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라디오 YTN]
■ 방송 : YTN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25년 12월 27일 (토요일)
■ 진행 : 최휘 아나운서
■ 대담 : 신동광 언어연구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최휘 아나운서 (이하 최휘) : 열린 라디오, 이번에는 미디어 속 언어를 재해석 해보는 미디어 언어 시간입니다. 내년도 부동산 시장은 양극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질 전망인데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서울과 수도권은 매매 가격 상승세가 여전하겠지만, 수요가 적은 비수도권은 보합 또는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습니다. 특히 직장인들의 이용 비중이 높은 전세와 월세 상승폭은, 매매가보다 더 커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우리 삶에 ‘주거’의 역할로 아주 중요하지만 무겁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부동산, 오늘은 그 용어들을 어원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도 매일경제에서 어원 칼럼 '말록 홈즈' 시리즈를 연재 중인, 어원연구가 신동광 작가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 신동광 언어연구가 (이하 신동광) : “말 속에 답이 있다!”, 안녕하세요, 말록 홈즈 신동광입니다.
◆ 최휘 : 연말이라 그런지 날씨도 아주 매섭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 신동광 : 이런저런 송년 모임에서 반가운 얼굴들 만나며, 이야깃거리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부동산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레퍼토리인데요. 의식주 중에 금액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다 보니, 대화가 진지하고 무겁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아요.
◆ 최휘 : 맞죠? 압도적으로 금액 규모가 크죠. 부동산이 많은 사람들에게 좀 즐겁고 유쾌한 주제로 다가올 날을 기대해 봅니다. 오늘 주제, 부동산입니다. 먼저 부동산의 뜻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면 움직이지 않아서 부동산, 말 그대로 또 움직여서 동산 이렇게 배웠거든요.
◇ 신동광 : 핵심을 잘 기억하고 계십니다. 부동산이라는 한자어의 핵심 기준은 바로 움직임입니다. 움직일 수 있는가, 없는가? 부동산(不動産)의 구성 한자는 ‘아니 불(不)’, ‘움직일 동(動)’, ‘재산 산(産)’입니다. 말 그대로 ‘움직여 옮길 수 없는 재산’입니다. 토지와 건물이 대표적이죠.
◆ 최휘 : 그러면 움직일 동자와 재산 산자로 이루어진 동산에는 어떤 재산들이 있을까요?
◇ 신동광 : 현금, 금괴, 자동차, 시계처럼, ‘들고 이동할 수 재산들’이 동산에 속합니다.
◆ 최휘 : 여기까지는 아주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이게 역사가 길어 보이지는 않거든요. 부동산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요?
◇ 신동광 : 정확한 맥을 짚어주셨습니다. 사실 부동산은 일본이 근대화 시절 만든 번역어입니다. 원래 우리말이나 중국에서 만든 한자어는 아니었어요. 19세기 일본의 메이지 유신 시절, 서구의 근대 법체계를 도입하면서 서양 법률 용어를 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부동산’이 나왔습니다. 당시 일본의 법학자들은 네덜란드나 프랑스의 민법을 번역하며, '움직이지 않는 것(immeubles)'을 ‘부동산(不動産)’으로, '움직이는 것(Meubles)'을 ‘동산(動産)’으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번역어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쳐 우리나라 법 체계에 그대로 유입되어, 오늘날까지 표준어로 굳어진 것이죠.
◆ 최휘 : 현대 대한민국에는 일본식 번역어가 곳곳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 신동광 : 맞습니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이 우리나라에 수용되었기 때문에, 용어들도 대부분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꼭 나쁘다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이 서구문명을 들여올 당시, 동양에는 존재하지 않던 문물들이 많았습니다. 이를 고민해서 만든 일본식 한자어를 ‘화제한어(和製漢語/わせいかんご)’라고 부릅니다.
◆ 최휘 : 화제한어, 대표적으로 어떤 말들이 있을까요?
◇ 신동광 : 우리 일상에 아주 가까운 것들이에요. 과학, 철학, 언론, 건축, 회사, 사회 같은 용어들이 다 화제한어입니다. 언어의 본질인 의미의 전달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소통에 기여하는 측면도 큽니다.
◆ 최휘 : 그런데 부동산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리얼 이스테이트(real estate)’라고 나와요. 부동산의 핵심 기준인 ‘움직임’과는 직관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 같은데요?
◇ 신동광 : 예리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리얼 이스테이트(real estate)’에서, 'real'은 '진짜'라는 뜻의 'true'가 아니라, 물건(thing)이나 실체를 뜻하는 라틴어 'res'에서 왔습니다. 여기에 ‘국가’나 ‘상태’를 의미하는 ‘이스테이트(estate)’가 더해져, ‘리얼 이스테이트(real estate)’는 ‘실질적인 재산’을 뜻합니다.
◆ 최휘 : 지금 알 듯 말 듯하거든요. 반 정도 이해가 됐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좀 설명을 해 주실까요?
◇ 신동광 : 유럽의 봉건시대, 영토는 국가의 주인이었던 왕의 소유였고, ‘리얼 이스테이트’는 그 영토 위에 존재하는 '실질적인 땅' 자체를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법적으로는 '현물(real property)'로 여겨졌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동산의 ‘리얼’을 ‘왕의 것’을 의미하는 ‘레알’로 보기도 합니다.
◆ 최휘 : 왕의 것이요. ‘프리메라리가’의 명문팀 ‘레알 마드리드’는 ‘진짜 마드리드’가 아니라 ‘왕립 마드리드’였군요.
◇ 신동광 : 맞습니다. 그게 사람들이 ‘레알’을 ‘정말로’라고 생각을 하는데, 레알은 로얄이랑 뿌리가 같은 말이에요. 왕립구단이죠.
