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진보 정치 '큰 별' 지다...빈소 조문행렬

2018.07.24 오전 11:05
■ 추은호 / YTN 해설위원, 유용화 / 한국외대 초빙교수

[앵커]
탁월한 정치 감각 그리고 촌철살인 입담으로 한국 진보 정치의 상징과도 같았던 고 노회찬 의원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추은호 YTN 해설위원, 유용화 한국외대 초빙교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노회찬 의원의 상징성이라고 할까요, 어디에 있습니까?

[기자]
흔히 노회찬 의원에 대해서 진보 정치의 아이콘, 진보 정치의 상징이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진보 정치를 위해서 애쓰신 정치인들이 굉장히 많죠.

하지만 노회찬 의원 이전의 진보 정치라 하면 그들만의 리그였다, 이런 평가를 받는데 노회찬 의원은 진보 정치 또 노동 정치를 대중 정치의 영역으로 이끄신 분이다, 심상정 의원과 더불어서. 그런 의미가 하나 있을 수 있고요.

또 노회찬, 심상정 의원의 또 다른 의미는 이분들이 진보 정치를 하면서도 진보 정치 진영 내부에서는 항상 소수파였다는 거죠. 개인적인 인기 때문에, 개인적인 스타력 때문에 진보 정치를 이끌어왔지만 항상 당권을 뺏기는, 그래서 나가서 당을 새로 만드는, 그러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진보 정치에 대한 소신을 잃지 않는 그런 역할을 해 왔다.

절대로 시대의 변화에 맞게 타협하고 변절하지 않았다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또 무엇보다도 대중 친화적인 사이다 발언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또 어떤 점을 평가하시겠습니까?

[인터뷰]
젊었을 때부터 노동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실제로 한국 민주화 운동에서의 변혁 운동으로서의 노동 운동에 대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분 중 한 분입니다.

노동 운동 이후에도 계속해서 노동자들의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 실제로 진보신당이라든가 통합진보당이라든가 민노당, 지금의 정의당까지 왔던 인물인데요.

그러니까 기층민중의 정치 세력을, 정치를 대변하겠다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한평생을 살아왔던 분 중 한 분입니다. 그러나 검은돈, 블랙머니라는 부분이 참 안타까운 일로 이어졌는데요.

그러나 고 노회찬 의원은 이러한 진보에서 가장 중요한 도덕적 가치, 순결성 이런 것들을 또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마는 자신의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자존심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노회찬 의원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충격에 빠졌는데요. 빈소를 찾았던 의원들의 발언, 몇 분의 얘기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성태 /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 그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와 국익을 위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에서 최선을 다하신 고인의 모습을 우리 모두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장병완 /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 평화와 정의 공동교섭단체 입장에서는 고인이 빈자리가 너무나 커서 많은 언론인 여러분들이 전화를 주셨는데 충격이 너무 커서 전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문희상 / 국회의장 : 항상 시대를 선도했고, 그리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앵커]
특히 사망 직전에 함께 미국 방문을 했던 원내대표단 입장에서는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밝은 모습이었는데 이런 충격이 더 클 것 같아요.

[인터뷰]
제가 생각하기에는 빈소까지 와서 눈물을 보이고 상당히 고통스러워하고 공감을 했던 이유는 아마 우리나라 한국 정치인들이 저 문제를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블랙머니의 유혹 문제. 정치와 돈의 관계. 이런 부분에 대해서 다들 한 번씩은 유혹을 느꼈을 것이고 그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그것이 어떤 길로 갈 수 있고 고 김근태 의원 같은 경우도 한국의 정치인들은 교도소 담장을 항상 걷는다, 이런 얘기를 할 정도로.

그런 부분에 대한 공감을 같이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슬퍼했던 것 같은데요. 고 노회찬 의원은 물론 진보 정치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실제로 상당히 진보와 보수를 다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인간적 친화력을 함께 보여줬기 때문에 각 당 원내대표들도 같이 빈소에 와서 고통을 함께한 것 같습니다.

[앵커]
고 노회찬 의원의 비보를 전해 들은 청와대, 어제도 긴급뉴스로 전해 드렸습니다마는. 입장을 발표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일정도 어제 취소를 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일정을요. 어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고인의 애도를 뜻을 나타내는 발언 함께 들어보시죠.

