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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교생 시위가 던진 질문...'떠날 것인가, 외칠 것인가' [와이파일]

와이파일 2026.10.19 오후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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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학교를 고쳐 달라며 교문을 막아섰습니다. 프랑스에서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고교생 시위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며 제 주변에선 이런 질문이 들렸습니다.

‘한국에서도 교육 개혁을 외치는 고등학생과 학부모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답은 예상대로입니다.

‘한국에선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한국 학생들이 더 순해서일까요, 아니면 한국 학교가 더 좋아서일까요.

질문과 답을 남긴 사람들의 답은 정반대였습니다.

한국의 공교육은 이미 무너졌고, 모두가 학원, 즉 사교육으로 떠났다는 겁니다. 프랑스 학생들이 거리로 나온 건 그래도 아직 공교육에 기대할 것이 남아 있어서라는 해석입니다.

떠날 것인가, 고쳐 달라고 할 것인가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은 조직이 나빠질 때 구성원이 택하는 길을 둘로 나눴습니다. 조직을 떠나는 '이탈’(Exit), 그리고 목소리를 내는 '항의’(Voice)입니다. 프랑스 학생들은 항의를 택했습니다. 학생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건 열악한 학교 현실입니다. 그래도 학생들은 학교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떠나는 대신 학교를 고쳐 달라고 요구(Voice)했습니다. 반면, 한국의 학생과 학부모는 오래전부터 이탈(Exit)을 택해 왔습니다. 학교 수업이 부족하면 학원을 찾고, 교사의 손길이 모자라면 과외를 찾습니다. 지난해 국내 초중고 사교육비는 27조 5천억 원. 총액은 5년 만에 줄었지만, 1인당 사교육비는 오히려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학생 수가 줄어도 한 명에게 들이는 돈은 계속 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는 사이 공교육은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거쳐 가야 할 형식이 됐습니다.

목소리가 사라진 학교

허시먼이 경고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낼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떠나면, 조직은 바뀌어야 할 압력을 잃습니다. 여유 있는 가정이 사교육으로 빠져나갈수록 학교를 바꾸라는 요구도 약해집니다. 부담은 학교에 남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고스란히 떠안습니다. 각자도생은 개인에게는 어찌보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공교육의 붕괴를 앞당기는 악순환이 됩니다.

물론 한국 사회가 늘 침묵했던 것은 아닙니다. 2023년 여름에는 서이초 교사의 죽음 이후 수많은 교사가 주말마다 거리를 메웠습니다. 다만 공교육의 위기를 가장 크게 고발한 목소리가 학생이 아니라 교사에게서 나왔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학생과 학부모가 학원으로 떠난 자리에 교사만 남아 목소리를 낸 셈이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교실의 또 다른 이유

다만 한국 교실이 조용한 이유를 사교육 하나로만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학생들에게는 거리로 나서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결석 하루가 내신과 학생부에 그대로 흔적을 남기는 입시 구조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청소년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낯설게 보는 사회의 시선도 여전합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68혁명 이후 고등학생이 시위의 한 주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교문을 막아선 학생들의 모습이 프랑스에서는 낯선 장면이 아닌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프랑스의 거리를 이상적으로만 묘사하는 건 경계해야 합니다. 시위 시작 2주도 안 돼 연행된 사람이 5천 명을 넘었고, 그 가운데 85%가 미성년자로 집계됐습니다. 북부 도시 랑스에서는 15살 학생이 경찰이 던진 진압용 수류탄이 터지면서 손을 잃었습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시위의 책임을 놓고 진영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목소리를 내는 사회가 치르는 비용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프랑스 10대들의 거리는 한국 교실의 조용함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시위가 없다는 사실을 안정의 증거로 읽어도 될까요? 아무도 고쳐 달라고 말하지 않는 학교는 결국 아무도 지키지 않는 학교가 됩니다.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떠나고, 남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만 남는 공교육입니다. 지금의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체념에 가깝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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