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거산' 김영삼 전 대통령, 역사 속으로 ①

2015.11.26 오후 03:35
■ 김영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 / 이동우, YTN 보도국 부국장 /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앵커]
이 자리에 김영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홍은표 새누리당 의원 그리고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그리고 이동우 YTN 부국장 네 분 나와계시는데요. 김 의원님, 조금 전에 영결식 참석하고 지금 바로 오신 거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앵커]
오늘 많이 추웠죠?

[인터뷰]
어제 눈이 내렸고 오늘 국회의사당 앞이 엄청 추웠습니다. 그렇게 눈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영결식이 진행됐는데 하늘도 정말 섭섭해하고 온 국민이 애도하는 그런 분위기를 연출한 것 같습니다.

[앵커]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하셨더라고요. 장남의 모습도, 그동안에 사실 베일에 가려져 있었는데 오늘 모습을 보였죠?

[인터뷰]
오늘 저도 처음 봤습니다마는 아마 국민들도 처음 보지 않았을까. 차남은 우리가 가까이 만날 수 있었는데요.

[앵커]
홍일표 의원님도 오늘 참석하셨죠?

[인터뷰]
네, 참석했습니다.

[앵커]
1시간 10분 정도 행사가 쭉 이어졌는데 먼저 일찍 가셔서 입장을 하셨을 거고요. 눈까지 내리고 그래서 참석하신 분들은 상당히 힘드셨겠어요?

[인터뷰]
국회의사당 정원에 의자를 많이 준비했는데 사실은 날씨가 워낙 춥다보니까 많은 분들이 참석을 다는 못하셨어요. 중요한 분들은 많이 오시고 많은 정치인분들 많은 정치인분들 또 시민들 이렇게 오셔서 애도했는데 날씨가 조금만 좋았더라면 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앵커]
박근혜 대통령도 원래는 영결식에 참석하려고 하셨는데 건강이 좋지 않으신 데다 오늘 날씨가 궂어서 영결식에는 참석하지 않으시고 대신에 병원에서 발인할 때 현장을 찾으셨죠.

[인터뷰]
박근혜 대통령이 G20정상회의라든가 이런 데 일정을 빡빡하게 계속 소화를 했고 그러다 보니까 지금 건강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습니다. 또 29일에 파리 기후변화 협약에 참석하실 예정이고 그래서 서울대병원에서 운구차 갈 때 지켜보고 이렇게 했는데.

[앵커]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해 드리는.

[인터뷰]
어쨌든 민주화운동을 같이 했던 과거의 동지분들. 그런데 이분들이 다 나이가 많으시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추운 날씨에 여기서 장시간 있다가 건강이 안 좋으실 수도 있고 그래서 좀더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김영환 의원님은 첫 번째 국가장인데 어떤 느낌이 드시던가요?

[인터뷰]
장례식이 가끔 있습니다마는 오늘 국가장은 처음 있는 일이고 여야 의원들이 진심으로 애도하는 그런 행사가 아니었나, 모처럼 그런 생각이 들었고. 너무 찬바람이 불고 하니까 고인께서 우리 정치권에 대해서 회초리를 한번 때리고 정신차리라고 하는 그런 경고의 메시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앵커]
영결식 중간중간에 흐느끼는 유족들의 모습도 보였고 추도객들이 보이더라고요.

[앵커]
어떤 대목이 가장 짠하시던가요?

[인터뷰]
우선은 김수한 추도사가 있었습니다마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고통, 그 과정 속에서 김영삼 대통령께서 그때그때마다 여러 가지 결단을 내리시고 물줄기를 바꿔갔던 그런 대목에서는 아마 거기에 같이 민주화운동 했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오랜 기억들을 되살리는 그런 아주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저도 많이 잊고 있었던 일들이 되살아나고요. 또 우리 김영삼 대통령께서 얼마나 큰 인물인가, 얼마나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인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새롭게, 저희도 그 과정을 같이 겪었습니다마는 새롭게 느끼는 바가 참 많았습니다.

[앵커]
오늘 기온도 많이 떨어지고 바람도 불고 거기다 눈까지 내려서 이렇게 저희가 실내에서 TV를 통해서 봤습니다마는 무척 숙연해 보이더라고요. 홍 의원님께서는 어떤 대목이 가장 마음에 와닿던가요?

[인터뷰]
저도 오늘 황교안 국무총리가 조사를 하고 김수한 의장님께서 추도사를 하셨는데 김수한 의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하고 거의 나이가 비슷한 연세입니다. 돌아가시고 바로 그날 아침 빈소가 차려지자마자 가서 조문을 했는데 그 내실에 김수한 의장님을 비롯한 여러 어르신들이 와계셨는데 김수한 의장께서 자기는 김영삼 대통령이 이렇게 빨리 건강관리가 안 돼서 돌아가실 줄 몰랐다. 자기하고 비슷하게 활동을 하셨던. 그래서 굉장히 건강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런 안타까운 말씀을 하셨는데 역시 오늘 영결식장에서는 그런 과거에 어려움을 당했던 장면들을 하나하나 말씀을 하시면서 본인 스스로 흐느끼고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민주화라는 업적이, 우리는 지금 자유로운 공기 마시듯이 이렇게 느끼고 있지만 많은 고통이라든가 여러 지도자들의 희생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앵커]
김두규 교수님께서는 오늘 영결식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인터뷰]
TV로만 봤지 저도 못봤습니다.

[앵커]
풍수지리 전문가로서 보실 때 대통령 서거 이후에 영결식에 눈이 내리는 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날씨가 추웠고 또 눈이 첫눈이 내렸고 추운 것은 슬픔의 의미가 되겠고요. 그다음에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지만 저기서는 새로운 태어남입니다. 새로 태어남을 축하하는 그런 의미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주 축복스러운 눈이죠.

[앵커]
그렇습니까? 국가적으로도 상당히 좋은 징조인가요?

[인터뷰]
그럼요. 눈은 내년의 새로운 풍년을 기약하죠.

[앵커]
지금 현장에 취재기자를 잠깐 연결해서 운구행렬이 지금 국회를 출발해서 노들길을 통해서 상도동을 향하게 되죠?

[앵커]
상도동 사저를 잠시 들린 뒤에 영면에 들어갈 국립현충원을 찾게 되는데요. 안장식이 거행되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연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양일혁 기자!

