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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실패한 감독, 사퇴로 끝나지 않는 협회의 책임 [와이파일]

와이파일 2026.07.05 오후 08:21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 연합뉴스>
세계 축구사에 없던 기록이 하나 생겼습니다. 동일한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두 차례 탈락한 감독. 2014년 브라질에 이어 2026년 북중미에서, 홍명보 감독은 이 불명예의 첫 주인공이 됐습니다.

역대 가장 수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른 ‘꿀조’ 에서 1승 2패, 조 3위. 와일드카드 경쟁에서도 밀려난 대표팀의 최종 순위는 48개국 중 34위였습니다. 지난 6월 29일, 홍 감독은 "감독이라는 자리는 결과 앞에서 어떤 설명도 앞설 수 없는 자리"라는 말을 남기고 물러났습니다.

감독은 물러났습니다. 정몽규 회장도 월드컵이 끝나면 물러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물러나는 것과 책임지는 것은 다릅니다. 정 회장의 사퇴는 이번 실패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개막 2주 전에 이미 예고된 퇴장이었고, 절차를 건너뛴 감독 선임에 대해 책임을 인정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습니다.

감독 홍명보의 책임부터 말해야 합니다

시스템을 비판하기 전에, 그라운드 위의 책임부터 정직하게 짚어야 합니다. 이번 탈락은 불운이 아니라 판단의 실패였습니다. 가장 뼈아픈 장면은 남아공과의 최종전이었습니다. '지더라도 경우의 수로 진출할 수 있다'는 오판 위에서 대표팀은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택했고, 0-1로 무너졌습니다. 같은 시각 에콰도르, 카보베르데, 세네갈 같은 다른 조의 언더독들은 승점 1점, 골 하나를 위해 마지막까지 싸우고 있었습니다.

경기 밖의 처신은 더 아쉬웠습니다. 패배 후 공식 석상에서 골키퍼의 실수를 직접 거론하는 등 패인을 선수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은, 결과보다 더 깊은 실망을 남겼습니다. 유럽 축구가 감독을 '코치'가 아니라 '매니저'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감독의 직무에는 전술 지시를 넘어 선수 보호와 미디어 대응, 팀의 이미지 관리까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감독의 발언은 인성의 문제이기 이전에 매니저 직무의 실패입니다. 위기의 순간 마이크 앞에서 선수를 지키는 것까지가 감독의 일입니다.

마지막 퇴장의 방식도 그랬습니다. 사퇴 기자회견에서 홍 감독은 기자들의 질문을 일절 받지 않은 채, 준비해온 원고를 1분 40초가량 읽고 자리를 떴습니다. 결과 앞에서 어떤 설명도 앞설 수 없다는 그의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설명이 결과를 앞설 수 없다는 것이, 결과 뒤에 설명이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두 번의 월드컵을 맡았던 감독이라면, 무엇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복기를 남기는 것까지가 책임의 일부입니다. 질문 없는 퇴장은 그 책임마저 원고 한 장으로 갈음한 것이었고, 여론의 분노가 사퇴 이후에도 가라앉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질문 없이 끝난 홍명보 전 감독의 사퇴 기자회견 <사진: 연합뉴스>

실패는 예고돼 있었다? 런던과 브라질의 교훈

홍명보 감독의 지도자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2012년 런던 올림픽입니다.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 그것도 일본을 꺾고 따낸 동메달이었습니다. 성취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홍 감독은 2009년 U-20 대표팀부터 기성용, 구자철, 지동원, 김영권 등 한 세대의 선수들을 데리고 함께 올라왔습니다. 이른바 '홍명보의 아이들'. 수년에 걸쳐 쌓인 신뢰의 총합이 런던에서 폭발한 것입니다.

여기에 홍명보 리더십의 본질이 있습니다. 그는 선수를 오래 지켜보고, 한번 믿은 선수를 끝까지 믿는 지도자입니다. 이런 스타일이 힘을 발휘하는 조건은 분명합니다. 팀을 처음부터 빚어낼 시간이 주어지는 '장기 조련형' 무대. 런던의 연령별 대표팀이 그랬고, 시즌 단위로 팀을 장악해 K리그 2연패를 이룬 울산이 그랬습니다.

