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영하 41도. 한겨울 러시아 시베리아 상공을 날던 항공기 문도 활짝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두터운 겨울옷까지 꺼내 입어야 했던 승객들은 매서운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재난영화 장면이 아닙니다. 사고가 발생한 건 지난 1월 9일. 승객 25명을 태운 러시아 국내 항공기는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화물용 뒷문이 열리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문 개방 이후 승객들의 옷가지와 모자, 그리고 다른 수하물이 밖으로 날아갔고
항공기 안으로는 영하 41도의 찬바람이 빨려 들어왔습니다. 이 항공기는 출발지로 방향을 틀어 비상 착륙을 해야 했고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고 항공기는 1986년 생산 중단된 기종인 안토노프-26입니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문 개방 사고는 착륙 전에 발생했습니다.
지난 26일 낮, 제주에서 대구로 출발한 아시아나 항공기 문이 개방됐습니다. 문이 열린 건 지상 213m 상공. 탑승 승객은 190여 명.
"공항에 가까이 왔을 때 출입문이 갑자기 열렸다" "하마터면 하늘에서 떨어질 뻔했다" 공포에 떨어야 했던 승객들의 얘깁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면서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일부 승객들은 극도의 호흡 곤란 등을 호소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이 항공기에는 소년체전에 참가하는 제주지역 초등학생들과 중학생들이 다수 탑승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운행 중 항공기 문을 힘으로 열 수 있을까?
먼저 항공기가 '순항고도'에서 비행 중일 땐 열 수 없습니다.
여기서 '순항고도'는 안전 비행을 위해 유지해야 하는 적절한 해발 고도를 말합니다. 상승할 때마다 항공기 주위 대기압이 점차 줄어들어 순항고도에 이를 때 지상의 26% 수준으로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지상처럼 편안하게 기압을 유지해 주는 여압 시스템이 있어 승객들은 기압 차를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지상과 비슷한 항공기 내부와 외부 대기압 차이로 인해, 항공기 내부 표면의 단위 면적당 가해지는 압력은 약 4.5kg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문을 열려면 14톤에 달하는 힘이 필요한 데 아무리 건장한 성인이더라도 손으로 여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럼 출발 직후나 착륙 직전처럼 외부 기압이 지상과 엇비슷해질 때는 어떨까? 문 개방이 가능하겠지만 이를 대비한 별도의 안정 장치가 있습니다. 문이 열리지 말아야 하는 비행 상태가 되면 안쪽 잠금 장치가 자동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게다가 문 작동 상태는 항상 조종석 계기 장치에서 감지 됩니다. 그런데 모든 기종에 안전장치가 있는 건 아닙니다.
"실직으로 답답해 열었다" 아시아나 항공기 문을 연 남성 승객의 경찰 진술 내용입니다. 이 남성은 키 180cm에 몸무게 100kg 정도의 건장한 체격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남성이 문을 연 지점은 200미터가 넘는 상공으로 서울 여의도에 있는 63빌딩 높이와 엇비슷합니다.
기내와 외부 기압 차이가 크게 좁혀진 지점이다. 사람의 힘으로 열 수 있는 높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아시아나 항공기는 A321-200기종으로 별도의 안전 잠금 장치가 없다고 합니다. 착륙 전에 문을 열 수 있게 한 건 화재 등 긴박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탈출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게 아시아나 측 설명입니다.
선뜻 이해가 안 됩니다. 항공기에서 화재가 나더라도 승객 대피는 착륙 이후 이뤄져야 합니다. 미리 문을 열 수 있게 하더라도 63빌딩 높이에선 승객들의 대피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일정 고도 이하에서 항시 문을 열 수 있도록 한다면 문 개방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이번 사고 때처럼 누군가 마음먹는다면 문 개방을 막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고 이후 아시아나는 문 근처에 있는 해당 좌석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만석이라도 안 판다고 합니다. 이번 사고는 좌석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 장치를 선택적으로 설치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보입니다. 게다가 이번 사고로 일반인들도 대부분 알게 됐습니다. 항공기 문이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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