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당근과 새싹 위에 바질 페스토를 얹고 김밥을 정성껏 말아 꾹꾹 눌러줍니다.
입양인 마틴 선미 씨만의 특별한 비건 김밥.
한국 음식 만들기는 한국과 선미 씨를 이어주는 작은 의식입니다.
선미 씨는 세 살 반 무렵, 독일로 입양됐습니다.
[마틴 선미 / 독일 입양인 : 색들이 흐릿하게 변하고 뒤섞이는 장면이 기억나요. 열이 나서 꾼 꿈들이었어요. 부모님 말씀으론 제가 거의 이틀 내내 잠만 잤다고 해요. 그게 제 유년기 첫 기억이고, 독일에 온 뒤 초기 기억이에요. ‘나는 어디서 왔을까.' ‘누구의 아이였을까.']
여느 입양인처럼 선미 씨도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었다는데요.
[마틴 선미 / 독일 입양인 : 10대 때는 제 몸이 너무 불편했어요. 백인처럼, 독일인처럼 보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분명히 한국인이고 한국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죠. (입양 서류를 봤을 땐) 솔직히 말하면, 현실감이 없었어요. 마치 다른 사람의 서류를 보는 느낌이었죠.]
처음 한국을 찾았을 때는 관광객의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만큼 더 간절히 한국 문화를 느껴보고 싶었는데요.
두 번째 방문에선 입양 서류에 적힌 주소를 따라 자신이 발견된 곳을 찾아가 보고, 지방 소도시를 여행하며 명상도 체험했습니다.
[캘빈 클라인 / 마틴 선미 씨 남편 : 어떤 아주머니가 (선미가 발견된) 그 식당이 예전에 분명히 존재했었다고 기억해줬어요. 식당은 지금은 없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입양)문서의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실재했던 장소라는 점만으로도 깊은 울림이 있었죠.]
목포 근처 바닷가에 앉아 '이곳이 나의 고국'이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느꼈다는 선미 씨.
[마틴 선미 / 독일 입양인 : 그게 제 인생 첫 명상 경험이었어요. 단순한 삶, 그리고 얼마나 이 나라가 아름다운지, 자연 풍경, 사람들까지. 목포 근처 바닷가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제 몸으로 느껴지는 감정이 있었어요. '이곳이 나의 고국이구나.]
아침에 만든 김밥을 챙겨 향한 곳은 입양인들의 모임.
한국에서 돌아온 뒤 선미 씨는 자신처럼 끊어진 이야기를 지닌 이들을 위한 작은 소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식사를 함께하는 소박한 모임이었지만, 지금은 유럽은 물론 북미 지역까지 아우르는 입양인 커뮤니티로 성장했습니다.
[마틴 선미 / 독일 입양인 : 처음 다른 입양인을 만났을 때 저는 제 입양 경험이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았고, 정말 큰 공감이 느껴졌어요. 독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교류하고 싶었고요.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입양인들이 그들의 상실감과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했어요.]
그녀가 만든 커뮤니티 '누메로(Numero)'는 지금도 세계 곳곳의 입양인들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입양인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니나 / 입양인 커뮤니티 참가자 : 선미는 마치 등대 같아요. 그녀는 내면에서부터 빛나는 사람이고, 그 에너지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줘요.]
[캘빈 클라인 / 마틴 선미 씨 남편 : 줌 회의 속 다양한 얼굴들을 보며 그녀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 느껴졌어요.]
[마틴 선미 / 독일 입양인 : 저도 여전히 어떤 순간엔 슬픔을 느껴요. 하지만 이제는 그걸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지금은 그걸 제 일로 삼아 다른 입양인들에게 나누고 함께하는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어요.]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선미 씨는 언젠가 아이와 함께, 자신이 태어난 한국 땅을 다시 밟고 싶다고 말합니다.
[마틴 선미 / 독일 입양인 : 반드시 다시 한국에 가고 싶어요. 지금 제 아들이 9개월이 됐는데 아이가 더 자라면 그 애에게 제가 태어난 곳, 저의 뿌리, 그 유산을 보여주고 싶어요.]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마음속에 늘 함께한 존재, 친부모님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데요.
[마틴 선미 / 독일 입양인 :
"저는 그분들을 모르지만, 그래도 그리워요. 그들의 눈을 들여다보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정말 알고 싶어요.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는 건 제 삶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거예요."
잃어버린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는 여정.
그 길의 끝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선미 씨는 자신과 같은 입양인들과 함께 이 길을 계속 걸어가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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