안장식장 앞에 나가계시는데 현장 분위기 좀 전해 주시죠.

[기자]
지금 이곳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을 맞을 준비에 한창입니다.

아침부터 간간이 내리기 시작한 눈발은 함박눈이 되어 한 송이 두 송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던 고인을 하늘도 추모하는 듯합니다.

잠시 뒤인 오후 4시쯤 국립서울현충원에 운구 행렬이 도착할 예정입니다.

운구차가 안장식장에 도착하면 의장대와 군악대 연주와 함께 안장식이 거행됩니다.

손명순 여사와 장례집행위원장 등 유족과 조문객 2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족 대표와 조문객 대표, 정부 대표가 나와 헌화와 분향을 하며 고인을 추모할 예정입니다.

이후 묘역으로 이동해 하관과 예배를 진행하고, 조총 발사와 묵념을 끝으로 식은 모두 마무리됩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소 예정지는 장군 제3묘역 능선입니다.

현충원 내 북동쪽에 위치해 있고, 정치적 맞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와는 300m 남짓 떨어져 있습니다.

풍수지리상으로도 명당으로 꼽힙니다.

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역대 대통령은 고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이번이 4번째입니다.

묘역은 260여 제곱미터로, 묘비와 상석, 추모비 등이 세워질 예정입니다.

주변 조경 작업까지 완전히 끝나려면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더 걸릴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YTN 양일혁 입니다.

[앵커]
지금 현장으로 운구행렬이 이어가는 그런 모습을 보셨는데요. 이제 잠시 뒤에 상도동 사저, 혹시 가보셨습니까?

[인터뷰]
한두 번 가봤습니다. 설날 같은 때 가서 인사 드리러 갔고요.

[앵커]
40년 넘게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곳에서 사시지 않으셨습니다. 거기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많으시겠더라고요.

[인터뷰]
대통령 사저 치고는 좋게 말씀드리면 서민적이고 옹색하고 그런 곳인데 한 번도 떠나지 않고 46년 동안 그곳에 사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이동우 부국장, 지금 오늘 한 10분 정도 행사가 조금 지연된 부분이 있는데 오늘 아침 10시부터 발인예배를 시작해서 오늘 마지막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까지 쭉 이어졌는데요. 오늘 행사 전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오늘 오전 10시에 영결식이 시작이 됐는데요. 서울대병원에서 발인이 있었고요. 그리고 이어서 국회 앞마당에서 영결식이 지금 1시간 반 정도 진행이 됐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지금은 상도동 사저로 운구행렬이 이어지고 있고요. 사저뿐만 아니라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이 500m 떨어진 데 있습니다.

거의 완공이 다 된 상태인데요. 내년 3월에 개관 예정이고. 거기는 서지는 않고 서행하면서 통과하는 것으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서 거기서 안장식을 거행하게 되는데요. 4시 20분부터 1시간 반 정도 안장식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안장식에서는 헌화, 분향 그리고 하관. 가고 하관에 이어서 한 20분 정도 예배가 있고요. 그리고 허토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조총발사와 묵념으로 안장식까지 밟게 되는 그런 순서로 밟게 되겠습니다.

[앵커]
이번 국가장의 키워드라고 할까요? 경건과 검소. 간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고인께서 경건하게,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하셔서 추모제라든지 노제도 따로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정해진 거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특히 유족의 뜻을 받들어서 추모제나 노제 없이 간소하게 치르는 건데요. 국민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안 된다. 그래서 최대한 검소하고 간소하게 치러달라라고 해서 추모제, 노제는 생략하고 전반적으로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나 아니면 노무현 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비해서는 규모가 조금 축소된 그런 상황으로 이번 국가장을 치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유족들이 그런 부분을 많이 강조를 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그런 부분을 충분히 배려를 해서 아마 최소한 간소하게 치르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 상도동 사저에 잠시 후에 도착할 예정인데요. 사저 같은 경우에도 손명순 여사가 세상을 떠나면 기부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김영삼민주센터라고 있거든요. 아까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인데요. 돌아가시고나면 김영삼 민주센터에 사저도 기부를 하겠다는 것이 유족들의 뜻이고요.

[앵커]
지금 기념도서관도 민주센터에서 운영하고 있죠?

[기자]
그렇습니다. 현재 김영삼민주센터에서 운영을 할 예정인데 그 부분이 결정이 안 된 것이 운영을 하게 되면 비용이 많이 발생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대학교에 운영을 맡기고 김영삼 기념도서관도 아예 기증하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중앙대는 그것을 난색을 표했다고 그러고요. 기념도서관에서 가깝거든요.

서울대에 지금 타진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대에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그런 신호가 오고 있다고 해서 아마 김영삼민주센터에서는 서울대측에 김영삼 도서관의 운영을 맡기는 것으로 이렇게 검토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김대중기념도서관 같은 경우에서는 연대에 2003년에 기증을 했고 연세대에서 운영을 하고 있거든요. 사저 관련해서 다시 말씀을 드리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곧 도착할 사저가 역대 대통령 사저 중에 가장 좁다고 합니다.

대지는 한 100평 정도되는데요. 3층 집인데 1층이 36평, 2층이 33평. 그리고 옥탑방이 3평, 5평 정도 된다고 합니다. 원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성북부 안암동에 사셨었는데 1969년에 상도동으로 옮기신 뒤에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상도동에서 계속 계셨고요.

옛날 집을 크게 수리하지 않고 대통령 퇴임한 뒤에도 그대로 그집에서 지금까지 살아오신 거죠. 굉장히 검소한 모습을 보여주셨고 지금까지 보여주셨고 부를 쌓는 것은 정치인의 덕목이 아니다라고 해서 재산도 상도동 사저 하나뿐입니다. 나머지 사저는 거의 다 기부를 했고요. 특히 거제 땅 같은 경우도 팔아서 한 50억 정도를 아까 김영삼민주센터 거기다가 기부를 했다는 겁니다.

[앵커]
김두규 교수님, 상도동 사저가 풍수지리학적으로 봤을 때는 어떤가요?

