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7월 26일 (금요일)
■ 대담 : 송원근 영화 감독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김복동' 감독 "日 위안부 피해의 역사 속 김복동 할머니의 고뇌와 마음가짐 보여줘"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올해 초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여성인권 운동가이자 평화 운동가였던 큰 어른이었죠. 그분의 27년간의 치열한 투쟁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화 의 연출자, 송원근 감독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송원근 영화 감독(이하 송원근)> 네, 안녕하세요. 처음 봽습니다.
◇ 이동형> 우선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그 계기부터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송원근> 이 영화는 할머니께서 평소에 자신의 삶을 돌아가시면서 지워져 버리는 게 아니라 남겨져서 어쨌든 후세대들이 두고두고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바라셨다고 해요. 그래서 미디어몽구와 정기연 윤미향 대표께서 그 뜻을 받아서 연락이 왔습니다. 영화 작업을 같이 해보자, 제안이 와서 작년 10월부터 기획을 시작해서 올해 8월 8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 이동형> 어떤 영화인지 잠깐 소개를 해주시죠.
◆ 송원근> 이라는 영화는 영화 제목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27년간. 할머니께서 1992년에 처음으로 세상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하셨거든요. 그 이후로 지난 1월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27년 동안의 피해자를 넘어서서 여성운동가, 인권운동가로 활동하셨던 그런 활동들을 고스란히 담아내서 우리 세대들이 과연 무엇을 얻어야 할 것인가, 이런 부분을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 이동형>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8월 8일 개봉이니까 2주 정도 남겨두고 있는데, 소회가 어떻습니까?
◆ 송원근> 굉장히 떨립니다. 이게 이렇게 영화가 제가 처음 제작을 해서 개봉하는 거거든요. 영화를 만든 것도 저는 처음이고 해서 굉장히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떨리고요.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정식 개봉에 앞서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을 했는데, 관객들이 다들 눈물을 흘리셨다.
◆ 송원근> 네, 전주영화제에서 코리아 시네마 스케이프 초청돼서 상영을 했고요. 어제는 언론 배급 시사회를 진행했었습니다. 모두 다 극장 관계자분, 배급사 관계자분, 언론계 기자분들도 오셔서 보셨는데, 할머니의 그런 활동이나 마음 같은 것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공감을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게 단순하게 슬픈 모습을 저희가 억지로 표현하고, 구현하고, 이런 것들이 아니라 할머니가 걸어오신 부분을 담담하게 보여드렸는데, 그런 부분에 많이 공감해주시면서 그렇게 감정을 표현해주신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비단 할머니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다들 공감할 것 같고. 또 지금 시기가 또 시기이지 않습니까?
◆ 송원근> 그러게요. 지금 묘하게 얽혔습니다.
◇ 이동형> 다음 달에 또 광복절이 있고 하니까.
◆ 송원근> 그렇습니다. 그전에 또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입니다. 1400회 수요시위가 또 있고요.
◇ 이동형> 그래서 많은 분들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드실 텐데, 개봉관은 많이 확보됐습니까?
◆ 송원근> 개봉관은 우리가 지금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의 수요가 있으면 공급은 당연히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치열합니다, 지금. 가 있고, 굉장히 큰돈이 들어간 상업영화, 극영화들도 있고 한데요. 저희들은 이 시국에 꼭 알아야 하는 그런 이야기, 진정성이 있는 이야기로 승부해서, 정면승부 해서 그렇게 뚫고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영화가 괜찮고, 좋으면 입소문으로 해서 흥행이 될 수도 있는데, 처음에 시작할 때 개봉관을 많이 못 잡으면 그런 것도 있잖아요.
◆ 송원근> 맞습니다. 그런 부분이 있어서 저희는 수치로 드러날 수 있도록 예매율이 상당히 높은 게 중요하다고 말씀을 많이 하셔서 그런 부분을 어떻게 부탁을 드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 이동형>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이 영화를 볼 수는 없고,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 송원근> 할머니께서 평소에 저희 영화에서도 할머니의 모습은 그렇게 그려집니다. 고맙다고 말씀을 많이 하시고, 애썼다, 수고했다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그리고 주변에 같이 생활하셨던 길원옥 할머니를 동생처럼 여기셔서 원옥이는? 하고 불러주셨고요. 그런 할머니셨기 때문에 수고했다,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만약에 보셨다면.
◇ 이동형> 아까 서두에 이야기한대로 27년간의 기록이라고 했거든요? 그 기록들은 어떻게 다 모아서 영화에 담을 수 있었습니까?
◆ 송원근> 27년간의 기록이 다 비디오는 아닙니다. 사진도 있고, 비디오, 음성파일, 예전에 테이프로 녹음되어 있던 것을 디지털로 변환해서 CD에 담겨 있던 것도 있었고요. 그다음에 6mm 테이프, 예전에 사용하던. 그리고 파일도 있고. 이런 다양한 형태의 파일들을 저희가 확보를, 정의기억연대 측으로도 확보를 했고, 그다음에 할머니와 개인적으로 오랜 시간 인연을 맺어온 미디어몽구하고도 같이 작업을 했기 때문에 영상을 그렇게 확보를 했습니다.
