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스위스의 어느 봄날.
모두가 바쁜 평일임에도 행사장은 어느새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스위스 뇌샤텔주를 대표하는 대규모 문화 축제.
그 시작을 알리는 개막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축제는 매년 하나의 지역을 선정해 다양한 행사를 펼치는데, 올해의 주제는 바로 '한국'입니다.
그 현장 한가운데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번 축제의 여성 부위원장으로 활약 중인 실비 샹프뢰 씨입니다.
이 자리는 1년 반 동안 준비해 온 결과물이에요. 오늘 저녁 행사를 포함해서, 앞으로 3개월 동안 이어질 문화의 봄 축제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태극 문양 가방을 든 참가자부터 K-팝 음악에 맞춰 개성을 뽐내는 무대 위 사람들.
300여 명의 관객은 뜨거운 환호로 화답합니다.
[드니 루에슈 / 뇌샤텔 문화의 봄 협회장 : 실비는 아이디어도 풍부하고 행사 준비에 정말 헌신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실비의 열정과 헌신에 진심으로 따뜻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실 실비 씨가 이토록 행사에 열정을 쏟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심에 자신의 뿌리 '한국'이 있기 때문인데요.
[실비 샹프뢰(육순애) / 스위스 입양 동포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실비 샹프뢰, 육순애입니다. 1970년에 한국에서 태어나 생후 7개월에 스위스로 입양되었습니다.]
기억조차 없는 어린 시절, 그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긴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실비 씨를 만나봅니다.
[실비 샹프뢰(육순애) / 스위스 입양 동포 : 어렸을 때, 그러니까 한 8살 정도까지는 입양에 대해 깊이 의식하지 못했어요. 무의식적으로는 제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요.]
실비 씨의 첫 시련은 '다름'에서 시작됐습니다.
어린 시절, 외모와 출신을 이유로 받은 차별은 때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럴 때마다 실비 씨의 부모님은 다름을 공감하는 능력으로 바꾸는 힘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실비 샹프뢰(육순애) / 스위스 입양 동포 : (부모님은) 저를 괴롭히거나 중국인, 일본인이라고 놀리던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하곤 했어요. 당시에 한국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죠. 그 아이들을 집에 초대해서 함께 간식을 먹으면서 '입양'이 무엇인지, 제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천천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다름'을 이해의 언어로 배우며 자랐지만, 한국은 여전히 마음으로도 거리로도 먼 나라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쁜 일상을 보내던 31살의 실비 씨에게 한국에 가볼 기회가 선물처럼 찾아왔습니다.
[실비 샹프뢰 / 스위스 입양 동포 : 저는 로잔에 있는 한 경영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그때 제 상사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당신은 정말 많이 일했고, 초과근무도 많았으니 이제 그 시간을 보상받을 자격이 있어요. 추가로 일주일 더 쉬면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 표를 선물할게요. 한 번도 한국에 가본 적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다녀오면 좋겠어요.]
우연히 떠난 첫 한국 여행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양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또 다른 어머니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겁니다.
그리고 그 긴 여정엔 한국인 친구들의 진심 어린 동행이 있었습니다.
[실비 샹프뢰 / 스위스 입양 동포 : 셀린(은주)과 그녀의 언니 차홍주 씨는 제 입양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어요. 그들은 저를 진심으로 환영해 주었고,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늘 '집에 돌아온 느낌'을 받았어요.]
실비 씨의 의지에 친구들의 도움이 더해지면서 친가족 찾기엔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입양 서류에 남은 유일한 단서는 '옥천 출신의 육 씨'라는 사실뿐.
친구들의 도움으로 DNA 검사를 마친 실비 씨는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됐을 옥천으로 향했습니다.
[실비 샹프뢰 / 스위스 입양 동포 : 우리는 옥천군의 여러 작은 마을을 직접 다니며 4천 장의 전단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옥천 전역에 배포한 4천 장의 전단입니다. 노인정, 상점 마을회관 등에도 배포했고, 일일이 집마다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며 설명해 드리기도 했어요.]
[프레데릭 샹프뢰 / 남편 : 실비가 조사팀과 함께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친가족의 흔적을 따라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발로 뛰는 그 모습을 보았을 때, 그건 정말로….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두 번째 DNA 검사를 마칠 무렵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실비 씨와 비슷하게 미국으로 입양된 먼 친척과 연결된 겁니다.
[실비 샹프뢰 / 스위스 입양 동포 : 생물학적으로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친가족 찾기에 확실한 가지를 뻗은 실비 씨의 마음은 이젠 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프레데릭 샹프뢰 / 남편 : 저는 실비를 보면 '분재'가 떠올라요. 뿌리를 잘라서 작게 자라게 만든 나무 말이에요. 저는 실비가 처음 한국으로 떠났을 때가 바로 그 첫 번째 가지를 뻗기 시작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비 샹프뢰(육순애) / 스위스 입양 동포 :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 뿌리, 제 원래 고향인 한국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가족들을 직접 만나 새로운 추억을 함께 만들고, 한국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너무 늦기 전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떠나왔지만, 또 다른 가족과 소중한 친구들과의 인연이 시작된 나라, 한국.
실비 샹프뢰, 육순애 씨는 이제 사랑의 언어로 한국을 품고, 그 안에서 자신을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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