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아 / 前 북한군 장교, 김주환 /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앵커]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김정아 전 북한군 중위와 함께 관련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주환 전문기자. UN군 사령부가 오늘 귀순 당시의 장면이 담긴 CCTV을 공개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시간까지 11시에 공개한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죠? [기자] 일단 지금까지 상황으로 보면 무기연기다 이렇게 설명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이유를 설명드리면 당초 UN사는 오늘 오전에 26초 분량짜리를 공개하겠다라고 했는데 아까 국방부 출입기자들이라든가 일각에서 이건 굉장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당시 최초 상황 발생이 3시 16분부터 상황 종료가 3시 56분인데 그것만 해도 30분 분량인데 26초 분량이 공개됐을 경우에 굉장히 과거 천안함 폭침 사건 때 TOD.
처음에 작게 공개했다고 굉장히 의혹이 증폭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굉장히 국방부와 협의 관계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었고 굉장히 오후 내내 격론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자칫하면 1분만 공개했을 경우 여론의 휘발성이라든가 이런 부분을 감안을 해서 공개를 미뤘는데 마침 이건 UN군 사령관의 결정사항인데 브룩스 사령관이 지금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일본에 체류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거든요.
이런 부분에서 오늘까지 상황으로 말씀드리면 무기연기다. 일각에서는 내일 공개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같이 국방부 출입기자인 저조차도 내일은 안 할 것으로 봅니다.
[앵커]
그런데 앞서 저희가 강정규 기자 리포트에서도 확인을 해 봤습니다마는 북한군 추격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이런 리포트를 전해드렸거든요. 영상이 공개가 안 되면 이런 의혹만 더 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기자]
사실 국방부 출입기자들 중에서 그 영상을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앵커]
지금 영상 대신 저희가 만든 화면으로 잠깐 갈음을 하셔야 될 것 같은데요.
[기자]
저 화면은 당초 우리 UN사가 최초에 13일 오후나 그저께 추가로 브리핑한 것을 판단해서 저희가 3D 영상을 만든 거죠. 지금 보시다시피 평화의 집이 있고 오른쪽에, 지금 병사가 쓰러진 부분이 사실은 거기 주차장이 있습니다.
우리 주차공간이 있고요. 저것이 MDL, 군사분계선 일종의 임의의 선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지금 조립식 주택 형태로 보이는 것이 딱 정가운데가 군사분계선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군사정전위원회 할 때 그 딱 가운데 마이크 선을 놓고 한 적도 있고요. 그래서 실제 가보면.
[앵커]
화면 설명을 조금 해 주시죠. 판문각은 북쪽 지역에 있는 건물이고 마주보고 우리 건물이 있죠.
[기자]
평화의 집이 있고 가운데가 자유의 집이 있죠.
[앵커]
가운데 있는 건물들, 낮은 건물들이 우리가 화면에서 늘 보는 판문점이죠?
[기자]
그렇습니다. 그다음에 지금 갈색 형태로 나오는 게 북한군 초소고 우리 측 초소 이런 형태인데 저기 실질적으로 좌측에 보면 나무와 이런 형태로 돼 있거든요.
그리고 군사분계선이 저기서 임의로 보면 우리가 가로에서 세로로 바로 질러서 연장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판문점 공동구역을 벗어나면 이게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앵커]
저렇게 지프차가 도착을 했습니다. 북쪽에서 왔는데 넘어오는 과정에서 추격조의 추격을 받았고요.
[기자]
지금 일각에서 얘기하는 북한 쪽, 화면 우측 초소에서 3명이 나와서 MDL을 넘었냐라는 논란의 핵심은 그중에 북한군 병사 한 명이 지금 빨간선으로 임의의 선 보이는데 그 중간점에서 임의로 주춤주춤 하다가 되돌아갔다라는 설이 하나 있고요.