[인터뷰]
제가 한 10여 년 전에 어떤 월간지에서 원고청탁이 와서 대통령 생가랄까, 거주하시는 곳들 이런 곳들을 다 들러봤습니다. 상도동은 관악산에서 현충원으로 이어지는 중심맥, 생룡이죠. 그런데 비룡상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그런 터가 되어서 좋겠다. 결과적으로 거기가 민주화의 성기가 되었고 또 대통령을 배출하였고 아주 좋은 터입니다.

[앵커]
1927년생 26살의 나이에 초선이 돼서 9선 기록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 기록은 앞으로도 상당히 깨지지 않을 그런 대단한 기록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젊은 정치들이 많이 나와서 그 기록에 도전하는 일도 의미가 있겠습니다마는 그 9선이라는 과정이 한국 근대사를 거슬러 올라오면서 역사의 굽이굽이를 헤쳐오신 것이기 때문에 9선이나 10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삶의 질 또 정치적인 의미를 우리가 갖기는 어렵지 않을까. 누구도 그 기록을 대체할 만한 그런 인물이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이번 장례식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빈소를 특히 찾는 의원들의 모습을 보니까 여야가 따로 없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애도를 표하시고 그러셨는데 여당 의원으로서도 남다른...

[인터뷰]
여당 의원으로서가 아니라 여당이 지금 적자입니다. YS계가 가장 많이 와 있는 곳이 여당이기 때문에. 사실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많은 인물을 발탁하고 정치권에 진출시켰잖아요. 여야가 지금은 나뉘어서 활동하고 있지만 어려 분이 망라되어 있기 때문에 인맥들이. 그래서 빈소에도 여야 구별 없이 많이 왔던 것 같고. 지금 상도동 말씀을 하시면 그것은 지도자로서 이렇게 전범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실은 3김시대하면 돈을 떠나서 정치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이거든요. 대통령 되기 전까지는 많은 정치자금이 있었으리라고 보고 그것을 YS의 경우에는 밑에다가 다 나눠주고 자기가 직접 손을 안 댔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전해 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기 사재를 거의 남기지 않고 이렇게 검소하게 생활하다가 갔다, 이것은 정말 최근 우리 정치지도자로서는 보기 드문 사례다, 이런 것이고 9선이라는 것은 달성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제는. 왜냐하면 국민들의 물갈이 목소리가 워낙 높다보니까.

특히 수도권에서는 물론 김영환 의원님께서는 많이 하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말 어려운 기록이?의 기록이고. 그러나 어쨌든 우리가 앞으로 이렇게 큰 지도자를 키우는 것도 국가에 큰 보탬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그런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어쨌든 우리가 김영삼 전 대통령 보내면서 정말 배울 게 많은 그런 지도자다, 어느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앵커]
운구행렬이 이제 상도동 사저에 거의 도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동우 국장께서 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 상도동 주변에 주민들이 많이 나와 계시는군요. 평소에 주민들하고도 교류가 많으셨던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평소에 주민들과 조깅코스에서 매일 조깅을 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거기서 테니스도 즐기고 베드민턴도 하고. 그리고 동네 꼬마들하고도 교류를 쌓아왔고. 꼬마동기라고 하는 그분이 벌써 45세가 됐던데 그분이 운구차를 모시지 않았습니까?

특히 YS가 다니던 조깅코스가 100m 정도가 되는 곳을 몇 십바퀴를 돈다고 합니다. 한 바퀴가 아니고. 왜 그러냐고 했더니 꼭 코스를 도는 것보다는 그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 건강을 위해서 하는 건데.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생전에. 지역 주민들하고도 아주 교류가 많았었고 지역주민들도 상당히 상도동에서 대통령이 나왔고 또 상도동에 대통령 기념도서관도 만들고 하지 않았습니까? 상도동 주민들이 상당히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앵커]
지금 운구차량이 상도동 자택 근처 골목길에 들어온 것 같은데요. 인근 주민들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서 많은 분들이 지금 나와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서 많은 주민들이 이렇게 모여 있습니다.

자택이 있고 여기에는 한 500m 떨어진 곳에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이 건축 중이죠? 도보로 한 10분 거리라고.

[기자]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도 이따가 들리지는 않고 지나가기는 합니다마는 김영삼 전 대통령 기념도서관도 260억 정도 예산이 소요되는데요. 그중의 30%는 국가에서 보조를 해 주고 나머지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본인의 사재를 털어서 50억을 기부를 했고요. 그리고 나머지는 성금을 모아서 조달을 했다고 합니다.

[앵커]
고인이 살아계실 때 기념관이, 도서관이 다 완공이 되다보면 거기로 매일 출퇴근하고 싶다고 말을 했다고 하는데 결국은 그 꿈은 못 이루셨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게 거의 완성이 됐는데 계속 개관이 늦어졌거든요. 원래 올해 6월에 개관을 하기로 했었는데 10월로 늦어지고 10월도 또 내년 3월로 늦어진 상황에서 그 사이에 돌아가시게 된 거죠. 주변 정리하고 그다음에 운영 주체를 결정해야 되는데 그 부분이 아까 말씀드렸듯이 중앙대, 서울대를 놓고 계속 타진을 했는데 그 부분이 결정이 안 되다 보니까 지금까지 개관을 못하고. 일단은 내년 3월 개관을 목표로 지금 추진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앵커]
상도동 자택, 김영삼 전 대통령이 46년 동안 살면서 민주화 투쟁의 전진기지로 살아왔던 그런 곳이고요. 여기에서도 과거에 초산테러도 이 집에서 당하고. 23일간의 단식투쟁도 여기서 했다고 들었습니다.

[인터뷰]
오늘 장례식장에서 느낀 건데 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이 김영삼 대통령의 삶에 있어서 상당히 큰 과오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해 왔거든요. 오늘 업적을 쭉 나열하는 것을 보니까 하나회 척결이라든지 또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지 않았습니까, 역사바로세우기라든지 또는 금융실명제나 이런 과정들을 볼 때 이 내용이, 3당 합당이 정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 것이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고 그분께서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과연 민주화가, 그러니까 김영삼 전 대통령 때 길을 닦아놓지 않았으면 김대중 대통령이 쉽게 집권할 수 있었겠나,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터뷰]
실제로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나회를 내가 집권해서 척결하지 않았으면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것이죠. 항상 하나회라는 군부 엘리트 세력들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언제든가 쿠데타를 할 수 있는 그런 토양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바로 하나회를 척결함으로써 쿠데타의 싹을 완전히 자르는 그런 역사적인 과업을 완성한 거죠.

