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봉교에서 바라본 팔봉산과 홍천강. 홍천 9경(景) 중 1경으로 꼽힌다.
봄은 강을 타고 흐른다. 강바람은 봄기운이 실려 사람을 바람나게 한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바람나고 싶어 홍천 팔봉산으로 향한다.
서면 팔봉리에 자리 잡은 팔봉산은 유원지 주차장에서 보면 홍천강 너머 고만고만한 여덟 개의 뾰족한 봉우리가 사이좋게 어깨를 기대고 있다. 솟구쳐 있는 8개 봉우리와 기암절벽은 휘돌아 흐르는 물줄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마치 분재를 연상시키는데, 수반(水盤) 위에 놓인 아름다운 수석처럼 아기자기하다. 하지만 해발 327m의 팔봉산은 속살을 감추고 있다. 해발 고도만 보고 얕잡아보다가 큰 코 다친다.
△ 매표소에서 출발하여 1봉부터 8봉까지 완등한 후 원점회귀 하는데 총 3시간 정도 걸린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팔봉산은 높지 않지만 봉우리마다 두 손, 두 발을 써서 오르내리는 암릉 등반이 재미를 더하고, 1봉부터 8봉까지 봉우리 간 거리가 짧아 산행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주말이면 약 천 명 정도가 찾는다고 하니 작은 팔봉산은 늘 등산객들로 넘쳐난다.
유원지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팔봉교를 지나 팔봉산 매표소에 도착하면 남근석과 남근목이 제일 먼저 등산객을 반긴다. 예부터 팔봉산은 음기가 많아 이를 중화시키기 위해 향토민들이 남근석과 남근목을 산들머리에 세웠다고는 하지만 너무 사실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돼 민망스럽기는 하다.
△ 입구의 남근석과 남근목은 음기가 센 이 산의 지세를 낮추기 위함이다
입구의 출렁다리를 지나 산속으로 들어선다. 숲에 들어서면 봄볕은 두렵지 않다. 나뭇가지에 자잘하게 흩어져 내리는 빛은 따스하고 부드럽다. 봄빛은 자연 제일의 축복이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 벌거벗은 암릉이 기다리고 있다. 처음부터 거친 속살을 드러낸 팔봉산은 잠시도 방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암벽등반을 하듯 깎아지른 절벽 위의 첫 번째 봉우리 위에 올라서면 팔봉산이 첫 속살을 드러내는 곳에 1봉 표지석이 있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지고 홍천 9경중 하나인 금학산도 보인다. 금학산 정상에 서면 수태극 모양을 한 홍천강 최고의 절경을 볼 수 있다. 1봉에서 2봉 사이의 안부로 내려서는 등산로 또한 급경사의 암릉길이다.
1봉과 2봉 사이에 있는 안부에는 1봉은 생략하고 2봉으로 바로 오르는 등산객들이 미리 와서 쉬고 있다. 이곳에서 작지만 옹골찬 암릉을 유격훈련 하듯이 타고 오르면 주봉인 2봉에 올라선다.
△ 팔봉산 정상 2봉(327m). 팔봉산 정상석은 작아도 품위가 넘친다.
3, 4봉 가는 길의 거친 암릉, 바위틈에 뿌리내린 노송은 마치 설악산 공룡능선을 연상하게 한다. 3봉에 서면 서쪽으로 나머지 다섯 봉우리가 한눈에 펼쳐지고 멀리 춘천 삼악산까지 조망된다. 4봉에서의 조망이 가장 훌륭한데 1봉과 2봉에서 언뜻 언뜻 보이던 홍천강이 전경을 드러낸다. 마을을 끼고 굽이굽이 흘러 팔봉산을 휘감는 홍천강을 끼고 겹겹이 이어진 팔봉산의 초록빛 싱그러운 연봉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자 민낯을 드러낸 소나무 가지들이 얽히고설켜 하늘을 배경으로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린다.
△ 3봉은 8봉 중에서 제일 높은 만큼 암릉미가 수려하다.