반대로 성인 대표팀의 월드컵은 전형적인 '단기 토너먼트형' 무대입니다. 짧은 소집, 완성된 개인들의 집합, 냉정한 폼 판단과 즉각적인 전술 수정이 성패를 가르는 세계. 이 무대에서 '믿음'은 미덕이 아니라 관성이 됩니다. 2014년 브라질에서 그것은 '의리 축구'라는 비판으로 돌아왔고, 12년 뒤 북중미에서 3백 고집과 플랜 B 부재라는 형태로 반복됐습니다. 같은 사람, 같은 장점, 같은 한계였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게 홍명보 감독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점입니다.

'행정가 홍명보'라는 가설

하나의 가설을 조심스럽게 얹어봅니다. 홍 감독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 일했습니다. 그 시기 협회는 국가대표 감독 선임 시스템을 정비했고,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체제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임됐습니다. 벤투호는 4년의 일관된 빌드업 축구 끝에 2022년 카타르에서 12년 만의 원정 16강을 이뤄냈습니다.

물론 벤투 선임의 실무 주역은 김판곤 위원장이었고, 카타르의 성과를 홍 전무의 공으로 직결시키는 것은 무리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시스템이 사람을 뽑던 그 시절의 협회가 지금보다 건강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행정가 홍명보가 장기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기다리는 일에서 성과를 낸 이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의 재능이 벤치보다 그 뒤편, 구조를 만드는 자리에 더 어울렸을 수 있다는 가설은, 적어도 성인 대표팀 감독으로 두 번 실패한 현실과 함께 평가할 가치가 있습니다.

손흥민에서 이강인으로, 관리되지 못한 전환

이번 대회가 특히 아팠던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2002년 4강 신화 이후 한국 축구는 박지성의 시대에서 기성용을 거쳐 손흥민의 시대로, 대표팀의 중심축을 이어왔습니다. 세대의 상징이 바뀔 때마다 팀은 흔들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2026년 북중미는 손흥민에서 이강인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한복판에 놓인 대회였습니다. 30대 중반의 주장과 팀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에이스. 두 사람의 갈등이 클린스만 체제의 아시안컵에서 공개적으로 불거진 전례까지 있었던 만큼, 전환을 설계하고 완충하는 일이야말로 새 감독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술의 영역이 아니라 매니지먼트의 영역입니다. 빅스타의 역할을 조정하고, 선수 간 관계를 관리하고, 개인의 목표와 팀의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출신 주장과 유럽 빅리그의 젊은 에이스들을 '원팀'으로 만드는 것은 온전히 감독의 몫이며, 그 능력이 곧 감독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손흥민의 최전방 전환 실험은 대회 내내 명확한 답을 내지 못했고, 공격의 위계와 역할 분담은 끝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탈락이 확정된 뒤 "아쉬움보다 책임"을 말하며 자책한 것은 감독이 아니라 이강인이었습니다. 세대교체의 가교가 되어야 할 매니지먼트가 오히려 공백이 된 장면입니다.

절차를 건너뛴 선임, 책임을 건너뛴 협회

클린스만 감독 시절, 필자는 "당신은 매니저인가, 코치인가"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팀을 방치한 감독을 향한 질문이었습니다. 같은 질문을 이렇게 빨리 다시 꺼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클린스만이 매니저의 역할을 하지 않아 실패한 감독이라면, 홍명보 감독은 매니저의 역할을 자기 방식으로만 수행하다 실패한 감독입니다. 방치와 과잉 신뢰. 정반대의 실패가 같은 결과에 도달했습니다. 감독이 바뀌어도 질문이 바뀌지 않는다면, 문제는 감독이 아니라 감독을 뽑는 쪽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2024년 7월의 선임 과정을 복기해보겠습니다. 5개월간 20회 안팎의 회의를 거듭하던 전력강화위원회는 정해성 위원장의 돌연 사퇴 이후 사실상 무력화됐습니다. 전력강화위원회 소속도 아니었던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정몽규 회장이 모든 권한을 줬다"며 선임을 주도했고, 최종 후보였던 외국인 감독 바그너와 포옛은 해외 심층 면접까지 거친 반면 홍명보 감독은 면접조차 없이 낙점됐습니다. 전력강화위원이던 박주호 위원은 감독 내정 사실을 발표 때까지 몰랐다고 폭로했고, 협회는 해명 대신 법적 대응 검토로 답했습니다.

