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거대한 건축물이 있습니다.
국보 제86호로 지정된 경천사지십층석탑인데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석탑이 있던 곳은 고려시대의 사찰 경천사.
그런데 경천사는 지금은 갈 수 없는 개성에 위치한 절이라고 하는데요.
개성에 있던 석탑이 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요?
1904년 32살의 영국 청년 베델이 우리나라에 발을 내딪습니다.
기자였던 그는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일제의 만행을 목격한 후 신문사를 사임하고 한국의 주권회복을 위해 애쓰기 시작합니다.
'코리아 데일리 뉴스'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일제의 만행을 국내외에 알리던 베델.
어느날 심상치않은 소문을 듣게 되는데요.
일본인 다나카가 경천사에 있는 석탑을 일본으로 빼돌린 것이지요.
베델은 다나카의 만행을에 기사로 실었고 국내외의 수많은 독자들이 다나카의 만행을 알게됩니다.
그러자 이를 못마땅히 여겼던 일본은 베델의 송환을 영국에 요구했고 베델은 영국정부로부터 근신형을 받기도 했는데요.
베델이 뜻을 굽히지 않자 일제의 탄압은 심해졌고 격무와 소송에 지쳐가던 베델은 결국 서른 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하지만 베델의 헌신이 헛되지 않았던 것일까요?
베델을 통해 알려진 경천사지십층석탑은 전세계인과 심지어 일본사람들의 반발마저 이끌어냈고 1918년 일본은 마침내 석탑을 경복궁으로 보냅고 맙니다.
해방 후 우리 정부는 베델의 업적을 기려 건국훈장을 수여했는데요.
그 후 석탑은 보존과 복원을 거쳐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목숨을 다해 불의에 맞선 언론인, 베델.
경천사지십층석탑은 한국을 향한 베델의 사랑과 헌신이 담긴 소중한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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