4봉을 눈앞에 두고 비좁은 바위 통로가 일행 앞을 막아선다. 이번 산행에서 특별한 재미를 하나 더 만날 수 있는 해산굴이다. 좁은 바위틈을 통과하는 것이 출산의 고통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배낭을 벗고 요령 있게 움직여야 좁은 굴을 통과할 수 있다. 해산굴은 통과할 때마다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있어 장수굴이라고도 불린다. 해산굴을 빠져나오면 4봉부터 7봉까지는 위험한 구간마다 철제 계단과 발판, 철제 손잡이가 놓여 있어 비교적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 아기자기한 암릉에 매달리다보면 어느새 다른 봉우리에 올라서 있다.
봉우리 안부 군데군데에 하산길이 있으므로 적당한 코스에서 하산할 수 있다. 대개는 5봉이나 7봉을 넘어선 지점에서 홍천강 쪽으로 내려간다. 8봉을 넘어 하산하는 경우에는 거의 수직의 암벽을 타고 내려와야 하므로 특히 조심해야 한다.
팔봉산 봉우리 어느 곳이든 보이는 전경은 여느 높은 산에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산오름을 할수록 봉우리를 지날수록 팔봉산의 이어지는 능선과 팔봉산을 둘러 흐르는 홍천강은 더 가까이 선명하게 보인다.
△ 팔봉산을 휘감는 홍천강. 여기가 요산요수(樂山樂水)다.
△ 6봉 절벽위의 고사목. 삶은 다했지만 위엄은 여전하다.
1530년에 편찬된 에는 팔봉산의 또 다른 이름을 감물악(甘勿嶽)이라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악(嶽)자가 들어가는 산은 악을 쓰고 올라갈 만큼 험한 산이라는 뜻이다.
8봉 아래에는 ‘노약자들은 우회하라’는 경고판이 서있다. 경고판 아래에 있는 하산로가 산객을 유혹한다. 그러나 마지막 봉우리를 오르면 그만큼 보상이 뒤따른다. 8봉에 올라서면 정상석과 노송이 마지막까지 완등한 등산객을 반겨준다. 8봉은 여덟 개의 봉우리 중 가장 낮지만 강과 가깝고 소나무가 많으며 공간이 널찍한 편이다. 여기서 겹겹이 이어지는 산줄기와 절벽 아래에서 잉어 비늘처럼 반짝이는 홍천강 물결을 내려다보면 잠시 신선이 된다. 노송 아래에서 배낭을 풀어놓고 휘돌아나가는 홍천강의 물줄기를 즐기다보면 물결을 치고 솟아오른 강바람이 물 내음을 머금은 채 얼굴을 어루만져준다.
△ 노송 아래 작은 8봉 표지석이 앙증스럽다.
여덟 봉우리 종주를 끝내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내려가는 발걸음도 춤을 춘다. 그러나 하산 길은 위험한 급경사 내리막이다. 밧줄과 발판, 철 손잡이가 있지만 긴장의 끈을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한다. 팔봉산은 마지막까지 틈을 주지 않는다. 끝났다 싶으면 다시 시작되는 팔봉산은 바로 밀당의 산이다. 철제 구조물과 한참을 씨름하면서 절벽 길을 내려오면 홍천강이 반겨준다.
△ 바람 불어 갈대가 사각사각 춤추는 강변길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홍천강에 바람이 분다. 강바람 맞으며 강변의 잔도를 따라 걷는다.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솜털을 간질이는 듯 몸에 감기는 강바람은 강변의 갈대를 춤추게 한다. 발목까지 오는 강물에서 한가로이 견지낚시를 즐기는 강태공 모습도 보인다.
홍천강 강변 산책은 팔봉산의 여덟 봉우리를 완등한 사람에게만 주어주는 호사스런 선물이다. 봄기운이 살랑대는 강변길을 슬렁슬렁 걷다보니 어느새 매표소 입구다. 여덟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잠시 격정에 들떠있었던 마음은 어느새 가닥을 잡는다.
바람 불어 좋은 날, 홍천의 산하(山河)를 마음껏 즐긴 행복한 하루였다.
제공 = 국내유일 산 전문채널 마운틴TV (명예기자 여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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