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억울한 일이 있지만 방법이 없을 때 국민은 정부 민원창구를 두드립니다.
그러나 민원을 넣어도 해결은 커녕 엉뚱한 답변이 돌아와 더 분통을 터뜨리게 하는 일이 많은데요.
홍상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사]
오진석 씨는 20년차 견인기사입니다.
사고현장 차량부터 공장에서 바로 나온 신차 운송까지, 견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그런 오 씨가 더 이상 견인차 운전을 이대로는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든 건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때였습니다.
[오진석 / 견인차 기사 : (민원을 제기한) 근본적인 이유였어요. 제가 세월호 사건을 보고 같이 슬퍼했고 제가 하는 일 자체가 안전하지 않은 일이다 보니까. 누군가가 알려야 되겠다. 이게 위험하니까 좀 규정을 바꿔 달라, 조치를 좀 해 달라, 국가에서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든요.]
오 씨가 제기한 민원은 이렇습니다.
바로, 아는 사람만 안다는 견인차의 위험. 차량을 운반하는 견인차도 크기에 따라 최대 적재량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차량을 끌어 나를 때는 중량에 제한이 없습니다.
아무리 무거워도 고리에 걸리기만 한다면 견인할 수 있다는 거죠. 문제는 여기 있었습니다.
오 씨는 얼마 전, 1톤이 채 되지 않는 승용차를 견인하다 아찔한 사고를 냈습니다.
차량 간 거리도 꽤 있었고, 당시 시속 40km밖에 속력을 내지 않았는데도 사고로 이어진 겁니다.
견인차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진석 / 견인차 기사 : 브레이크 밟았는데 견인을 하고 있으면 차가 공중에 떠 있습니다. 공중에 떠서 가다 보니까 브레이크가 들지를 않았던 거죠. 그래서 계속 밀려서 약 17m (밀렸다고) 경찰 조사로는.]
오 씨는 우리에게 직접 견인차의 위험성을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2톤짜리 승용차를 들어 올리자 견인차의 앞 범퍼가 쑥 올라갑니다.
앞 타이어도 공중에 뜬 상태.
그래서 견인할 차량이 무거울수록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도 빨리 제동이 되지 않아 위험천만한 상태가 되는 겁니다.
[오진석 / 견인차 기사 : 전국에 견인차가 2만대 넘게 돌아다니고 있고요. 그 차 들이 어떻게 보면 브레이크가 듣지 않으니까 굉장히 위험한 무기가… 한 순간의 흉기가 움직이는 거랑 똑같습니다.]
이 씨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경찰청 민원 창구에 이런 위험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견인차 종류에 따라 견인할 수 있는 차량의 무게를 규격화 해 달라고 했습니다.
정부 부처를 돌고 돌아 한 달 만에 오 씨에게 돌아온 대답.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진석 / 견인차 기사 : 위험하다는 건 인지하고 있지만 대책은 없는, 그냥 운전자만 조심히 운전하라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답변이 오고…]
경찰청 답변을 본 오 씨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오진석 / 견인차 기사 : 역시 헬 조선? 이건 그런 답변을 저한테 보내는 그 분이 어떤 생각으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위험하니까 안전하게 조심히 운전하라 라는 답변은 답변이 될 수가 없죠. 그 부분을 근본적으로 고치자 라고 이야기 한 사람한테 그냥 잘 모르겠으니까. 그냥 알아서 하세요. 라고 한 거 밖에 안 되잖아요.]
[오진석 / 견인차 기사 : 대화를 해야지 뭘 알 거 아니에요? 그분들은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고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뭐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책에 나와 있는 그런 답변만 찾아서 그 답변만 하시려고 하지…]
그리고 여기,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김기임 / 사례자 : 안 들어줘요. 들어주지도 않아요. 들어주지도 않아. 내가 국방부 두 번이나 가고 시설단에 세 번이나 갔을 거예요. 그래도 소용도 없어요. 오히려 속만 뒤집히고 엉뚱한 소리만 하고 아주 눈물만 흘리고… ]
파주에 사는 60대 노부부에게 전화가 걸려온 건 12월 초.
