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의료사고를 당했다며 의료진의 과실을 따져달라는 감정 요구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산하 감정 기관은 과중한 업무량과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며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경국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지난해 9월, 척추 수술 사흘 만에 숨진 70대 여성.
유가족은 의료사를 주장했고, 경찰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과실 여부에 대한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중재원 측은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다며 차일피일 감정을 미뤘습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관계자 : 연말연시에 사건이 많이 들어옵니다. 갑자기 집중적으로 몰리면 저희도 처리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니까….]
실제로 중재원의 업무량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2015년 분쟁 조정 신청은 1,691건이었는데, 올해는 3천 건 이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사건 처리 시간도 길어져 올해 기준으로 평균 106.9일이 걸립니다.
법정기한인 90일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용환 / 의사 출신 변호사 : 신속한 수사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상황이 이런데도, 인력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감정위원과 조사관을 포함한 중재원의 인력은 모두 106명입니다.
법정 인원 142명의 3/4 수준입니다.
예산 부족으로 인력 충원도 제대로 안 되는 실정입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관계자 : 사건이 많으면 조금 지연될 수도 있고, 이런 부분을 양해를 구하고 있는 건 사실이긴 합니다.]
이러다 보니 애초 설립 취지인 신속하고 합리적인 의료사고 해결이 무색해졌습니다.
[박호균 / 의사 출신 변호사 : 장점이 그래도 정해진 기간을 지켜주니까. (근데) 이렇게 일하면 중재원의 역할이 매우 모호해지는 것 같은데요.]
본업에 충실하기에도 벅차다 보니 다른 역할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기종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 단순히 조정·중재만 하는 게 아니라 사례를 잘 모아서 (의료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기준도 만들고 교육도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중재원에 과부하가 걸린 건 지난 2016년 11월 시행된 이른바 '신해철법'의 영향이 큽니다.
사망이나 장애 등 중대한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때 분쟁 조정 절차를 강제 개시하도록 의무화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법만 덩그러니 만들어 놓고 제도적 뒷받침은 못 하다 보니 분쟁 당사자들만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YTN 이경국[leekk0428@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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