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는 일주일 안에 무너질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줄곧 해왔던 말입니다.
이 말엔 전제 조건이 달려 있습니다.
"서방의 지원이 없다면..."입니다.
즉, "서방 지원이 없다면 우크라이나가 일주일 안에 무너진다"입니다.
푸틴이 말한 서방 지원의 핵심, 당연히 미국입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지원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습니다.
미국 내부의 정치 상황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겹쳐 시간이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만 2년을 채워가는 전쟁 기간 우크라이나의 가장 든든한 구세주였던 미국이 이제는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무서운 건 '잊혀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 기간, 세번째 겨울을 맞은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지금 그렇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중동에 쏠려 있습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지금까지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750억 달러, 우리 돈 97조 원의 원조를 제공했습니다.
절반 이상인 440억 달러 정도가 군사 원조입니다.
하지만 미국 의회, 그러니까 야당인 공화당의 반대로 새로운 지원의 물줄기가 차단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선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소식통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봄에는 군수물자의 흐름이 넓은 강이었습니다. 여름에는 시냇물이었죠. 지금은 몇 방울의 눈물입니다."
미국의 상황이 언제 회복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불안감을 드리운 미국 정치권의 현재 상황은 이렇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1,050억 달러의 추가 예산을 의회에 요청했습니다.
이 중 614억 달러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것이고 나머지는 이스라엘과 기타 국가 안보 우선순위를 위한 것입니다.
백악관의 제안은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에서 교착상태에 빠졌습니다.
공화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예산을 멕시코 국경을 통한 불법 이민을 억제하는 조치에 사용하자며 신규 원조에 반대합니다.
미국 역시 먹고사는 문제가 팍팍한 상황에서 표심 공략을 위한 성격이 강해 보입니다.
의회 일각에선 크리스마스 전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 11월 대선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특히, 군사 지원에 반대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원 자체가 완전히 중단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 포탄 굶주림에 시달리는 우크라
말라가는 지원에 우크라이나는 포탄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올해 여름 22만~24만 발로 추정된 대구경 포탄(152mm 및 155mm) 사용량이 이제는 8만~9만 발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수치조차도 미국(2만8천 발)과 유럽(2만5천 발) 국가들의 월 생산량보다 많은 양입니다.
우크라이나 자국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서방 지원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반면, 러시아는 서방의 포탄 생산량을 앞 지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북한의 포탄 지원이 급증하면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지원이 줄어들면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반격은 어려워집니다.
이렇게 되면 강점인 드론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드론만으로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유럽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美, 약속 지켜라"
유럽연합은 필요하다면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최근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리투아니아 등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을 약속했지만, 이 역시 불확실성에 갇혔습니다.
반이민 정책 등을 앞세운 강경 우파의 집권이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중단 또는 축소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먼저, 독일은 일부 정치권의 반대로 원조 확대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최근 네덜란드 총선에서 승리한 극우 자유당은 F-16 전투기 등 무기 지원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역시 최근 우파가 집권한 슬로바키아 새 정부는 이미 군사 지원을 중단했습니다.
중심축 미국의 분열과 유럽 일부 국가의 이탈, 서방의 지원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가자지구 분쟁으로 워싱턴의 관심이 줄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것은 위험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또 "미국의 안보 이익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나토가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푸틴의 러시아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서방의 지속적 지지는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생명줄입니다.
일각에선 푸틴이 내년 11월 미국 대선까지 전쟁을 끌고갈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공화당 유력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푸틴은 서방의 지원이 없다면 우크라이나는 일주일 안에 무너질 것이라고 장담해왔습니다.
시간은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의 편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이 지연되거나 규모가 작아질수록 우크라이나의 "느리고 고통스러운 패배" 가능성은 커집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연말까지 전쟁 지원 자금이 승인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하지만, 동유럽에 이어 중동에서도 발발한 전면전에 서방의 전쟁 피로감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잊혀질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우크라이나는 어느때보다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기획: 김재형
제작: 손민성
참고 기사: 이코노미스트,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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