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얼마 전 서울 방배동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해 저항했지만 수사과정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사건이 논란이 됐는데요.
최근 1심 판결이 나왔는데, 재판부 역시 정당방위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어떤 경우에 정당방위가 인정되는지, 올해 전국 법원의 무죄 판결문을 전수조사했습니다.
한동오 기자입니다.
[기자]
길을 걷던 남성 뒤로 흰색 차량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운전자가 내려 남성을 밀치고 멱살을 잡습니다.
폭행당한 남성 역시 운전자의 옷가지를 잡고 밀치며 저항하다, 다른 사람이 싸움을 말리자 잠시 후 떨어집니다.
일면식도 없던 행인을 '묻지마 폭행'한 운전자는 벌금 백만 원에 약식기소됐는데, 남성 A 씨도 경찰과 검찰에서 폭행죄가 인정돼 약식기소되자 정식 재판을 청구했습니다.
1심 법원의 결론도 정당방위를 넘어선 폭행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운전자가 먼저 상황을 유발하긴 했지만, A 씨도 이에 대응해 욕을 하며 멱살을 잡고 운전자를 밀어붙였다가 다시 끌어당기는 등 유형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두 사람을 말리는데도 멱살을 잡은 채 대치한 점 등에 비춰보면, 폭행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행위를 넘은 공격행위라며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그렇다면, 법원에서 인정된 정당방위는 어떤 경우인지, YTN 취재진이 올해 확정된 정당방위, 폭행 판결문을 전수조사했습니다.
전체 390여 건 가운데 유죄는 360건인 92%, 대다수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무죄는 8%에 불과했는데, 상대방이 먼저 폭행하는 상황에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손으로 미는 등 최소한으로 물리력을 행사한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멱살을 잡고 목 부위를 팔로 감싸 잡은 다소 강한 저항도 있었지만, 자리를 피하려던 자신을 상대방이 막아서고 머리로 가슴 부위를 박으며 밀친 상황이어서 소극적인 방어로 인정됐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고 도망가는 사람의 뒷덜미를 잡고 눌러 앉힌 사례는 현행범 체포 필요성이 인정돼 정당방위로 결론 났습니다.
집회에서 현수막 줄을 가위로 끊은 사람의 얼굴과 몸을 밀친 행위는, 다소 적극적인 반격 행위일지라도 자신의 법적 이익이 침해당하는 걸 막기 위한 행위로 인정돼 위법성이 사라졌습니다.
이밖에 정당방위를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일정 기간 선고가 유예돼 실질적으로 처벌을 면한 선고유예는 전체 유죄 사건의 4%가량이었습니다.
집안일 문제로 다투다 남편을 손톱으로 할퀴거나 발로 찼던 부인들은 과거 남편이 폭행으로 가정보호처분을 받은 점 등이 참작됐습니다.
대법원에서 인정하는 정당방위 기준은 동기의 정당성, 수단의 상당성, 보호이익과 침해이익과의 균형성, 긴급성, 다른 수단이 없다는 보충성입니다.
정당방위를 빙자한 과도한 폭력을 막기 위해서라는 평가도 있지만, 정당방위 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해 애꿎은 쌍방폭행 사례만 늘린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YTN 한동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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