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육영수 피격’ 배후? 역사학자 “조총련? 중정? 음모론, 근거없다… 단독범행 가능성도”

2026.10.02 오전 07:53
[YTN 라디오 장성철의 뉴스명당]

■ 방송 : FM 94.5 (07:15~09:00)
■ 방송일 : 2026년 10월 02일 (금)
■ 진행 :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
■ 출연 :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장

- 육영수 피격, 오랫동안 잊혀졌던 사건...최근 들어 음모론 커져
- 총기를 누가 갖고 있었나 질문에 일반적 원칙 벗어나지 않아
- 중앙정보부 독자적 음모나 박정희 지시 사항 있었단 근거 없어
- 영화 속 음모의 단서 확인 안 돼...수사·관리 부실에 가까워
- 문세광, 독재자 돌변한 대통령에 대한 분노...반박정희 시위도
- 문세광, 조총련·北 지령 하에 조직원으로 행동했다 볼 수 없어
- 70년대 日청년들 급진주의 투쟁...문세광 단독 범행 유추 가능
- 배후가 중앙정보부? 국내서 섭외하는 게 훨씬 효과적인데 왜?
- 추가 논란 없다고 결론 났음에도 음모론 유통됐던 게 문제
- 하나의 현상...역사 왜곡 몰거나 소송·공격하는 건 의미 없어
- 사실 왜곡이라 규제? 유신 체제 문화 통제 정책과 뭐가 다른가
- 육영수 피살 여파 크지 않았다...김대중 암살 시도 사건 워낙 커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 라디오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장성철 : 예고해 드린 대로 오늘 2부 명당 인터뷰에서는 역사학자 심용환 소장님 연결해 '암살자(들)' 논란과 관련한 팩트 체크, 요목조목 한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장님 나와 계시죠?

◇ 심용환 : 네, 안녕하세요. 심용환입니다.

◆ 장성철 : 네, 안녕하세요. 이렇게 유명한 분을 인터뷰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 심용환 : 아니, 무슨 말씀입니까?

◆ 장성철 : 소장님, 영화 보셨죠?

◇ 심용환 : 네, 영화 봤죠.

◆ 장성철 : 느낌이 어떠셨어요, 진짜?

◇ 심용환 : 이렇게 논란이 크게 일어날지 몰랐고요. 다만 영화 보면서, 아, 워낙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멋있기도 하고 좋기도 했고요. 이게 이렇게 설득력이 있나, 그리고 너무 영화가 앞뒤가 안 맞는 게 아쉬운 게 많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그런 관련해서 포스팅도 하고 그랬죠.

◆ 장성철 : 네, 이게 '암살자(들)' 역사 왜곡 논란이 뜨겁잖아요. 네, 이게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건데, 그 해당 사건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세요.

◇ 심용환 : 이 사건은 영화 많이 보셔서 아시겠지만 1974년에 일어났었던 일이고요. 시기적으로 본다면 지하철 1호선 개통하는 날이기도 했고, 유신 체제가 3년째 들어가기 때문에 체제가 안정되느냐 불안하냐 이런 약간 고민들도 있을 수 있겠고, 그전에 김대중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이 있었던 시간이니까 참 복잡했던 시간이었고요. 일본인이죠, 결국은 자이니치였던 문세광 씨가 식장에 잠입을 해서 쏜 총과 그걸 진압하는 과정 중에 어떤 경호원의 격발 같은 사건들을 통해서 결국은 육영수 여사, 그리고 그곳에 있었던 합창단원 중에 여학생 한 명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던 사건입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이슈가 됐었던 사건이지만 굉장히 오랫동안 잊혀진 사건이죠.

◆ 장성철 : 네, 그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해당 사건 범인이 문세광 씨인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영화에서는요, 저도 느낀 건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아니면 중앙정보부가 배후에 있는 거 아니야, 여기서 조금 여러 가지 작업들을 한 거 아니야, 이러한 의혹 제기, 음모론 이것들이 인식이 되더라고요.

◇ 심용환 : 그렇죠, 그렇죠.

◆ 장성철 : 맞아요. 어떻게 보세요?

