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디자이너이자, 패션계의 대모로 불리는 분입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패션 디자이너지만 유난히 언론 노출을 안 한 분이기도 한데요.
이 분의 이력 앞에는 '최초'라는 단어가 수식어처럼 붙고 있습니다.
지난 63년간 한국 패션을 이끌어 온 디자이너, 노라노 씨가 오늘 '이슈앤피플'에 출연해 한국의 패션 역사를 둘러보았습니다.
디자이너 노라노 씨는 패션을 시작한 지 63년 되었다며 사실 디자이너는 여행도 많이 하고 밤도 새우는 직업이어서 건강관리가 필요하다며 자신은 기본적으로 식사관리하고 운동도 하지만 특히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한다고 말했습니다.
'노라노'라는 이름은 1947년 미국에 갈 때 외국이름으로 만든 것이라며 자신이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을 영어로 처음 읽었는데 주인공인 신여성 '노라'를 본 따고 또 노 씨이기도 해서 '노라노'라고 했다고.
검은 색 옷을 입은 시초는 바쁜데 검은 색으로 통일하면 신경을 안 써도 되고 특히 검은 색은 상복이라는 이미지도 있지만 여성의 자립과 독립,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는 색이기도 하다고 설명했습니다.
1947년 당시에는 패션이란 단어가 없었다며 미국가기 전에 패션 디자이너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에 가게 된 동기는 미군정 시절 장관급 관사에서 파티 통역을 했는데 한번은 초청을 받고 어머니의 한복 치마로 파티 복을 만들어 입고 갔는데 디자인 자질이 있다며 미국유학 제안을 해 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아나운서였던 어머니가 최초로 양장을 했고, 수성초등학교 광장 앞 드레스 숍에서 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어머니를 쫒아 다니며 패션 감각을 배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2년 공부하고 들어왔지만 당시 GNP가 100달러도 안되는 시절이어서 손님이 없어 양장점도 못 내고 비공식적으로 외국인 상대로 옷을 만들다가 6·25이후에 서울에 와서 1952년 양장점을 내고 1956년부터 패션쇼를 하기 시작했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전속 모델은 없었고 영화배우와 미스코리아 등을 모델로 구성해 연습을 시켜 쇼를 했다고 말하고 1957년에는 반도호텔 옥상에서 박춘석 씨의 피아노 생음악 반주로 2번째 쇼를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기성복을 처음 도입한 것과 관련해 노라노 씨는 60년도 들어서면서 하와이에서 2년 있으면서 많은 옷을 싸게 입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며, 돌아와서 기성복 쇼를 했는데 그 때 "기성복이 성공할까"하는 내용이 신문 기사가 났었다고.
TV 의상을 대여해주면 드라마에 계속해서 입고 나오니까 유행을 선도하게 되었고, 영화 의상도 한 몫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모델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은 없지만 최은희 씨의 연극 의상을 시작으로 김지미 씨의 영화의상 그리고 엄앵란 씨는 '단종애사'로 톱스타가 되고나서 5~60년대에 전속 의상을 담당했다고.
올해로 의상실을 연 지 60년을 맞아 오는 23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서울 호림 미술관에서 '노라노의 장밋빛 인생'이란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면서 자신은 옷 준비만 하고 기획에서 홍보까지 모두 젊은이들이 행사를 전부 맡아서 한다고 소개했습니다.
패션 트랜드가 지난 100년이 과거 1,000년보다 더 바뀔 정도로 패션 전성기였다면 지금은 '앤티' 패션 시대가 될 것이라며 본인이 입고 싶은 옷을 자유롭게 입는 시대라고 전문가들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패션도 모든 게 그러하듯이 결정적인 게 없고 시대에 맞춰 흘러가는 거라고 역설.
열정을 디자인하는 노라노의 60년 패션인생을 '이슈앤피플'에서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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