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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62] 태풍 맞고, 불 끄고, 선박 탈출까지... 안전체험관 가보니

2018.12.29 오전 08:00
세월호 참사와 대구 지하철 참사, 종로 고시원 화재 참사,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경주·포항 지진까지. 전 국민의 마음속에 깊은 상흔을 남기고 허술한 안전 의식에 경종을 울린 안타까운 사고들이다.

살면서 큰 화재 한 번 목격한 적이 없는 내가 재난 현장의 한 가운데 있게 된다면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아닌 것 같다'는 부끄러운 대답이 나온 순간, 발걸음은 시민안전체험관을 향하고 있었다.



"7가지 체험을 한 곳에서"
서울 시내 시민안전체험관은 동작구의 보라매안전체험관과 광진구의 광나루안전체험관 두 곳이 존재한다.

이날은 광진구의 광나루안전체험관을 찾아 태풍 체험, 지진 체험, 선박 탈출, 소화기 사용법, 화재 대피 체험, 완강기 체험, 지하철 체험관까지 약 100분간 총 7가지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보통 진행 상황에 따라 6가지 체험이 진행되지만, 취재를 위해 7가지 모두를 경험해보았다.)

모든 체험은 무료이며 야간 체험이 있는 수요일을 제외하고는 하루 평균 3회의 체험이 진행된다. 1회차에 참가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 180명(주간), 90명(야간 및 주말)으로 주간의 경우, 6개 조로 편성되어 체험이 진행됐다. 이날 체험은 한양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함께했다.



"초속 30m"
처음으로 만난 재난 상황은 태풍이었다. 체험 전 간단하게 태풍에 대한 설명과 행동 요령, 주의 사항 등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실제 태풍 피해 영상과 함께 사망, 실종, 재산피해 등 상황까지 상세한 사례 소개가 이어졌다.

"올해 지나간 태풍은 무엇이 있을까요?" 체험을 담당한 오민호 소방교는 퀴즈를 내며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유발했다. 이어 오 소방교는 태풍 대비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점검이라고 강조했다.

설명이 끝나고 곧장 체험이 시작됐다. 안경이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보안경을 착용하고 입장했는데, 휴대폰이나 바람에 날아갈 수 있는 것은 모두 대기실에 놓아두고 입장해야 했다.






초속 30m라는 숫자가 어느 정도의 세기인지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무지 덕에 두려움 없이 바람을 맞이하러 간 순간, 몸이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기 어려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발을 잘못 딛어도 균형을 잃고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바람 세기였다.

2003년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최악의 피해를 줬던 태풍 매미의 최대순간풍속이 초속 60m였다고 하니 당시의 피해가 짐작되는 순간이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해야 하는 3가지"
""지진이야!" "지진이야!" 처음에 지진을 인지하는 사람이 반드시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오 소방교는 재난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상황을 공유하고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3가지 행동 지침도 있었다. '가스 밸브를 잠그고, 누전차단기로 전기를 차단하고, 현관문을 개방한다' 강한 지진이 발생할 경우, 떨어진 물건이 쌓여 문을 막아 탈출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현관문 개방이 필수 행동 지침 중 하나였다.

행동 요령을 배운 후에는 역시 실제 체험으로 이어졌다.

진도 1에서 7까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체험관에 들어가 지진을 느껴봤다. 체험관 안에는 가스 밸브가 설치된 싱크대부터 누전차단기까지 실제 가정집처럼 실감 나게 구현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지진을 경험하며 앞서 배운 3가지 지침을 행동으로 옮겨 볼 수 있었다.



진도 7이 되자 글을 쓰기가 어렵고 앉아있어도 중심을 잡고 있기가 버거웠다. 일생 동안 이처럼 강한 지진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그 세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체험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면 아연실색한 채 허둥지둥했을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암초와 충돌했습니다. 퇴선을 준비하세요"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신설된 선박 탈출 체험장은 시민안전체험관에서 가장 높은 관심을 받는 곳이었다. 구명조끼 착용법부터 비상시 선내 탈출요령과 바다에서 체온 손실을 방지하는 방법 등 상세한 대응 요령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절대 선실 안에서 구명조끼를 입어서는 안됩니다. 선실 안에 물이 차면 탈출할 수 없습니다" 바다로 탈출하기 직전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는 주의 사항과 함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태아 자세로 최대한 몸을 웅크려야 한다는 말에 분위기는 짐짓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체험을 위해 모형 배에 탑승하자 물 위에 떠 있는 선박 안에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함이 전해졌다. 이내 배가 암초에 충돌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선실이 요동치자 학생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곧장 퇴선을 준비하라며 다급하게 위급상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고, 탑승객 전원은 배 밖으로 이동해 탈출을 준비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미끄럼틀을 통해 탈출하는 내내 가슴 한쪽이 아리는 감정이 들었다.