◇ 심용환 : 오랫동안 음모론이 유행했다기보다는 그날 어찌 됐건 여학생도 죽고 이래가지고 1차적으로 워낙 사건이 비극적이었고, 어찌 됐건 대통령의 와이프가 돌아가신 사건이니까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국민들이 애도했던 사건이었고요. 그다음 단계로 굉장히 많이 얘기가 되던 건 경호실장 박종규가 죽였다, 그러니까 그 여고생을 실수로 쐈다, 그 얘기가 많이 돌다가 90년대 초반에 다큐 같은 것들이 제작이 되면서 이번 영화에 나왔었던 어떤 그런 여러 약점들이 제기가 됐고, 그게 한 2010년 이후에 유명한 어떤 그런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반복 재생이 됩니다. 그래서 이게 음모론으로 계속 눈덩이처럼 커진 건 최근 얘기고요. 근데 워낙 논란이 있어서 다들 아시겠지만 초동 과정에서 수사에 워낙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지점상 풀리지 않는 사건들, 특히 실탄이 현재 다 안 남아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 때문에 얘기가 오가긴 했는데, 가장 단순하고 큰 질문은 그 상황에서 총기를 누가 갖고 있었느냐, 그리고 그 총이 발사됐었을 때 누가 맞을 수 있었느냐를 따졌을 때는 그 일반적인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거죠. 문세광이 쏜 총알의 여러 궤적, 그리고 반대편에서 그걸 진압하는 과정 속에서 경호원들이 쐈던 총알 속에서 사람들이 죽었다라고 보는 거는 어려운 주제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 사건 자체를 뒤집을 만한 어떤 중정의 독자적인 음모라든지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 있었다라든지 하는 것은 전혀 현재로선 근거가 없거든요.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장성철 : 그 육영수 여사를 쏜 탄환, 이게 당시에 보도를 보면 경호처에서 다 가져갔다, 그래서 공개를 안 했다, 지금까지도 공개가 안 되고 있다 이래서 음모론이 확산되는 것 같은데, 이게 관계가 어떻게 된 거예요?

◇ 심용환 : 그러니까 현재까지 총알이 공개 안 된 건 사실인 거고요.

◆ 장성철 : 왜 공개가 안 되는 거예요? 왜?

◇ 심용환 : 그건 모릅니다. 그런데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당시의 상황이 특히 문세광이 어찌 됐건 한국인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한일 관계 위기를 불러일으켰고, 그전에 김대중 대통령 문제가 또 있었었기 때문에 그 문제를 빨리 수습하려고 했었던 시도, 그리고 그 당시 있었던 숱한 인권 유린 사건 같은 것들이 대부분 다 정부의 어떤 그런 굉장히 빠른 자의적인 선택으로 이렇게 막 해결이 되어 가는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거의 그 당시에 있었던 모든 수사들이 굉장히 의문점이 많이 남는 건 사실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게 이렇게 특별히 의도적으로 뭔가를 숨겼다 라거나 우리가 그 영화에서 나오는 어떤 그런 음모의 단서가 될 수 있는 루트가 전혀 없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런 얘기하면 거꾸로 막 욕도 많이 먹을 수 있겠지만, 그냥 수사 부실, 대충 한 수사, 그리고 그 이후에도 관리 부실, 이게 조금 더 진실에 가깝지 않나 이렇게 볼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그 이후에 국가기록물이 공개가 됐거든요. 그래서 그동안 숨겼다기보다는 개방하지 않았었던 한일, 또 한국의 어떤 대통령 자료 문서 같은 것들이 공개가 됐는데, 거기도 아주 특별한 얘기들은 없어가지고, 그래서 그냥 수사 부실, 무책임함 이 정도로 보통 현재로서는 볼 수밖에 없습니다.

◆ 장성철 : 암살범 문세광 씨 있잖아요. 그 사형당하기 직전에 최후 진술에서 "나는 조총련에 속았다", 이런 표현이 있더라고요. 네네. 그러면 조총련과 북한 공작원의 사주를 받았다, 이렇게 우리가 확정해서 얘기할 수도 있어요?