[인터뷰]
꼭 3당 합당이 권력을 잡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라고 이래서 비난을 하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시각이 있었는데 그 뒤에 군부척결을 실질적으로 함으로써 그것이 군부와의 야합은 아니었다, 이런 것을 증명을 해줬다, 이렇게 봐야 되겠습니다.

[기자]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역사바로세우기 해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결국 역사의 단죄를 받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5.18특별법을 제정을 하고. 그런 여러 가지 김영삼 대통령이 내놓은 업적이 굉장히 많았었는데 사실 IMF를 맞은 대통령이라고 해서 사실 지금까지는 김영삼 대통령의 공이 상당 부분 지금까지 과소평가돼 왔었는데 이번 김영삼 대통령이 서거하시면서 업적이 이렇게 많은 대통령이었구나.

[앵커]
재평가가 되고 있죠.

[인터뷰]
그야말로 저평가되어 있는 대통령이구나, 그런 얘기가 많이 들리고 있고요. 실제로 여론조사를 보면 얼마 전에 지난 8월달에 갤럽에서 한 여론조사를 보면 가장 업적이 높은 대통령이 누구냐를 물었을 때 그 당시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1%밖에 안 나왔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오늘자 리얼미터에서 조사를 한 것을 보면 4%로 높아졌어요. 물론 아직도 미미하기는 합니다마는 4배 가까이 오른 것이죠.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장 높게 나오고 그다음에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런 순서로 나오고 있거든요. 보통 여론조사를 보면 40%, 20% 이 정도 순서로 나오고 있는데 아마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상당히 달라지지 않을까, 이렇게 볼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앵커]
지금 운구행렬이 지금 상도동 사저 앞까지 거의 도착을 했는데요.

[앵커]
차남 현철 씨가 차에서 내려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고요. 좁은 골목으로 운구행렬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고요.

[앵커]
1965년 이후 반평생을 살았던 곳입니다. 가택연금 그리고 단식투쟁,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스며 있는 집 구석구석을 유족들이 영정을 들고 10여 분 정도 둘러볼 예정입니다. 지금 운구차량이 상도동 사저 앞에 도착을 했습니다.

[앵커]
민주화 성지로 불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저입니다. 영정사진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요. 아직도 간간이 눈발은 날리고 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나와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이 가족들의 품에 안겨서 상도동 사저를 한 바퀴 돌 예정입니다. 차남 김현철 씨의 모습도 보이고요.

[앵커]
사저는 대략 333제곱미터, 한 100평 정도되는 규모고요.

[앵커]
역대 대통령들의 사저와 비교했을 때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죠.

[앵커]
영정사진은 손자가 들고 들어가는 것 같죠. 김영삼 전 대통령과 손명순 여사가 없더라도 후대 역사를 알리기 위해서 상도동 자택도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그러죠? 현재 상도동 주택을 포함해서 전재산을 김영삼민주센터에 기부한 상태이고요. 이것을 재원으로 해서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이 건립중입니다.

[앵커]
가족들이 영정사진을 들고 천천히 집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앵커]
이곳은 1969년 성북구 안암동에서 상도동으로 거처를 옮긴 김 전 대통령이 46년 동안 이곳에 뿌리를 내려서 민주화투쟁의 전진기지로 삼고 1992년에 대권까지 거머쥐는 곳입니다.

[앵커]
민주화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일생으로 봤을 때는 46년 동안 가족과 함께 했던 보금자리 아니겠습니까. 가족들에게도 정말 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특히 손명순 여사 같은 경우는 38년에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가 단식투쟁을 23일 동안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내조의 여왕이라고 해서 외부활동을 안 했었습니다마는 그때는 외신기자들한테 일일이 전화를 해서 단식하고 있는 상황을 알리면서 세계에 기사가 타전되고 그랬다고 합니다. 사저는 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 그런 사저라고 할 수 있고요.

[앵커]
손명순 여사와의 러브스토리라든지 아니면 애틋했던 두 분의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는데 상당히 애정이 깊다고요?

[기자]
항상 명순아, 이렇게 부르신다고 그러죠.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이 한번 기자들하고 만났을 때 자기가 제일 잘한 게 일생에서 두 가지가 손명순 여사를 만나서 결혼한 것하고 그다음에 민주화를 이룬 것이 두 가지가 일생에 있어서 제일 잘한 일이다, 그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고요. 지난 2011년에 회혼식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손명순 여사에게 감사하다고 지금까지 내가 화를 많이 내는 성격이고 다혈질이었는데 항상 져줘서 고맙다. 당신하고 결혼해서, 나하고 살아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일생에 있어서 제일 잘한 것이 당신하고 결혼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입맞춤을 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주변에 상당히 감동을 줬다는 것이죠.

[앵커]
사저의 외경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요. 1층이 한 100평 정도되고. 다시 돌아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유족들이 집 안을 한 바퀴 돌고 지금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를 하다가 초산테러를 당한 곳도 이곳이고. 또 군사정권에 맞서다 가택연금을 당하고 23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인 곳도 바로 상도동 자택입니다. 여기서 유례된 상도동계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와 현대 정치사의 쌍대 계파로 분류가 되고요. 때로는 고단한 삶, 때로는 단란한 삶을 지냈던 상도동 자택을 마지막으로 들러서 마지막 귀가를 하고 다시 돌아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지금 저 사저가 단순히 한 가족이 사셨던 곳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상도동계, 동교동계 할 때 그분들이 정치를 추종하시는 여러 정치인 분들이 매일 아침부터 와서 거기서 상의를 하고 거기서 논의를 하고 이런 그야말로 정치현안의 논의 장소이고 민주화운동에 관한 여러 토론이라든가 이런 것들도 이뤄졌던 장소이기 때문에 저곳은 사저 이상으로 민주화운동의 거점이었다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잘 보존해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앵커]
그래서 이후에도 계속 보존해서 기념관으로도 보존을 한다고 하는데 다시 영정사진을 들고 유족들이 차에 타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서 출발을 하면 앞서 말씀드렸던 기념도서관을 잠시 지나쳐서 현충원으로 향하게 되는데 현충원도 상도동 자택과 상당히 가깝지 않습니까?