[문재인 대통령 : 노회찬 의원의 사망 소식에 정말 가슴이 아프고 비통한 그런 심정입니다. 노회찬 의원은 당을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시대에 정치를 하면서 우리 한국 사회를 보다 더 진보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함께 노력을 해왔습니다.]

[앵커]
사실 진보 진영을 이끈다는 측면에서 비록 당적은 다르지만 지향하는 바는 비슷한 부분이 많고 또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뒤로도 만난 적이 있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두 분이 같은 당을 하지는 않았었죠. 그렇지만 정치는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민정수석, 또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노회찬 의원의 경우에는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하면서 같이 정치 현장에서 일한 것은 짧은 기간지만, 그래도 서로에 대해서 비슷한 동지적 관계를 많이 느꼈을 겁니다.

그리고 작년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에 여야 원내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 고 노회찬 의원이 책을 두 권을 대통령 부부에게 선물을 했었습니다.

[앵커]
어떤 책이었습니까?

[기자]
한 책이 82년생 김지영. 그래서 이걸 주면서 우리 사회의 많은 김지영 씨를 안아달라, 이런 당부를 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어떻게 보면 상당히 동료 의식 비슷한 걸 가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혹시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일정이기 때문에 지금 얘기하기는 좀 곤란한 측면이 있습니다마는 조문을 간다든가 이런 걸 고려하고 있을까요? 어떻게 보세요?

[기자]
아마 청와대에서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현직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가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고요. 하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는 얼마 전에 김종필 전 총리가 돌아가셨을 때도 조문을 안 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런 상에 가는 것이 맞겠느냐라고 하는 반대 의견도 있을 겁니다. 그 의견 사이에서 청와대가 어떤 결정을 할지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모두가 비통해합니다, 지금 대통령까지. 그리고 같이 노동운동을 함께했던 분은 물론이고 세브란스 병원에 있다고 하잖아요. 그 병원의 노조원들까지 와서 일반인들도 조의를 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타까워하는데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한 경우가 있었다고요? 조원진 의원 보좌관이 트위터에 글을 올렸습니까?

[인터뷰]
지금 조원진 의원은 대한애국당에 소속돼 있는 의원이죠. 보좌관이 인증샷을 올렸는데 그 스토리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그러니까 지난 3월 10일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노회찬 의원이 잔치국수로 인증샷을 올렸었어요.

그런데 이걸 역으로 비유하면서 7월 23일날 노회찬 의원이 목숨을 스스로 끊은 날 잔치국수 두 그릇이다, 잔치국수를 올리면서 7월 23일날은 좌파척결 기념일이다, 이렇게 올렸단 말이죠. 인간의 생명의 소중함과 고귀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 의심스럽고요.

그리고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로서 또 한번 우리 사회를 가르려고 하는 그러한 인증샷이 아니겠느냐. 저는 그래서 더욱 더 안타까운 마음을 국민들에게 전달해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정치적 입장이 다를 수는 있습니다. 치열하게 싸울 때는 싸워야겠죠. 하지만 이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노회찬 의원, 평생을 노동 운동 그리고 진보 정치에 헌신한 인물인데 지금부터 그의 삶을 되돌아보겠습니다. 경기고등학교 나왔는데 고등학교 시절에도 유신 반대 운동을 했었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노회찬 의원이 원래 태생은 부산입니다. 부산에서 중학교까지 나왔고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경기고등학교를 나왔는데 72회입니다. 72회가 어떤 회냐면 흔히 말하는 고입 시험 있지 않습니까?

뺑뺑이 세대 바로 직전입니다. 마지막 고입선발고사를 친 세대인데 같은 동기동창 중에서 황교안 전 국무총리 그리고 이종걸 의원 등이 유명한 지금 현역에서 뛰고 있거나 은퇴한 분들인데.

[앵커]
동기군요, 셋이.

[기자]
그렇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경우에는 특히 이종걸 의원하고는 굉장히 가깝게 지낸 것 같습니다.

[앵커]
옛날 사진이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입학하자마자 3월에 입학을 했을 텐데 바로 한 달 뒤에 4.19 묘지에 몇 명이 가서 막걸리를 먹으면서 시국 울분을 토했다는, 유신 직후입니다마는.