또 하나, 우리 쪽의 판문점 전체 관할하는 상황실이 있는데 거기서 모니터로 24시간을 보는데 우리가 모니터상에 임의의 군사분계선을 그어놨다라는 설도 있습니다. 물론 설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그걸 판독을 하면 북한군 병사가 군사분계선을 넘었느냐 안 넘었느냐 판독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굉장히 많은 의혹들이 상존하는 가운데 26초만 공개했을 때 실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라는 전제하에 그러면 왜 우리가 경고사격이라든가 소극적 대응을 했냐라는 이런 비난이 있을 수 있고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UN사 측에서 일단은 무기연기하는 걸로 되는 거죠.
[앵커]
김정아 대표님 보시기에는 어떤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
저도 솔직히 얼마 전에 판문점 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실제 보다시피 3D 화면으로 봤을 때도 그 집이 있지만 이 옆쪽부터 양옆쪽은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관측하기는 상당히 합리적으로 뭔가 물리적으로 불편할 수도 있고요. 한 가지 여기서 저는 제일, 항상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저는 이전에 북한군이었던 입장에서 놓고 본다면 솔직히 저 지역은 우리가 보안이 돼서 일반인들을 다 통제하는 구역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최고의 보안 구역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닌 지역을 굳이 영상 공개까지 왜 해야 되는지 이해가 안 되고요. 첫 번째 가장 큰 문제가 그것이고요.
두 번째 제가 가장 여기에서 안타깝게 의문으로 가지는 문제가 의문으로 가지는 문제가 16분간 왜 북한군 병사를 빨리 구조하지 않았느냐, 이 문제가 대응 논란이 상당히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제 쓰러진 병사는 우리 병사가 아니라 적군의 병사, 귀순한 병사입니다. 거기에서, 북측에서는 계속 사격이 이어지고 있고 우리 병사를 그 사격이 이어지는 속에서 우리 병사를 보내면 우리 병사가 다치거든요.
지휘관의 입장에서 그것은 내 병사가 중요하지 적군에서 귀순하는 병사가 우선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상대 측에서 거기에서 교전이 일어난 다음에 이건 어찌 보면 국지전으로 넘어갈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상황에 대한 대처를 지휘관으로서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어찌 보면 이번에 했던 JSA의 대처가 최선의 대처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피해를 막았잖아요.
그것에 저는 솔직히 같은, 아무리 북한군이었어도 장교였던 입장에서는 나라도 내 병사를 거기서 죽을 걸 뻔히 알면서 내보낸다는 것 자체는 말이 안 되거든요.
우리 국민의 생명이 더 소중하지 귀순해 넘어오는 병사는 이미 다쳐서 쓰러진 상태였고 그 차이를 판단을 했으면 좋겠고 군의 대응하고 정부의 대응, 법적인 대응, 이거는 분명히 구분해서 평가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군인들 입장에서는 뉴스를 보면 얼마나 속상하고 답답하겠어요?
[앵커]
여기 이 지역에서 교전 수칙이 달리 적용이 되고 있습니까?
[기자]
그렇죠. 1953년 7월 27일 쉽게 말해서 우리가 군사분계선을 기점으로 해서 양측이 2km 완충지대인 비무장지대라고 있는데 저기는 그 가운데 일종의 인공 섬이라고 표현을 하면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기는 1953년부터 UN군 사령부 관할 구역입니다. 역설적으로 2003년부터 우리 한국군 경비대대가 근무를 하지만 저기에 우리 한국군은 UN사 소속에 배속된 겁니다.
그래서 보면 휘장을 달고 나오고 건장한 우리 한국군 장병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기의 교전 승인 권한은 미군, 그 미군 역시 UN군 소속이거든요.
UN군 소속으로 해서 교전 수칙을 하는데 큰 틀에서 해서 저기 교전 수칙을 광의의 의미로 설명을 드리면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교전 수칙이다, 이렇게 평가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당시의 상황을 알려면 영상이 공개되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실제로 사선을 넘어온 이 북한군 병사의 말을 듣는 것이 참 중요한데 어제 2차 수술이 있었습니다.
현재 상태는 어떤지 수술을 담당했던 이국종 아주대 중증외상센터장의 발언 한번 들어보시죠.