[기자]
네, 그렇습니다. 거기서 얼마 안 걸리는 걸로 알고 있고요. 동작구 상도동입니다. 전에는 동작동 국립현충원 그랬는데 최근에 이름이 상도동으로 바뀌었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동작동 국립현충원 하면 틀린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앵커]
상도동 서울현충원이 되는 것이군요?

[앵커]
김두규 교수께서 보시기에 상도동 사저가 풍수지리적 관점으로 민주화의 기운이 있는 겁니까?

[인터뷰]
우리가 풍수로 볼 때는 주산, 관악산이죠. 관악산이 굉장히 우람하죠. 그런 강한 힘, 그게 쭉 한강쪽으로 올라와서 현충원에 머무르는데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이 상도동 지맥입니다. 자기의 소신을 과하게 펼칠 수 있는 그런 땅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집터도 풍수지리학에서 많이 얘기하는데 가장 오랫동안 사시면서, 다른 분들은 많이 옮기고 그랬잖아요. 그 땅이 그분하고 맞았기 때문에 오래 사셨던 것이고요. 또 그것이 나중에 기념관이 된다니까 더욱더 앞으로 그 자리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앵커]
현충원은 풍수지리적으로 어떤가요?

[인터뷰]
현충원은 아주 오래 된 명당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549년에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가 죽어요. 그래서 경기도 장흥땅에 묘지를 쓰는데 그게 풍수상 안 좋다고 해서 지금 현재 상도동 국립묘지로 그 자리로 옵니다. 현재 창빈 안씨 묘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태어난 손자가 하성군인데 1567년에 선조임금이 됩니다. 그래서 거기가 명단으로 소문이 나서 그 당시에 전국적인 붐이죠, 풍수가. 저기가 임금이 태어난 곳이다. 왜냐하면 하성군이 서얼이거든요. 서얼이 임금이 될 수 없는데 임금이 되니까 장안에 화제가 됐던 거죠. 그때부터 거기서 명당으로 소문이 된 거죠.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면 동작이 나옵니다. 동작진도 좌청룡 우백호가 쭉 보이는데 그때부터 계속 거기가 좋은 자리로 소문이 났던 거죠.

[앵커]
현충원 자체도 기운이 좋고 풍수지리적으로도 상당히 좋은 기운이 있지만 이번에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지가 쓰이는 곳도, 묘역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인터뷰]
거기 전체가 창빈 안씨 무덤이 있고 그다음에 김대중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묘소. 전체가 아름다운 곳인데 하나의 큰 국새가.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에 1950년대에 전쟁이 일어나고 그때 많은 군인들이 죽지 않았습니까? 그때 국군 묘지가 된 건데 그래서 아주 편안하게, 많은 국가를 위해서 전사한 분들이 영면을 했던 것이고. 그게 몇 십년 오면서, 자리가 좋으면 사람들이 계속 오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그다음에 지금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도 거기에 영면을 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 터가 사람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앵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금 전 영결식에 이어서 사저를 들린 뒤에 잠시 뒤에 국립현충원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현충원에 도착하면 안장식이 거행될 예정입니다. 통합과 화합의 화두를 던지고 떠났다, 이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앵커]
상도동 마지막 인사를 들어보시겠습니다.

[앵커]
김영환 의원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통합과 화합의 화두를 던지고 떠났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23일 간의 단식 투쟁 이후에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만들어서 동서화합을 실천하지 않았습니까?

[인터뷰]
아까 김영삼 대통령의, 국민이 존경하는 지도자, 그 내용은 상당히 변화가 있으리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역사의 평가는 한 수십년이 더 지나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에 국장을 치르면서 국민들이, 특히 젊은 세대는 민주화이라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됐는지를 처음 깨닫게 됐으리라고 생각이 되고요. 그래서 저는 김영삼 대통령은 굉장히 저평가되어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것이 크게 변화가 될 그런 정치인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IMF 국란을 초래한 대통령이다, 이런 레토리가 붙어다니는 거죠. 그때 김 전 대통령께서 14대 국회까지 지내셨는데 저는 15대에 국회에 들어갔는데 IMF 무슨 청문회를 했습니다. 거기 청문위원이 됐었는데 과연 IMF라는 것을 과연 김영삼 대통령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이 좀 구조적인 문제이고 한국 경제가 갖고 있는 그런 병폐라고 생각을 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우리들이 좀더 김영삼 대통령을 그때 보호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랬으면 더 국민통합이 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면에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영호남의 화해의 문제 또 정당 간의 대화와 통합의 문제, 이런 문제를 이번에 던지고 가셨다고 생각하고 이 과제가 남아 있는 우리 정치인들이 해결해야 될 그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홍 의원님, 지금 김영환 의원님 말씀과 관련해서 지난번에 윤여준 장관께서 나오셔서 주변의 관료들이 IMF 직전에 매번 가져와서 보고하는 것마다 장밋빛 보고만 하더라, 좋은 얘기만, 옆에 배석해서 듣다보면 그렇게 좋은 얘기만 한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그런 면이 없지 않겠지만서도요. 그런 부분들도 하나의 교훈일 것 같아요.

[인터뷰]
물론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는 다 밑에 위임해 주는 스타일이잖아요, 정치하는 방식이. 자기가 일일이 다 챙기지 않고 우수한 사람을 발탁을 해서 알아서 해라. 사실은 그게 굉장히 중요한 방법이죠.

[앵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인터뷰]
그래서 믿고 맡겼는데 그게 관료들만의 책임도 아니고 우리 사회가 그동안 집중적인 경제성장, 압축성장 이런 정책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그 부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김영삼 대통령 때 그게 터졌다고 봐야 되죠. 그래서 그것을 그 시기에 대통령 한 사람에게 묻기는 어려운 상황이고 언제인가는 우리가 감당해야 될 그런 순간이었다. 이렇게 보여지고 저는 지금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라는 게 사실 그동안 YS, DJ로 대변되는 동서문제. 이 두 분은 사실 지역주의에 입각해서 정치를 해 왔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청산해야 됩니다, 이것을.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그것을 느끼시고 본인 시대에는 그랬지만 앞으로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는 그런 메시지를 분명하게 던지셨다.

