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끌려가 미쓰비시 군수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지난해 11월 도쿄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기각됐습니다.
그러나 '전범 기업'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할머니들의 힘겨운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고한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좁은 골목을 돌아 들어가면 81살 양금덕 할머니의 어둡고 차가운 골방이 나옵니다.
13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 미쓰비시 군수공장으로 끌려가 중노동에 시달렸지만 돈은 한푼도 받지 못 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일본에 갔었다는 사실만으로 차가운 시선 속에 외롭고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인터뷰:양금덕, 근로정신대 피해자]
"일본에 갔다 왔다고 하면 위안부로 착각해서 소식도 없고, 그래서 좋은 시기 다 놓쳤지. 결국 21살이 돼서 어디로 갈데가 있어야지..."
지난 1999년 일본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처음 재판정에 섰습니다.
10년 가까운 세월, 13 차례나 일본으로 건너가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도쿄 최고재판소는 어린 소녀의 지옥 같았던 중노동에 어떤 보상도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터뷰:양금덕, 근로정신대 피해자]
"박정희 때 줬다고 그래서 기각하고. 기각 당할 때 참말로 피를 토하고 죽을 일이야. 그나마 반응이 좋게 나올까 실낱 같은 희망을 가졌는데..."
그렇게 끝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마디 사과 조차 없이 '전범 기업'이 고향땅에 버젖이 간판을 내건다는 사실을 할머니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시민단체들이 나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촛불집회도 계획하고 있지만 할머니의 외침은 여전히 공허한 메아리입니다.
[녹취:미쓰비시 모터스 관계자]
"판권 사다가 하는 거에요. 독립체인 셈이죠. 미쓰비시 상사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 그런식으로 나올 수도 있겠죠."
집회가 끝나고 바쁜 걸음으로 찾아 가는 곳은 일당 3만 8,000원을 주는 드라마 촬영장.
할머니의 외로운 투쟁이 하루하루 힘겹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YTN 고한석[hsgo@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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