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카드에서 집안일을 외부에 맡기는 소비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는 통계를 냈다.
세대별 집안일 관련 산업 결제 비율은 30대(50%)가 가장 높았고, 결제 내용으로는 반찬 요리 배달 서비스가 가장 많았다. 결제 건수 기준으로는 출장 아이돌봄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육아 서비스가 2년 전 대비 9배 이상 늘어 최고 증가액을 보였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사노동 서비스 시장 규모는 7조 5천억 원에 이른다. 가사노동을 '집안일'이라고 부르는 나라에서 이 산업의 규모가 이토록 크다는 것의 의미는 뭘까?
구독형 서비스로 ‘청소, 세탁, 요리-설거지’ 집안일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집안일의 외주화’ 현상이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을 또 다른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 해보니 시리즈에서는 크게 늘어난 가사노동 서비스를 구독해보고 난 소감을 담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다음 날 온다
핸드폰 하나로 뭐든지 구독 가능한 세상이다. 집안일도 마찬가지다. 가사도우미 어플을 통해 손쉽게 가사도우미를 신청할 수 있다. 가격은 업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4시간에 20평 기준 대략 5만 원 선이다.
가사도우미는 4시간 동안 화장실과 방 청소, 설거지와 물 빨래와 같은 기본적인 집안일을 한다. (빨래개기나 냉장고 청소, 무릎 꿇고 바닥청소는 제외)
토요일 오전, 가사도우미가 아침 6시 30분 출발했다는 알람이 울렸고 채 8시가 되기 전에 문을 두드렸다. 영등포에서 왔다는 가사도우미는 초행길이라 늦지 않기 위해 일찍 일어나서 출발했다며 앞치마를 입고 곧장 청소를 시작했다.
인터뷰는 청소 도중 틈틈이 진행됐다.
가사도우미 이○○ 씨는 조선족으로 “가장 빨리할 수 있는 일이라서 선택했다"라고 한다. 이 씨는 “(나는) 체력도 좋고 청소도 자신 있지만 한국어 소통을 할 때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청소하는 동안은 대화할 일이 많지 않아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이 씨는 오전 청소를 끝내면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오후에 청소할 집으로 이동한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이라 약간의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고단하지만 일이 익숙해지면 고정적으로 청소할 수 있는 집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씨는 ‘별점’과 ‘평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어서 서비스 노동을 조금씩 해주는 편이라고 했다. 우리 집에서도 환풍기 필터를 떼서 모두 닦고, 서비스에 포함되지 않은 공기 청정기 필터 청소까지 마쳤다.
일주일 뒤, 다른 가사도우미 유○○씨 역시 8시가 되기 전인 아침 7시 40분에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앞치마를 입고 청소를 하고 나서 싱크대에 설거지감이 없다며 “씻을 것이 없냐?"고 재차 되물었다.
집에서 밥을 해먹지 않아 씻을 것이 없다고 하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유 씨는 결국 창틀을 모두 닦아놓고 “설거지 대신 이거라도…”라고 말했다. 11시 40분이 되자 유 씨는 미안한 얼굴로 “일찍 왔으니 조금 일찍 가봐도 되냐?"라고 물으며 다음 행선지가 제법 먼 곳이라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 가사도우미는 하루 8시간 주 5일 노동으로 한 집에서 노동하는 시간이 길었다면 지금은 반나절 노동으로 쪼개지는 경향을 보인다. 노동 강도는 더욱 세지고 휴식 시간은 다음 청소 장소로 이동하는 데 쓰여 휴게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게 된 셈이다.
중개 수수료도 건마다 떼기 때문에 과거 중개업소보다 높게, 자주 떼는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력 시장 자체가 구독형 서비스로 재편되는 중이라 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과한 노동 강도로 일을 하게 됐다.
집안일의 기계화에 이은 집안일의 외주화
집안일을 안 하는 사람들 특징 중에 하나는 “기계가 다 해주는데 집안일이 뭐가 어렵냐?"고 묻는 것이다.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해주고, 청소는 청소기가 해주고 밥은 전기밥솥이 해준다는 게 그들의 논리인데 그렇게 따지면 공장의 기술자들은 왜 여전히 필요하며, 서류는 모두 전자결재하면 되는데 사무실은 왜 여전히 A4용지를 뭉텅이로 쌓아놓는 건가?
세탁기에 넣는 빨랫감을 색깔과 소재, 용도별로 구분해서 집어넣고 돌리는 것도 일이고 그걸 다시 빼내서 말리고 다리고 서랍에 집어넣는 것까지가 ‘세탁’의 영역이다.
가끔은 세탁기를 ‘세탁’해줘야 한다. 세탁기도 청소를 해줘야 하고 건조기도 청소를 해줘야 한다. 가사 노동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옮겨갈 뿐이다.
구독 서비스의 장점은 이 모든 과정을 앱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거다.
세탁 구독 서비스도 여러 업체가 생겨서 경쟁 중이다. “24시간 언제든 세탁 서비스를 주문할 수 있다"라는 매력적인 유혹에 일주일 치 빨랫감을 내놨다.
빨래 양이 제법 많은 것 같아도 드라이클리닝을 하지 않으면 2만 원 대에 꽤 여러 벌을 세탁할 수 있다. (업체는 ‘세탁 장인’들이 세탁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일부는 기계 세탁이다.)
동네 세탁소도 와이셔츠와 겉옷 드라이클리닝을 하고 집으로 배달해주지만, 간단한 빨래부터 드라이클리닝, 그리고 수선까지 ‘도어 투 도어’로 이뤄진다는 건 매우 매력적이었다. 굳이 대면 서비스가 필요 없다는 점도 확실한 장점이다.
