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파란만장했던 영욕의 삶

2009.05.23 오후 05:06
[앵커멘트]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은 파란만장했습니다.

집안이 가난해 대학에 못갔지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인권 변호사로 명성을 떨치다 정계에 입문해 서민의 대변자로 자리매김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일생을 김주환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46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이후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짧은 판사생활 뒤 부산에서 세무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부산지역 민주화 투쟁인 부림사건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특히 1987년 대우조선 노동자가 시위 도중 사망한 사건땐 제3자개입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듬해인 1988년 13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그해 국회 5공청문회에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녹취:노무현, 국회의원]
"안기부장이라는 사람이...."

1990년 3당 합당 때는 '역사적 반역'이라며 합류를 거부했다가 1992년 총선 실패, 1995년 부산시장 낙선, 1996년 서울 종로의 패배 등 정치적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바보 노무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해양수산부장관을 역임한 뒤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고, 지난 2002년 12월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러나 재임 기간 중에도 그의 정치 역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04년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통령 직무가 한 동안 정지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정치인 시절 인기를 높였던 거침없는 언사는 대통령 취임이후 민심 이반의 원인이 됐습니다.

대통령 재임중에도 바람 잘 날 없었지만 퇴임 후 불거진 박연차 뇌물 게이트는 노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자산이었던 도덕성을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특히 인생행로를 함께 걸은 진보진영 정치인들과 젊은 386들이 대거 사법처리됐고 특히 부인과 아들이 검찰 조사를 받아 대통령 가족이 검찰에 소환되는 불명예를 남겼습니다.

YTN 김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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