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를 들었다 놨다 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열렸다가 하루 만에, 다시 닫혔습니다. 지난 17일, 이란의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자신의 엑스 계정에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모든 상선에 항로를 완전 개방한다"고 선언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분 만에 "고맙다"고 화답했고, 국제유가는 급락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이란 혁명수비대가 정반대 성명을 내놨습니다. "미국의 해상 봉쇄가 풀릴 때까지 호르무즈를 다시 폐쇄한다. 접근하는 모든 선박은 공격 대상이다.”라고 말입니다. 심지어 걸프 해역의 한 혁명수비대원은 선박 무전에 대고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최고지도자의 명령으로 열리는 것이지, 어떤 멍청이의 트윗으로 열리는 게 아니다."
외교라인이 문을 열면 군부가 다시 걸어 잠그는 나라. 종전 협상의 운명이 걸린 지금, 이란 내부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호르무즈 바닷길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지난 40여일간, 세계 경제는 가장 좁은 곳이 33km에 불과한 물길 하나에 발목이 잡혀 있습니다. 하루에 유조선 100여 척이 오가던 바닷길이 사실상 닫히자, 국제유가는 세 자릿수로 치솟았습니다. 지도를 펼쳐보면,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 끝자락, 이란과 오만 사이에 낀 가느다란 물길입니다. 평균 폭은 48킬로미터, 가장 좁은 구간은 불과 33킬로미터. 서울에서 수원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이 좁은 물길을 통해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20%, 액화천연가스 거래량의 20% 이상이 오갑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등 중동 주요 산유국의 수출 물량이 사실상 전부 이곳을 거쳐야 세계 시장에 도달합니다.
물론 우회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아랍에미리트의 내륙 송유관, 사우디의 동서 파이프라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회로들의 총 수송 능력은 하루 약 300만 배럴 수준입니다.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하루 2,000만 배럴의 7분의 1에 불과합니다. 말하자면 도로가 막혔는데, 골목길 하나로 버텨야 하는 상황인 겁니다.
#미국은 왜 예상하지 못했나
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은 이란을 공격하면서 호르무즈 봉쇄를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라 세 가지 오판이 겹친 결과로 보입니다.
첫째, '양치기 소년 효과'입니다. 앞서 설명했듯 이란이 "호르무즈를 봉쇄하겠다"고 위협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2011년, 2018년, 2019년에도 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됐고, 단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었습니다. 반복되는 위협이 오히려 실제 가능성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둘째, '참수 작전'에 대한 과신입니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제거하면 이란의 지휘 체계가 흔들리고, 조기에 협상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정반대가 됐습니다. 절대 권력자가 사라지자 이란혁명수비대(IRGC) 내 강경 세력이 중앙의 제어 없이 더 강경하고 공격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머리를 자르면 조직이 무력해진다.' 다른 지역에서는 통했던 가정이 이란에는 맞지 않았던 겁니다.
셋째, 가장 결정적인 오판입니다. 미국은 이란의 재래식 해군을 개전 하루 만에 사실상 궤멸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를 '호르무즈 위협 제거'와 동일하게 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함선이 없어도 봉쇄는 가능했습니다. 이란 본토 해안 육상에서 발사하는 미사일과 드론만으로도 유조선을 위협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이 호르무즈를 완전히 열려면 이란 본토 해안선 전체를 장악해야 하는데, 그 비용과 리스크는 전쟁 자체보다 클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전쟁을 시작하는 것과 전쟁의 결과를 통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번 사태는 그 교훈을 다시 한번, 매우 비싼 대가로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역대급 충격' 호르무즈 봉쇄
유가는 한때 배럴당 126달러까지 올랐습니다. 2022년 이후 4년 만에 세 자릿수를 돌파한 수치입니다. IEA, 국제에너지기구는 이번 사태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석유 공급 차질"이라고 규정했습니다. 1973년 아랍의 석유 금수 조치, 1979년 이란 혁명,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 어떤 에너지 위기보다 실질 물동량 충격이 크다는 겁니다. 직격탄은 유럽이 먼저 맞았습니다. 독일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1.3%에서 0.6%로 낮췄고, 이탈리아 서비스업은 이미 위축 국면입니다. 유로존 전체가 '성장은 정체되는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우리나라 상황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가 수입한 원유의 61%, 나프타의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정유·화학 업계의 원가가 오르고, 그 충격은 결국 운송비, 제조 원가, 식료품 가격을 거쳐 소비자 장바구니에 도달합니다. 지구 반대편 작은 물길이 우리 식탁을 흔드는 구조입니다.
#중국이라는 변수, 그리고 파키스탄의 중재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나라는 따로 있습니다. 중국입니다. 중국은 소비 원유의 약 75%를 수입에 의존합니다. 중동산 비중이 약 44%이고, 물량의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계산해보면 중국 전체 원유 수입의 약 3분의 1, 하루 300만~350만 배럴이 호르무즈 해협의 좁은 바닷길을 지나는 겁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 중국에게 호르무즈는 일종의 아킬레스건입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호르무즈 물길이 막히는 순간 중국 경제도 함께 흔들리는 구조입니다.
