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이 기사는 지난 10월 28일에 YTN이 보도한 방송 리포트인 '지리산 이탈 반달곰 적어도 26마리...행정체계는 미비'의 뒷얘기와 추가 분석 결과를 담은 내용입니다.)
기자가 5년 전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여행하다가 겪은 일입니다. 회색곰(Grizzly Bear)이 나무 사이에서 불쑥 나타나더니, 눈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승용차 안에 있었던 상황이라 별 위험은 없었지만, 야생 곰의 존재는 위압감 그 자체였습니다. 표정은 험상궂고, 덩치는 집채만 하게 느껴졌습니다. 곰은 10m 정도 옆에서 기웃거리다가 좁은 찻길을 황급히 건너 마주 편 숲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마치 사람이 횡단보도를 급히 건너가는 모습이랄까요? 족히 200~300kg은 넘을 것 같은 대형 곰이 날렵하게 뛰어가는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개인적인 기억을 새삼 떠올렸던 이유는 지난여름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두 번이나 경북 김천 수도산으로 이동해 포획된 반달가슴곰 때문입니다. 90km 이상을 이동한 이 곰(KM-53)을 다시 지리산으로 옮겨놓으려는 당국과 곰을 머물던 곳에 놔두라는 환경단체 간에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었죠. 곰은 영리하게도 생태 이동 통로도 제대로 조성되어 있지 않은 구간에서 고속도로를 몇 번 지나,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했습니다.다른 반달곰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YTN 데이터 저널리즘팀은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들의 위치 정보를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2004년(10월~12월)과 2008년(1월~12월), 2012년(1월~12월), 2016년(1월~7월)에 전파에 잡힌 총 37마리의 7,804개 위치 데이터입니다. 지리산 국립공원의 종복원기술원은 반달가슴곰의 행동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서 곰마다 VHF 고유 주파수를 부여한 발신기를 부착해 수신기로 위치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숲속에서 곰에 부여한 특정 주파수의 신호가 잡히면 그 각도와 방향을 기록한 뒤, 부근으로 이동해서 곰 위치의 방향을 다시 측정합니다. 이른바 삼각 측정 방식입니다. 일일이 사람이 나가서 곰의 위치 정보를 감지해야 하다 보니, 하루에 한 번 정도만 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모니터 요원의 숙련도에 따라 오차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적게는 30m 이내, 많게는 100m 정도까지 오차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종복원기술원의 설명입니다.
취재진은 GIS 컴퓨터 프로그램에 이 위치 데이터를 입력해 곰의 분포를 살펴보았습니다. 곰의 정확한 위치 노출로 인한 부작용을 고려해, 가로세로 500m 격자의 사각형을 설정해 격자마다 곰의 위치가 잡힌 출현 빈도를 시각화했습니다. 색상이 진하게 표시된 격자가 곰이 많이 출현했던 구역입니다. 아래 지도를 보면 지리산 반달곰은 주요 봉우리 일대의 숲속에 광범위하게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평균적으로 해발 900m 전후의 숲 지대입니다. 연도별로 곰들의 주요 서식지는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1년여 전까지의 데이터이니만큼, 지난해와 올해는 곰의 위치가 많이 달라졌다고 종복원기술원측은 얘기합니다.
국립공원 경계를 벗어난 곰만 따로 떼어서도 지도에 표시해봤습니다. 전남 구례군과 경남 함양군, 경남 산청군 쪽으로 넘어간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산청군 방향이 곰들이 제집 드나들듯이 국립공원 경계를 넘나든 구역입니다. 사실'제집 드나들 듯이'라는 표현은 어폐가 있습니다. 곰 입장에서는 새롭게 찾은 곳이 집이요 터전이지, 국립공원 경계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위치 정보가 파악된 전체 37마리 중 국립공원 경계 밖을 한 번이라도 나간 곰은 29마리였습니다. 100m 오차범위를 고려하면 적어도 26마리가 경계 밖으로 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위치 데이터에서 일부분만을 입수해 분석한 만큼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곰은,국립공원 밖 수백 미터 안에서 활동하거나 때로는 2km 내외에서 많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KM-53을 제외하고 지리산 행정경계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졌던 곰은 2008년 9월에 산청군에서 10km 정도 떨어진 석대산 부근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위 지도는 지리산에서 남동쪽 산청군만 확대해 본 결과입니다.곰 2마리 정도가 일대에서 활발하게 움직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중 가장 활발한 곰의 행동권을 공간 통계적으로 분석해 지도에 표시한 것입니다. 위치 확인 범위는 특정 곰이 나타난 범위를 점선으로 표시한 것이고, 주황색과 빨간색 영역은 해당 곰이 나타날 확률이 높은 구역입니다. 핵심 행동권을 보면, 길이가 약 7km, 폭이 2~3km 정도입니다. 사실상 국립공원 밖에 터전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곰들은 해마다 국립공원에서 더 먼 바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그 국립공원 경계로부터 이탈한 직선거리가 2008년에서 2012년 사이에는 1.5배 정도 증가한 데 이어 2008년과 2012년을 비교하면 2.3배 급증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곰들의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암컷은 주로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멀리 나가기도 하지만, 수컷은 먹잇감 외에도 짝짓기를 위한 암컷을 찾아 외곽으로 나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반달곰의 이동반경이 갈수록 넓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것입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은 반달곰들이 출현한 지점의 X, Y 좌표로부터 그 고도를 추정했습니다.