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박지성 혁신위' 첫 단추, K리그 '시청 운동부' 족쇄부터 풀어라 [와이파일]

2026.07.06 오후 01:19
K-축구 혁신위 공동위원장인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박지성 FIFA 분과위원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참사의 여파가 한국 축구를 집어삼켰습니다. 성난 축구 팬들의 쇄신 요구 속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오늘(6일) 최휘영 장관과 박지성 FIFA 분과위원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K-축구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첫 회의를 엽니다. 국가대표팀의 붕괴를 목격한 대중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축구협회 수뇌부의 인적 쇄신과 감독 선임 프로세스 개편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혁신위가 밝힌 주요 과제는 K-축구 거버넌스 개편과 유소년 선수 육성, 첨단 기술 시스템 도입 등 세 가지입니다. 하나같이 단기 처방이 아닌 장기 과제들입니다. 박지성 위원도 입장문에서 "현장의 고민을 담아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설계하겠다"며 'K-축구의 지속 성장'을 화두로 던졌고, 언론 인터뷰에서는 이를 위해 짧아야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결국 혁신위의 시선은 감독 선임 과정이나 협회장 선출 방식을 넘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지탱할 시스템 전체를 향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속 성장'이 가능한 시스템이란 무엇일까요. 이번 월드컵 부진의 일차적 책임은 분명 협회의 행정 실패에 있고, 수뇌부 교체와 시스템 정비는 반드시 필요한 수순입니다. 하지만 인적 쇄신만으로는 자칫 임시방편에 그칠 수 있습니다. 혁신위가 첫 번째 과제로 내건 '거버넌스'의 진짜 몸통, 한국 축구를 병들게 하는 뿌리는 대표팀이라는 화려한 무대 뒤편, 한국 프로축구의 근간인 K리그, 그중에서도 세금으로 연명하는 시민구단의 '기형적 구조'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시민단체(나라살림연구소)가 제기한 "세금으로 연명하는 자생력 없는 리그"라는 비판은 단순히 성적 부진에 따른 감정적 화풀이가 아니라, 해묵은 거버넌스의 모순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프로축구 17개 시·도민 구단 지원 예산 현황 <자료: 나라살림연구소>

#프로의 탈을 쓴 아마추어, '재단법인'의 덫

현재 K리그 1·2부 29개 구단 중 절반이 넘는 17개 구단이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는 시·도민구단입니다. 이들에게 투입되는 혈세만 연간 1,511억 원, 구단당 평균 90억 원에 가까운 세금이 매년 들어가는 셈입니다. 반면 구단별 자체 수익은 10억~20억 원 남짓으로, 17개 구단이 한 해 벌어들이는 돈을 전부 합쳐도 투입되는 세금의 5분의 1 수준에 그칩니다. 수십억에서 100억 원에 이르는 적자가 나도 지자체가 세금으로 고스란히 메꿔주는 기형적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왜 시민구단은 수년째 적극적인 마케팅도, 과감한 투자도 하지 못한 채 '스몰 클럽'에 안주하고 있을까요. 답은 그들이 택한 '법인의 형태'에 있습니다.

과거 주식회사 형태로 출발했던 시민구단들이 방만한 경영으로 자본잠식에 빠지자, 지자체들은 통제가 수월한 '재단법인' 형태로 구단을 재편하기 시작했습니다. 재단법인은 사람이 아니라 지자체가 내놓은 돈, 즉 출연금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조직이어서 철저히 비영리 단체로 묶입니다. 프로구단임에도 시 조례와 법률의 촘촘한 규제를 받으며, 마케팅 부서가 아무리 뛰어난 스폰서십을 유치해 와도 조례가 정한 한도를 넘으면 수익으로 잡지도 못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4년마다 반복되는 '물갈이 시즌'