[앵커]
김주환 기자. 지금 북한군 병사 상태는 어떤 상태인가요? 지금 전체적인 혈압이라든지 여러 가지는 정상적으로 가고 있는데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아요.
[기자]
그렇죠. 2차 수술을 한 이유도 감염 이유 때문에 그런데 수술을 받아도 우리가 일반화시켜서 환자의 건강상태가 굉장히 좌지우지한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기 병사가 170cm. 북한군 병사로서는 큰데 60kg. 우리의 지금 고3 학생들에 보면 건강도가 굉장히 낮은 거죠. 그런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이국종 교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과서에 나오는 몸속에 회충이라든가 이런 것이 굉장히 많았다.
여기서 참고로 더 말씀드리면 1996년도 9월에 강릉 잠수함 침투했을 때 잠수함 승조원들이 11명이 집단자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그 현장에 저도 가본 적이 있는데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 북한군 병사, 잠수함 승조원들을 다 부검을 해 보니까 11명 모두 오늘 이 병사만큼의 기생충이나 회충이 시신에서 부검이 됐다라는 확인된 사실도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북한군 내부의 식량 상태라든가 농사짓는 방법 이런 부분에 따른 원인이 있다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앵커]
사실 수술을 집도한 이국종 교수도 상당히 놀랐고 최대 27cm에 달하는 기생충이 발견된 것도 국민들에게 굉장히 큰 충격일 텐데 북한군을 직접 지내셨던 대표님께서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인터뷰]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제일 먼저 오면 국정원에서 제일 먼저 조사하는 게 바로 회충약입니다. 구충약을 제일 먼저 조치를 하고 있고 저는 지금 한국 신랑하고 살고 있는데 저희 신랑이 주기적으로 저 모르게 회충약 관리를 해 주고 있고 이번에 이 기사 보니까 회충약 다시 또 먹자 이러고 계속 그걸 하고 있습니다.
그게 북한이 아직도 모든 돼지부터 일단 일반인들이 먹는 돼지고기 자체가 사람 인분을 먹여서 키우는 게 50%입니다.
그리고 음식쓰레기라든가 이런 농약 그런 걸로 부식물로 키우는 것이 또 50%, 또 순수 식량, 옥수수라든지 이런 식량이라든가 아니면 사료라든가 이런 것을 먹여서 키우기에는 너무나도 식량 값이 비싸고 또 옥수수가 주식량입니다.
이국종 교수 말마따나 그 옥수수가 나왔다는 정도면 그런데 이분한테서 옥수수가 나왔다는 게 더 충격적인 게 뭐냐하면 무엇을 볼 수 있냐 하면 대북제재가 몇 년째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대북제재가 어찌 보면 판문점과 같이 초특급의 대우를 받고 있는 부대까지도 영향을 미쳤구나라는 걸 우리가 또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상당히 놀랐고요.
왜냐하면 북한의 다섯 손가락 안의 대우를 받고 있는 조종사, 남파간첩 그리고 판문점도 여기에 최등급으로 들어가고 있거든요.
이런 최등급에 들어간 사람들이 옥수수를 먹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국종 교수, 수술하신 분의 말씀으로는 왜 소장에 있는 변이 대장으로 왜 들어갔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 변비를 의미합니다.
북한의 오랜 식량이 옥수수라든가 잡곡만, 제대로 가공을 안 한 잡곡만 먹이게 되면 제일 먼저 오게 되는 게 변비입니다. 변비로 인해서 소화가 안 되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서 영양실조가 나오기 시작하고 거기에서 기생충 이런 문제도 분명히 있겠죠. 그것이 복합적으로 되면서 영양부족이 오는 것이 이 사례거든요.
그래서 북한 자체는 지금 해마다 3, 4월을 봄철 위생 월간으로 지정하고 있고 그 3, 4월마다 인민주택에서는 기생충약하고 회충약을 보급을 합니다.