◆ 최휘 : 그렇다면 영어로 동산은 어디서 나왔나요?
◇ 신동광 : 영어로 동산을 ‘무버블 에세츠(movable assets)’라고 부르는데, 법률영어로는 ‘채틀(chattle)’이라고 부릅니다. 라틴어로 ‘머리’를 뜻하는 ‘caput’에서 왔습니다. 가축을 뜻하는 ‘캐틀(cattle)’과 뿌리가 같습니다. 여기서 자본, 수도, 알파벳의 대문자를 뜻하는 영단어 ‘캐피틀(capital)’도 나왔습니다.
◆ 최휘 : 잠깐만요. 그러면은 이 동산이 머리에서 나온 건가요? 가축에서 나온 건가요?
◇ 신동광 : 가축의 수를 머릿수로 셌으니, 좀 복잡하네요. 소나 양은 아주 중요한 재산이었고, 이들은 움직였다는 데 본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최휘 : 그렇군요. 인류는 머리를 참 다양한 의미와 용도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쓰는 부동산 용어들을 알아볼 텐데요. 먼저 전세나 월세 같은 말들을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신동광 : 임차료 납입의 형태로 말들이 구분됩니다. 먼저 전세(傳貰)는 ‘전할 전(傳)’과 ‘세를 내다/외상으로 사다’를 뜻하는 세(貰)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목돈을 맡기고 집을 빌린 뒤, 나중에 그 돈을 그대로 ‘전해 받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조선 후기부터 발달한 한국만의 독특한 제도죠. 한국에만 있는 제도라 영어로 직역하면 'Jeonse'라고 하고, 의미를 설명할 때는 'key money deposit' 혹은 'lump-sum deposit rental system'이라고 해요.아주 복잡합니다.
◆ 최휘 : 그러네요. 저는 미리 준 보증금이 나올 때 전액 돌려받아 전세일 거라고 추측을 했는데.
◇ 신동광 : 아주 비슷한데요.
◆ 최휘 : 그렇다면 월세는 집세를 내는 주기에서 온 말인가요?
◇ 신동광 : 맞습니다. 매달 정해진 집세를 내는 방식이죠. 영어 표현은 'monthly rent'입니다.
◆ 최휘 : 사글세도 월세를 뜻하는 사글세에서 왔다는데, 월세와 어떻게 다른가요?
◇ 신동광 : 순우리말로 알려진 사글세는 본래 한자어 사글세(朔月貰)에서 온 말입니다. ‘초하루 삭(朔)’과 ‘달 월(月)’ + ‘세낼 세(貰)’자가 모였습니다. '삭(朔)'은 매달 초하루를 뜻하죠. 즉, ‘매달 초에 미리 내는 집세'라는 뜻입니다.
◆ 최휘 : 그렇군요. 여기서 또 궁금한 게 사글세는 꼭 달 단위로 계약을 했나요?
◇ 신동광 : 보증금 없이 몇 달치 방세를 미리 내는 방식도 사글세라고 불렀습니다. 영어로 의역하면 'advance monthly rent', 즉 ‘선불 월세’ 정도겠죠.
◆ 최휘 : 미리 돈을 주는 깔세나 달방이라는 말도 있던데 월세와 사글세와는 또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해요.
◇ 신동광 : 미리 준다는 점에서는 같죠. 그런데 ‘깔세’나 ‘달방’은 정식 법률용어라기보다 시장에서 통용되는 '은어'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어원이 아주 직관적이어서 현장에서는 계속해서 쓰이고 있습니다.
◆ 최휘 : 맞아요. 부동산에 가도 이런 말을 흔히 하는 걸 들을 수가 있는데, 깔세의 깔은 무슨 뜻인가요?
◇ 신동광 : ‘바닥에 깔았다’라는 뜻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보증금 없이 일정 기간의 월세를 한꺼번에 '바닥에 깔고(미리 내고) 들어간다’는 뜻에서 유래했어요. 주로 상가 단기 임대에서 많이 쓰이죠. 영어로는 'short-term lease with upfront payment'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계속해서 영어로 굳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자가 상당히 많은데 우리가 익숙하지 않고 좀 어려운 용어들이에요. 그래서 멀티랭귀지로 이해를 하게 되면 조금 더 쉽지 않을까 해서 좀 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 최휘 : 사실 이런 것들이 전세 제도 자체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거기 때문에 영어 단어가 공식적으로는 없는 거죠.
◇ 신동광 : 사실은 이 ‘세’라는 한자도 정확한 뜻을 모르고 많이 쓰고 있는 한자이긴 해요.
◆ 최휘 : 방금 말씀해 주신 이 깔세도 한국인이라면 어렴풋이 깔의 의미를 모두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달방의 달은 ‘월(月)’인가요?
◇ 신동광 : 예 맞습니다. 달방은 여관이나 모텔 등 숙박업소에서 활용하는 이용료 납입 방식입니다. 하루 단위가 아니라 ‘달(month) 단위'로 계약해서 머무는 방을 뜻하죠.
◆ 최휘 : 월 단위로 길게 쓰는 이유는 아무래도 방값이 할인이 돼서인가요?
◇ 신동광 : 맞습니다. 여기서 머무는 방들이 고급 호텔이 아니라 저렴한 모텔이나 여관에서 많이 쓰는 방식입니다. 상대적으로 일일 이용료보다 총 이용금액에 할인이 되죠. 주로 일용직 노동자나 주거 취약계층의 안식처가 되기도 했던 가슴 아픈 이름이기도 합니다. 영어로는 'monthly room' 또는 'extended stay hotel room’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 최휘 :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졌던 부동산 용어들의 말뜻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신동광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 최휘 : 네, 작가님도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어원연구가 신동광 작가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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