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중대재해처벌법 125일째...힘없이 쓰러진 KT 서비스 노동자

2022.05.31 오후 02:35
■ 진행 : 김정아 앵커, 박석원 앵커
■ 출연 : 이준엽 / 사회1부 기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오늘(31일)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25일째 되는 날입니다.

하지만 KT의 인터넷이나 전화 개통·사후관리를 담당하는 자회사 노동자는 오히려 업무상 스트레스로 쓰러지는 일이 일어났는데요.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안전은 얼마나 개선됐는지 취재한 이준엽 기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아프다고 말을 했는데도 어쩔 수 없이 일하러 가던 노동자가 길에서 쓰러졌다고요.

[기자]
먼저 화면부터 보시겠습니다.

지난달 22일 경기 고양시에서 KT서비스 북부 직원 김 모 씨가 차를 갓길에 세우고 갑자기 주저앉는 모습인데요.

점심시간부터 심하게 어지럼증을 느끼다가 결국,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겁니다.

병원에서는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걸린다고 알려진 '전정신경세포염' 진단을 내렸는데요.

당시 김 씨는 다른 지점에서 파견 근무를 나온 상황이었는데요.

김 씨는 지점장에게 이미 몸 상태를 보고했었습니다.

그런데 업무 조정은커녕 일을 못 하면 근무하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되려 면박을 들었다고 합니다.

중간에 다른 팀원과 근무를 조정하려 했지만, 역시 실패했는데요.

결국, 쓰러진 뒤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 고객에게 직접 전화해 못 가겠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김 씨 설명 들어보시죠.

[김 모 씨 / KT서비스 북부 직원 : (사무실에서 쉬는 모습을 보고) 모뎀 다 반납하고 당장 원래 근무하던 서대문으로 가든가, 여기 보기 안 좋으니까 차 안에서 쉬어라….]

[앵커]
이렇게까지 일하려 가야 했던 이유는 뭐고, 몸이 아팠던 이유는 뭔가요?

[기자]
김 씨는 취재진에게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바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스트레스도 늘었다는 건데요.

노동자 안전을 위한 법인데, 이해가 잘 안 가는 설명이죠.

사정을 들어봤더니요.

2인 1조 원칙이 안전을 위해 꼭 지켜져야 한다는 데는 모두 동의하실 겁니다.

KT서비스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일정 기간은 2인 1조 의무화를 시도했는데요.

문제는 인력이 충분히 확보가 안 된 상태에서 시행되다 보니, 업무량 부담이 생겼습니다.

기존 단독 작업으로 하던 일을 둘이서 하려니 좀처럼 처리속도가 안 나는 거죠.

김 씨는 격무에 시달렸습니다.

지원이나 파견근무도 많아졌고 지원 간 곳에서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도 빚어졌습니다.

이렇게 밀린 일과 파견 나간 곳에서의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몸이 아프고, 아픈데도 근무 조정이 안 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김 씨는 설명합니다.

[앵커]
김 씨 일에 대해 회사는 뭐라고 해명했습니까?

[기자]
우선 조정 없이 김 씨에게 면박을 준 지점장은 김 씨가 공론화 낌새를 보이자 뒤늦게 사과했습니다.

당시 기분이 좋지 않아 말실수했고 그렇게까지 아픈 줄은 몰랐다고 해명했는데요.

KT서비스도 비슷한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김 씨가 체한 것 같다고 했을 때 업무를 조정하고 휴식을 취하도록 배려했다는 건데요.

이미 업무가 모두 조정됐다면 왜 노동자가 쓰러질 당시 고객 집으로 가고 있었고 스스로 고객에게 전화해 일을 미뤄야 했는지 취재진이 되물었습니다.

사측은 자세한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앵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측이 안전을 위해 내놓은 대책도 점검해 봤다고요.

[기자]
사실 고되더라도 더 안전한 일터를 위해 필요하다면 계속 방침을 지켜나가야겠죠.

KT서비스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후로 이런저런 안전대책을 많이 내놓고 있는데요.

문제는 이 대책들을 들여다봤더니, 안전에 정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는 겁니다.

앞서 언급한 2인 1조 원칙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한 달 정도는 의무화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업무가 계속 밀리자 '노동자 자율'로 하도록 슬그머니 물러섰습니다.

안전이 실질적으로 향상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노동자들의 설문조사로도 드러나는데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 안전강화가 안 됐다고 응답한 비율이 무려 63.7%에 달합니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안전확보를 위해서 열악한 작업 환경 개선과 적당한 작업량이 필요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런저런 대책도 좋지만, 자원을 투입해서 작업량과 환경을 개선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겁니다.

[최낙규 / KT서비스 남부 노동자 : 하루, 아니면 시간당 적정한 작업량이 돼야 할 거고요. 실질적으로 그런 대책을 내놓는 사람들이 현장은 거의 모르는, 문외한인….]

[앵커]
작업량과 환경, 어느 정도길래 이렇게 이야기가 나오는 건가요?

[기자]
시청자분들도 KT 인터넷이나 전화를 이용하시는 분 많을 텐데요.

