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지난 총선 당시 비례대표 국회의원 투표 용지입니다.
무려 35개 정당이 이름을 올리며 길이만 48.1cm에 달했습니다.
너무 긴 용지 탓에 전자개표기는 무용지물이 됐는데, 바뀐 '선거제'가 정당 난립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습니다.
지역구와 정당에 각각 표를 던지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의석을 나누는 기존 '병립형' 대신,
지역구 당선자 숫자를 고려해 비례 의석을 보정하는 '준연동형'이 적용되면서 원내 진출을 노리는 정당이 크게 늘어난 겁니다.
거대 양당으로의 쏠림을 막고 사표를 줄여 민의와 의석수 괴리를 최대한 좁히겠단 취지였지만, 결과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원유철 / 당시 미래한국당 대표 (2020년 3월) : 미래한국당이라는 미래 열차, 두 번째 칸을 선택해 주시고….]
[최배근 / 당시 더불어시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 (2020년 4월) : 민주당은 승리를 끄는 말이고 시민당은 승리를 싣는 수레입니다.]
기호가 드러나지 않게 '당 점퍼'를 뒤집어 입고,
선거일인 15일을 활용해 본 정당과 비례 정당 기호인 1과 5를 각각 강조한 유세 버스까지, '꼼수 위성정당'으로 인한 웃지 못할 장면들이 속출했습니다.
그 뒤 3년 반이 넘게 흘렀지만, 해법을 둘러싼 여야 이견은 여전합니다.
국민의힘은 '병립형 회귀'를 일찌감치 당론으로 정했습니다.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다시 위성정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가능성을 내비치며 야당을 압박 하고 있습니다.
[최형두 / 국민의힘 의원 (지난 5일) : 이건 제도가 아니라 전략에 불과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민주당도 위성정당 안 만들겠다고 해놓고 만들지 않았습니까.]
'위성정당 금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민주당은 고심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지도부 내에선 한 석이 아쉬운 상황에서 약속을 지키기 쉽지 않은 만큼 다시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입니다.
[이재명 /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난달 28일) : (선거는) 승부 아닙니까? 이상적인 주장….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물론, 역사적 퇴행이라는 내부 반발은 부담입니다.
특히, '비명계'와 당 원로 등이 현 선거제 유지를 주장하면서, 과거로의 회귀가 자칫 계파 갈등의 뇌관을 건드릴 수 있단 우려마저 나옵니다.
[김종민 /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 14일) : 한 번의 선거 당리당략을 위해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은 어떤 논리를 갖다 대도 국민 위에 군림하는 선당후민의 길입니다.]
선거구를 확정하는 문제도 첩첩산중입니다.
선관위의 밑그림을 놓고 국민의힘 강세 지역인 강남은 그대로 둔 채,
상대적으로 야당이 우세한 서울 노원과 경기 안산·부천, 전북을 통합 대상으로 삼은 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민주당이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김영배 /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야당 간사 (지난 5일) : 특정 정당에 지나치게 편중됐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에 대해서, 획정안에 대해서 단호히 반대한다….]
여당은 당리당략을 고려해선 안 된다며 표정 관리를 하면서 결단을 촉구하고 있지만, 접점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김상훈 /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국민의힘 간사 (지난 6일) "불리한 결과가 아니냐고 선입견을 가질 수 있지만 정당 간의 유불리 문제가 개입된 그런 안은 아닌 것으로….]
선거제와 선거구 협상 장기화는 '제3 지대 신당'의 입지에도 영향을 줄 거란 전망이 많습니다.
'경우의 수'가 복잡해질수록 새로 경기에 뛰어든 신당은 전략을 짜는 게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치 신인과 같은 도전자의 운신 폭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총선 예비후보 등록은 이미 지난 12일 시작됐습니다.
막판까지 각 정치 세력이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선거제 협상 과정에 정작 중요한 '참정권'의 가치 제고는 고려돼 있는지, 유권자들은 묻고 있습니다.
YTN 박광렬입니다.
촬영기자;이성모 한상원
영상편집;임종문
그래픽;박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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