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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영웅'은 왜 집에 못 갔을까? | 오디세이아 완전 정리 [와이파일]

와이파일 2026.08.07 오후 02:26
영화 <오디세이> 스틸컷
지난 8월 5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가 국내 개봉했습니다. 무려 3,000년 전, 호메로스가 남긴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언뜻 보면 괴물과 마법이 가득한 화려한 모험담입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하나의 묵직한 질문이 흐릅니다.

"인간은 왜 고통받는가?"

호메로스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바로 인간 자신의 '교만' 때문이라는 것이죠. 신을 얕보고, 한계를 잊고, 스스로를 과신하는 순간 파멸이 시작됩니다.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됩니다. '트로이 목마'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

이제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 귀향길이, 또다시 10년이 걸립니다. 10년의 방아쇠를 당긴 건, 다름 아닌 오디세우스 자신의 교만이었습니다.

발단은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의 동굴이었습니다. 부하들이 잡아먹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오디세우스는 놀라운 지혜를 발휘합니다. 자기 이름을 '아무도 아니다'라는 뜻의 '우티스'라고 속인 뒤, 거인을 취하게 만들고 외눈을 찔러 눈을 멀게 합니다.

비명을 들은 이웃 거인들이 동굴 밖으로 몰려와 묻습니다. "폴리페모스, 대체 누가 널 해치는 거냐?" 그런데 폴리페모스가 아는 침입자의 이름은 '우티스(아무도 아니다)’뿐이었죠. 그래서 그는 있는 힘껏 이렇게 외칩니다. “우티스! ‘우티스 가 날 죽이려 한다!" 이름을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밖에서 듣기엔 "날 해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 돼버린 겁니다. 결국 이웃들은 "아무도 안 건드리는데 왜 소란이냐"며 그냥 돌아가 버립니다. 오디세우스가 미리 심어둔 가짜 이름 하나가, 거인의 구조 요청마저 무력화시킨 순간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멀어지던 오디세우스는 승리감에 도취돼, 그만 자기 진짜 이름을 밝혀버립니다. “네 눈을 멀게 한 건 이타카의 오디세우스라고 전해라!" 하지만 폴리페모스는 하필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었습니다. 이름을 알게 된 거인은 아버지에게 오디세우스를 콕 집어 저주를 빌고, 포세이돈은 그 기도를 받아들입니다. 지혜로 위기를 넘긴 영웅이, 단 한순간의 교만으로 10년의 표류를 스스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이후의 여정도 같은 공식이 반복됩니다. 오디세우스는 뱃사람을 홀리는 세이렌의 노래 앞에서, 자신을 돛대에 묶는 '절제'로 살아남습니다. 반면 절제하지 못한 그의 부하들은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소만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도, 눈앞의 배고픔을 못 이겨 신성한 소를 잡아먹습니다. 그 대가로 제우스의 벼락에 배가 산산조각 나고, 부하들은 전멸합니다. 신의 경고를 우습게 안 오만이 부른 파멸이었습니다. 결국 살아남은 건, 절제할 줄 알았던 오디세우스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간신히 고향 이타카에 도착했지만, 그곳은 또 다른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왕이 죽었다고 여긴 108명의 구혼자들이 왕궁을 차지한 채 주인의 재산을 축내며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라는 그 시대의 신성한 규범마저 짓밟은, 오만의 극치였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진짜 품격은 신분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고귀한 신분의 구혼자들이 파렴치하게 구는 동안, 정작 거지 행색의 오디세우스를 따뜻하게 맞아준 건 신분이 가장 낮은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였습니다. 20년을 기다리다 주인을 알아보고는 조용히 숨을 거둔 늙은 개 아르고스의 이야기도 잊을 수 없습니다. 도덕성은 계급이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2,800년 전의 서사시라고는 믿기 힘든 통찰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던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버티는 힘'입니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에 도착하고도 곧장 쳐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거지로 변장한 채 온갖 수모를 견디며, 자신의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아내 페넬로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낮에 짠 수의를 밤마다 몰래 풀어내며 재혼을 미루는 방식으로 20년을 버텨냅니다. 마침내 운명의 활쏘기 시합이 열리고, 오직 오디세우스만이 당길 수 있는 강궁으로 열두 개의 도끼 구멍을 단번에 꿰뚫는 순간—그는 정체를 드러내 구혼자들을 응징합니다. 페넬로페 역시 오직 부부만이 아는 '침대의 비밀'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남편을 받아들입니다. 밀어붙이는 의지만큼이나, 자기 순간이 올 때까지 견디는 인내가 승리를 완성한 겁니다.

흥미로운 건, '교만'이라는 주제를 작품 스스로 첫머리에서 선언한다는 점입니다. 서사시 도입부에서 신들의 왕 제우스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인간들은 재앙이 신들 탓이라 하지만, 정작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정해진 몫 이상의 고통을 자초한다."

오디세이아는 바로 이 한마디를, 10년의 항해로 증명해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교만한 자는 스러지고, 인내로 자신을 지키며 타인을 대하는 태도로 품격을 증명한 자만이 끝내 집으로 돌아온다.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를 보기 전에 이 키워드 하나만 기억하신다면, 오디세우스의 여정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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