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원자력발전소의 비상사태 때 전원을 공급하는 '비상 디젤발전기'의 소화 설비가 위험 대비에 취약하다는 보도, 2년 전 YTN이 전해드렸는데요.
한국수력원자력이 위험성을 인정하고 설계를 바꾸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합니다.
이 설비가 태풍과 지진에도 취약하다는 주장이 추가로 나왔습니다.
장아영 기자입니다.
[기자]
화재 경보와 함께 드라이아이스 상태의 이산화탄소가 뿜어져 나오는 소화 설비, 실내 온도가 2분 만에 영하 50도까지 떨어집니다.
물보다 빠르고 깨끗하게 불을 끌 수 있지만, 원자력발전소의 비상 디젤발전기에는 맞지 않습니다.
디젤 발전기는 10도에서 50도까지 견디도록 설계됐고, 넓게 잡아도 영하 30도가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질식 사고 우려도 있는데, 지난 2021년 4명이 숨진 서울 금천구 발전기실 사고도 화재진압용 이산화탄소 누출이 원인이었습니다.
앞서 한국수력원자력도 이 부분을 인정하고, 화재설비를 이산화탄소에서 물 분사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황주호 /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지난해 10월 19일 국정감사) : CO2로 하다가 CO2로 하면 질식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서 물로 화재를 다루는 것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영하 50℃ 실험을 해 본 적은 있으세요?) 그런 건 해본 적 없습니다.]
하지만 말과 달리,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YTN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전국에 가동 중인 원전 26기 가운데 자동 이산화탄소 소화 설비를 사용하는 원전은 모두 16기.
이산화탄소로 건설 허가를 받은 새울 3·4호기부터 다시 물로 바꿔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16기는 그대로입니다.
이 원전들이 공유하는 결함은 소화설비만이 아닙니다.
미국에선 1979년부터 '안전등급'으로 규정된 연료탱크의 '통기관'이, 한국에선 1989년부터 '비안전등급'으로 분류됐습니다.
역시 우리나라가 설계를 주도한 한빛 3·4호기부터 비안전등급으로 바뀌었습니다.
공기가 통하도록 하는 통기관은 건물 외부에 있는데, 현재 태풍에 날아오는 물체를 막는 방호 설계나 내진 설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진이나 태풍으로 통기관이 우그러지면, 연료 공급 펌프까지 이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정종한 / 원자력발전기술사 : 연료공급으로 탱크 유위가 내려갈 때 통기관이 기능을 상실하면 탱크 내부에 진공이 걸려 탱크가 깡통처럼 우그러들고 펌프가 기능을 상실합니다. 설계기준으로 정한 지진 발생 시는 모든 구역의 통기관 기능상실로 모든 디젤발전기가 무용지물이 돼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릴 수 있습니다.]
한수원은 통기관이 직접 연료를 전달하는 게 아닌 데다, 손상을 입어도 다른 쪽으로 공기가 통할 수 있어 문제없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원전 전문가는 이를 반박합니다.
[김해주 / 전 두산중공업 원자로설비 설계관리팀장 : 그런 논리라면 통기관 자체가 필요가 없죠. 연료가 오르락내리락할 때 숨을 쉬어야 하는 게 필요할 거 아니겠습니까? 공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게 통기관이거든요.]
설계가 한번 완성되면, 이후 짓는 원전도 줄줄이 같은 설계를 복제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UAE에 수출된 한국형 원전이나 최근 체코 수출을 타진하고 있는 원전 역시 같은 설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정윤 /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 경미한 사항이라고 왜 덮고 넘어가느냐고, 모든 사고는 경미한 데서 시작되는 건데…. / 한수원은 발전소를 안전하게 운영하는 게 1번이다, 우선순위고, 가장 중요한 의무사항인데 원전 수출한다고 발전소를 이렇게 운영하면 되겠느냐….]
전 세계에 가동 중인 원전 4백여 기 가운데 26기가 좁은 한국 땅에 몰려 있지만, 정부는 2038년까지 최소 7기를 더 짓겠단 계획입니다.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지진이 더 잦고 강해지고, 기후위기로 역대급 호우와 태풍이 빈출하는 상황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원전 당국의 인식은 여전히 안이해 보입니다.
YTN 장아영입니다.
영상편집 : 이영훈
디자인 :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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