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만흠 /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채문석 / YTN 선임기자
[앵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을 맞았습니다. 국정지지도는 82%를 기록하면서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한 달간의 성과와 과제 짚어보겠습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채문석 YTN 선임기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먼저 국민은 어떤 민심을 보이고 있는지 그래픽과 함께 보시겠습니다. 지금 직무 수행 평가 추이인데요. 잘하고 있다가 6월 첫째 주에는 84%였습니다마는 둘째 주에는 82%로 2%포인트 떨어졌습니다. 잘못하고 있다는 3%포인트 늘었고요.
지난 6월 7일에서 8일 이틀 동안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입니다. 표본오차는 플러스마이너스 3.1%포인트, 95% 신뢰수준입니다.
지금 나온 여론조사 거의 변동은 없겠습니다마는 한 달 동안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인터뷰]
1, 2주 비교하면 2% 낮은 것 떨어진 것이지만 82%면 아주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새 정부 들어서면서 변화에 대한 기대 사실상은 기대 이상을 충족시키고 있는 행보를 보여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는 모습 여기에 대해서 특히 국민들이 상당한 감동하고 있는 것 같고요. 몇 번에 걸친 당선 소감에서부터 근래 현충일 추념사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감동시켰던 그런 내용들도 물론 포함되어 있고요. 무엇보다 이전의 박근혜 전 대통령 시기에 대통령은 좀 이렇게 했으면 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그대로 충족시키는 분위기 같습니다.
물론 소통 문제에 있어서는 대통령과 다른 생각 또 비판, 반대가 나왔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것은 시험 과정에 직면해 있다, 인사 문제를 두고요. 이런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탈권위, 낮은 자세 행보는 국민들에게 아주 호평을 받았다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탈권위를 얘기하면 아무래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이 날 건데요. 그 점에서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보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는 본인의 대통령, 당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전략했던 측면이 있다면 문재인 새 대통령은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는 무대가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겠다 이런 점이 상당히 오히려 최근의 행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비슷한 측면을 보이는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앵커]
하지만 지금 난항을 겪고 있는 인사 문제, 국민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래픽 함께 보시겠습니다. 먼저 대통령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인데요. 가장 많은 19%가 소통을 잘한다. 또 국민과 공감하는 노력이 보인다는 거였고요.
인사는 9%였습니다. 전반적으로 잘한다는 8%였고요. 대통령 직무 수행 부정적인 평가 이유에서는 첫 번째가 인사를 꼽았습니다. 20%를 차지했는데요. 그다음이 북핵과 안보가 10%였고요. 그다음 친북 성향 또 과도한 개혁, 사드 문제 이렇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파격, 신선이라는 면에서는 합격점이지만 청문회 과정에서 후보자들의 의혹은 여전히 청와대와 대통령이 풀어야 할 숙제 같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기자]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로 제일 처음에 이낙연 총리, 임종석 비서실장 이렇게 임명을 했을 때는 탕평 인사다 그리고 호남을 중시도 하고 또 탕평인사라고 해서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청문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이렇게 여성을 중용한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파격적이다.
신선했었는데 단지 이런 검증 과정을 거치다 보니까 사실상 지금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 70일을 거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준비도 부족한 데가 있고 그래서 검증이 부실하다. 부실하다 보니까 이런 게 있었고 또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부터 고위 공직자 배제 5대 원칙을 굉장히 강조하다 보니까 거기에서 좀 더 걸리는 게 더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야당에서는 대선 때 공약사항과 대통령 때 실천사항이 다르지 않느냐. 그러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인사를 가지고 청문회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청문회에서 각 후보자들은 희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통과된 후보자도 있기는 있습니다마는. 먼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청문회가 끝난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아직 채택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건부 채택 이야기도 나오고는 있는데 월요일 또 심사를 할 모양이죠?
[인터뷰]
월요일쯤 가면 대개 기한이 20일 기한이 다 되어 가기 때문에 오히려 좀 더 정리가 되지 않을까. 정리되는 쪽은 제가 봤을 때는 청문경과 보고서가 채택될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아시겠지만 청문회 거치면서 지금 희비가 엇갈렸다고 했었는데요.
