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정치 선언 9개월 만에 권좌에 올랐으나 특유의 강골 기질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재임 기간 내내 야당과 충돌하다 결국, 마지막 카드로 비상계엄이라는 '정치적 자해'를 선택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의 지난 행적을, 조은지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지난 2013년 국정감사장의 이 모습, 타협하지 않는 꼿꼿한 검사로, 윤석열, 이름 세 글자는 강렬하게 등장했습니다.
[윤석열 / 당시 국정원 대선개입 특별수사팀장(2013년 10월) :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항명 파동'으로 3년간 좌천됐다가 촛불과 함께 돌아온 '강골 검사'는 박근혜 청와대 국정농단 수사에 앞장서며 문재인 정부의 개국공신이 됐습니다.
기수를 뛰어넘는 파격 승진으로 서울중앙지검장을 찍고 검찰총장까지, 승승장구.
하지만 취임 두 달도 안 돼 불거진 '조국 사태'에 특유의 불도저 수사로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더니, 결국, 징계와 소송 끝에 29년간 입었던 검사복을 벗었습니다.
[윤석열 / 당시 검찰총장(2021년 3월) :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고 있기 어렵습니다.]
단숨에 대권 주자 1위가 된 '정치인 윤석열'은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0.73%p, 헌정사 최소 득표율 차이로 '별의 순간'을 낚아챘습니다.
[윤석열 / 당시 대통령 당선인(2022년 3월)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중궁궐을 탈피하겠다며 '용산 시대' 열었고, 출근길마다 취재진과 만났지만, 정제되지 않은 언행은 구설을 낳았습니다.
전 정권 지명된 장관 중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한미일 삼각 공조를 본궤도에 올리는 등 외교에서 반짝, 빛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long long time ago~" 검찰에 편중된 인사와 부인 김건희 씨 리스크 등으로 바람 잘 날 없었습니다.
여당은 짓누르고, 야당은 적으로 삼으면서, 특히 '여의도 정치'와 파열음을 냈습니다.
거부권을, 역대 가장 많은 25차례나 쓰면서 여소야대 정국에 홀로 맞섰는데, 거대 민주당이 대통령실과 검경 특수활동비를 0원으로 삭감하고 며칠 뒤, '정치적 자해'를 선택했습니다.
[윤석열 / 당시 대통령(2024년 12월) :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
헌정사 최초로 구속된 현직 대통령은 '계몽령'으로 자기변호에 나섰고, 한때 구속이 취소돼 '깜짝 희망'도 품었지만 결국, 파면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이 받은 형사 재판만 8개, 핵심인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특검은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1980년 봄, 서울대 법대생 윤석열은, 5·18 유혈 진압에 대한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씨에게 법정 최고형을 촉구했습니다.
[윤석열 /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지난 2019년 7월) : (사형을 구형한 이유가 뭡니까?) 헌법 질서를 파괴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꼭 46년 뒤, 전 씨에게 1심 사형이 내려진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윤 전 대통령도 법의 심판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YTN 조은지입니다.
영상편집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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