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대형 생명보험사들이 가입자를 유치하는데는 혈안이 돼 있으면서도 막상 보험금을 지급할 때가 되면 골탕을 먹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가입자의 첫 진단서를 인정하지 않은채 다른 병원에서 입맛대로 의료자문을 구해 보험금을 덜주려고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홍석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회사원이던 41살 정순영 씨는 지난 4월, 주치의인 소화기 내과 전문의에게서 직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를 근거로 보험회사 측에 암보험금 2,000만 원을 청구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보험사가 암의 진단은 해부병리나 임상병리 전문의가 해야 한다는 세부 약관을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정순영, 생명보험 피해자]
"소화기내과의사의 진단을 무시하고 다른 병원에 자문을 들어가지고 상피내암으로 바꿔서 축소 지급하겠다는 거죠."
보험사 측은 결국 상피에 발생한 초기 암으로 보인다며 400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인터뷰:김진구, A생명 보험심사팀]
"지급한 후에 사실을 다시 확인해가지고 과다 지급한 부분에 대해 회수할 수 없기 때문에 절차상으로는 지급여부 판단 이전에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발사로 일해 온 51살 김상희 씨는 지난해 4월 계단에서 구르는 사고를 당했고 두 달 뒤에 하반신이 마비됐습니다.
김 씨는 진단서를 근거로 재해로 인한 1급 장해 보험금 6억 5,000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보험사 측은 사고와 하반신 마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1,000만 원만을 제시했습니다.
[인터뷰:김상희, 생명보험 피해자]
"처음에는 (진료확인서에) 사고로 판정이 돼 있었는데, 한 달 후에 본인 동의도 없이 원인불명으로 소견서를 받아와 가지고 보험금을 일방적으로 깎고..."
보험사 측은 또 제한적으로 열람과 유출이 허락된 보험가입자의 개인정보를 다른 의사의 소견을 듣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다툼 과정에서 보험사가 김 씨의 진료기록을 제 3의 의사에게 보여주고 유리한 소견을 얻어낸 것입니다.
[인터뷰:박홍순, B생명 보험심사팀]
"절차상의 문제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관련 건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서, 추가적인 확인과 필요에 의해서 사용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보험금을 줄이려는 보험회사들의 편법이 관행처럼 굳어져 버렸다고 말합니다.
특히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듣는 의료자문제도를 자신에게 유리한 소견을 얻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정용진, 보험손해사정 전문가]
"최근 대형보험사들은 피보험자의 보험금 청구 시 장해진단서 등에 근거하여 보험금을 지급하는 게 아니고, 약관에도 없는 의료자문 제도를 관행적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 현재 추세입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처리한 생명보험회사 분쟁은 7,800여 건.
이 가운데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보험사와 피보험자간의 다툼이 3,100여 건으로 40%를 차지했습니다.
대형 보험사들은 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가입자와 법정 분쟁을 겪더라도 우선 유리한 의사 소견을 얻어내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계가 막막해진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보험사가 제시한 합의안을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YTN 홍석근[hsk8027@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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