또 한 가지는 본인이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추진했었잖아요. 그 회담 성사되기 직전에 김일성이 사망을 함으로써 아쉽게 그게 안 됐는데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꾸준한 관심을 가졌거든요. 한왕상 씨 같은 분을 통일부 장관으로 영입을 해서 계속 화해의 제스쳐를 많이 취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에는 국민통합 나아가서는 남북 관계의 통합, 이런 것까지 다 들어가 있는 그런 메시지다. 또 그런 것이 하필 최근에 너무 여야 사이에 갈등이라든가 국민들 사이에 이념적인 이런 문제라든가 이런 것들이 아직 해소가 안 되고 여전히 국민적 갈등 속에 있다 보니까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가 지금에 와서 더 절실하고 정말 이 시대에 맞는 그런 이슈를 적절하게 제기하신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앵커]
두 분 의원님 여기에 계시지만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를 정치권에 계신 분들이 새겨주셨으면 좋겠네요.

[인터뷰]
오늘 박근혜 대통령께서 감기 안 오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빈소 가셨습니다, 또 몸이 그렇게 안 좋으시기 때문에 1시간 동안이나 추운 국회의사당에 오시기는 힘드셨을 텐데 그게 감기가 안 오셨으면 거기에 오셨으면 굉장히 역사적인 화해의 장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고요.
또 정치라는 것이 결국은 국민을 통합하는 기술이구나. 국민을 통합하는 것보다 더 큰 업적은 없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앵커]
박근혜 대통령이 몸살감기가 상당히...

[기자]
주치의가 강력하게 경고를 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감기몸살과 과로가 겹쳐서 임계치에 다달았기 때문에. 당장 이번주 일요일부터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 가야 되고요. 그다음에 또 체코 가서 동구권 정상들과 회담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순방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결국은 주치의 의견을 받아서 오늘 서울대병원에서 했던 발인에만 참가하는 그렇게 정리를 했던 거죠.

[앵커]
운구행렬이 지금 김영삼기념도서관을 지나서 국립현충원으로 가게 되는데요. 국립현충원이 앞서 저희가 상도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동작구 사당동으로, 사당동 국립현충원으로 지금 운구행렬이 그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기 하얗게 조그마하게 보이는 곳이 김영삼기념도서관이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저기 작은 건물이요, 저 아파트 건물 바로 옆에 있는.

[앵커]
지하 4층에서 지상 8층 규모입니다.

[앵커]
벽돌을 쌓은 것 같은데 그런 외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 외관 벽면에 지금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습니다.

[앵커]
영정이 걸려 있는데요. 김영삼 기념도서관. 지하 4층, 지상 8층 규모인데요. 출생부터 성장, 집권, 퇴임 후까지의 각종 자료와 서적, 동영상을 전시해서 민주주의 교육장으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내년 초에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앵커]
대형 현수막에는 김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과 함께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국민에게 보내는 감사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 운구행렬이 조금 전에 김영삼기념도서관 옆을 지나갔습니다.

[앵커]
김영삼기념도서관을 경유해서 이제 운구차, 잠시 후 현충원으로 향하게 됩니다. 상도동 자택은 인간 김영삼 대통령을 말해 주고 그리고 기념도서관은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아서 건립하겠다, 이런 취지라고 해요.

[인터뷰]
사진이라든지 각종 사료라든지 아까도 보셨겠지만 그게 벽돌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이거든요. 건축사무소 설명으로는 미국 남북전쟁 영웅인 스톤월 잭슨 장군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스톤월이 돌벽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돌벽을 쌓은 의미로 독재정권에 대해서 민주주의를 굳세게 염원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의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앵커]
시골 담벼락과 옥새를 상징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하는데요. 국립서울현충원을 향해서 운구차량이 천천히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금방 도착을 하면 현장에서는 어떤 식으로 안장식이 진행이 되죠?

[인터뷰]
현장에 도착을 하면 지금 시간상으로 봤을 때 4시 반 전후는 되어야 될 것 같은데요.

[앵커]
지금이 4시 반이니까 10분 정도 있으면.

[기자]
10분 정도, 그리 멀지 않으니까요. 한 1시간 2, 30분 정도 안장식이 거행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안장식은 헌화가 있고요. 그다음에 분향 그리고 이어서 하관이 있고 약 20분 정도 예배를 치르게 됩니다. 예배는 수원중앙침례교회 고명진 목사가 집전을 하게 되고요. 이분은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가 김정환 목사거든요. 극동방송 회장도 하셨고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절친하신 분이죠. 그래서 그 인연으로 오늘 개신교 의식에서도 김장환 목사가 인도를 했었고요. 그다음에 안장식 예배는 수원중앙침레교회 고명진 목사가 맡게 되고 그리고 허토에 이어서 조총발사를 하면 안장식이 모두 마무리가 됩니다.

[앵커]
국립현충원으로 출발하기 직전 상황인데요. 잠시 후에 출발을 하게 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특히 칼국수를 즐겨 드셨고 아주 검소하고 소탈한 그런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들도 사실 후배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배우면 좋을 법한 것 같은데요.

[인터뷰]
성북동에 가면 조그마한 칼국수집이 있는데 거기가 늘 들르던 칼국수집인데 정말 맛있습니다. 그리고 칼국수집도 하나 정해놓고 계속 다니시잖아요. 홍 의원님도 그러셨는데 모르겠지만 정치하면서부터 김영삼 대통령이 아버님이 보내주시는 멸치를 늘 해마다 받아서 국을 끓여먹고 했습니다마는 다정다감하고 세심했던 분인 것 같습니다.

[앵커]
앞서 인터뷰에서 멸치시래기국, 손명순 여사가 끓여주는 멸치시래기국이 맛있었다고 하셨는데 소탈한 이런 모습들 많이 배우셔야 될 것 같아요.

[인터뷰]
사람들 오라고 해서 오찬 하면 칼국수 딱 먹고 나와서 어떤 분은 배고파서 다른 것도 먹어야겠다, 이런 얘기도 했었는데. 대통령으로서 많은 국민들이 쳐다 보고 있으니까 그런 것을 몸소 실천하는 게 하나의 모범으로서 각인될 수 있고 거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인터뷰]
칼국수를 진짜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인터뷰]
그런 것 같아요.

[인터뷰]
일부러 먹으신 것 같지는 않고 정말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앵커]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도 하고 취임 이후에 1원도 안 받겠다, 이런 표현도 하시지 않았습니까? 취임 이후에 실제로 그런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사저의 모습을 본다든지 하면.

