않으면서 앞에서는 모든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고 언론 플레이하는 정부와 공무원, 몇몇 비윤리적인 의원들의 무책임한 발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간질입니다. 국가가 해서는 안 되는 이간질로 인해 저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고 국민을 위해야 하는 사람들이 이 상황을 잘 모르는 국민들을 상대로 유가족들이 진짜 원하는 부분이 왜곡되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2차 가해 댓글과 상황에 대한 1차적인 원인은 정부와 공공기관, 비양심적인 의원들의 이간질로 인해 일어난 일입니다. 그 상처로 저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을 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SNS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못 만나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정상적인 일상을 하려고 노력해도 항상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저의 고통은 결국 정부가 책임을 다하여 해결해야 끝나는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0월 29일부터 두 달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시간조차도 저에게는 트라우마이자 2차 가해입니다.
처음부터 국가가 투명하고 성숙하게 대처해 줬다면 저희 오빠가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어떤 응급조치를 받았는지, 왜 사고가 일어났는지 알려주었다면 저는 여기에 있을 일도, 유가족협의회를 구성할 일도 전혀 없었을 텐데 성숙하지 못한 정부와 공무원, 공공기관들은 국민들을 상대로 이간질이나 하는 상태가 지속되는 지금 저는 여전히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상처받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우상호]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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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서이현 진술인 진술해 주십시오.
[서이현]
10.29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서형주 누나 서이현입니다. 먼저 참사 직후 우리 가족이 형주를 찾으며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0월 30일 새벽 1시경 이태원에 간 형주와 연락이 안 된다는 소식을 듣고 112, 119에 실종신고 후 위치추적을 요청하여 이태원에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후 이태원에 바로 갔으나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고 순천향병원으로 가면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는 기자의 말을 듣고 병원에 가봤지만 그곳에서도 형주의 신원과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원효로 체육관으로 시신들을 이송했다는 소식을 듣고 체육관을 가려 했으나 곧 다시 변경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태원에 있던 형주의 핸드폰이 경찰서로 이동된 것을 확인하고 용산경찰서로 갔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현재 출입할 수 없고 핸드폰도 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여 경찰에게 총괄 컨트롤하는 타워가 어디 있냐고 물어봤으나 현재 그런 곳은 없고 집에 가서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실종신고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민센터 3층에서 다시 실종신고를 하였고 지하에 가족 대기실이 있다고 하여 그곳에서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면서 몇 차례 공무원에게 진행 상황을 물어봤었고 개별 연락이 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부상자 및 사망자 명단이 뉴스로 나올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뉴스에는 같은 내용만 나올 뿐이었고 한남동 주민센터에서도 부상자, 사망자 신원 확인 및 이송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가족들에게 전혀 설명이 없었습니다.
명단 발표가 아니라도 누구든지 지금 신원 확인, 이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유가족에게 브리핑이라도 해줬다면 동생 소식을 알게 되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막막하고 피 마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전 11시, 3층에 다시 올라가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달라고 항의하였더니 직원이 이름을 물어봤고 검색해 보더니 서형주는 일산 동국대병원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까지도 동생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하고 주민센터 직원에게 명단에 부상 정도가 나오는지 물어봤고 부상 정도는 나오지 않는다 하여 병원 이름만 몇 차례 확인 후 병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바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 중에 형주가 그곳에 있는지 확인했으나 이태원에 온 환자가 없다며 장례식장으로 연결해줬고 장례식장에서도 모르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병원을 잘못 알았다고 생각하여 다시 주민센터로 돌아가 확인해 보니 이름과 병원 이름만 나올 뿐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장례식장으로 전화를 다시 하니 시신 몇 구가 와 있지만 신원 확인이 되지 않아 형주를 확인할 수 없었고 직접 얼굴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그것도 안 된다고 하여 다시 주민센터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오후 1시경 형주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가족에게 개별 연락을 해준다고 하였으나 우리 가족은 장례식장에 도착할 때까지 연락은 없었습니다.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렸더라면 동생을 찾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생이 어떻게 일산 동국대병원으로 가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소방서에 구급일지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방서에는 당시 의식이 없었거나 사망한 사람들의 신원 확인이 안 돼서 구급일지가 없다고 했습니다. 대신 이동 경로는 확인할 수 있었는데 동생은 임시건물에 안치해 있다가 새벽 두세 시 사이에 원효로 체육관으로 이송되었고 6시 50분쯤 일산동국대 장례식장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당시에 신원미상자 18번으로 분류돼 있었다는데 후에 신원 확인이 되었어도 신원 미상자로 구급일지가 없다는 점이 너무 답답합니다.
제 동생은 동행인이 없어서 언제 사망하였는지 이 점이 가장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시체 검안서를 받고 제일 먼저 시간을 확인했고 10시 15분 이전 추정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검안서를 받고 그 시간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가족 모임에서 만난 한 희생자의 어머니께서 따님의 사망 시간은 제 동생과 똑같은 10시 15분 이전 추정인데 따님은 11시 30분까지 맥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검안서에 적힌 시간이 정확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구급일지를 확인하고 싶은데 그것마저도 확인이 안 된다고 합니다.