아주 분위기가 등락을 왔다 갔다 하는 정도의 희비도 있지만 김상조 후보자 자체는 청문회에 임하기 전의 분위기보다 오히려 청문 과정을 거치면서 분위기가 나아진 측면 아니겠습니까? 다만 조건부 얘기는 부인의 학교 영어전담 교사 채택됐던 과정 관련해서 감사원에서 조사 그리고 조건 얘기하는데요 그 정도는 타협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타협하는 이유는 뭡니까. 국민의당이 중재해서 가급적이면서 원내정당 모두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하지 않을까 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현재 이미 바른정당도 일정하게 동의를 하고 있어서 수의 원리로만 보자면 충분히 지금도 채택 가능한데 아마 제1야당인 한국당까지 동참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월요일까지 가지 않나 그렇습니다.
[앵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도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시 다음 주 월요일에 재논의를 하기로 했는데 일각에서는 일단 청문보고서를 채택하고 본회의에서 자유투표하자 이런 얘기도 나오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기자]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국회 표결까지 가야 됩니다, 저번에 이낙연 총리처럼. 그래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이 처음에는 청문보고서를 채택하고 그리고 표결로 가자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어제 청와대 입장에서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채택을 호소를 하고 이러다 보니까 국민의당에서 강경화 후보자만은 안 된다.
내정 철회하라 이렇게 주장을 했었는데 갑자기 그러다 보니까 국민의당 요구는 받지 않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그러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청문보고서를 넘겨본 것 같습니다.
넘겨보고 강경화를 강행한다면 김이수 후보에 대해서 본회의에서 표결할 때도 국민의당은 적극 협조하지 않겠다 이런 것을 제스처로 보여주는 것 같은데요. 일단 내일모레 월요일에 청문보고서 채택까지는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 뒤에 표결 문제가 있지만. 아마 강경화 후보자 청문 보고서랑 내정 철회나 그런 여러 가지 문제와 연계하기 위해서 이렇게 연기한 것 같습니다.
[앵커]
청와대와 여당의 지금 가장 큰 고민이죠.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야 3당이... 지금 여기서 광화문에서 진행되고 있는 6. 10항쟁기념식 현장을 한번 라이브로 보시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기 위해서 연단으로 올라오는 모습 보실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6.20항쟁 기념사]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늘, 국민여러분과 함께 6·10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광장에 서니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스물이 안된 청년부터 일흔의 원로까지, 제주에서 서울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고, 영남과 호남이 한 목소리로 외쳤던 함성, '호헌철폐, 독재타도', 그 뜨거웠던 구호가 지금도 귀에서 생생합니다.
30년 전 6월, 우리는 위대한 국민이었습니다. 빗발치는 최루탄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청년학생들. 응원군에서 항쟁의 주역으로 변해간 넥타이부대.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손수건을 흔들고, 빵을 나눠주고, 전투경찰의 가슴에 평화의 꽃을 달아주었던 시민들. 그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이었습니다.
30년 전 6월, 우리는 국민이 승리하는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엄혹했던 군부독재에 맞서 불의에 대한 분노와 민주의 열망이 만들어낸 승리였습니다.
국민은 시대의 흐름을 독재에서 민주로 바꿔냈습니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을 권리, 국민이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되찾았습니다. 바위에 계란치기 같았던 저항들이 끝내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 너무도 위대하고 감격스러운 역사였습니다.
대통령 직선제만이 아니었습니다. 6월 항쟁은 우리 사회에 광장을 열었습니다. 보도지침이 폐지되고, 언론과 시민은 말 할 자유를 찾았습니다. 다양한 시민사회운동 조직이 생겼고, 억압되고 폐쇄되었던 민주주의의 공간을 확대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면, 눈부신 경제발전도, 사회 각 분야의 다양성도, 문화와 예술도 꽃피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난 30년, 우리 사회가 이뤄온 모든 발전과 진보는 6월 항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 국민들이 이룬 그 모든 성취를 바탕으로 출범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오늘, 6월항쟁의 주역인 국민과 함께 30주년을 기념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6월항쟁의 정신 위에 서 있습니다. 임기 내내 저 문재인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가진 국민의 한 사람임을 명심하겠습니다. 역사를 바꾼 두 청년, 부산의 아들 박종철과 광주의 아들 이한열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항쟁을 이끌어주신 지도부, 87년 뜨거운 함성 속에서 함께 눈물 흘리고, 함께 환호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세계가 경탄하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우리 국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시작은 해방과 함께 바깥으로부터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를 이만큼 키운 것은 국민들이었습니다.
