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라디오 YTN]
■ 방송 : YTN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26년 6월 20일 (토요일)
■ 진행 : 최휘 아나운서
■ 대담 : 어원연구가 신동광 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최휘 : 이번에는 미디어 속 언어를 재해석해 보는 미디어 언어 시간입니다. 요즘 드라마 '참교육' 이야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교육 현장의 괴롭힘과 폭력에 맞서는 이야기인데, 오늘은 이 드라마가 제기한 학교 현장의 문제들을, 어원풀이의 시각에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어원연구가 신동광 작가 나오셨습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 신동광 : 말 속에 답이 있다! 안녕하세요, 말록 홈즈 신동광입니다.
◆ 최휘 : 작가님도 이 드라마 보셨나요?
◇ 신동광 : 저는 몇 해 전 웹툰으로 먼저 봤습니다. 드라마는 아직 유튜브 쇼츠로만 봤는데요. 마음이 아렸습니다. 그 내용이 막연히 과장된 상상 속 허구가 아니라, 현실세계를, 그것도 일부만 반영했다는 이야기에, 속이 많이 상합니다. 그 실상들이 학교 언어, 즉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들에도 그 현실이 그대로 박혀 있더군요.
◆ 최휘 : '참교육'이라는 제목 자체부터 흥미롭습니다. '참'이라는 말, 어떻게 보셨어요?
◇ 신동광 : '참교육(眞敎育)'은 1980년대 전교조 운동에서 처음 쓰인 말입니다. '거짓된 교육에 맞서는 진짜 교육'이라는 뜻이었죠. 그런데 드라마 제목은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진짜 교육'이면서, 동시에 '참교육 시켜준다'는 속어, 즉 '제대로 혼내준다'는 뜻도 가지고 있죠. 교육(敎育)이라는 말의 한자는 '가르칠 교(敎)'에 '기를 육(育)'입니다. '가르쳐서 길러낸다'는 의미입니다. 영어로 교육을 뜻하는 ‘education’은 ‘밖으로’를 뜻하는 ex의 e와 ‘이끌어 내다’는 의미의 ‘ducere’가 모인 말입니다. 지식을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넣은 ‘주입’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잠재력과 재능을 ‘밖으로 이끌어내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학교 현장은, 그 '기르고 이끈다'라는 말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게 만듭니다.
◆ 최휘 : 그 질문이 드라마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해석으로 들어가 볼까요? 학교폭력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왕따'입니다. 이 말의 뿌리는 어디에 있나요?
◇ 신동광 : '왕따'는 '임금'을 의미하는 '왕(王)'과 '따돌림'을 뜻하는 '따'의 합성어입니다. '따돌림'은 '딴 곳에 두다', 즉 '거리를 두어 분리시키다'에서 온 말이고요. 앞에 '왕'을 붙인 이유는, 그 정도가 아주 심해서입니다. 아시다시피 '왕'은 가장 크고 강하다는 의미로 따돌림을 꾸며 줍니다, 그런데 이 말이 어원적으로 흥미로운 건, 영어 'bully'와 비교할 때입니다. Bully는 네덜란드어로 ‘연인'이나 '좋은 친구’를 뜻하는 ‘boele’에서 온 말입니다. 17세기에는 '사랑하는 사람', '멋진 친구'라는 긍정적인 뜻이었습니다. 이 말이 18~19세기를 거치면서 ‘힘 있는 자가 약자를 위협하는 행위’로 뜻이 뒤집어졌어요. 좋은 말이 나쁜 말로 바뀐 거죠.
◆ 최휘 : 본래 좋은 뜻이었다니, 의외네요. 괴롭힘을 가리키는 말들 중에는 젊은 세대들만 아는 신조어도 많다고 하더군요?
◇ 신동광 : 네. 요즘 학교 폭력이나 부조리를 표현할 때 자주 쓰이는 신조어들이 있어요. 주로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되어, 일상용어로 자리 잡은 말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릴게요. 먼저 가스라이팅(gaslighting)과 이를 변형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피해자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지배하는 행위를 뜻하죠. 본래 영국의 극작가 패트릭 해밀턴의 스릴러 연극 '가스 라이트'에서 사용된 표현인데요. 아내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나쁜 남편이 집안의 조명, 즉 가스등을 어둡게 켜놓고, 아내가 어둡다고 말하면 아내의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다고 세뇌하는 행동에서 왔습니다. 학교에서 괴롭히는 아이들이 피해를 당하는 아이에게, 네가 잘못해서 그런 거라며 몰아붙이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가스라이팅을 교사가 학생에게, 심지어 힘 있는 집 자제분이 힘 없는 기간제 교사를 괴롭힐 때 자행하기도 한다네요,
◆ 최휘 : 학생들 간의 가스라이팅도 문제지만, 선생님도 피해대상이라니 놀랍네요.