참사 후 우리 가족은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후 통합지원센터 관련 뉴스에서 의료비 지원에 대해 알게 되었고 문의하여 관련 서류를 준비하였습니다. 제가 알아보기 전에 통합지원센터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연락이 온 적은 없었습니다. 서류 접수하는 과정에서 통합지원센터, 구청, 시청에서 안내하는 사항이 모두 달라서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통합지원센터는 기한 없이 서류를 메일로 보내라 하였고 엄마랑 동생이 거주하는 구청 직원이 갑자기 전화 와서 등본상 주소가 김제인 엄마의 경우에는 김제시청에, 주소지가 서울로 돼 있는 동생은 동대문구청에 서류를 각각 따로 제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엄마 의료비 서류를 김제시청에 제출했는데 직원은 국민연금공단에 직접 신청하라며 아버지를 다시 돌려보냈고 저는 결국 통합지원센터로 모든 서류를 보내 의료비 신청을 하였습니다. 그 과정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최근 이태원 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참사 이후 남은 동생이 심한 우울증을 겪으면서 장해로 인해 대화와 심리상담을 할 수가 없어서 다른 지원 방안이 있는지 문의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센터 한편에 있는 방으로 가서 면담을 했는데 그곳에 유가족들이 얘기하기 위해 마련된 방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다른 유가족들이 오셨냐고 물어보니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저도 그런 곳이 있는지 몰랐으니까요.
왜 우리가 물어보고 찾기 전에 안내하고 챙겨주면 안 되는 겁니까? 왜 유가족을 만나지 않냐 물어보면 유가족이 싫다 했다고 합니다. 왜 공간을 마련해 주지 않냐고 하니 만들었는데 유가족이 다른 곳에도 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누구와 얘기하고 결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사가 난 지 76일째지만 단 한 번이라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유가족을 만난 적도, 사과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유가족은 더 외롭고 힘듭니다.
나라와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힘들겠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유가족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정확한 진상규명과 모든 책임자 처벌이며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우상호]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조경선 진술인 진술해 주십시오.
[조경선]
저희 가족은 7남매입니다. 형제가 많아 항상 집이 시끌벅적했고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 싸움도 많았지만 취미가 서로 비슷해 항상 즐거웠습니다. 오빠는 참사 당일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에 가게 된 것 같습니다. 오빠와 친구들이 밥을 먹기 위해 자리를 이동하던 중 인파에 떠밀려 헤어지게 됐다고 합니다. 11시 24분경 엄마에게 오빠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모르는 사람이었고 오빠가 이태원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오빠 친구와 오빠 친구의 어머니가 새벽 네다섯 시까지 오빠를 찾으러 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실종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빠를 찾으면서 어떠한 안내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오빠 휴대폰의 위치추적을 위해 119에 전화를 하면 다산콜센터로 전화하라고 하고 다산콜센터에서는 정보가 없다며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억울한 게 오빠는 처음부터 끝까지 휴대폰과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왜 아무도 신원을 확인하지 않은 건지 분노가 사그러들지 않습니다.
결국 참사 다음 날 11시가 넘어서 오빠가 성남중앙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왜 그 먼 곳까지 오빠가 갔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성남중앙병원 장례식장으로 가서 안치실에 있는 오빠를 확인했고 엄마는 오열하면서 오빠를 만지려 하자 경찰이 손대지 말라고 제지하며 결국 우리는 오빠를 한 번도 만져보지도 못했고 지금 생각하면 그게 오빠의 몸을 살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뺏겼습니다.