그 길에 4.19가 있었고, 부마항쟁이 있었고, 5.18이 있었고, 6월 항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지난 겨울 촛불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촛불은 한 세대에 걸쳐 성장한 6월 항쟁이 당당하게 피운 꽃이었습니다.
우리는 6월 항쟁을 통해 주권자 국민의 힘을 배웠습니다.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공화국을 실천적으로 경험했습니다. 6월의 시민은 독재를 무너뜨렸고 촛불시민은 민주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의제를 제시했습니다.
촛불은 미완의 6월 항쟁을 완성시키라는 국민의 명령이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우리 앞의 과제는 다시 민주주의입니다. '더 넓고, 더 깊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6월 항쟁으로 성취한 민주주의가 모든 국민의 삶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질 때, 6월 항쟁은 살아있는 현재이고 미래입니다. 민주주의는 제도이고, 실질적인 내용이며, 삶의 방식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약속드리고 제안합니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후퇴하는 일은 이제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인권은 확대될 것입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헌법, 선거제도, 청와대, 검찰, 국정원, 방송,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운용하는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기관이 국민의 의사와 의지를 감시하고 왜곡하고 억압하지 않도록 만들겠습니다.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일자리 위기가 근본 원인입니다. 제가 일자리대통령이 되겠다고 거듭거듭 말씀드리는 것은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민주주의는 형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자리는 경제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가 함께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양보와 타협, 연대와 배려, 포용하는 민주주의로 가야 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시민사회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6월 항쟁 30주년을 디딤돌 삼아 우리가 도약할 미래는 조금씩 양보하고, 짐을 나누고, 격차를 줄여가는 사회적 대타협에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반드시 해내야할 과제입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진정한 노사정 대타협을 위해 모든 경제주체의 참여를 당부 드립니다. 누구나 성실하게 8시간 일하면 먹고사는 것 걱정 없어야 합니다. 실패했더라도 다시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함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가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정치권에서도 함께 힘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한 가지, 꼭 함께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6월 항쟁의 중심은 특정 계층, 특정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사제, 목사, 스님, 여성, 민주정치인,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문인, 교육자, 법조인, 문화예술인, 언론출판인, 청년, 학생, 그 모두가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로 모였습니다.
전국 22개 지역에서 동시에 열린 6.10 국민대회가 6월 26일, 전국 34개 도시와 270여 곳에서 동시에 열린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국민평화대행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처럼 6월 항쟁에는 계층도 없었고, 변방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저도 부산에서 6월 항쟁에 참여하며, 민주주의는 물처럼 흐를 때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독재에 맞섰던 87년의 청년이 2017년의 아버지가 되어 광장을 지키고, 도시락을 건넸던 87년의 여고생이 2017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촛불을 든 것처럼,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정치와 일상이, 직장과 가정이 민주주의로 이어질 때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이 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갑시다.
관행과 제도와 문화를 바꿔나갈 일은 그것대로 정부가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주변에 일상화되어있는 비민주적인 요소들은 우리 모두 서로 도와가며 바꿔나갑시다. 개개인이 깨어있는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노력은 그것대로 같이 해나갑시다.
민주주의가 정치, 사회, 경제의 제도로서 정착하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상에서 민주주의로 훈련될 때, 민주주의는 그 어떤 폭풍 앞에서도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6월 항쟁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는 영원하고, 광장 또한 국민들에게 항상 열려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앵커]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 들으셨습니다마는 6.10 항쟁,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인터뷰]
우리가 민주화 하면 긴 시간에 거쳐서 이루어졌습니다마는 한국사에서 민주주의 얘기했을 때 87년 얘기하고 있고 87년의 중심에 6월 항쟁을 얘기하고 있고 6월 항쟁의 중심에 6월 10일, 6.10 항쟁을 얘기합니다. 아시겠지만 6월 9일에 이한열 열사 사고가 생겼고 이어져서 항쟁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가 6월 10일이어서 6.10 항쟁이 되었죠.