◇ 신동광 : 이번 참교육 외에도 많은 학원물에 나오는 스토리 소재입니다.
◆ 최휘 : 따돌림을 가리키는 은어들도 세분화됐다면서요?
◇ 신동광 : 이 표현들을 설명하며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누군가는 재미로 쓰는 말이, 피해자와 가족에겐 가슴에 고통으로 사무치니까요. 그래도 현실을 알려면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은따는 겉으로 티 나지 않게 무리에서 배제하는 행동, 즉 은근한 따돌림입니다. 오래 전부터 썼던 말인데, 요즘엔 더 치밀하고 집단적으로 자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전따는 전교생에게 당하는 따돌림입니다. 아주 철저하고 악랄하게 학교생활을 못 하게 만드는 괴롭힘입니다. 넷따는 네트워크 따돌림을 뜻합니다, 단톡방에 초대하지 않거나, 단체로 퇴장하는 '방폭', 욕설을 퍼붓는 '카톡 감옥' 등 사이버 불링으로 대표되는 악행입니다.
◆ 최휘 : 네트워크 따돌림을 제외하면 예전에도 있던 괴롭힘이지 않나요?
◇ 신동광 : 맞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문제는 점점 더 그 정도가 치밀하고 악랄해져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거나 평생 상터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 최휘 : 피해학생은 물론이고 가족들에게도 큰 슬픔이겠군요. 선후배 간의 괴롭힘도 있다고 들었어요.
◇ 신동광 : 시월드와 군대 악습도 학교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 최휘 : 시월드는 시댁이나 시집살이를 가리키는 말이지 않나요?
◇ 신동광 : 맞습니다. 원래는 고부갈등을 뜻하던 '시월드'나 '군대식 까라면 까'라는 표현이, 학교 운동부나 동아리의 부조리한 위계질서 강요를 표현할 때 확장되어 쓰입니다. 요즘은 이를 묶어 '꼰대질'이나 '갑질'로 통칭하기도 하지만, 서열을 빌미로 아랫사람울 괴롭히는 학교폭력의 연장선으로도 자주 사용됩니다.
◆ 최휘: 아직 결혼이나 군대에 대한 경험이 없을 텐데 나쁜 행태들을 먼저 저지르는군요? 사이버폭력 헹태도 심각하다고 들었습니다.
◇ 신동광 : 사이버 폭력 관련 신조어들도 늘어갑니다. 떼카란 말이 있습니다. 가해자떼가 피해자를 단체 카카오톡방에 초대해 단체로 욕설을 퍼붓는 행위입니다, 문제는 그 방에서 나가도 끊임없이 다시 초대해 괴롭힙니다, 피해자에게는 카톡 감옥입니다. 혹시 하트 셔틀이나 와이파이 셔틀을 아시나요?
◆ 최휘 : 빵셔틀이나 가방셔틀은 들어봤습니다,
◇ 신동광 : 과거의 '빵셔틀'이 악랄하게 진화해 하트 같은 모바일 게임의 재화나 데이터 핫스팟을 강제로 켜게 하는 착취입니다. 요즘은 물리적인 폭력만큼이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심리적, 사이버상의 학대를 뜻하는 용어들이 더 세분화되고 있는 추세예요.
◆ 최휘 : 그런데 학교 폭력 문제, 이제는 학생이 교사를 괴롭히는 방향으로도 번지고 있잖아요.
◇ 신동광 : 네, 교육 현장의 선생님들은 '악성 민원'에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고 하죠. 본래 민원(民願)이라는 말의 뜻은 '백성 민(民)'에 '바랄 원(願)', 즉 '국민이 행정 기관에 원하는 바를 전달하는 행위'입니다.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죠. 그런데 지금은 이 말이 교사를 겨냥한 집요한 괴롭힘의 도구로 쓰이기도 합니다. 권리의 언어가 타인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어버린 셈이죠. 영어로는 ‘civil complaint’, 즉 ‘시민의 항의’인데요. 악성 민원의 경우 'harassment'라고 가리킵니다. 고대 프랑스어 'harer', 즉 '사냥개를 풀어 몰아붙이다'에서 왔습니다. Harer 는 본래 “저기다!”란 뜻입니다. 사냥개에게 사냥감을 추적하라고 부추기는 말이었습니다. ‘집요하게 추적하고 몰아세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죠.
◆ 최휘 : ‘사냥개를 푼다’는 이미지가 섬뜩하게 맞아 떨어지네요. 반대로, 교사나 학교 권력이 학생을 괴롭히는 문제도 있다고 하는데요?