◇ 심용환 : 확정… 오늘 제가 무슨 영화를 비판하려고 계속 나온 것 같아서 그렇긴 한데, 확정해서 이야기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일본 쪽에서도 광범위하게 수사를 했고, 그 수사의 결과 자체에서 조총련이나 북한 측 소행이 아니다라는 결론이 났다는 것도 현재로서는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고요. 또 잘 아시다시피 문세광이 민단 쪽에서 급진적인 활동을 했었던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그가 말년에 약간 어떤 그런 급진주의적 사상의 정도가 되긴 했지만, 문세광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문세광은 민주 국가인 남한을 지지하다가 민주 국가였던 나라에서 독재자로 돌변한 대통령에 대한 불만, 이게 민단 쪽에 있는 청년 지지 그룹들의 분노거든요. 그래서 그런 루트로 또 이게 행동주의가 일어났다라는 것을 우리가 또 볼 수가 있죠. 그래서 그 이후에 80년대 민주화 이후에 많은 폭로성 인터뷰들이 우리나라 월간지에 있긴 했는데, 거기서 보면 우리가 최대로 추론할 수 있는 게 조총련 쪽에 어떤 특정 사람이 북한과의 관계, 혹은 그냥 특정 계열이 문세광을 사주하거나 추동해서 일을 벌였다까지는 '카더라'식의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조직이나 정부 차원에서 북의 지령, 그리고 조총련의 움직임을 통해서 문세광이 조직원으로서 행동했다, 이렇게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다고 얘기하기엔 문세광의 기록이나 행동들이 너무나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전에도 이렇게 반박정희 시위를 한다라든지 했던 것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건 우리가 역시 이것도 풀지 못한 숙제이긴 하지만, 정부의 지령이냐, 정부 요인의 맹동주의냐, 조총련의 독자적인 집단적 결정이냐, 조총련 어떤 사람의 활동이냐, 아니면 그 시대 분위기 속에서 문세광이나 문세광 어떤 친구들의, 혹은 그 패거리의 독자적인 활동이냐는 엄밀하게 봐야 되는데, 이거를 결정이 전혀 나지 않은 상태에서 막 한쪽으로 몰아가고 있는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고 할 수 있는 거죠.

◆ 장성철 : 소장님, 역사학자로서는 어떤 게 정확하다라고 생각을 하세요?

◇ 심용환 : 여기서 이 모든 논쟁에서 하나가 완벽하게 빠져 있는 게 뭐냐 하면, 1970년대 때 일본의 청년들의 급진주의 투쟁이 빠져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잘 아시다시피 72년에 요도호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리고 74년에 텔아비브에서 공항 테러 사건도 있었고, 그리고 이런 등등등의 70년대 내내 보면 학생들의 급진적이고 자율적인 투쟁들이 굉장히 많고 테러리즘이 활발했었던 시대거든요. 그래서 그런 맥락 속에서 보면 그 문세광의 단독 범행 혹은 문세광을 동의했었던 몇몇 사람들이나 그 기관, 조직의 행동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데, 그 얘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얘기하지 않고 있는데 그게 가장 가깝긴 하거든요. 그래서 요도호 사건 때도 그 비행기 보면 칼 막 몇 자루씩 다 갖고 들어오잖아요. 그리고 워낙 그런 테러들이 많았는데, 그 얘기는 전혀 안 다루어지고 있는 게 많이 아쉽죠, 네.

◆ 장성철 : 소장님은 그러면 역사학자로서 문세광의 단독 범행이다, 조총련이 배후에 있는 건 아니다, 북한도 배후에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보시는 건가요?

◇ 심용환 : 저도 이걸 단정적으로 얘기를 해야 되나요?

◆ 장성철 : 아니, 역사학자니까 생각이 어떠신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 심용환 : 네, 완전하게 단정적으로 얘기하기에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그 당시에 70년대 일본의 급진주의적 행동과 문세광, 혹은 문세광과 있었던 그 그룹이라고 얘기해야 되죠? 그 안에 분파가 있잖아요. 그 사람들의 행동주의일 확률이 현재로서는 아주 높습니다.

◆ 장성철 : 그런데 한국에 온 문세광이 조선호텔에서 묵으면서, 사건 당일 국립극장까지 택시 타고 이동하고 이렇게 자금줄은 어디서 나왔다, 이게 드러난 게 있어요?

◇ 심용환 : 드러난 게 없고요. 그거는 의혹의… 그러니까 이거 반대로 물어볼 수 있는 게 뭐냐 하면 이런 거죠. "아니, 이 모든 자금이나 행동이라는 것을 중정이 아니고 그 당시에 해줄 조직이 어디 있냐", 혹은 "중정이 아니면 조총련이 아니면 해줄 조직이 어디 있냐"라고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근데 중요한 건 그것이 드러난 거나 그런 것들이 있다면 우리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일단 첫째는 밝혀진 게 없다는 거고, 두 번째는 중정이 그전에 김대중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해서 납치했던 시도 사건이 워낙 큰데, 그것 때문에 "이 정도 사람을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중정이 사람을 함부로 섭외해서 뭔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도 너무 어려웠던 상황인 거고요. 왜냐하면 중정의 어떤 유신 체제 10년의 기간 동안 그런 행동, 그 정도까지 해외까지 나가서 왔다 갔다 했던 행동을 하려면 이건 그런 사건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그건 굉장히 위험했던 사건이고, 만약에 그런 식으로 중정이 이 사람을 데리고 왔으면 그렇게 할 거면 그냥 국내에 사람을 섭외해서 진행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잖아요.

◆ 장성철 : 그러기도 하네요.

