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정부 "살인 예고 글, 손해배상 청구 방침"...가능할까?

2023.09.08 오전 05:34
[앵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허위 살인예고 글이 끊이지 않자, 정부가 작성자들을 상대로 행정력 낭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정부가 승소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회의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윤태인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르면서 온라인에서는 살인 등 흉악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까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만 487건에 이릅니다.

법무부는 이른바 살인 예고 글로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며, 낭비된 행정 비용을 작성자에게 물리겠다는 방침을 내놨습니다.

살인 예고 글을 게시하는 건 민사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해서, 작성 경위와 동기, 작성자의 나이 등에 상관없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한동훈 / 법무부 장관 (지난달 30일) : 경찰이 투입되게 된 비용들, 그리고 유류비, 그리고 그때 투입됐던 인건비 포함해서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고 금명간에 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법무부와 협의해 범죄 예고 글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 국가가 입은 인력과 시간 손해 등을 검토한 뒤, 손해배상 액수를 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재작년 331차례에 걸쳐 112에 허위 신고를 한 남성을 상대로 570여만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아낸 사례를 들어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피고가 법원에 출석하지 않고 답변서도 제출하지 않는 등 반박하지 않아 원고의 청구가 그대로 인용된 무변론 판결이었습니다.

재판부가 법리 검토를 전혀 거치지 않은 만큼 판례로 볼 근거는 약하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입니다.

또, 법리를 따져 들어가도 살인 예고 글을 작성했다는 사실만으로 국가가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장난으로 올린 글 때문에 경찰력이 낭비됐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려울뿐더러, 개인과 개인 사이의 분쟁을 다루는 민법을 적용하는 것 역시 법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겁니다.

[이창민 / 변호사 : 국민 보호 의무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인데 그런 이유로 공권력을 투입했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공권력의 낭비다. 이렇게 귀결될 수는 없거든요. 국가가 국민한테 손해배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민사법 전반적인 취지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살인 예고 글 작성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입법부터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면기 / 경찰대학 법학과 교수 : 독일이라던가 유럽 국가에서 이런 경찰비용법이 잘 마련이 되어있는데, 그런 근거 규정이 있으면 보다 명확하게 청구 대상이 되는 사례나 그리고 청구가 가능한 금액 등에 있어서, 보다 좀 산정이 용이할 것 같거든요.]

범죄 예고 글을 실질적으로 막는 효과를 기대하려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테러를 예고한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공중협박죄'를 신설하는 게 더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YTN 윤태인입니다.

촬영기자 : 김광현
그래픽 : 박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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