◇ 신동광 : 그렇습니다. '체벌(體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 체(體)'에 '벌할 벌(罰)'이죠. 몸에 가하는 벌입니다. 영어로는 'corporal punishment'인데요. 라틴어 'corpus', 즉 '몸'에서 왔습니다. 법적으로는 이미 금지된 행위지만 언어로는 여전히 부드럽게 포장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 최휘 : 어떤 표현이 대표적일까요?
◇ 신동광 : '훈육(訓育)'이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가르쳐 기른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폭력을 감추는 포장지로 쓰이기도 합니다. 1980~1990년대에 초중고를 다니면서 참 많이도 맞았습니다. 훌륭한 사람 되라고 훈육한다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이유와 입에 담지 못할 도구들로 고통을 준 선생님들이 계셨어요. 힘 있고 부유한 집 자제들에겐 너그럽고 내세울 것 없고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는 엄격하셨던 분들도 계셨죠. 물론 고마운 분들이 훨씬 많았는데, 자극적 기억이 오래 남기 마련이거든요. 어쩌면 그 시절 소수의 특별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반감이 오늘의 교권 추락 풍토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최휘 : 안타깝고 씁쓸한 기억을 갖고 계시는군요. 훈육을 영어로는 뭐라고 표현하나요?
◇ 신동광 : 영어로는 'discipline’입니다. 그 뿌리말인 라틴어 'discipulus'는 '제자', '배우는 사람'에서 왔는데요. 가르침, 훈련, 규율을 거쳐, 지금은 '통제'와 '처벌'의 의미로 넘어와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동서양 모두 훈육은 체벌이나 처벌과 닿아 있습니다.
◆ 최휘 : 말이 부드러울수록 현실이 가려지는 경우도 있군요. 그런데 이 문제들을 다루는 법과 제도 언어는 어떻습니까? 대표적으로 '촉법소년'이라는 말, 그 의미가 명쾌하게 이해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 신동광 : 네. '촉법소년(觸法少年)'은 '법을 건드린/어긴 어린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촉(觸)’자는 본래 ‘닿다/찌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촉법소년이라는 말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중심인 단어입니다. '소년'이라는 말로 나이를 강조하고, '촉법'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말로 법을 경미하게 어겼다는 느낌을 줍니다. 용어가 가해 행위의 심각성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차라리 '범죄아동'이나 '범죄소년'이라고 불러야 사회가 그 심각성에 공감한다는 여론이 조성되는 듯 보입니다, 용어 속에 행위의 본질을 정확히 담아야, 피해자의 고통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영어로 촉법소년을 가리키는 한영사전 단어는 ‘law breaching minor’로, ‘위법 미성년자’를 뜻합니다. 보통은 비행청소년을 의미하는 'juvenile delinquent'를 사용합니다. Delinquent는 라틴어 ‘저버리다/떠나다’란 의미의 'delinquere'에서 왔습니다. 규칙을 지켜야 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뜻입니다.
◆ 최휘 : 이름을 어떻게 붙이느냐가 곧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네요. 제도적 개선도 필요해 보입니다.
◇ 신동광 : 그렇습니다. 지금은 가해자의 '갱생'을 위해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를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갱생(更生)'은 '다시 살아난다'는 뜻인데, 가해자의 다시 살아남이 피해자를 고통받게 악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 보호와 보상이 먼저여야 하고, 재발 방지 구조가 뒤따라야 합니다. 국회의 입법과 사법부의 양형기준 조정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정교육, 사회적 도덕의식도 필요한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 방관하지 않고 잘못을 지적하는 순간, 그 사람이 되레 공격을 받는 사회제도가 더 큰 문제입니다. '방관(傍觀)'이라는 말은 '곁 방(傍)'에 '볼 관(觀)'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옆에서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bystander effect', '방관자 효과'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에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되어, 오히려 아무도 나서지 않는 현상입니다. 참교육의 시작은 방관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서 출발할지도 모릅니다.
◆ 최휘 : 오늘 말씀, 학교 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언어를 통해 정확하게 짚어주셨습니다.
◇ 신동광 : 말을 바꾸면 시선이 바뀝니다. 시선이 바뀌면 제도가 바뀔 수 있습니다. '촉법소년'이 아니라 '범죄소년'이라 부르는 것, 그 작은 언어의 정직함이 피해자 곁에 서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착한 사람 상 주고, 나쁜 녀석 벌 주는 평등과 정의”가 상식이 되길 바랍니다.
◆ 최휘 :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신동광 : 감사합니다.
◆ 최휘 : 지금까지 말록 홈즈 신동광 작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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