이후의 전개는 더 참담합니다. 2024년 9월 국회 현안질의에서 선임 절차의 정당성이 집중 추궁당했고, 같은 해 11월 문화체육관광부는 특별감사를 통해 "감독 임명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협회는 이 권고에 소송으로 맞섰고, 절차는 유야무야됐습니다. 정몽규 회장 등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 고발 사건은 지금도 경찰 수사 선상에 있습니다. 요컨대 감독 선임은 국회와 정부 감사와 수사기관이 모두 문제를 지적한, 출발부터 정당성이 훼손된 인사였습니다.

물론 정몽규 회장은 물러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퇴 선언은 월드컵 개막 2주 전에 나왔습니다. 4선 연임에 성공한 뒤였고, 문체부의 중징계 요구에 행정소송으로 불복하던 와중이었습니다. 실패의 결과를 확인하고 책임지는 퇴진이 아니라, 결과가 나오기 전에 출구를 확보해둔 예고된 퇴장입니다. 물러나면서도 선임 절차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았고, 감사 불복 소송과 경찰 수사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절차 위반 선임을 원천 무효로 하자는 이른바 '홍명보법' 국민청원까지 등장한 것은, 사퇴만으로는 아무것도 규명되지 않는다는 시민들의 절망적 진단에 다름 아닙니다.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지 않은 채 사람만 갈아 끼우는 조직은 같은 실패를 다른 이름으로 반복합니다. 12년 전 브라질의 교훈이 이번에 되풀이된 것처럼 말입니다.

남는 질문

분명히 해두겠습니다. 이 글은 홍명보 감독을 변호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그는 선임 절차의 논란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당사자였습니다. "더 경험 많고 성과가 뛰어난 분들이 오면 자연스럽게 내 이름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던 그는, 이임생 이사의 방문 이후 단 하루 만에 마음을 바꿔 시즌 중이던 울산을 떠났습니다. 그는 흠결 있는 절차의 피해자가 아니라 그 절차의 최종 수혜자였고, 남아공전의 오판도 선수를 향한 책임 전가도 오롯이 그의 몫입니다. 사퇴는 책임의 완수가 아니라, 그가 해야 할 최소한의 조치였을 뿐입니다.

다만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시스템의 책임을 지우는 알리바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회가 추궁하고 정부 감사가 재선임을 권고하고 수사기관이 들여다본 선임을 밀어붙인 것은 협회였습니다. 그 감독이 실패했을 때 협회가 감당해야 할 몫은, 감독 개인의 실패 뒤에 숨는 것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실패와 시스템의 실패는 서로를 지우지 못합니다. 둘 다 물어야 합니다.

다음 감독이 누구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감독을 어떤 절차로, 어떤 근거로, 누구의 책임 아래 앉히느냐입니다. 정몽규 회장의 사퇴는 그 답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13년 체제를 내려놓는 일이 가볍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정 없는 사퇴, 규명 없는 사퇴, 개혁 없는 사퇴는 책임의 완성이 아니라 유예일 뿐입니다. 선임 과정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 감사와 수사에 응해 진상을 규명하는 일, 회장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된 선임 구조를 바꾸는 일. 사퇴로는 갈음될 수 없는 이 세 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2030년의 우리는 또 다른 이름 앞에서 오늘과 똑같은 분노를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 실패한 감독은 물러났고, 물러나겠다는 회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물러남으로 대신할 수 없는 책임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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