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전쟁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가부장적이면서도 그 뒷모습이 왠지 처연한, 사그라드는 촛불 같은 아버지를 그린 공연 두 편을 소개합니다.
박소정입니다.
[기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한옥 한 채.
무대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전쟁 중에 결혼한 노부부에게는 민주화 투쟁을 하다 실종된 아들과 구제역으로 돼지를 살처분하다 정신이 이상해진 동네 황 씨가 겹쳐집니다.
잔잔한 대화 속에 굉음을 울리며 굴러온 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손자의 빚을 갚아주려고 헐리는 한옥을 뒤로 한 채 결국 집을 떠나는 늙은 아버지.
작품 제목 '3월의 눈'처럼 처음부터 없었던 듯 스러져가는 삶의 뒷모습이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2011년 초연하고 공연 때마다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올해는 신구와 손숙의 연기가 눈처럼 조용히 젖어듭니다.
[인터뷰:손진책, '3월의 눈' 연출]
"황혼이라는 것도 한쪽에서는 기울어져 가는 황혼이지만, 또 한쪽에서는 동트는 새 아침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니까, 생성과 소멸, 그 두 가지를 다 봤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전혀 다른 모습의 아버지도 있습니다.
6.25 전쟁이 터지자 가족을 버리고 피난 가버린 아버지, 사랑을 줄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아버지.
평생 원망스러우면서도 사무치게 그리운 아버지 이야기이면서도, 걸쭉한 웃음 코드도 끊이지 않습니다.
5년 만에 무대에 오르는 '경숙이, 경숙아버지'는 빼어난 배우들의 연기에 박수 갈채를 보내게 됩니다.
서로 다른 듯 같은 아버지 모습, 인생이 비춰진 거울 같은 무대를 바라본 관객들은 어떤 오늘도 살만하다고 마음을 토닥이며 돌아가게 됩니다.
YTN 박소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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