◇ 심용환 : 그리고 그 안에서 그런 난장판에서 사람을 굳이 두 명이나 죽여가면서 한다? 그것도 총알의 탄면을 보면 이렇게 정확하게 날아간 것들도 아니고, 권총으로 사람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 모든 게 다 짜여져 있는 각본이다라고 얘기하는 게 음모론을 믿고 있으면 이게 당연한 건데, 아니라고 생각하면 이거는 우리나라 측 정부에서 벌이기에는 너무 힘들었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고, 조총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무장공비를 파견하거나 간첩을 파견하거나 김신조 사건 같은 사건을 일으킨 게 북한의 통상적인 소행이었는데, 그게 아니라 북한이 영향력이 거의 약하다고 볼 수 있었던 일본에 있는 자이니치를 섭외해서 그 사람을 이 루트를 통해서 들어오게 해서 대통령이나 대통령 와이프를 시해하려고 했다라는 것도 굉장히 이 얘기가 번거롭다고 해야 되나… 그러니까 아웅 산에서 있었던 버마 테러를 전두환 대통령이 자작했다, 거의 이런 식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음모론의 안경으로 보면 의심이 가지만 당시 정황상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 장성철 : 아니, 사실로 밝혀진 것도 그렇고 영화에서 장면으로 나온 게 있는데, 당시에 경호처에서 비표를 문세광 씨가 갖고 있지 않았는데 그냥 식장 안으로 들여보내줬단 말이에요, 그리고 문세광 씨는 중정에서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던 인물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을 비표 없이 출입을 시켰을까, 그건 이해가 안 돼요.

◇ 심용환 : 저도 이해가 안 됩니다, 그것까지 이해가 될 수는 없고요. 그런데 다만 이런 건 있습니다. 제가 이걸 비유해서 굉장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안중근 의사가 그날 의거하실 때도 보면 조선인인 걸 수사를 안 하고 그냥 기본적인 걸 하고 가니까 러시아 군경들이 열어줬거든요. 그래서 그게 그 당시 일본 정부가 굉장히 항의를 합니다. 근데 당시 극비 문서들이 최근에 공개된 내용을 읽어보면, 일본 측에서 그걸 요청했다, 일본인들이 자유롭게 들어오게 해라,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너무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었기 때문에 우리는 근접 경호 정도는 하지만 그 사람들에 대해서 일일이 다 책임질 수는 없었다, 이런 얘기들이 나와요. 그래서 역사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어?"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들, 그런 상황들은 또 비일비재해가지고 제가 봐도 "왜 그랬지?" 당연히 그런 생각은 들긴 하죠. 그러나 그게 어떤 증거가 없으니까 그렇기도 하고, 그런 유사한 사건들이 많습니다.

◆ 장성철 : 네, 소장님 저도 영화를 보면서 상당히 헷갈리고 어렵던데, 역사적인 사실과 이 창작의 영역이 섞여 있어가지고 상당히 현실과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헷갈리더라고요. 어떻게 보세요? 이렇게 역사 왜곡이냐, 표현이냐, 창작의 자유냐, 이런 것들에 대해서요.

◇ 심용환 : 아니, 일단은 이건 음모론이 형성되어 왔던 것을 계속 미디어에서 반복을 했고, 그 부분에 대해서 학계나 어떤 연구자들이 조금 더 깊이 있는 준비나 내용들이 미진했던 부분도 있지만, 또 연구했던 논문이나 연구 자료들을 보게 되면 특별히 이거는 더 추가적으로 이야기할 게 없다라는 결론도 이미 있었던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숙고하지 않고 계속 음모론이 사회에서 유통됐던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긴 하고요. 다만 이거는 이 자체가 하나의 현상이었기 때문에 이걸 두고 의도적인 역사 왜곡이다라고까지 몰고 가거나, 그렇게까지 보고 또 더 나아가서 그걸 소송을 하거나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하는 것까지 가는 건 의미가 없지 않나…. 그래서 그건 잘못되지 않았나 정도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장성철 : "영화는 영화로만 보고 판단하자",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나요?

◇ 심용환 : 아니, 영화는 영화로 보고 판단이 되고, 이번에 워낙 논란이 있었던 주제를 다뤘기 때문에 그거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라는 건 저는 자연스럽다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오히려 그거에 대한 반론이나 지적들 같은 게 있었다는 건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거를 굳이 정치권으로 끌고 가서 정치권에서 이걸 정쟁의 도구로 쓰거나, 그리고 이런 것들을 통해서 배우들을 인신공격적으로 공격을 하거나 소송을 하거나 하는 것은 창작 의욕이라든지 어찌 됐건 문화적인 발전에 대해서 큰 도움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자제해야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참 애매한 선상에 있습니다.