[인터뷰]
정치인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같은 지도자들이 뭔가 솔선수범하는 그런 자세를 보여줬고 정치인들이 돈과 권력을 같이 가져서는 안 된다는 그런 말씀도 하셨잖아요. 어록 같은 게 남아 있잖아요. 그것은 앞으로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사실 금융실명제도 본인이 떳떳하지 않았으면 감히 할 수 없는 그런 정책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그때는 돈이 필요한 때이기 때문에 돈을 받기는 하되 그게 머무르는 정거장 같은 것이다, 그런 말씀을 하셨죠. 그런데 지금은 받아서도 안 되는 그런 투명한 사회가 됐으니까 그런 면에서는 과도적인 정치인으로서의 나름대로의 품격을 지키고 정치의 금도를 제시한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인터뷰]
김영삼 대통령이 민주화를 이루었다, 우리가 흔히 얘기를 하는데 정권을 민주세력이 잡았다, 여기에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민주화의 실질적인 조치들, 문민, 우리 사회 자체를 문민화시키고 개방화시키고 투명화시키고 이런 점에서 우리가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돌이켜봐야 한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금융실명제 이런 게 없었으면 부패를 잡을 수가 없잖아요. 부패 척결, 하나회 척결, 그 전까지는 군인들이 공무원으로도 나가고 여러 보이지 않는 혜택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자취를 감춰가기 시작한 게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앵커]
1954년에 초선이 돼서 1993년에 대통령에 취임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그동안 사실 고생도 많이 해서 대통령되고 난 뒤에는 그동안 내가 기여한 것도 있고 하니 대통령으로 누리겠다, 이런 생각도 할 법 한데 오히려 대통령 되고 난 뒤에 엄청난 긴장과 이런 부분들을 감내하면서 개혁적인 조치들을 계속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들은 상당히 대단한 것 같아요.

[인터뷰]
대학생 시절에 신민당 총재, 이러면서 서울 시내 광화문 앞에 당보 같은 것 뿌릴 때 지켜봤죠. 지나가다 보면 정치들이 와서 끌고 가고. 그 당시에는 민주화라는 게 우리 시대의 큰 하나의 사명이고 과제였는데 그걸 지도자와 국민들이 같이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정치를 했었던 분이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제가 그 당시에 김영삼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저는 법원에 법관으로 근무했습니다. 법원에도 한번 오셔가지고 그때 사법개혁을 추진하고 계셨거든요. 딱 연설을 하는데 특유의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집단은 존속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거기서도. 그렇게 각 분야에서 개혁을 해야 되겠다, 그런 것을 많이 보여줬었죠.

[인터뷰]
김영삼 대통령을 우리가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중 하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게 의회민주주의자라는 것. 그때는 민주, 반민주 시대이기 때문에 걸핏하면 거리로 쏟아져나가고 또 정권 타도 투쟁이 일상화되어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고 소중한 일이었다. 우리 야당이 장외투쟁이나 이런 것을 할 때 우리 김영삼 대통령한테 배워야 되는 점은 의회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거리에서의 갈등을 의회로 가져가는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앵커]
이제 곧 현충원으로 들어서기 직전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검은색 운구차량이 거의 다 온 것 같죠?

[앵커]
5분 뒤쯤 도착을 한다고 하니까요.

[앵커]
바로 다 와 있는 것 같아요.

[앵커]
지금 운구차량이 서울현충원을 향하고 있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앞서 상도동 자택 주변에서도 그렇고 지금 날씨가 추운데도 많은 분들이 앞서서 상도동 자택 주변에도 주민들이 나와 있었고요. 또 아마 가는 길목마다 많은 분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자]
국립서울현충원 앞 삼거리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명수대 현대아파트가 보이고요. 그래서 저 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국립서울현충원입니다.

[앵커]
들어가는 문을 기준으로 하면, 문 들어가면 바로 현충원 정문이 있고 추모탑이 있고 추모탑 뒤쪽 같더라고요. 뒤로 오른쪽으로.

[앵커]
장군 제3묘역.

[앵커]
기준을 어느 쪽에 잡느냐에 따라 다른데요.

[인터뷰]
문쪽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입니다.

[앵커]
지금 현충원 입구를 들어가고 있습니다, 차량이.

[기자]
영원한 라이벌인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와 300m 정도 떨어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봉황의 가슴 정도에 있는 것이고 양쪽 날개에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날개 역할을 하는. 어떻게 보면 영원한 숙적인데 묘소도 공교롭게 그렇게 나란히.

[인터뷰]
오늘 오시면 아마 굉장히 반가워하실 것 같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거기에 창빈 안씨 무덤이 있고 이승만 대통령 묘가 있고요. 또 반대쪽에 김대중 대통령 묘가 있고 그리고 지금 현재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맨 오른쪽에. 네 분이 비슷하게 4자회담을 하시거나.

[앵커]
네 분 자리 중 어디가 가장 좋습니까?

[인터뷰]
다 좋습니다.

[앵커]
묘를 파는 과정에서 봉황알을 닮은 돌멩이가 나왔다, 이래서 더 의미를 부여하더라고요.

[인터뷰]
그게 토란이라고 하는데 흙의 알, 거기가 봉황 토란이거든요. 그러면 그런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좋은 땅은. 그러한 것들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 돌아가심으로써 또 그 땅을 맞이할 때 아마 선물로 땅이 주신 것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앵커]
그 돌 같은 것이 파는 과정에서 나오는 겁니까? 50cm 안팎이라면서요? 큰 돌이더라고요.

[앵커]
그것도 7개나 나왔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땅의 특징 중 하나가 봉황이면 봉황의 알과 같은 것이 나와야 하고 호랑이는 바위가 있어야 먹이가 있고. 그게 바로 풍수에서 좋은 명당의 터를 알려주는 증거가 되죠.

[앵커]
명당 자리에서는 그런 것들이 나오나 보죠.

[인터뷰]
그럼요.

[앵커]
그 전에도 다 나왔습니까?

[인터뷰]
상황에 따라 다르죠. 김대중 대통령 거기는 못 봤습니다.

[앵커]
국립서울현충원에 운구차량이 도착을 했고요. 잠시 후에 안장식이 거행됩니다. 당초에는 4시부터 거행될 예정이었는데 40분 정도 지연이 됐습니다. 오늘 궂은 날씨에다가 워낙 엄숙하고 숙연한 가운데 여러 가지 절차가 진행이 되면서 조금씩 지연이 되고 있습니다.

