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이 지난 26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토론 배틀을 펼쳤습니다.
이준석 대표 “4호선 무임승차 최다역은 경마장역” 발언
주제는 65세 이상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것. 이 대표는 토론 말미에 “4호선 51개 지하철 역 중에서 가장 무임승차 비율이 높은 역이 경마장역이다. 이게 어떻게 젊은 세대에 받아들여질지 한번 살펴봐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4호선 경마장역은 지난 2000년 이름이 바뀐 과천선 경마공원역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대표의 이 발언이 맞는지 서울시 자료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 홈페이지를 보면 ‘서울시 지하철 호선별 역별 유, 무임 승하차 인원 정보’가 있는데요. 작년 12월 기준으로 열린데이터광장의 데이터를 그대로 가져와서 표를 만들어봤습니다.
자료 : 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 (2023년 12월 기준)
경마공원역 무임승차 비율 43.4%로 4호선 1위
먼저 이 대표가 말한 4호선의 51개 역을 기준으로 무임승차의 비율을 비교해 10위까지 추려봤습니다. 경마공원역의 무임승차 비율은 43.4%. 과천선과 안산선 등을 포함한 4호선 전체 역에서 경마공원역의 무임승차 비율이 제일 높다는 이 대표의 말은 일단 사실이었습니다. 작년 12월에 11만8천여 명이 경마공원역에서 돈을 내고 지하철을 탔고 9만여 명은 무임승차했습니다. 이 대표는 경마공원역의 무임승차 비율이 높다, 젊은 세대에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는데 구체적인 해석은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노인들이 공짜로 지하철 타고 경마 도박하러 다닌다는 의미냐’는 비판 기사도 여기저기 나왔습니다. 경마공원역의 무임승차 비율은 그렇게 유추할 만큼의 대표성이 있을까요? 전체 지하철역으로 검증 범위를 넓혀 봤습니다.
자료 : 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 (2023년 12월 기준)
전체 역 중에서 경마공원역 17위…경원선, 중앙선, 1호선에 상위권 역 집중
서울시 지하철을 중심으로 인천과 경기 지역까지 연결되는 전체 역의 무임승차 비율을 계산해봤더니 과천선 경마공원역의 순위는 17위였습니다. 경원선 연천역이 무임승차 비율 66.2%로 1위였고 역시 경원선 소요산역이 63.9%로 2위였습니다. 연천역과 소요산역은 무임승차 승객이 유임승차 승객의 두 배 가까이나 됩니다. 3위는 중앙선 지평역. 무임승차 비율 53.4%입니다. 중앙선은 원덕역(5위)과 신원역(6위), 용문역(8위)까지 무임승차 비율 상위 10위 이내에 4곳이나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1호선 제기동역이 4위, 동묘앞 역이 7위로 서울 동북부 1호선 역의 무임승차 비율이 높았습니다. 무임승차 비율 상위 30위 역에는 소요산과 굴봉산, 도봉산, 운길산, 북한산 등 산에서 가까운 역이 5곳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소풍지로 널리 알려진 온양온천역도 무임승차 비율 41.2%로 24위입니다.
서울 동북부 지역과 경기도 연천, 양평 등에 무임승차 비율 높은 역 집중
이번에는 지역적 경향성을 살펴보기 위해서 무임승차 비율이 높은 지하철역 30곳을 서울 지하철 노선도에 빨갛게 표시했습니다. 지하철 1호선 종로3가부터 연천까지, 그리고 우이신설선이 지나가는 서울 동북부 지역과 경기도 양평까지 가는 경의중앙선, 춘천까지 가는 경춘선에 무임승차 비율 높은 역들이 집중돼 있습니다. 이준석 대표는 방송에서 무임승차 비율이 높은 다른 지역의 사례를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4호선 경마공원역의 무임승차 비율이 높다는 점을 지적한 이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4호선 경마공원 역은 무임승차 비율로는 전체 17위여서 무임승차를 폐지해야 하는 대표 사례가 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자료 : 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 (2023년 12월 기준)
인원 기준 무임승차 1위는 종로3가역…경마공원역은 125위
그렇다면 비율 말고 인원 기준으로 무임승차가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인지 살펴봤습니다. 1위는 종로3가역입니다. 작년 12월 한 달 동안 31만여 명이 돈을 내지 않고 종로3가역에서 지하철을 탔습니다. 종로3가역은 노인들이 많이 찾는 탑골공원이나 낙원상가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10위권 이내의 다른 역들도 대부분 구도심의 주요 지하철 역들입니다. 이 대표가 언급한 과천선 경마공원역은 무임승차 인원 기준으로는 전체 역 가운데 125위였습니다.
‘세대 갈라치기’ 비판 속 용기있는 문제 제기라는 평가도 나와
대한노인회는 성명서를 내고 이 대표의 ‘경마장역 발언’이 악의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노인들이 돈과 시간이 많아 도박이나 하러 다닌다고 모함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YTN은 이 대표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고, 발언의 의미를 묻는 문자 메시지도 보냈지만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를 포함한 노인복지 문제는 사회적 논의가 합리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이슈입니다. 이준석 대표는 개혁신당 총선 공약으로 이 문제를 용기있게 꺼냈다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표 깎일 정책에는 누구도 방울을 달지 않으려 하고, 실현 불가능한 선심성 공약은 경쟁적으로 남발하는 정치 현실 속에서 공론의 기회를 마련했다는 측면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대표는 방송 토론에서 노인 인구 비율 증가와 지하철 적자 상황, 수도권과 지방간 대중교통 이용의 공정성 문제를 언급하고 대안으로 연 12만 원 교통바우처 제도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경마공원 역 사례는 ‘코끼리 다리 만지기’…전체 맥락에서 절반의 사실로 판정
하지만 토론 마무리 발언은 세대 갈라치기 논란을 불러와 본질을 가렸습니다. 토론의 장에서 논거는 충분히 제공되어야 설득력을 갖습니다. 4호선 무임승차 비율 1위가 경마공원역이라는 발언은 그 자체로는 사실의 영역에 속하지만 여기까지만 듣고 무임승차 제도 폐지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것은 더 많은 사실관계를 차단한다는 측면에서 코끼리 다리 만지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전체 지하철역의 무임승차 비율과 인원 자료를 바탕으로 무임승차 제도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와 필요를 갖는지 판단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때로는 존재하는 사실을 다 꺼내놓지 않을 때 그 자체로 일부 사실이 전체 맥락에서 거짓이 되기도 합니다. 지하철 4호선 무임승차 최다역은 경마장역이라는 이준석 대표의 발언을 절반의 사실로 판정합니다.
취재기자 : 신호[sino@ytn.co.kr]
인턴기자 : 김정화[khgf9875@snu.ac.kr]
※ '당신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카카오톡] YTN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02-398-8585
[메일] social@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