◆ 장성철 : 영화가 대중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상당하잖아요. 영화를 보고 댓글에 보면 "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야, 그냥 이랬었구나", 이렇게 그냥 영화에서 전개한 의혹이나 음모론을 믿는 분들도 계시고, 예를 들면 전직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한 분이 영화 '판도라'를 보고 "나는 영화를 보고 탈원전을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졌다, 이런 식으로 하면서 국가의 정책까지 바꿀 수 있는 그런 영향력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거를 그냥 단순히 사실을 조금 왜곡하고 창작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가지고요.

◇ 심용환 : 아니, 그런 생각이 드실 수 있는 것 자체까지 제가 어떻게 막을 수는 없는데, 그런데 그거는 소위 말하는 진영의 논리대로 얘기하면 또 반대편 쪽에서도 그런 지적들을 똑같이 해올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그걸 다 막아버리면 그거는 예전에 말 그대로 유신 체제 때 문화 통제 정책하고 뭐가 다릅니까? 그리고 그렇게 돼버리면 그만큼 문화계가 위축되는 상황들도 생기게 되는 거고… 미국 같은 경우 보면 JFK도 굉장한 영향을 받았지만 그 문서 공개된 다음에 특별한 거 없다는 건 밝혀졌잖아요. 그리고 부시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모습들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들도 있지만 그런 것들로 인해서 사회가 무너지고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예술 창작이 나왔었을 때 그것을 사회적으로 논쟁을 하면서 사회가 스스로 수습을 하는 과정으로 가는 것으로 가야지, 이게 그래서 규제가 된다라든지 이걸 이용해서 상호 정파 간에 서로 공격을 하거나 하는 것들은 문제가 있지 않나… 그 선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제일 힘들거든요. 왜냐하면 이런 발언하면 "심용환 저거 우익 역사학자니" 막 이렇게 가요. 근데 힘들지만 그거를 규제를 해서 할 수 있는 21세기 상황은 아니다, 참 그런 게 있습니다.

◆ 장성철 : 알겠습니다. 그 결과적으로요, 그 해당 사건이 있은 이후에 유신 정권의 성격과 한일 관계, 정국 분위기 이게 많이 바뀌었나요? 한일 관계 이런 등등이요.

◇ 심용환 : 이 사건은 사건의 음모론 때문에 사건의 배후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학계나 시대적 관심사라는 건 그 여파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높고 워낙 컸던 사건이기 때문인지 그 여파에 대한 두려움들이나 그거에 대한 연구들이 많이 진행됐는데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씀드리게 되면 여파는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단 김대중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이 워낙 컸고, 그 부분을 덮는 과정에서 한일 간의 유착 관계가 강고해졌었던 상황이었고요. 그리고 그 이후에 미국까지도 이 사건을 주목했었기 때문에 한미일이 소위 말하는 현상 유지 정책을 선택을 했고, 이게 넓게 가면 그 당시 또 미국이 베트남 문제에서 빠지면서 중국과 합의를 하면서 남북한 관계를 유지하자, 이런 것들이 워싱턴 포스트 기자의 책 같은 것들, 이런 데서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그런 것들 때문에 유신 체제는, 유신 체제와 그 당시의 동아시아 정세나 세계 정세는 그대로 갔다. 그것이 무너지는 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마민주항쟁이나 김재규의 어떤 선택 같은 걸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당시의 사건의 여파는 또 이렇게 크게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도…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씁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 장성철 : 그 유신 정권의 체제 안정에는 이런 사건이 특별하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이렇게 보는 게 맞나요?

◇ 심용환 : 그렇죠. 그 2년 전에 결국은 국민투표를 통해서 유신 체제로 들어서기도 했고요. 이 영화에서는 지하철 1호선 이야기나 청구권 자금 이야기를 자꾸 엮기는 하지만, 그만큼 또 뭐라고 해야 되나, 당시 여전히 어떤 역동적인 경제성장, 산업화 과정에 대한 국민적 욕구 같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들이 유신 체제에 악영향을 주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줬던 건 사실이긴 하지만, 결국 유신 체제가 무너지는 건 그 이후에 한국의 어떤 민주주의 역량에 의해서 무너지게 됐던 거라고 보는 게 적절한 판단 같습니다.

◆ 장성철 : 알겠습니다. 소장님, 오늘 역사 강의 너무나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 심용환 : 네, 감사합니다.

◆ 장성철 : 네, 이상 역사학자 심용환 소장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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