도대체 어디에 이야기해야 하느냐며 도와달라는 노부부를 우리는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
하지만 남용섭 할아버지 부부는 오늘도 집을 나섭니다.
부부가 도착한 곳은 도로 옆 키 작은 나무들이 서 있는 작은 밭.
할머니는 요즘 이 나무들만 보면 속이 상합니다.
[김기임 / 사례자 : 자식처럼 키운 나무를 갖다가 우리가 보상을 판다는 것도 아니고 뭐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국책사업이라고 해서 그렇게 억울하게 가격을 쳐서 이렇게 하면 되겠어요?]
작은 이 나무들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남 할아버지 부부는 20년 전 경기도 파주에 땅을 사 3천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습니다.
퇴직 이후 두 부부가 나무를 가꿔 분재로 생계를 꾸려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
갑자기 국방부에서 사격훈련장을 만들어야 한다며 토지강제수용 결정을 통보해 왔습니다.
보상금액의 기준인 공시지가가 시가에 훨씬 못 미쳤지만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니 따르기로 했지만 문제는 나무였습니다.
나무 3천 그루를 전부 옮겨 심어야 하는데 보상업무를 위탁 받은 LH공사가 손실 보상금으로 제시한 금액은 나무 한 그루에 9천 6백 5원.
[남용섭 / 사례자 : 나무 한 그루에 돈 9천 원 기지고 어떻게 옮깁니까. 못 옮기지. /백만 원 이상 들여야 옮기는데 포크레인, 장비 다 가져와서 흙을 떠 가지고 차에 실어서 옮겨야 하는데 그런 것은 몇 백이 드는데 그런 걸 전혀 감안을 하지 않고 무조건.]
할아버지가 사설 업체에 견적을 내 봤지만 LH가 제시한 금액의 두 배 가까이 돈이 필요했고, 이미 땅을 사느라 빚까지 진 상태.
그 때부터 남 할아버지 부부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민원을 받는 정부부처라면 어디든 수십 차례 민원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남용섭 / 사례자 : 민원을 워낙 많이 넣었기 때문에 기억이 안 나요. 국무총리실 부터 해서 국방부, 청와대 비서실장, 국회의원, 도지사 전부 안 넣은 곳이 없었어요. 하지만, 여러 부처를 돌고 돌아 돌아온 대답은 마치 모범답안처럼 한결 같았습니다.]
[남용섭 / 사례자 : 결론적으로 토지공사에다 자기네들도 알아보고 파악을 해봤지만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 기준에 의해서 지급한 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억울해도 그대로 받아라, 그런 식으로 결론을 내더라고요.]
심지어 며칠 전에는 국방부에서 남성 2명이 병원에 입원한 남 할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빨리 나무를 옮겨 심지 않으면 자식들의 재산까지 압류할 것이고, 민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라고 협박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남용섭 / 사례자 : 그냥 더 이상 민원 제기를 하지 않겠다, 이의 제기를 하지 않겠다, 이런 식으로 지금 시덥지 않은 걸로 민원 넣지 말라고 각서 써달라고 그러는데 왜 내가 자유 권리가 있는데 (민원 제기를) 막으려고 그러냐고]
결국 두 노인은 이 겨울에 땅을 파고 나무를 옮기는 작업을 직접 하고 있습니다.
[남용섭 / 사례자 : 저하고 대화도 해보고 어떤 어려운 점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려고 노력도 하고, 저도 양보를 할 수 있고 그런 건데 그런 것이 없었어요.]
[김기임 / 사례자 : 너무 억울하게 하지 말고 우리가 뭐 몇 천만 원, 몇 억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소통이 돼서 협상을 하면 우리도 양보할 건 하고 받을 건 받아야 되는데 그런 것도 없고 공문으로만 억울한 소리만 그렇게 하면 이 세상 민주국가에서 그런 건 아니잖아요.]
소통을 외쳤지만 오히려 불통만 확인한 민원인들. 이제,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막다른 길에 다다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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