[앵커]
운구차량이 거의 도착을 했는데 장군 제3묘역이라는 곳을 조금 더 설명을 해 주실까요?

[앵커]
장군 제3묘역에 묻히는 건 아니죠? 그 옆에 있는 능선에...

[인터뷰]
그러니까 현충원이 길게 감싸고 있는데, 좌우로. 그 한 가운데 장군묘역이 있고 그 아래에 창빈 안 씨 묘 있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 있고. 산 능선이 100개가 내려옵니다. 1개가 아니고 중심이 되는 묘가 창빈 안씨 묘와 이승만 대통령 묘, 김대중 대통령 묘. 그리고 왼쪽으로 하나 주된 능선이 내려가면서 그 아래 장군묘역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위를 점하고 계신 거죠.

[앵커]
저희가 그래픽을 준비한 게 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걸 한번 보여드리도록 하고요. 이게 하늘에서 잡은 모습인데요. 봉황의 모습인가요?

[앵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가 날개 부분에 해당하는 거고요. 설명을 해 주실까요?

[앵커]
현충원 문 기준으로. 문이 가운데 아랫쪽이고요.

[인터뷰]
본 관점에서, 어느 지점에서 보느냐도 달라지는 거거든요. 저렇게 보시면.

[앵커]
정문이 아랫쪽에 있는 것 아닌가요?

[인터뷰]
그렇죠. 맨 뒤에 공작의 꼬리 부분이 지산을 표시하는 부분이겠죠. 그리고 얼굴, 머리 부분 그 아래 배 부분, 그 아래 이렇게 있는데. 그 밑에 알은 어느 부분이냐. 보는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죠. 그렇지만 현재 이승만 대통령 묘, 김대중 대통령 묘, 이 부근이 알에 해당하는 부분이 되겠고요. 좌우 날개를 감싸는 부분이... 그러니까 저 그림을 약간 다르게 볼 수 있겠는데.

[앵커]
지금 양 날개 끝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지가 되고 그리고 약간 알을 품은 듯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평가들을 하더라고요. 이제 운구행렬이 안장식이 거행되는 장소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앵커]
대통령 묫자리 같은 경우에는 미리 몇 군데 정해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자리 같은 경우.

[인터뷰]
돌아가시기 전에 고인이 어떻게 정하느냐에 달려있는데 아마 제가 알기로는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기독교인이시라 풍수를 그렇게 크게 쓰지 않은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요. 아마 현충원과 그중에서 가장 가까운 터, 여유 있는 공간, 이것을 잡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앵커]
2013년에 어디가 좋은지, 현충원에 좋은 자리가 남아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
그래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지금 대통령께서 돌아가시면 사당동 현충원으로 많이 가시는데. 최규하 대통령께서는 대전 현충원으로 가셨거든요. 나중에 대통령이 작고 하시면 어느 쪽으로 가느냐, 이것도 장기적으로 일정한 공간을 만들어서 대통령들은 일정하게 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이 듭니다. 자꾸 좋은 자리 찾다 보면 어그러지죠.

[인터뷰]
김대중 대통령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앵커]
오른쪽 상단에 있는 모습이, 지금 묘역의 모습이 나오고 있네요.

[인터뷰]
장지를 얻기가 굉장히 어려웠다고 해요. 그래서 여러 가지 협상도 하고 논의도 하고 했습니다마는 나중에 묘소를 가 보게 되면 거기에 수백년된 적송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대통령 가실 장소가 미리 예견됐던 것 아닌가. 토란이 나온 곳이 거기에는 수백년된 나무 몇 그루가 지키고 있고 봉분 뒤에도 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소나무가 있습니다. 여기는 대통령께서 가시려고 이런 것이 몇 백년 전부터 조성되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됐어요.

[인터뷰]
나무 중에서도 으뜸이 소나무입니다. 그래서 으뜸되는 나무 중 소나무를 십장생이라고 해서 거북등과 같아서 신령스럽게 보죠. 좋은 기운이 뭉친 곳은 황토색이고요. 또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봅니다.

[앵커]
산쪽이라서 그런지 조금 더 눈발이 흩날리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현충원에 거의 도착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지금 묘역의 모습이 보이고 있는데요.

[앵커]
묘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경사면 아래에 안장식이 열릴 안장식장이 간이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충헌당이 근처에 있다고 하는데요. 충헌당 근처에 안장식장을 임시로 마련해 놓고요.

[앵커]
오늘 하산을 하고 나서도 봉분이 만들어 지고 하는 데까지 한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
뒤에 둘레석 치고 조경수 심어야겠고요. 비석 올리고. 상당히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오늘 아마 하관하고 흙을 덮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까.

[앵커]
그렇게 하고 나무로 만든 임시 묘비가 세워진다고 하는데 그 묘비 전면에는 제14대 대통령 김영삼의 묘라고 새겨진다고 합니다.

[앵커]
검은색 링컨 리무진 운구차량.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안장식장 앞에 도착했고요. 주차장에서 제단까지 이동을 하게 됩니다.

[앵커]
전체적인 의식은 군 의장대가 도와주고 있습니다. 오늘 안장식은 약 250명 정도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이 될 예정이고요. 70분 정도 소요될 예정입니다.

[앵커]
빈소를 계속 지켰던 김현철 차남의 모습도 보였고요. 유족을 포함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안장식이 거행될 예정입니다. 안장식 순서는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나요? 이동우 기자.

[기자]
먼저 묘소에 도착을 하면 조문객 대표가 헌화를 하게 되는데요. 조문객 대표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맡는다고 합니다. 이어서 분향이 있고요. 그리고 하관, 예배, 허토, 이런 순서로 진행되고 맨 마지막에는 조총 발사, 21발을 발사를 하고요. 그다음에 묵념으로 해서 마무리를 한다고 합니다.

[앵커]
유족들 그리고 조문객을 태운 버스도 이제 도착을 하면 잠시 후에 안장식이 시작이 됩니다.

[기자]
45인승 버스 2대하고 25인승 버스 2대가 이렇게 준비됐다고 하고요. 아까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 갈 때는 45인승 버스는 상도터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요. 25인승 버스만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 앞을 지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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