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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빨대’ 발언 뒤 숨은 현실…소방관은 왜 ‘반쪽 국가직’이 되었나 [와이파일]

와이파일 2026.10.22 오전 10:59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9일 경기도 부천 원미구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고 김진석 소방위 영결식'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인화성 액체가 쌓여 있던 공장 3층에서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안으로 들어간 소방관들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부천의 한 금속 인쇄공장 화재로 소방관 5명이 다쳤고, 초기에 진입했던 대원 한 명은 심정지 상태로 실려 나왔습니다. 고 김진석 소방위는 이튿날 아침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비보는 사흘 전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한 단어와 겹쳤습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소방을 '재정 빨대'에 빗댄 것입니다. 추 지사는 빈소에서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전달됐다고 해명했습니다. 말실수 논란으로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정 빨대’ 단어는 6년 동안 누구도 손대지 않은 현실을 다시 꺼내 놓았습니다.


20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앞에서 열린 고 김진석 소방위 순직 사고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소방관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구조의 출발점은 2017년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였습니다. 당시 여당 대표로 현장을 찾은 추미애 지사는 구조 인력이 4명뿐이었다며 전문 소방 인력을 서둘러 늘려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은 당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2019년 4월 강원 동해안 산불이었습니다. 전국의 소방차가 고속도로를 줄지어 달려가는 장면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재난 앞에 시·도 경계가 없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습니다. 국가직 전환 법안은 그해 11월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고, 이듬해 4월 소방관 5만여 명의 신분이 국가공무원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재정, 즉 돈 문제는 끝내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재정 당국은 해마다 조 단위 고정 지출이 늘어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습니다. 결국 국비를 직접 지원하는 대신 소방안전교부세율을 높이는 절충안이 택해졌습니다. 신분은 국가로 옮기고, 돈은 교부세와 시·도 예산에 맡긴 것입니다. 이름표만 바꾸고 예산은 넘기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로부터 6년 만에, 예산권을 들고 있는 시·도지사의 입에서 '빨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추 지사 측은 소방관을 깎아내리려던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재정 문제를 지적하려다 표현이 서툴렀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추 지사는 내년 경기도가 소방 인건비로만 1조 1천억 원가량을 떠안게 된다며 국비 지원 확대를 요구했습니다. 표현은 부적절했지만 문제 제기 자체에는 근거가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실제 숫자를 살펴봤습니다. 지난해 전국 시·도 소방 예산은 약 8조 1천억 원, 이 가운데 국비는 10.7%에 그쳤습니다. 국가직 소방관 인건비만 놓고 보면 국비 비중은 8.6%로 더 낮습니다. 경기도의 올해 소방 예산은 1조 5,655억 원인데, 국비는 1,346억 원입니다. 국비 부담률이 10%가 채 안 됩니다. 신분은 국가공무원인데, 월급의 90% 이상은 시·도가 주고 있습니다.



국가가 보태는 돈의 출처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국비 지원의 사실상 유일한 통로인 소방안전교부세는 담배에 붙는 개별소비세의 45%로 마련됩니다. 국가가 소방관 인건비로 보태는 몫이 담뱃세에 기대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국가직 전환이 의미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도 소방 예산은 2019년 약 5조 5천억 원에서 지난해 8조 1천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소방 인력도 2017년 4만 8천여 명에서 2024년 6만 6천여 명으로 1만 8천 명 넘게 증가했습니다. 소방의 체급은 분명히 커졌습니다. 문제는 늘어난 만큼의 비용을 누가 내느냐입니다.

국가직 전환 자체가 무리였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주요국에서 소방은 대체로 지방 사무입니다. 소방관도 지방공무원이어서 인사권과 재정 책임이 한곳에 있습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처음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설계였다는 지적이 나올 만합니다.

반대 사례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2010년 카르멜산 대형 산불을 계기로 소방을 국가 조직으로 통합했고, 영국 스코틀랜드는 2013년 8개 지역 소방본부를 하나의 국가 조직으로 합쳤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도의 재정 격차가 곧 소방 서비스 격차로 이어진다는 점이 전환의 명분이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 등에서도 제도를 되돌리기보다 국가의 재정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습니다.

책임을 한쪽에만 물을 수도 없습니다. 법안을 함께 통과시킨 여야는 이후 정권이 바뀌는 동안에도 국비 비중을 눈에 띄게 올리지 못했습니다. 경기도 역시 자유롭지 않습니다. 경기도는 올해 두 번째 추가경정예산안에서 소방차량 보강 예산 26억 5천만 원을 깎았고, 이에 따라 올해 사기로 한 소방차는 103대에서 78대로 줄었습니다. 구조 탓만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더 큰 변수도 남아 있습니다. 소방안전교부세 사업비의 75%를 소방 분야에 쓰도록 묶어 둔 특례가 올해 일몰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의 비율을 고정하거나 높이자는 개정안이 국회에 여러 건 올라와 있지만, 아직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9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근 소방 관련 발언 사과 및 인사말을 마친 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빨대'라는 말은 사과로 거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정 부담의 구조적 문제는 사과로 바뀌지 않습니다. 2019년 국회는 소방관에게 국가직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줬지만, 비용을 누가 낼지는 끝내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그 그 공백은 6년 동안 시·도의 곳간과 담뱃세로 메워져 왔고, 이제 그 곳간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같은 논쟁은 다음 재난이 올 때마다 되풀이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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