[앵커]
맨쪽이 황교안 학생, 가운데가 이종걸 학생 그리고 노회찬 학생이 있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종걸, 노회찬 두 학생은 당시에 나름대로 유신 1주년 맞아서 교내에서 유인물 뿌리기도 하고 그 이듬해에는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하니까 수업 거부도 주도하고 이른바 문제 학생이었습니다.

반면에 황교안 학생 경우에는 학생회장을 지냈지 않습니까? 바른생활을 꿋꿋하게 했던 사람이고.

[앵커]
지금으로 말하면 학생회장이죠.

[기자]
학생회장이죠. 그래서 이 세 분의 삶이 그때부터 엇갈렸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그렇군요. 결혼식을 하는데 노회찬 의원이 결혼할 때였나요? 누가 와서 도와줬다고요?

[기자]
노회찬 의원의 부인이 김지선 씨입니다. 김지선 씨가 노회찬 의원보다는 나이가 많은데 노회찬 의원이 수배 중에, 도피 중에 결혼을 했습니다.

88년에 했는데 두 분이 인천에서 노동 운동을 하다가 만나게 됐는데 그 당시에 결혼식을 수배 중이니까 널리 알릴 수는 없고 가족, 친지들만 모여서 했는데 이종걸 의원이 당시에 참석해서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합니다.

노회찬 의원은 다 아시다시피 첼로를 어렸을 때부터 했다고 하는데 이종걸 의원은 중학교를 예원학교를 다녔었거든요. 그리고 경기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 자리에 모여서 이종걸 의원이 피아노 연주를 결혼식 축가로 해 줬다고 합니다.

[앵커]
이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갑자기 용접공이 돼요. 그리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죠.

[인터뷰]
그 당시에 그러니까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상당히 신군부의 폭압적인 상황 아니었습니까? 광주학살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학생운동으로서는 민주화 운동을 하기가 세력이 좀 약하다. 그래서 노동자 세력과 같이 연대해야 된다는 이념적 상황이 있었고요.

두 번째로는 지금 상당히 달라졌습니다마는 그 당시만 해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마저 없었어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그리고 반인권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서 그러한 노동자들의 권익을 찾고 또 노동자들의 정치 세력화를 도모하기 위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투신하게 됩니다.

[앵커]
이른바 학출.

[인터뷰]
그런 과정들을. 특히 용접공을 했던 건 공장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까 숙련공으로 들어가서 홍영표 의원도 사실상 대우자동차에 들어갔었잖아요.

용접공으로 들어가서, 취직하기가 쉬우니까 그래서 들어가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또 노동조합의 정치세력화를 하는 데 담당했던.

한평생을 젊은 시절을 살아왔던 분 중에 한 분이죠. 그러니까 상당히 일찍이 노동자 운동 이런 부분에 대한 생각을 많이 가졌던 분 중 한 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그러면 여기서 고인 생전의 발언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노회찬 의원 하면 떠오르는 게 촌철살인의 발언 아니겠습니까?

진보 정치를 알리는 데 여러 가지 발언을 많이 했었는데 고 노회찬 의원이 평상시에 했던, 정치인이 되고 나서 했던 발언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004년 YTN 출연 당시-
[故 노회찬 의원 : 지난번 판보다는 괜찮은데보니까 세척 덜 된 것이 군데군데 있고완전 새 판은 아닙니다. (고기는 그대로입니까?) 고기는 굽다만 굽다 만 고기도 남아있고 새 고기도 다시 온 것 같은데…]

-지난 2016년 11월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故 노회찬 의원 : 이 엘시티 사건에 대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가 되고 있습니까?]

[안태근 / 前 검찰국장 : 기억이 없습니다.]

[故 노회찬 의원 : 뭐가 없다고요?]

[안태근 / 前 검찰국장 : 기억이 없어요.]

[故 노회찬 의원 : 기억이 없다고요? 보고한 사실이 없는 게 아니라 기억이 없다고요?]

[안태근 / 前 검찰국장 : 보고 안 했을 수도 있고요. 하여간 제가 보고한 기억이 없습니다.]

[故 노회찬 의원 : 답변을 그 따위로 하는 겁니까?]

[안태근 / 前 검찰국장 :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

[故 노회찬 의원 : 아니면 아닌 것이고 모르고 모르는 것이지. 기억이 없다는 게…]

[안태근 / 前 검찰국장 : 그럼 모르겠습니다.]

[故 노회찬 의원 : 막장입니다, 막장이야.]