8살 딸과 함께 체험장을 찾은 이영은(37) 씨 역시 "세월호가 떠올라 가장 깊게 기억나는 체험이었다"며 "평상시에 알기 어려운 것들, 알아도 체험하기 쉽지 않은 것들을 가족과 함께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됐던 시간"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재난을 막는 첫걸음은 이곳부터"
"집 안에 소화기가 비치된 학생 손 들어 볼래요?" 서른 명이 넘는 학생 중 집 안에 소화기가 있다고 답한 학생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에 오 소방교는 집과 차량에 소화기를 비치하고 관리하는 작은 시작이 더 큰 재난을 예방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소화기와 소화전 사용법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네 번째 체험에서는 가스레인지 화재로 불이 난 상황을 가정하고 화재 진압 시도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소화기는 익숙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는데 학창시절이나 군 복무를 하며 소화기 체험을 한 이후 실제로 사용해보는 것은 처음인 듯했다.

오 소방교는 '화재 초기 소화기로 진압을 시도하다 진압에 실패할 경우 빠르게 신고하고 대피해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화재는 예상치 못한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번지기 때문에 무리한 진압 시도를 하다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기 때문.

"문을 열어둬야 할까요? 닫아둬야 할까요?"
다섯 번째 체험장인 화재 대피 체험장에서 받은 질문이다. 참가자들의 대답은 거의 절반으로 갈렸다. 정답은 '닫아야 한다'. 산소가 유입되면 화마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수건에 물을 묻혀 유독가스 흡입을 막고 탈출해야 한다는 말에 학생들은 침이나 소변은 안되냐며 짓궂은 질문을 쏟아 내기도 했다.

이외에도 화재 발생 시에는 질식 위험이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서는 안 된다거나, 폭발의 위험이 있어 섣불리 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후 약 3분간 연기가 자욱한 어둠 속에서 통로 유도등만 보고 탈출하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사용법을 읽고 있을 시간이 있을까요?"
완강기 체험에 앞서 오 소방교는 평상시에 사용법을 익혀두고 가능하다면 실제로 체험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11월 7명의 사망자가 발상한 종로 고시원 화재에서도 완강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한 명도 이를 사용하지 못해 피해가 더욱 커졌다는 분석과 함께 정기적인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눈앞에 마주한 완강기는 낯설긴 했지만, 사용법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번의 체험도 없이 위급 상황이 벌어진다면 당황해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았다. 특히 지지대와 완강기를 결합하는 과정이나, 벨트를 몸에 고정하는 방법 등은 이론보다도 체험이 더욱 중요해 보였다.

"퇴근길 지하철, 자욱한 연기와 함께 열차가 멈추어 선다면"
마지막으로 지하철 탈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지난 10월 처음 도입된 시설로 높이를 제외하고는 실제 지하철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 했다. 지하철 비상 급정거 상황을 체험할 수 있는 장치는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했는데, 화재 시 행동요령과 열차 내 탈출 방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지하철마다 의자 밑 혹은 출입문 옆으로 비상 개폐 장치의 위치가 다른데, 이곳은 지하철 2가지 모델을 재현해 놓은 것이 특징이었다.

체험을 진행한 안은혜 소방관은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에도 연기가 자욱했지만, 승객들이 옆 사람이 앉아있는 것을 보고 탈출하지 않았다"며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비상통화 장치로 최대한 빠르게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또한 따라오던 열차가 있기 때문에 위급상황 시에는 열차 진행 방향으로 탈출해야 한다거나, 전동칸 출입문 아래에 사다리를 이용해 탈출하면 된다는 등의 사실 또한 새롭게 알 수 있었다.

"본능보다는 매뉴얼대로"
20년 차 경력의 김진용 소방위는 "위급상황에서는 본능보다는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여준다"며 재난체험을 통한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체험을 받은 최중익(38) 씨는 "태풍 체험과 선박 탈출 체험의 경우 실제로 체험할 기회가 적은데 실제로 겪어보니 많은 도움이 됐다"며 "재난 상황을 겪게 된다면 당황하지 않고 조금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오민호 소방교 역시 "이론으로만 배우는 것과 다르게 몸으로 익히는 것은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에 1년에 1번은 가족들이 함께 체험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체험의 중요성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에이 그거 뭐 다 뻔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상처가 아물 틈조차 없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사고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을 지키고 예방하는 것임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불감증이라는 단어조차 뻔한 표현이 되어버린 것 같은 요즘, 재난과 위급상황에 우리는 충분히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YTN PLUS 김성현 기자 (jamkim@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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