하루라도 인터넷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견디기 어려우실 겁니다.

그러다 보니 고객들 독촉이 심한 업종인데요.

이런 일거리가 잔뜩 쌓였을 때 안전 때문에 일을 미루고 싶어도, 대신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당장 오늘도 하루 동안 27곳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제보가 들어오는 실정인데요.

밤이나 주말에도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 대기자가 필요합니다.

취업규칙에는 분명히 자율로 돼 있는데도 사실상 강제로 여겨질 정도이고, 취재진은 본인이 거부하는데도 의무 배정한 사례를 여럿 확인했습니다.

야간·주말 대기를 두고 팀원들끼리 노·노 갈등이 날 정도라며 과한 업무량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게 노동자들의 하소연이고요.

저희가 확보한 여러 정비가 안 된 장비들 사진도 보시겠습니다.

선이 전혀 정리가 안 돼 엄청나게 뒤엉켜 있고요.

단자함이 대롱대롱 매달려 전선도 불안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올라가서 작업해야 할 전신주는 확 기울어져 있어서 걱정스러워 보이고요.

밟고 올라갈 못, 즉 '각정'이 없어 맨손으론 올라갈 수 없는 곳도 많습니다.

잦은 고장으로 등주작업을 유발하는 장비들, 혹은 휘어있는 전신주처럼 위험한 시설을 개선해야 안전이 개선된다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강석현 / KT서비스 북부 노동자 : 계속 올라갈 때마다 불안은 하죠. 특히 좁은 골목길 같은 데는 저희 사다리 놓으면 차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간혹 차들이 지나가다가 사다리를 치는 경우도 있어요.]

[앵커]
회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발맞춰 추진한 정책 가운데 특히 직원 반발이 심한 것이 있다고요?

[기자]
네 회사에서 '블라인드 감찰'이라고 이름 붙인, 이른바 암행감찰인데요.

수시로 현장에 조용히 찾아와 안전수칙을 지키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른 본부끼리 교차 감찰을 해서 감찰의 실용성도 높였다고 사측은 설명하는데요.

노동자들은 반대로 감찰이 너무 경쟁적이고 '트집 잡기' 수준이라고 지적합니다.

잠옷 차림으로 나타나 사진을 찍은 뒤 '안전수칙 위반'으로 적발됐다고 알리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는데요.

작업 도구를 가져가려 차량에 잠깐 들르는 직원을 안전모를 벗었다는 이유로 적발하는 등 상식 밖의 단속을 한다는 게 직원들 하소연입니다.

[홍성수 / KT서비스 북부 노동자 : 사진 찍고 스윽 사라져서 다음 날이나 다음다음 날 아침 회의 시간에 관리자가 그 사진을 제시하면서 너 이렇게 하고 다니면 되겠냐. 이런 식으로 피드백이 오면 이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앵커]

그럼 마지막으로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회사에서는 어떻게 해명했는지 말씀해주시죠.

[기자]
KT서비스에서는 여러 차례 실질적인 안전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설명 자료를 보내왔는데요.

우선 지난해에는 5월 말까지 산재가 5건 있었는데 올해는 전혀 없을 정도로 안전이 나아졌다고 설명했고요.

작업기피권을 이용하는 건수가 하루 오백에서 천 건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안전점검에 대해서는 실적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직원이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적이 없고, 안전 생활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앞서 현장에서 확인한 것과는 괴리가 있는 해명도 있었는데요.

외부 위험작업 2인 1조 원칙을 포기한 적 없다고 반박했고요.

또 계속해서 인력을 충원하고 낡은 시설을 개선하는 등 안전을 최우선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야간·휴일대기도 서비스 특성상 어쩔 수 없다며 강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본 것과 다른 면이 있고 취업규칙이나 규정에 비추어서도 이해하기 힘든 설명이 있죠.

[앵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20일을 넘겨서 한 기업의 상황을 요모조모 짚어봤는데, 노동자의 실질적인 안전이 개선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자]
KT서비스 안전표어는 "우리 현장은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참 와 닿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무엇보다 안전이야말로 최우선 해야 할 가치라는 점이 잘 담겨 있는 듯합니다.

회사에서도 번듯한 지침과 각종 안전 대책을 꼼꼼히 내놓았지만요.

이런 안전을 위한 대책은 결국, 일할 때 좀 더 불편하게 만드는 정책입니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효율이 떨어지는 걸 감수하면서도 안전대책을 잘 지키도록 하려면 그럴 수 있는 여유가 노동자들에게 생겨야겠죠.

KT서비스는 현재 최저임금에 가까운 수준의 기본급을 주고 나머지는 작업량에 따른 수당으로 채우는 급여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막대한 업무량과 합쳐지다 보니 도무지 안전을 위한 여유를 낼 수 없다고 하는데요.

앞으로 표어에 걸맞은 사내문화를 만들려면 사원 복지와 기본적인 처우에 대한 개선도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취재진은 앞으로 이런 부분을 고려한 안전 대책이 세워지도록 지켜볼 계획이고요.

KT서비스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 현장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대책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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