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이 해발 1915m인데 반달곰은 그 턱밑인 1800m 내외 지점까지 출현했습니다. 평균적으로는 해발 900m 전후의 고도에서 나타났고, 최저 160미터 정도까지 내려온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각 월별로 곰의 고도 중 가장 낮은 지점을 표시한 것입니다. 해발 200~300m 부근까지 내려오다가 9월에는 160m 부근까지도 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야말로 야트막한 산등성이 일대인데 사람과의 접촉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곰들은 여름과 가을에 활동이 활발해지고, 그만큼 더 낮은 지대로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곰들이 국립공원을 벗어나면 1차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현재 지리산 국립공원에 방사한 반달가슴곰의 관리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종복원기술원에서 전담하고 있습니다. 종복원기술원이 반달곰을 담당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국립공원 관리공단법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공단의 임무 중에 국립공원 내의 야생생물의 보호 및 멸종위기종의 복원 사업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반달곰 복원사업은 환경부와 국립공원이 체결한 '국립공원 내 멸종위기종 증식·복원 사업에 대한 위탁 계약'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아래 계약서를 보면 국립공원 내로 사업의 범위를 한정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반달곰이 외곽으로 멀리 나갈 경우, 적절한 대응이 적시에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실제로 반달곰이 김천에서 발견된 초기에, 환경부과 종복원기술원, 김천시는 각기 다른 태도를 보이거나, 우왕좌좡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쪽에서는 여론의 눈치를 보고, 다른 한쪽에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우물쭈물합니다. 각 관련 기관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의사결정 기구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9월 기준으로, 지리산에 방사되어 사는 반달곰은 47마리입니다. 그중 26마리는 발신기를 제때에 교체하지 못했거나, 자연 출산으로 애초에 발신기 추적이 어려웠기 때문에 위치를 알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의 장이권 교수는 "추가 번식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정확한 반달곰의 개체 수는 47마리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2000년대 초까지 지리산에 서식한 것으로 확인됐던 5마리 정도의 야생 반달곰들의 현재 생존 여부는 불확실하므로, 집계 숫자에서 제외했습니다. 장 교수가 예측하는 지리산의 적정 반달곰 개체 수는 64~65마리입니다. 적정 용량을 초과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생태환경이 좋아지면서 반달곰의 숫자는 더 늘어나고 국립공원 바깥으로 나가는 일도 더 자주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장 교수는 사람과 곰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고 아찔한 상황도 벌어지겠지만, 곰으로 인해 얻어지는 생태적인 혜택이 더 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영미권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작가로도 꼽히는 빌 브라이슨은 그의 여행기 '나를 부르는 숲' (A Walk the rhe Woods)에서 북미권의 곰에 대해 10페이지가 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미국 북동부 아팔란치아 산맥으로의 장거리 산행에 앞서, 혹시나 곰을 마주치면 어떻게 하나 노심초사하는 대목입니다. 그가 인용한 한 통계에 따르면 북미 대륙에는 50만~70만 마리의 흑곰이 살고 있지만, 1900년에서 1980년 사이에 흑곰의 공격으로 사망한 사람은 "23명 정도"에 그쳤습니다. 1960년과 1980년 사이에는 "1년에 25회 정도만" "가벼운 부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브라이슨은 이런 통계가 다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묻죠. 비록 그의 산행구간에서는 아직 곰 때문에 죽은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도 공격을 안 하겠다고 곰이 사람과 협정을 맺은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익살을 떱니다. 하지만 곰의 존재는 걱정거리이기도 하지만 묘한 긴장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그 무엇으로도 읽힙니다. 지리산 반달곰은 그 자체로 생태계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징표이고, 그 이미지만으로도 소중한 관광자산입니다. 반달곰이 증가한다고 해서 무슨 관련 소식이 들릴 때마다 당장 큰일이 일어날 것처럼 호들갑 떨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행정적인 관리 체계와 생태 이동 통로 정비에서 주민과 등산객의 안전 대책까지 차분히 보완해 가야 합니다. 사람과 반달가슴곰의 공존을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입니다.
기사 · 데이터 분석 : 함형건 기자 (hkhahm@ytn.co.kr)
리서치 · 데이터 분석 : 김노현
GIS 분석 지원 : 컨서베이션 맵스 (Conservation Maps)
기초 데이터 제공 : 이정미의원실 ·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 모임
그래픽 디자인 : 강현우
반달가슴곰 위치 분석 관련 YTN 방송 리포트 :
지리산 이탈 반달곰 적어도 26마리...행정체계는 미비 (2017년 10월 28일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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