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분노 키운 '병원 폭격' [한방이슈]

어둠이 짙게 내린 오후 7시 30분 무렵.

섬뜩한 금속성 소리와 함께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에 로켓포가 떨어졌습니다.

가자지구 보건부가 밝힌 사망자는 500명이 넘습니다.

전쟁 중 병원을 공격하는 행위는 전쟁범죄로 간주합니다.

전쟁 기간 넘지 말아야 할 인도주의적 조치들을 규정한 제네바협약을 명백히 위반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로켓을 쏜 주체를 놓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진실 공방이 뜨겁습니다.

양측이 제시한 증거들을 하나씩 확인해 보겠습니다.

자세한 내용, '한방이슈'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제시한 증거

이스라엘은 영상과 위성 사진 등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먼저, 로켓포가 떨어진 지점, 그러니까 병원 주차장에 남은 사후 흔적을 볼 때, 이스라엘군의 미사일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폭탄이 떨어진 지점에 생기는 분화구 형태의 구덩이에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스라엘군은 Mk(마크)-80 폭탄 시리즈에 정밀유도 장치를 장착한 합동직격탄, 제이담(JDAM)을 사용해 가자지구를 타격합니다.

Mk-80 시리즈 폭탄은 중량에 따라 어지간한 건물을 파괴할 수 있는 폭발력을 갖고 있습니다.

폭탄이 떨어진 지점에는 분화구 형태의 구덩이, 즉 '폭파구'가 생기는데 크게는 너비 11m, 깊이 8m, 작게는 너비 8m, 깊이 2.4m 정도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가자지구에는 큰 분화구 형태의 넓고 깊은 폭파구가 곳곳에 생겼습니다.

병원 폭격 다음날 낮에 촬영한 영상을 보면 주차장엔 작고 얕은 구멍이 보입니다.

넓고 깊은 형태의 기존 폭파구와 크게 다른 모습입니다.

이스라엘군이 사용하는 정밀유도폭탄이 병원 주차장에서 폭발했다면 더 넓고 깊은 구덩이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또 하나 병원 건물 구조가 그대로인 점 역시 폭발력이 약했다는 증거라고 이스라엘군은 주장합니다.

폭격 지점에 남은 흔적과 병원 건물이 무너지지 않은 점, 이 두 가지를 근거로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이슬라믹 지하드의 오폭을 병원 폭발의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폭발의 규모로 볼 때 이슬라믹 지하드가 사용하는 재래식 로켓포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입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 : 구조적 손상이 없고, 벽이 파괴되지 않았으며 구덩이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공중 폭격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오폭을 입증할 증거로 도청한 음성 파일도 제시했습니다.

[하마스 대원 간 대화 : 미사일이 이렇게 떨어지는 건 처음 봤어요. 지하드 소행이랍니다. (우리가 쏜 거야?) 그런 것 같아요.]
　
　

하마스가 제시한 증거

하마스는 병원장의 증언을 증거로 제시합니다.

[아부 알 리쉬 / 가자지구 보건부 차관 : 이스라엘군이 병원장에게 전화해서 "두 차례 타격으로 경고했는데 왜 아직도 대피를 안 했느냐" 했습니다.]

실제로 특정 목표를 폭격할 때 사전 경고 폭격은 이스라엘군이 공습할 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명형주 / YTN 이스라엘 리포터 : 이스라엘군이 어떤 지역을 타격할 때 이전 같은 경우는 노크 온 더 루프라는 방법을 통해서 위에 있는 먼저 옥상을 때려주고 그러고 나서 폭격을 하던 전력을 쓴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했을 것이라고는 사람들 사회에서는 그렇게 인정을 하고 있지 않고요.]

이와 관련 세계보건기구 WHO는 폭발 당일 밤 발표한 성명에서 10월 7일 분쟁이 시작된 이후 가자지구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이 51건 이상 있었으며 이로 인해 의료진 15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다쳤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폭발 직후 하마스 대원 사이 대화 내용이라고 공개한 도청 녹취록에 대해서도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한 마디로 조작이라는 주장입니다.

녹취록의 음질 상태가 너무 깨끗한 데다 대화 내용 역시 이스라엘에 유리한 표현이 많이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아랍권에선 이스라엘이 잔혹 행위를 저지른 뒤 항상 이런 식으로 대응해왔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관련성을 부인하고 팔레스타인에 책임을 떠넘기며 증거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약해질 때까지 시간을 번다는 내용입니다.

알자지라는 지난해 5월 총에 맞아 사망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저널리스트 사망 사건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소행이라고 비난했지만, 이후 우발적 사고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다니엘 하가리 / 이스라엘군 대변인 : (미국인 기자 사망 시에 이스라엘 정부는 초기에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기자를 죽였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왜 지금 전 세계가 이스라엘 정부를 신뢰해야 하나요?) 신뢰도의 중요성에 있어서 그때는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고 5시간 이상 분석했고 모든 걸 두 번 확인했습니다.]

여기에 폭발 직후 이스라엘 총리 디지털 보좌관이 '이스라엘 공격'을 언급한 기사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삭제한 사건도 하마스가 제시하는 증거 자료입니다.

이 보좌관은 하마스가 병원을 테러 활동의 기지로 악용하는 경우가 있어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기지를 공격한 걸로 착각했다며 사과했습니다.
　
　

'병원 폭격', 진실 공방…전쟁 확산 우려

뉴욕타임스와 BBC 등 서방 언론은 이스라엘의 발표를, 알자지라 등 아랍 언론은 하마스의 발표를 중심으로 기사를 생산합니다.

계속된 폭격으로 가자지구 현장을 취재하는 언론이 급격히 줄면서 사실 검증보다 주장과 추측이 대부분입니다.

이러는 사이 진실은 사라지고 서로를 향한 분노는 커지고 있습니다.

분노는 아랍권의 연대 시위로 이어졌고, 이는 이란과 헤즈볼라 등의 참전을 부르는 방아쇠가 될 수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항공모함을 추가 배치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직접 방문한 주된 이유 역시 전쟁 확대를 막으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가 드론 공격을 받고, 하마스가 헤즈볼라와 전선 확대를 논의하면서 불안감은 커지고 있습니다.

가자지구 병원 폭격에 대한 진실 공방이 이어지면서 국제사회는 서로 대립하는 정보와 주장으로 진실을 가려내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성은 중동의 민감한 정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어 전쟁의 확산 우려를 키우고 있습니다.
　
　
기획 : 김재형(jhkim03@ytn.co.kr)
제작 : 이형근(yihan3054@ytn.co.kr)
참고기사 :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알자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