그래도 근절이 안 되고 그리고 집에서는 개인 민간요법으로 호박씨를 깎아먹거나 식초를 주기적으로 먹습니다. 여름철에는 식중독 안 걸리기 위해서. 그래서 식초를 항상 먹고 있고 아니면 소다하고 식초를 같이 분합해서 막 끓을 때 그걸 들이마시거나 이러한 민간요법으로 많이 대처하고 있는데 판문점 군인이 기생충에 관련된 걸 제가 말씀드릴 게 거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앵커]
저녁식사 시간이어서 그 정도로 말씀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몸에서 기생충이 많이 나오고 옥수수가 발견되면서 신분이 오히려 높지 않고 또 배수로에 차가 빠졌지 않습니까? 그래서 운전병이 아닌 게 아니냐, 이런 얘기도 나오는 것 같은데 여전히 운전병이라고 보시는 거죠?
[인터뷰]
저는 아직도 운전병이라고. 왜냐하면 제가 지금까지 봐왔던 운전병들, 군단급, 사단급. 제 양아버지만 해도. 오랫동안. 저희 양아버지 같은 경우에도 김책사당 일을 했을 때도 운전병이 그때 아파서 한 달 정도 실제 일을 못한 적이 있었어요.
차량 그대로 세워놓고 사단장 차를 탑니다. 그러니까 그건 무조건 보장해 줍니다.
사단장 차하고 두 개 차량이 보좌해 주고 만약 사단장 차가 사단장이 올라가게 되면 정치부 차량이 따로 있습니다. 그런 차로 대체하면 했지 그 차량은 안 움직입니다.
그리고 차 키 자체를 두 개, 세 개를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본인 하나만 갖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 차키를 누구한테 주는 일은 없습니다.
차를 끌고 일단은 그 판문점이라는 그 구역 안에, 그 공동구역 안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는 운전병이 아니면 그 차를 접근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신분 자체도 그 대표부 안에 4개 중대, 한 개 대대가 있습니다. 그 대대 안에 있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최상의 출신, 최고위급의 자녀라는 말하고 최상의 출신하고는 말이 다릅니다.
그러면 최상의 출신인 사람이 아니면 그 안에, 북한의 정통성으로 봤을 때 그 안에 발 자체를 들여놓기는 어렵다는 거죠.
[기자]
판문점 대표부라는 것이 뭐냐하면 사실은 송악산 기슭에 사령부가 있는데 과거 상장, 우리 중장급이었는데 지금 소장으로 별 하나 정도가 사령부인데 한 800명이 됩니다.
그런데 1994년 5월에 북한이 군사정전을 무력화하면서 북한에 있던 중립국감독위원회 체코 사람을 다 철수시켰어요. 그 이후에 만든 것이 판문점은 우리가 직접 관할하겠다라고 해서 판문점 대표부라는 걸 만들었는데 한 400여 명은 UN사가 직접 관할하고 지금 말씀하신 나머지 400여 명은 민경중대 4개 대대와 지금 판문점공동경비 들어가는 경무부대라고 하는데 화면에 나오는 북한군 병사들이 사실 전부 다 장교들입니다.
경무관이라고 하는데 지금 김 선생님 말씀하신 연장선상에서 말하는 우리가 자유로를 따라 쭉 올라가서 임진각으로 해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로 해서 우리 역시 판문점을 쉽게 접근을 못합니다.
가보셔서 알겠지만. 굉장히 보안 조치가 강화되고 북한 역시 후방 2km에서 북한도 민통선이 있습니다. 거기서 저 구역 내에 들어올 때까지는 이른바 북한식 용어로 차단소라고 그러는데 실제 근무했던 사람들을 취재를 해 보면 그 병사가 그 차량을 몰고 거기까지 들어오는 데 여러 우리 정보당국의 정보자산으로 보면 그 이전까지 한 10여 킬로미터를 오는 동안 총격전이라든가 이런 이상징후가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이건 달리 말하면 거기를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하급전사였다. 하전사였다, 이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인터뷰]
그 안에 100% 장교만 있는 게 아니라 하사관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 지난번에 판문점에 갔을 때도 그때 당시 근무 서던 친구도 그때 하사였던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김정아 전 북한군 중위,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였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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