그 결과로서 전두환 정권이 굴복하면서 6. 29선언했고 그 핵심 내용에 대통령 직선제로 바뀌었죠. 오늘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에서 대통령 직선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때부터 광장을 불러냈다. 광장이라는 것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무대 아니겠습니까?
기억이 나겠지만 이후에 선거 유세도 여의도광장 여러 군데 광장에서 치러졌고요. 그다음에 시민들이 또다시 직접 무대에 등장했던 것은 아시겠지만 한일 월드컵 시기에다가 효순이미선이 사건 때 야간에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고 그게 일상적인 광장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무대가 됐습니다.
그랬다가 지난해 이른바 촛불집회 광장이 돼서 그런 의미에서 오늘 문재인 대통령도 6월 항쟁이 한 세대를 거치면서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해석했군요.
[앵커]
우리가 6.10 항쟁 하면 이한열 열사, 그 앞서서 박종철 군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어떻습니까?
[기자]
1987년 상황이 전두환 정부의 마지막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시민단체나 학생들 입장에서는 다음 정권도 군인 출신이 돼서는 안 되겠다 그런 게 많았었죠. 그런 상황에서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으로 거기에 추모집회들이 이어졌습니다.
이어지고 해서 시민단체들의 집회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87년 5. 17 때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본부에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은폐되고 조작됐다, 경찰관 2명이 구속됐지만 그 후에 더 큰 조작이 있다 이렇게 폭로하면서 이게 기폭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더 집회가 많아지고 그래서 6월 10일 대규모 집회가 예정이 됐었는데 바로 전날 연세대학교 집회에서 이한열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서 중태가 됩니다.
그러면서부터 시위가 증폭됐고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그래서 그게 한 20여 일 정도 계속 이어지다 보니까 헌법을 호헌을 하겠다 그런 주장이 먹히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은 민정당 대선주자인 노태우 대표가 기본적으로 직선제를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야권 지도자 김대중 씨를 사면복권하겠다 이렇게 물러서게 됐던 거죠. 그게 1987년 6. 10항쟁의 근간입니다.
[앵커]
노태우 후보가 당시에 직선제를 받아들인 것은 어느 정도 승산이 있다고 계산을 했겠죠?
[인터뷰]
6.29 선언에 대해서 누가 주도했느냐 이후에 해석이 많았죠.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본인이 만들어서 그 공을 이후에 대통령이 될 노태우 후보에게 던졌다고 얘기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서로 합의해서 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런 방식으로 했을 때도 가능성이 있다고 봤겠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더큰 문제가 생길 수 있겠다고 판단을 했겠죠.
그런데 규모로 보자면 당연히 이전의 군부 정권에 대한 청산 의지가 강했었는데 이후의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이 됐죠. 아시다시피 민주진영에 속한 후보들은 2명 혹은 3명 이상이 됐기 때문에 표가 갈라져서 상대적으로 36.6%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 지지를 받은 노태우가 결국 당선이 됐던 거죠.
[앵커]
지금 기념식 행사 모습 계속해서 보시고 계십니다. 첼로 연주가 연주되고 있는데요. 지금 30년 전 6.10항쟁 당시 오늘 출연하신 두 분께서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먼저 김 원장님.
[인터뷰]
저는 그때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있을 때였는데 위치가 잠실에 있어서 무대 중심이었던 서울시청 부근하고 좀 거리가 있어서 당일은 6. 10항쟁 자체 참석하지 못했는데요.
그러다가 몇 개월 뒤에 다른 일 때문에 제가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파면되는 일이 있었습니다마는 그 당시 제가 정부출연연구원에 있어서 그게 잠시에 위치해서 서울 시청 부근에 있지는 못했습니다.
[기자]
저도 ROTC 하기는 했지만 군대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수도권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6.10항쟁을 상당히 주목하는 그런 부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명동성당에서 농성했을 때 명동성당에 군인들이 투입되고 그다음에 계엄이 발동된다 그런 소문들까지 있을 정도였는데 그 당시에 저는 군대에서 동원돼서 충정훈련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수도권에 근무했던 부대라고 하니까 뭔가 짐작이 가네요.