1인·2인 가구는 재료를 사는 돈보다 반찬을 구독하는 돈이 덜 든다
반찬 구독 서비스는 반조리 식품에서부터 가공식품까지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
이미 많은 업체들이 있어서 원하는 반찬이 없다면 다른 업체에서 고르면 된다.
약 5만 원 정도면 3일 정도 먹을 반찬과 국을 구매할 수 있다. 마트에서 재료를 사면 더 싸게 많이 살 수 있지만 1인가구의 경우 식재료를 사면 썩는 경우가 더 많아 손해가 난다.
대형마트나 슈퍼가 점차 1인 가구를 위한 소규모 포장을 늘려가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판매 묶음이 4인 가구 기준이다.
일을 마치고 장을 보는 일은 정신적 소모가 크다. ‘장 보고 요리를 하고 먹고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의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버리는 것’을 생각하면 음식을 배달 시켜 먹는 일이 더 경제적으로 느껴진다.
단, 계란 프라이를 해먹거나 간단한 요리 등의 곁가지 반찬은 결국 내가 준비하게 됐다.
집안일은 시지프스의 고통…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다
일주일간 구독형 서비스에 들인 돈 약 12만 원이었다.
청소 도우미 1회 약 5만 원 (2주간 2회 부름)
세탁 대행 1회 약 2만 원
반조리 반찬 구독 1회 약 5만 원
매주 구독 서비스를 신청한다고 하면 한 달에 약 50만 원을 지출하는 셈이 된다. 1회 비용은 적은 것 같아도 모이면 큰 지출이다. 그러나 이 돈을 들여도 완벽하게 가사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지도 않는다는 게 기자의 결론이다.
청소기는 매일 돌려야 하고 일단 음식을 먹으면 컵이라도 씻게 된다. 배달 음식을 먹어도 음식물 쓰레기는 나온다. 가사노동은 돌을 산 정상으로 올리면 다시 돌이 굴러내려오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가 된 느낌이다.
기자는 구독형 서비스는 일손을 덜어줄 수는 있어도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한다고 봤지만 다른 시선도 있다.
집안일 구독형 서비스에 ‘중독’ 됐다는 은평구에 사는 이 모 씨(34세)는 “돈이 들더라도 스트레스를 안 받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그는 “집이 넓지 않아 가사도우미는 써본 적은 없지만 세탁물 서비스는 정말 획기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집에 세탁기도 없어 코인 세탁소를 가야 했는데 비대면 서비스로 알아서 세탁물을 처리해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자취를 하면서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거나 빨래가 마르지 않아 냄새가 나고 빨래를 널어둘 공간이 없는 사람들도 있지 않느냐?”고 되물으며 “집 없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라고 평했다.
‘노동력을 불렀더니 사람이 왔네’
(1973년 독일 정부는 파독 한국인 노동자들이 필요 없게 되자 이들을 사실상 강제 송환하려 했다. 이때 이들의 투쟁 구호는 "노동력을 불렀더니 사람이 왔네"였다)
구독형 서비스의 유행은 집안일이 더는 가정주부나 가족 구성원이 전담하는 일이 더는 아니라는 신호다. 전통적인 4인 가족 구성원의 ‘엄마’ 역할도 더는 없다.
문제는 가사노동 서비스를 ‘외주화’해도 노동을 하는 주체는 ‘여성’이라는 점이 바뀌지 않는다. 거기다가 가사노동은 정당한 노동자의 지위를 보장받고 있지도 못하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자의 법적 범위를 규정하면서 제11조 1항에 예외 조건이 있는데 '가사 사용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결국 플랫폼 기업이 가사도우미와 계약을 맺어 가사노동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정작 청소 도우미는 노동자는 아닌 이상한 상황이 된다.
때문에 이들은 노동법 보호를 받지 못하고 퇴직금도, 4대 보험도 없고 노동 시간 중에 다쳐도 보상받을 수 없으며 물건을 훼손하면 본인 돈으로 변상해야 한다.
청소 플랫폼 업체가 가사도우미를 보호하는 행위는 가사 노동자 무릎 보호 정도다. 서비스를 신청하면 “무릎을 꿇고 청소를 하는 일은 금지한다”고 되어있다.
최근에는 가사도우미를 직접 고용하는 대신 근로기준법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실증 특례(제품과 서비스를 시험 검증하는 동안 제한된 구역에서 규제를 면제해 주는 ‘규제 샌드박스’)를 받은 청소 도우미 파견 업체도 생겼지만 일반 노동자와 달리 ‘소정근로시간’이 아니라 ‘실제 근로시간’에 준해 휴일과 연차휴가 등이 부여된다.
즉 ‘실제 근로시간’이 기준이 되면 기자처럼 ‘반나절’ 가사노동 신청하는 쪼개기 노동을 요청하면, 법적인 휴일과 연차휴가 등을 부여받기 힘든 상황에 놓일 수 있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은 ‘가사노동을 노동이 아닌’ 것으로 간주했지만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가사 노동은 이제 ‘플랫폼 노동자’로 대우받는다. 그러나 여전히 법적으로는 노동자가 아닌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결국, 가사노동은 점점 확대되는데 법적인 지위와 인식은 여전히 ‘식모살이’나 ‘가정 내 일’로 머무는 형편이다.
가사도우미 두 분의 배웅을 하면서 공통적으로 질문한 것이 하나 있다. “퇴근하고 나서 집안일을 또 하시냐?”고 묻는 것이었다.
두 사람 다 집에 가면 “당연히 밥하고 빨래한다”고 대답했다.
이 질문을 통해 지금 가사 노동자의 현실과 인식이 중첩되는 지점이 이들의 삶이 아닐까…하는 씁쓸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편리한 구독 서비스 뒤의 ‘노동권 사각지대’를 먼저 해결된 뒤에야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YTN PLUS 최가영 기자 (weeping0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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