◇ 이동형> 할머니가 하신 증언이나 이야기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까?
◆ 송원근> 저는 오디오로만, 목소리로만 들리는 장면인데, 할머니하고 윤미향 대표하고 부상 다대포에, 할머니 댁에서 만나서 말씀을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비디오는 없고, 소리로만 모든 상황들이 전달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할머니께서 내가 이런저런 당시 피해상황들을 말씀하시거든요. 어디로 끌려갔다 왔다, 중국 어디에 끌려갔다 왔다, 배를 타고 갔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뜸을 들이시면서 16살에 끌려갔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오니까 한숨을 품 쉬시면서 23살이라고 하더라. 이 얘기를 내뱉으시면서 말씀하셨던 그런 고뇌 같은 것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들으면서 이것을 영화 속에서 굉장히 잘 전달할 수 있고, 내가 느꼈던 부분들을 관객들이 제대로 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이동형> 그런 고민도 있었겠네요.
◆ 송원근> 네, 맞습니다.
◇ 이동형> 그런데 김복동 할머니가 처음에 촬영 이야기하고 촬영을 하자고 했을 때 싫어하셨다고요?
◆ 송원근> 싫어했다기보다는 저를 잘 모르시는 거죠. 왜냐하면 그때는 병세가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만나뵀을 때는 할머니를 시위 석상 말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이후로는 병실에서 처음 뵀습니다. 수혈을 하고 계시는 모습, 그랬었고, 할머니가 평소에 누가 와서 말 걸고, 지극히 일정 부분 친근한 사람들 외에는 접근하시는 것들을 꺼려하셨던 성격이었고요. 그랬기 때문에 많이 그러시기는 했지만, 미디어몽구나 윤미향 대표께서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영화 하는 사람이다, 영화 만드는 감독이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셔서 그렇게 이야기를 조금 나눴습니다.
◇ 이동형> 저는 아직 이야기를 보지를 못해서 듣기만 했는데, 영화에 소녀상이 주요하게 등장한다고요?
◆ 송원근> 네, 그렇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활동에 저희가 기점으로 소녀상을 봤습니다. 소녀상이 세워지기 전에는 일본의 역사 부정 같은 것들이 굉장히 극심할 때였습니다. 역사 교과서에서 위안부에 관련된 내용이 삭제됐던 시기였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뉴라이트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였습니다. 2011년이요. 2011년 12월 14일 1000회 수요 집회 때 평화의 소녀상, 평화비가 세워지면서 학생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고, 일반 사람들도 조금 더 많이 찾아오게 됐고, 할머니께서도 수요 시위에 참석하는 그런 미래 세대들의 모습을 보면서 서로 교감들을 주고받으면서 할머니도 변화하시고, 변화한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은 더 많이 찾게 되고요. 할머니는 또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다른 행동들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시기도 하고요. 이런 서로 상호 교감들이 있었던 계기가 평화비의 건립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최근에 소녀상에 모욕적인 일을 한 청년들이 있잖아요.
◆ 송원근> 안산에서요. 네.
◇ 이동형> 얼마 전 할머니들한테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만, 그런 뉴스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 송원근> 교육의 중요성을 저는 가장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교육받지 못하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생각 없는 행동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 이동형> 할머니들이 화가 많이 나셨는데, 나중에는 용서한다고 그렇게 또 말씀하셨다고 해요.
◆ 송원근> 인간적이니까 그러셨다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네, 한지민 씨가 출연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하는데요?
◆ 송원근> 내레이션을 맡으셨습니다.
◇ 이동형> 감독님이 요청했을 때 흔쾌히 응하시던가요?
◆ 송원근> 한지민 씨께서 2017년에 기억의 터라는 1주년 행사에 김복동 할머니하고 길원옥 할머니하고 같이 행사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때 할머니들 곁에서 한지민 씨가 있는 모습을 보고 이런 인연이면 김복동 할머니에 관련된 영화인데, 내레이션 부탁을 드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드려서 기획 의도를 말씀드리고, 기획서를 보내고, 내레이션 섭외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한지민 씨께서 바로 오케이를 해주셨습니다.
◇ 이동형> 고마운 분들이 많이 계시네요.
◆ 송원근> 그렇습니다. 또 뿐만 아니라 윤미래 씨 같은 경우에도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마지막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할머니의 그런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그런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 이동형> 우리나라분들도 많이 보면 좋겠습니다만, 외국 분들도 우리의 이런 역사를 잘 모르는 외국 분들. 특히 일본인들도 많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데, 국제적으로 개봉할 생각이나 이런 계획은 없습니까?