물론 중국이 완전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2025년부터 전략 비축유를 공격적으로 확대해왔고, 2026년 초 기준 약 15억 배럴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입이 완전히 끊겨도 120일에서 140일을 버틸 수 있는 규모입니다. 봉쇄 초반 중국이 비교적 조용히 관망할 수 있었던 데는 전략 비축유라는 '안전장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봉쇄가 길어질수록 비축유도 한계에 다가섭니다. 결국 중국이 움직인 이유입니다. 파키스탄이 전면에 나선 이번 중재, 이면엔 중국이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파키스탄·튀르키예·이집트를 통해 이란을 설득한 실질적인 배후는 중국이었다는 겁니다.
#이란의 진짜 억지력은 핵이 아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한 논리는 선명합니다. 이란이 핵무기를 손에 넣기 전에 선제적으로 핵 시설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이 드러낸 역설은, 이란에는 이미 또 다른 억지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지리적 위치입니다. 전 세계 원유 공급의 20퍼센트가 통과하는 좁은 호르무즈 해역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만으로도, 이란은 세계 경제에 심대한 압박을 가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정보 당국의 추정에 따르면, 이번 전쟁 이후에도 이란은 공격용 드론 전력의 약 40%, 미사일 발사대의 60% 이상을 여전히 보유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동굴과 벙커에 숨겨 두었던 발사 시스템을 다시 꺼내면서, 일부 추산으로는 미사일 전력이 전쟁 전의 70퍼센트까지 복원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호르무즈를 지나는 상선을 '인질'로 잡기에 부족함이 없는 규모입니다.
이스라엘 군 정보기관에서 이란 담당 부서장을 지낸 한 퇴역 장교의 진단은 직설적입니다. 앞으로 어떤 분쟁이 벌어지든,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이란의 대응 매뉴얼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올 카드가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지리는 이길 수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러시아 대통령을 지낸 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최근 소셜미디어에 이런 경고를 남겼습니다.
"워싱턴과 테헤란 사이의 휴전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란은 이미 자신의 핵무기를 시험했다. 그 이름은 호르무즈 해협이다.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어떤 제약이 가해지더라도, 이란 강경파의 손에는 핵무기에 버금가는 ‘지리적 카드’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카드를 직접 쥐고 있는 쪽은 협상장의 외교관이 아니라, 해상 무선으로 선박을 멈춰 세우는 혁명수비대라는 점. 협상이 매번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구조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돈 vs 신념, 이란은 베네수엘라가 아니다
앞서 미국이 하메네이 제거 이후 협상 국면을 기대했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왜 이런 '빗나감'이 일어났을까요. 단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압박하며 반복적으로 언급해 온 한 나라에 있습니다. 바로 베네수엘라입니다. 지난 1월, 미 특수부대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전격 체포해 뉴욕의 교도소로 이송한 사건은 트럼프 외교의 가장 극적인 성공 사례로 포장됐습니다.
이후 베네수엘라 전 부통령 델시 로드리게스가 사실상 워싱턴의 뜻에 맞춰 나라를 운영하며, 마두로의 핵심 측근들을 한 명씩 해체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베네수엘라 사례를 꺼내 들며 "완벽한 시나리오"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시나리오가 이란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판단은, 두 나라의 결정적 차이를 놓친 오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정권은 오랫동안 부패해 있었고, 공유된 이념은 사실상 비어 있었습니다. ‘차베스식 사회주의’라는 간판은 남아 있었지만, 그 내부는 권력과 수익성 높은 석유 계약으로 엮인 연합체에 가까웠습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의 거래적 접근법이 빠르게 작동했습니다. 마두로라는 정점 하나를 제거하자, 남은 인물들은 권력과 돈을 지키기 위해 미국의 뜻에 순순히 순응했습니다. 지킬 신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여기에 수십 년에 걸친 야권 운동과 민주주의 경험이 더해지자, 국민의 반감은 자연스럽게 정권 전체로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이란의 구조는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수뇌부의 파괴는 분명 체제를 파편화했지만, 바로 그 파편들, 특히 혁명수비대를 '오히려' 결속시키는 효과도 함께 낳았습니다. 혁명수비대가 아무리 부패하고 사익을 추구한다 해도, ‘이슬람 신정’이라는 이념적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한 결속은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반세기 넘는 미국의 제재와 경제 붕괴 속에서도 쿠바의 카스트로 체제가 살아남은 이유, 이란 혁명수비대가 핵 시설 파괴 이후에도 해상에서 공세적 태세를 고수하는 이유는 같은 뿌리를 공유합니다. 공유된 신념 위에 세워진 정권은, 돈과 권력만으로 움직이는 정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저항력을 갖습니다. 머리를 자르면 몸통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몸통이 스스로 새로운 머리를 만들어 내는 식의 체제입니다. 지금의 이란이 그렇습니다.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친정부 시위 <사진:EPA/연합뉴스>
전쟁의 명분은 선명했습니다. 이란이 핵을 쥐기 전에 막겠다는 것이었습니다. 40일이 지난 지금, 세계가 확인한 것은 전혀 다른 사실입니다. 이란에는 이미 또 다른 무기가 있었습니다. 폭 33km의 물길 하나. 포격으로 부술 수 없고, 제재로 없앨 수 없으며, 정권을 갈아치워도 그대로 남는 무기. 핵 시설은 부술 수 있어도, 지리는 부술 수 없습니다.
"이란은 이미 자신의 핵무기를 시험했다. 그 이름은 호르무즈 해협이다."
러시아 메드베데프가 남긴 한 문장이, 이번 전쟁의 진짜 교훈일지 모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을 막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지만, 결국 이란이 핵 없이도 세계 경제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어떤 협상 테이블에서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참고 기사: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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