-2017년 7월5일,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과 관련해 당시 국민의당 지도부가 이유미의 단독 범행이라고 한 것에 대해-
故 노회찬 의원 : "콜레라균을 이유미가 단독으로 만들었든 합작으로 만들었든 국민의당 분무기로 뿌린 거 아닌가. 여름에 냉면집 주인이 '나는 대장균에게 속았다'고 얘기하는 격이다."

-지난 2016년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질의 당시-
[故 노회찬 의원 : 대한민국의 실세 총리가 있었다면 최순실이에요. 나머진 다 껍데기에요. 잘 알고 계시잖아요.]

[황교안 前 국무총리 : 그렇게 속단할 일 아닙니다. 국정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故 노회찬 의원 : 속단이 아니라 뒤늦게 저도 깨달았어요 지(遲)단이에요.]

-지난 2016년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 당시-
[故 노회찬 의원 : 전직 부장검사가 전화 두 통으로 서민들이 평생 벌어도 못 벌 돈을 벌어들이는 '전관예우의 법정'에서 과연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합니까? 만 명만 평등할 뿐입니다. 여기에 정의가 어디 있습니까? 오늘날 대한민국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전화기, 다른 한 손에는 돈다발을 들고 있을 뿐이에요.]

[앵커]
노회찬 의원의 발언의 특징은 쉬우면서도 아주 정곡을 찌르는 그런 발언 아니겠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여러 발언들을 많이 보셨는데 그중에서도 불판, 제일 처음에 나왔던 그것도 굉장히 인상적이고 그다음에 여러 가지 발언이 있습니다마는 불판 발언을 제가 소개시켜드리면 이건 어떤 발언이었냐면 그 당시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으로 처음 정치에 입문했을 때입니다.

당시에 자민련 1번이 김종필 전 의원이 1번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민노동이 비례대표 8번까지 됐기 때문에 노회찬 의원이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는데 당시 TV토론회를 통해서 이 말을 하면서 50년 된 불판, 50년 된 정치판을 새로 바꿔보자.

어떻게 보면 JP를 겨냥한 걸 수도 있고 한국 정치를 겨냥한 발언일 수도 있는데 결국 성공을 했었죠. 그래서 자신은 국회에 입성을 하고 50년 정치 역정의 JP를 낙선시키는 그런 발언이었는데 그것이 본인의 구호였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예언처럼 맞아떨어진 발언이었습니다.

[앵커]
판을 갈자. 하지만 노회찬 의원의 정치 역정이 탄탄대로만 걸어온 건 아니에요. 낙선의 쓴 고배를 마신 적도 있었죠, 여러 차례?

[기자]
그렇습니다. 50년 불판 갈이론 때문에 그 기세를 몰아서 그다음 총선에 노원병에 나왔었죠. 18대 총선에 나왔었지만 낙선을 하고 말았고 그걸 경험 삼아서 노회찬 의원이 그다음에 출마하는 걸 보면 계속 야권 단일화를 시도합니다.

19대 총선에도 노원병에 다시 나올 때도 야권 단일화 후보로 나오고 그다음에 2014년에 보궐선거 동작을 나올 때도 야권단일화를 이루고요. 지난 20대 총선에서도 창원 성산에 나올 때 야권단일화를 해서 나옵니다.

완전히 불판을 가는 게 아니라 일부 기존 정치판하고 담합하고 타협하고 하는 결과를 냈고 그 부분에서 일정 부분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기도 했습니다마는 마지막 판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결과적으로 야권 단일화를 통해서 자신한테는 낯선 지역인 창원 성산에서도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던 거겠죠.

[앵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만 노회찬 의원의 가장 큰 정치인으로서의 업적 가운데 하나는 삼성 X파일 문건을 공개를 하고 그 사건 때문에 본인은 의원직을 상실하고 바로 그 부분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그러니까 당시를 기억해 보면 노회찬 의원에 따르면 삼성이라는 대재벌이 검찰 권력을 관리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관리 대상인 검사들에게 정기적으로 떡값을 주고 그러면서 삼성이 어려운 일에 처하면 검찰에서 도와주고, 그러한 커넥션을 갖고 있었다는.

재벌과 권력 간의 커넥션이죠. 이것을 결국은 노회찬 의원이 폭로를 했던 것이죠. 폭로를 해서 상당한 파장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재벌의 권력과 검찰의 권력은 지금보다 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기 때문에. 그러다가 그것이 이후에 이것이 통신비밀보호법으로 해서 노회찬 의원이 의원직을 잃어버리게 되었죠.

