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케이팝 등 한국 문화를 '악성 암'으로 규정해 단속에 나섰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인용해 "남한 문화가 북한 젊은이들의 복장, 헤어스타일, 말투, 행동 등을 타락시켰다"고 전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자본주의 문물의 침습을 막지 않으면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고 밝혔다.
최근 북한 청년층을 중심으로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 등이 크게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몰래 보던 학생 6명이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으며, 지난해엔 공군 및 반항공구사령부 소속 20대 군인 3명이 오락회에서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 춤을 췄다가 체포되는 사건도 있었다고 전했다.
과거 북한은 선전을 통해 '남한은 거지가 득실거리는 생지옥'이라고 묘사해 왔다. 하지만 북한 젊은이들은 테이프와 CD 등으로 처음 밀반입된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현실을 알게 됐다. 북한 젊은이들이 기근을 버틸 음식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동안, 한국 사람들은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케이팝과 드라마 등을 북한으로 밀반입하는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탈북자 정광일 씨는 인터뷰에서 "북한 젊은이들은 김정은에게 아무런 빚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김 위원장이 세습 통치 기반을 잃고 싶지 않다면 이념적 통제를 재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이 2018년 또는 2019년 탈북자 11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절반 가까이가 '북한에 있는 동안 한국 드라마를 자주 봤다'고 응답했다.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는 우리나라 재벌이 돌풍에 실려 국경을 넘어 북한군 장교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사랑의 불시착'이라고 알려졌다.
지로 이시마루 아시아 프레스 인터내셔널 편집장은 "한국의 문화적 침략은 김정은과 북한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매체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여성들은 그동안 데이트 중인 남성을 '동지'라고 불렀으나, '사랑의 불시착'과 같은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오빠'나 '허니' 같은 호칭을 쓰기 시작했다. 편집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이와 같은 호칭에 큰 불쾌감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 이후 자신감이 약해졌다"며 지난 2019년 회담에서 북한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데 실패한 이후 문화적으로 더욱 폐쇄된 모습을 보이게 됐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같은 현실에 위기를 느낀 김정은 위원장은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문화 침략 근절'을 명령하고 처벌을 강화했다. 지난해 12월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따르면, 북한에서 남한 영상물을 유포할 경우 최대 사형에 이를 수 있고, 시청만 하더라도 최대 노동교화형 15년에 처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데일리NK가 밀반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남한 드라마를 보다가 검거된 주민에게 또 다른 시청자를
밀고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서로 뭉쳐 검거에 대응하고 있다"며 북한의 단속에도 한국 문화 콘텐츠 유통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YTN PLUS 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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