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윤성은의 영화이야기] 천만 영화와 극장 이야기-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극장의 시간들

2026.03.17 오후 03:36
영화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Mr. Kim Goes to the Cinema)│2026
감독 : 김동호 │ 주연 : 김동호 등

영화 극장의 시간들(Time of Cinema)│2026
감독 :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 주연 : 김대명, 장혜진, 고아성 등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열기가 뜨겁다. 관객 수 천만 명을 찍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천오백만 명까지는 무난할 거라는 예측이 나왔고 ‘명량’의 기록(1,761만 명)을 넘는 게 아니냐는 기대의 목소리도 있다. 개봉한 지 석 달째인데도 주말 관람객 수가 크게 줄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괜한 설레발은 아니다. 영화에 대한 개개인의 평가는 엇갈릴 수 있겠지만 극장가에는 아주 오랜만에 강한 훈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이 오직 이 영화의 힘으로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 영화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흥행의 콘텍스트적 맥락을 말하기 위한 질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도 대중들이 개봉영화에 전혀 관심이 없고, 극장에 안 간 지 이미 오래되었다면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기는 어렵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극심한 한파에 시달렸던 극장가에 작년 하반기부터 온도가 높아지는 날들이 있었다. 여름방학에는 ‘좀비딸’이 56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더니 가을에는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이 팬덤의 힘을 보여주었으며, 연말에는 ‘쥬토피아2’, ‘만약에 우리’, ‘신의 악단’ 등이 각각 기대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화제가 되었다. OTT 콘텐츠에만 몰입해 있던 대중들의 눈이 가끔은 개봉영화로 돌아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시그널이었다. 극장은 가는 사람이 또 간다는 것이 정설이다. 관객들에게 ‘관성’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두 번 이상 보는 영화, 그리고 극장에 거의 가지 않는 사람이 보러 가는 영화는 천만영화가 될 수 있다. 감히 말하건대, 그것만이 수 십편에 이르는 천만영화들의 공통분모다. ‘왕과 사는 남자’는 그런 극장가의 흐름을 탄 것이다.



▲ 영화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스틸컷


이런 분위기에서 극장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는 영화들이 개봉하고 있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라는 다큐를 통해 영화인들에게 극장에서의 추억과 동시대 극장의 존재 의미를 묻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감독들과 배우들은 물론, 부산국제영화제에 자주 초청되는 아시아의 스타 영화인들이 인터뷰이로 나서 저마다의 극장론을 펼치는 모습이 영화 팬들에게는 황홀할 정도다. 김동호 전 위원장은 아시아의 유서 깊은 극장도 찾아 나섰다. 멀티플렉스 시대에 오래된 극장들이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역사를 공부하듯 따라가 보는 것도 이 다큐멘터리의 관람 포인트다.



▲ 영화 <극장의 시간들> 포스터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등 세 명의 감독이 하나의 극장을 배경으로 만든 극영화도 있다. ‘극장의 시간들’은 씨네큐브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만든 앤솔로지 필름으로, 극장과 영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교차한다.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는 25년 전 영화관에서 만난 세 명의 씨네필을 보여준다. 예술영화에 탐닉하던 이들은 폴란드에서부터 수입해 왔다는 침팬지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그것이 사실인지 파고든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확인할수록 수입된 침팬지의 존재와 역사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 영화 <극장의 시간들> 스틸컷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는 영화의 핍진성에 대한 감독 자신의 강박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영화 속 ‘감독’(고아성)은 아역 배우들에게 좀 더 자연스럽게 연기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카메라가 있는데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감독과 배우들은 고민에 빠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 속 감독과 배우들은 극장에서 자신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반응하는 장면을 찍는다. 윤가은 감독은 직접 등장해 앞 장면들이 모두 영화 속 영화라는 것을 확인시키면서 감독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자연스러운 영화를 원하지만 사실 모든 것은 감독의 연출 아래 철저히 주문되고 계산된 것이라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신비스러운 이야기에 매혹을 느끼고 씨네필이 창작가가 되어 가는 ‘침팬지’와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작품이다.



장건재 감독의 ‘영화의 시간’은 극장에서 우연히 만난 ‘우연’(장혜진)과 ‘영화’(양말복)의 이야기다.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소소한 에피소드와 함께 고등학교 동창생의 반가운 조우를 그리고 있다. ‘영화의 시간’은 많은 사람이 오가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하나의 캐릭터로 상정함과 동시에 영화 관람을 뜻밖의 만남이나 한나절 동안의 여행, 혹은 꿈꾸는 듯한 경험으로 묘사한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빛은 방금까지 옷을 젖게 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가 버리는 소나기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경험들이 꽉 차게 담겨 있다.



▲ 영화 <극장의 시간들> 스틸컷


OTT 플랫폼이 대세라는 말도 부인할 수 없고, AI 영화의 등장도 거부할 수 없는 시대다. 극장의 존속 가능성에 대해 장담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의 관객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면서 불편함을 감수하는 극장은 그 자체로 특별하고 환상적인 공간이다. 이것은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 대중들 앞에 영화를 상영했던 날을 영화의 탄생일로 지정한 맥락과도 닿아있다. 큰 스크린으로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의 본질이라는 의미다. ‘왕과 사는 남자’가 불러 모은 천만 관객이 곧 또다시 극장을 찾게 되기를 희망한다.




■ 글 :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 전주국제영화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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