[앵커]
명동성당에 군 병력 투입된다고 했을 때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자기가 투입해도 좋지만 입구에 자기가 누워 있겠다. 밟고 지나가라.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 과정 속에서도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활동이 중요한 바람막이 역할도 해 주고 또는 선봉에 서는 역할도 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올해 지금 6.10 기념식 현장 계속 화면으로 보고 계십니다. 그동안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황보영국, 이태춘 열사 일반 국민들께서도 잘 모르시는 분이 있을 수 있을 텐데요. 이 두 명을 기억을 새롭게 하는 시간도 마련이 된다고요?
[기자]
이 두 분은 6.10 항쟁 때 부산에서 시위에 참석한 분들입니다. 황보영국 씨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 노동자로서 근무를 하던 중에 부산 시위에서 분신 시위를 해서 결국은 소생하지 못하고 숨졌고요. 그리고 이태춘 열사는 대학을 나와서 대학 때는 시위도 하지 않은 평범한 사무직 근로자였는데 시위에 참석하는 중에 추락사로 숨졌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가도로에서 최루탄을 맞고 떨어졌다는 거죠. 특히 이태춘 열사 같은 경우는 당시 부산에서 인권변호사 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이태춘 열사 관련해서 침묵시위도 하고 그런 사진이 저번에 공개된 경우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을 들고 문재인 대통령이 그 옆에서 침묵시위를 하고 그런 사연이 있는 민주화 열사입니다.
[앵커]
이번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10년 만이라고 하는데요. 앞서 저희가 기념사 중계해드렸습니다마는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기념사?
[인터뷰]
오늘은 아무래도 6월 항쟁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초점을 맞춰서 말씀을 했습니다. 일단 6월 항쟁의 핵심의 당시 7개 조항, 8개 조항이 있습니다마는 핵심 내용은 역시 대통령 직선제가 핵심이었는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게 만드는 광장으로 이끌어내게 하는 계기였다고 했고요.
그다음 민주주의는 제도면서 또 그 자체가 내용이고 삶의 양식이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후에 정부 차원에서는 제도라든가 관행의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후퇴하지 않고 앞으로 더 질이 좋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해서 가도록 하겠고 삶에서의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가야 할 부분이다라는 것을 얘기했습니다.
또 우리가 가끔 세대를 얘기합니다마는 30년 전에 청년과 소녀였던 사람들이 이제 엄마가 되는 세대가 됐기 때문에 그 세대가 우리 사회의 어른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기반이 그만큼 튼튼하다. 이런 얘기를 이제 했습니다. 의미 있는 해석이라고 봅니다.
오늘 30주년입니다마는 그 세대가 지금 50, 60대. 당시에 넥타이부대는 대부분 60대가 되겠죠. 우리 사회 역시 민주주의 관점을 얘기하면서 이 민주주의가 성숙화되려면 사회적인 격차를 줄여야 한다그래서 양보하는 자세, 함께 가는 자세를 얘기했고요.
근래에 문재인 대통령이 여러 가지 유형의 기념사라든가 추도사라든가 추념사를 할 때마다 통합, 국민을 강조하는데 오늘도 역시 통합의 메시지를 담았던 것 같습니다. 부산의 박종철, 광주의 이한열 얘기를 하면서 지역과 세대 계층을 떠나서 우리 국민 모두에게 함께 가야 될 중요한 가치로서 민주주의를 화두로 던졌습니다.
[기자]
저는 오늘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 또 달리 한번 보고 싶습니다. 1987년 때 국민이 승리한 시민혁명인데 정치권의 분열로 정권 교체는 하지 못했던 것을 하나의 민주세력들에서 패착이라고 지적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 보니까 민주제도는 정착이 됐다.
그러면 기본적으로 우리 삶에서 바꿔 나가는 경우, 그러니까 사람이 무시당하지 않고 권력기관에 감시당하지 않는 인권을 확대하고 그리고 소득의 차별이라든가 부의 불균형이라든가 이런 것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경제민주주의를 하겠다. 그러니까 모든 경제 주체들이 참석해서 사회적 대타협을 하고 그래서 삶에서 바꿔 보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앞서 잠깐 청문회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청문회 얘기 잠깐 더 이어가겠습니다. 지금 청와대와 여당의 가장 큰 고민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인데요.