물론 법원에서는 유죄를 인정했습니다마는 국민들 입장에서 봤을 때는 상당히 용기 있는 당시 재벌과 검찰의 권력 부분을 폭로하면서 다시 한 번 경각심을 일으켜주는 이런 부정한 커넥션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는 그런 양심적인 국회의원이었다, 이렇게 아마 국민들이 많이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기자]
아까 우리가 노회찬, 황교안 두 분의 고등학교 시절의 인연을 이야기를 했었는데 노회찬 의원이 그 사건을, 의원직을 상실한 삼성 X파일 수사를 했을 당시에 서울지검 2차장이 황교안 검사였습니다.

직접 수사는 하지 않았습니다마는 총 수사 지휘를 한 책임은 황교안 당시 고등학교 동창한테 있는 거였죠.

[앵커]
알겠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평소 발언도 얘기했는데요. 저희들이 몇 가지 그래픽으로 준비한 게 있습니다. 이걸 한번 짚어보도록 하죠. 일본과 관련된 얘기도 했습니다.

우리와 일본이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이렇게 유머를 많이 섞어서 얘기를 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폐암 환자를 수술한다더니 폐는 그냥 두고 멀쩡한 위를 드러낸 의료사고와 무엇이 다르냐면서 바로 삼성 X파일 사건의 징역형 판결 직후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이 얘기는 더 짚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진보세력의 도덕적 결함에는 우리 사회가 훨씬 더 엄격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것도 하나의 현실이기 때문에 인정해야 한다. 그의 저서에 나오는 겁니다.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이 발언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인터뷰]
그러니까 다른 서구의 나라와 같이 우리나라의 진보세력은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죠. 그건 뭐냐 하면 결국 과거의 권위주의 정권과 싸우고 그속에서 예를 들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들을 사실은 진보세력들이 많이 해 왔단 말이죠.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나 세력이 예를 들면 도덕적으로 문제라든가 부정부패 그리고 권력을 취득하는 이러한 문제들이 상당히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과 싸워왔기 때문에 진보세력은 반대적으로 도덕적으로 더 깨끗해야 된다는 측면이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도 결국 그런 블랙머니라는 부분들, 이 부분에 연루됐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자기가 한평생 살아왔던 부분에 대해서 결함이 있었다, 그런 측면이 보여졌던 것 같아요.

[앵커]
같이 진보 운동을 했던 유시민 전 의원의 어제 오열을 하는 모습도 잠깐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만 짚고 넘어가죠. 노회찬 의원이 미국 가기 전에 이발소를 들렸대요. 평소에 단골 이발소입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방미 전날 들렀던 단골 이발소입니다.

[기자]
이 이발소는 서울 만리동에 있는 이발소입니다. 1920년에 세워진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용원이고요.

TV연예 프로그램을 통해서 여러 차례 소개가 된 유명한 이용원인데 노회찬 의원은 15년째 매달 20일에 여기 가서 머리를 잘랐다는 합니다.

그렇지만 미국 가기 전에 18일에 가니까 그 당시이발사인 이남열 씨가 왜 이렇게 일찍 오느냐, 미국 가기 때문에 갔다. 그러면서 무슨 안 좋은 일 있냐고 물었더니 잘 될 거야, 별 일 아니야. 이렇게 대꾸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 갔다온 다음에 특검에 가야 되겠다, 이런 표현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앵커]
그의 저런 소탈한 행보가 그래도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서 아까 잠깐 지적하셨습니다마는 돈의 유혹, 그때가 선거 직전에 사실 돈이 많이 필요할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가 돈을 받은 부분에 대해서 변론을 하거나 그럴 언론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현실은 정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그래서 더 정치인들이 가슴 아파할 것 같은데요. 그 당시가 원외였습니다. 현역 국회의원이 아니고 현역 국회의원은 후원 형태가 있는데 원외도 정치를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법률상으로는 원외는 정치자금을 전혀 받을 수 있는,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통로가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런 부분들은 달라져야 되지 않을까, 이번에. 국회에서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추은호 YTN 해설위원 그리고 유용화 한국외대 초빙교수였습니다. 뉴스톡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HOT 연예 스포츠
지금 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