◆ 송원근> 국제적으로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단순하게 우리나라의 억울한 역사가 아니라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질렀던 그런 만행이 반성하지 않으면서 지워내려고 하는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있었던 사실은 있는 그대로 새기고, 되새겨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머릿속에 그런 부분들이 기억될 수 있도록 계속 만들어야 하는데요. 그런 역할을 저희 이라는 영화가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유럽 각지, 일본에서도 개봉해서 일본의 모르는 국민들이 많이 알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이동형> 그런데 김복동 할머니처럼 이렇게 용기를 내서 과거를 증언해주셨던 할머니들이 이제 몇 분 안 남으셨잖아요?
◆ 송원근> 스물한 분 남으셨습니다.
◇ 이동형> 김복동 할머니도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하셨고.
◆ 송원근> 맞습니다.
◇ 이동형> 남은 할머니분들은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 송원근> 남은 할머니분들은 여전히 27년간 이 피해 할머니들께서 주장하신 것은 똑같습니다. 범죄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죄를 한 다음에 법적으로 배상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역사 교육을 하라는 게 30년 가까이 이분들께서 줄기차게 주장해오셨던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라고 말도 안 되는 합의를 한 거였거든요. 그분들은 여전히 지금도 똑같은 주장을 하고 계십니다.
◇ 이동형> 그러니까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고, 진정한 사과가 먼저인데.
◆ 송원근> 우리에게 사과하라. 우리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하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사과하라는 겁니다.
◇ 이동형> 당시 정부에서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협정을 맺은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맺은 것이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더 화가 나신 거죠.
◆ 송원근> 맞습니다. 단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아까도 잠깐 얘기했습니다만,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 이런 게 관객들도 느꼈으면 싶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 송원근> 네, 맞습니다.
◇ 이동형> 구체적으로 관객들이 이것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으면 하고 바라십니까?
◆ 송원근> 저는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이 문제가 이런 것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제대로 알고 있다고 저도 착각을 하면서 지난 시간 동안 살아왔거든요. 영화를 만들고 나서야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게 잘못 알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관객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게 잘못됐었고, 이번 영화를 계기로 제대로 알고, 내 머릿속에, 내 마음속에 이런 사실들에 대해서 꾹꾹 눌러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게 저의 바람입니다.
◇ 이동형> 최근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같은 영화. 또 . 그거는 어쨌든 스토리를 만들어서 새롭게 조명, 구성한 것이지 않습니까? 이번에 감독님이 만든 이라는 영화는 결국은 다큐멘터리 영화죠?
◆ 송원근> 그렇습니다.
◇ 이동형> 그러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보기에는 조금 흥행 면에서는 떨어지지 않겠느냐, 이런 걱정도 하셨을 것 같아요?
◆ 송원근> 그런 걱정은 안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수 백 만의 관객을 거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영화도 드라마보다 더한 사실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사실들을 배열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서 담아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관객분들께서 잘 알아주시고, 봐주실 거라 믿습니다.
◇ 이동형> 러닝타임이 얼마나 됩니까?
◆ 송원근> 101분입니다.
◇ 이동형> 상당히 기네요?
◆ 송원근> 짧습니다.
◇ 이동형> 하기야 100분 안에 할머니 인생을 다 담기는 어렵겠죠.
◆ 송원근> 맞습니다.
◇ 이동형> 어떻게 편집하느냐, 이것도 굉장히 고민이었을 거 같습니다.
◆ 송원근> 굉장히 머리가 많이 아팠습니다.
◇ 이동형> 영화 수익금도 좋은 일에 쓰신다고요?
◆ 송원근> 저희가 영화 수익금이 나면, 100%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활동에 쓸 생각입니다. 절반은 김복동 할머니와 활동했던 정의기억연대 활동자금으로 저희가 기부를 할 거고요. 절반은 이 할머니들의 역사나 이런 부분들이 아카이빙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도 이번에 영화를 준비하면서 그런 부분들이 없어서 자료조사 하는 데 애를 먹었는데요. 그런 부분들을 잘 정리하고, 아카이빙 시스템을 구축해서 언제든, 누구나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런 것을 준비하고 싶습니다.
◇ 이동형> 감독님, 지금 ‘뉴스타파’ 근무하고 계십니까?
◆ 송원근> 네,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영화 찍으면서는 이게 양쪽 일을 다 하셨습니까?
◆ 송원근> 그건 아닙니다. 이게 뉴스타파에서 제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 이동형> 그렇군요. 끝으로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에게 한 마디 하시죠.
◆ 송원근> 이 영화는 단순하게 할머니의 노고만을 다룬 게 아닙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지난 역사 속에서 김복동 할머니라는 한 사람이 어떤 고뇌와 마음가짐으로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를 역사 속의 주요 기점에서, 사람으로서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많이 보셔서 공감해주시고, 할머니의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감싸 안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동형> 감독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송원근>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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