참사 이후 한 달이 되어갈 때쯤 저는 오빠의 행적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11월 28일 정보공개신청을 통해 구급일지를 요청하였습니다. 다음 날 11월 29일 서울소방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현재 많은 분이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있어 그날 다수의 환자가 나오다 보니 신원조회를 할 수 없었고 소지품도 다른 쪽으로 흩어져 있어 그 사람의 것인지 알 수 없어 미상처리를 했다고 말씀하시며 경찰청에서는 인적 사항은 확보했으나 소방청에 공유되지가 않아 매칭 작업을 못 했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저는 왜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매칭작업을 하지 않은 건지 물었고 명단을 어디에, 언제 요청을 한 것인지 물었습니다. 소방청에서는 서울특별시 자치경찰위원회 자치경찰총괄과에 유선상으로 전화를 했고 요청한 유선상으로는 일주일 전, 문서상으로는 결재 중에 있다고 했습니다. 10월 29일 그 참사가 벌어지고 한 달이 지났는데 왜 명단 요청을 일주일 전에 한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저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후 12월 12일 의정부소방서 재난대응과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구급일지에 대해서 서류를 지참해서 보내주면 구급일지를 바로 보내주시겠다고 하셨고 저는 바로 서류들을 준비해서 보냈습니다. 결국 저는 정보공개 청구를 28일날 신청하여 2주가 넘어간 16일이 되어서야 어렵게 자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받은 구급일지도 이태원에서 이동한 구급일지가 아닌 순천향병원에서 성남중앙병원으로 이동할 때의 구급일지였고 내용은 정말 터무니없이 기재되어 있는 게 없었습니다. 또한 충격적인 건 신고 시간이 23시 27분으로 적혀 있었는데 출동 시간은 23시 37분으로 신고를 받은 지 10분이 지나서야 출동했다는 기록이었습니다. 제 상식선에서는 정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간 간격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빠가 사고가 있었던 시점부터 순천향병원까지의 기록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연번 기록이 분실되어 신원 확인이 안 돼 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구급차에 블랙박스도 이미 없어졌다고 합니다. 오빠가 어떤 사고를 당한 건지, 어떤 응급조치를 받은 건지 이제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될까 두렵습니다. 12월 2일, 오빠의 행적을 알아보던 중 경찰에게 행적이나 상태에 대해 들었다는 분의 말씀을 듣고 성남중앙병원 담당 형사께 전화를 드려 우리 오빠에 대한 기록을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기록을 말하는 거냐며 제 말이 이해가 안 된다라는 말만 여러 번 반복하며 저와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수사권은 용산경찰서에서 하고 본인은 수사권이 없다며 사건이 종결되고 난 후 수사 기록이 넘어오면 그때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럼 오빠의 사소한 기록이라도 좋으니 알려달라고 재차 요구했으나 무슨 기록을 말하냐는 둥, 이해가 안 된다는 둥, 화내면 자기가 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가 없다는 말만 하며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에 걸쳐 몇 번의 전화를 계속 하던 중 12월 5일 기록을 보고 싶으면 정보공개청구를 하라고 하면서 청구하면 기록을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경찰청, 용산경찰서, 성남중앙정치서, 국과수에 정보공개신청을 했고 12일 정보공개 요청 결과를 통지받았습니다. 청구 처리는 비공개, 수사 중인 사건의 기록을 보여줄 수 없다는 사유였습니다.
그날 17시 16분 용산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빠의 기록은 용산경찰서에서 처리하지 않았으니 성남중앙경찰서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저는 성남중앙경찰서에서는 용산경찰서에서 문의하라고 답변을 받았다고 하니 알아본다고 하셨고 18시 5분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사건 서류의 성남중앙경찰서에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황당하고 말문이 막히는 상황에 정보공개청구에 기재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왜 안 보여주는지 항의를 했습니다.
담당자는 비공개 처리 사유만 반복적으로 말하며 성남중앙경찰서에서는 수사를 안 하고 있으며 용산경찰서 특수본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용산서에서는 성남중앙경찰서에서 수사를 하고 성남중앙경찰서에서는 용산경찰서에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이런 어이없는 떠넘기기 상황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 오빠는 그때도 지금도 방치되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이후 정보공개청구 비공개 처분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하자 다음 날 성남중앙경찰서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담당자는 경찰서에 날을 잡고 방문하면 기록을 열람하게 해 주겠다며, 대신 이의신청을 취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후 서너 번의 더 전화가 왔습니다. 이의신청 취하 요청을 계속 요구하였고 저는 이의신청을 취하했습니다.
대한민국 경찰은 국민을 보호하라고 있는 거지 국민을 등지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행적을 쫓던 짧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 경찰의 행정 처리와 부실 수사, 수사 방치에 정말 진절머리가 나게 치가 떨림을 느꼈습니다. 저는 지금도 우리 오빠의 행적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아무도 우리 오빠에 대해 수사해 주는 이가 지금 현재까지도 없습니다.
그리고 2차 가해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제일 큰 2차 가해는 뒤에서는 아무것도 도와주고 있지 않으면서 앞에서는 모든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고 언론 플레이하는 정부와 공무원, 몇몇 비윤리적인 의원들의 무책임한 발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간질입니다. 국가가 해서는 안 되는 이간질로 인해 저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고 국민을 위해야 하는 사람들이 이 상황을 잘 모르는 국민들을 상대로 유가족들이 진짜 원하는 부분이 왜곡되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2차 가해 댓글과 상황에 대한 1차적인 원인은 정부와 공공기관, 비양심적인 의원들의 이간질로 인해 일어난 일입니다. 그 상처로 저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을 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SNS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못 만나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정상적인 일상을 하려고 노력해도 항상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저의 고통은 결국 정부가 책임을 다하여 해결해야 끝나는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0월 29일부터 두 달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시간조차도 저에게는 트라우마이자 2차 가해입니다.
처음부터 국가가 투명하고 성숙하게 대처해 줬다면 저희 오빠가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어떤 응급조치를 받았는지, 왜 사고가 일어났는지 알려주었다면 저는 여기에 있을 일도, 유가족협의회를 구성할 일도 전혀 없었을 텐데 성숙하지 못한 정부와 공무원, 공공기관들은 국민들을 상대로 이간질이나 하는 상태가 지속되는 지금 저는 여전히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상처받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우상호]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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