지금 야 3당이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 추미애 대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그래픽으로 잠깐 보시겠습니다. 추미애 대표가 국민의당이 준 여당 선언을 했다. 전향적인 태도를 부탁한다는 발언을 했는데요.
이에 대해서 김유정 국민의당 대변인은 추 대표가 생각하는 여당은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인가 하고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어떻습니까? 국민의당, 어떤 입장을 취할 것으로 예상을 하십니까?
[인터뷰]
두 가지 같이 포함된 얘기 같은데 일단 박주선 국민의당 비대위 위원장, 비대위 대표가 했던 말 중에서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 하필이면 준여당이라는 말을 넣었는데 이걸 가지고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준 여당 선언을 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건 적절치 못했던 것 같고요.
그 배경으로는 준여당 선언을 했기 때문에 강경화 후보자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를 부탁한다, 이런 의미 아니겠습니까? 다른 김동연 후보자는 이미 채택이 돼서 임명까지 되어 버린 상황이고요. 나머지 세 사람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강경화, 김이수, 김상조 남아 있는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하고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비교적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핵심으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걸려 있죠. 그리고 당론으로서 국민의당의 중간 역할을 하는 국민의당이 강경화 후보자에 대해서 부정적인 당론을 결정내버린 상황에서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이 문제를 두고 논란이 있는데 좀 쉽지 않아 보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어제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이 빨리 경과보고서를 빨리 채택해 주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간곡히 요청한다라고 공개적으로 얘기를 했고요. 전병헌 정무수석도 국회에 찾아가서 야당 원내대표들 만나기까지 했는데 과연 어떻게 진행될지 조금 어려운 국면 같습니다.
아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긍정적인 평가였던 요인 중에 인사 문제가 들어 있거든요. 또 부정적인 평가했던 문제 중에 인사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일단 인사를 했을 때는 굉장히 환영을 받았는데 이후 검증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데 핵심적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게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입니다.
어제 청와대에서 그렇게 얘기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보면 경우에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이 강경화 후보자는 임명하는 방향으로 가는 수순이 아닌가 이런 해석도 하는데 그냥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고민 같기도 합니다.
[앵커]
월요일에 대통령 시정연설이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서도 언급이 될까요, 이런 인사 문제 같은 게?
[기자]
월요일의 시정연설은 원래 일자리 추경안을 호소하기 위한 것인데 어제 여당 대표부하고 만찬하는 과정 중에서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설득하겠다. 진정성을 담아서 하면 그게 답이지 않느냐, 이랬기 때문에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도 인사청문 과정에 대한 것을 요청을 드릴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어제도 박수현 대변인의 말에서는 한미 정상회담이 있고 다음 달 초 G20 회담이 있는데 외교 수장을 임명하지 못해서 되겠느냐. 유엔에서 평가받은 외교관을 우리 국내에서 임명하지 못한 그것도 국제적으로 망신이다.
그래서 호소를 하고 이 호소에는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있기 때문에 청와대 입장은 기본적으로 호소를 하는 데까지 계속해보고 그다음에는 임명을 하고 싶은 게 속내인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 시간이 거의 다 됐기 때문에 짤막하게, 만약에 야당 설득에 실패할 경우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까요?
[인터뷰]
조금 분위기는 그런 쪽으로 기우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 다른 단체들의 지원사격도 계속 나오는 것 같은데 하나 좀 아쉬움이 있다면 여러 가지 5대 비리 관련돼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얘기를 했을 때 공약을 포기한다거나 후퇴하는 게 아니다.
원칙은 그대로 지킨다라고 했는데 조금 더 솔직하게 뭔가 궤도 수정을 했다면 국회에서 임하는 자세도 달라졌을 텐데 그 자체도 문재인 대통령의 해석은 조금 현실하고 떨어진 해석을 해서 오히려 상황을 조금 어렵게 만들지 않았었나 생각을 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그리고 채문석 YTN 선임기자와 함께 얘기 나눴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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