결국 재단법인 시민구단들은 프로 스포츠 클럽이 아니라, 전국체전 성과에만 집착하는 지자체 '시청 운동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전락했습니다. 선출직 시장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단장과 감독이 부임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선수 계약이 뒤흔들리는 후진적 거버넌스가 반복됩니다. 최근에도 새 지도부 부임 이후 임기가 남은 선수단 구성원이 배척당하는 '구단 사유화'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 악순환이 지금 이 순간에도 예고돼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달 치러진 6·3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자리의 절반인 8곳, 기초단체장은 전국 227곳 중 3분의 1의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단체장이 교체된 지역마다 벌써 전임 사업에 대한 '재검토'와 '백지화' 목소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당연직 구단주인 단체장이 바뀐 시민구단들에 또 한 번의 '물갈이 시즌'이 다가오고 있는 셈입니다. 4년짜리 정치 시계에 맞춰 구단의 방향이 통째로 흔들리는 구조에서 장기적인 유소년 육성과 팀 빌딩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독일과 일본은 어떻게 다른가

시선을 밖으로 돌려보면 이 구조가 얼마나 기형적인지 더 선명해집니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이른바 '50+1 규정'을 통해 회원, 즉 팬들이 구단 의결권의 과반을 갖도록 강제합니다. 자본의 전횡은 막되, 구단은 철저히 스스로 수익을 창출해 생존해야 하는 독립적 경영체입니다. 일본 J리그 역시 창설 당시부터 지역 기업과 시민이 함께 출자하는 지역 밀착형 모델을 구축해, 구단이 지자체의 예산이 아니라 지역 사회라는 '시장' 안에서 자생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세금이 아니라 팬과 지역이 구단의 주인이 되는 구조입니다. 반면 한국의 시민구단은 이름만 '시민'일 뿐, 실제 주인은 시민도 팬도 아닌 지자체 예산 담당 부서인 셈입니다.

#대전이 보여준 가능성

물론 출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전이 그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시민구단 시절 만성 적자를 세금으로 메우던 대전은 2020년 하나금융그룹에 인수되며 기업구단으로 전환됐고, 인수 3년 만인 2022년 K리그1 승격에 성공했습니다. 전환 첫 승격 시즌에 약 280억 원의 예산을 집행했고, 이듬해에는 연간 예산 350억 원 규모로 증액됐습니다. 시민구단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투자입니다. 팬들도 화답했습니다. 2023년 K리그1 복귀 홈 개막전에 18,590명이 들어찼고, 시즌 초반 평균 관중은 리그 평균을 4천 명 이상 웃돌았습니다. 자생력 있는 주인을 만난 구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축구특별시'의 부활이 증명한 것입니다.

#과감한 법인 형태 전환, 혁신위의 진짜 과제

프로축구팀은 자생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창의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그 자본으로 유소년을 육성해 미래를 도모하는 유기체여야 합니다. 안정적인 세금 교부금 뒤에 숨어 자생력을 거부하는 지금의 재단법인 시스템으로는 한국 축구의 미래 경쟁력을 논할 수 없습니다. 온실 속에서 안주하는 리그에서 세계 무대를 호령할 전사들이 길러질 리 만무합니다.

오늘 첫발을 뗀 'K-축구 혁신위'가 진정으로 거버넌스의 쇄신을 바란다면, 축구협회 행정 감사에만 머물러선 안 됩니다. 단기적으로는 프로축구연맹의 재정 건전화 제도를 엄격히 적용해, 자체 수입에 비해 인건비 지출이 과도한 구단에 실질적인 페널티를 부과함으로써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도록 압박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K리그 구단들이 영리 활동과 스폰서십 유치가 자유로운 '사단법인' 구조로 전환하도록 제도를 정비하거나, 대전의 사례처럼 기업으로의 과감한 민간 매각을 유도하는 거시적 로드맵을 짜야 합니다. 물론 이 길은 지자체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경영 위기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를 수반합니다. 그럼에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로다운 경영을 할 수 없는 구조라면, 과연 프로 리그에 남아 있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이 족쇄를 풀지 못한다면, 한국 축구의 혁신은 또다시 말잔치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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