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형사 콜롬보' 범죄 수법 따라 부친 살해" 유복한 유학파 교수, 왜 그랬을까

2024.10.15 오후 12:05
■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4년 10월 15일 (화)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안수진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원화변호사(이하 이원화):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이 어느 날 갑작스레 사고로 돌아가신다면 그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요? 악어의 눈물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악어는 인간과 달리 아프거나 슬플 때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잡아먹으려 할 때 눈물을 흘리곤 하죠.잡아먹는 생명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저 입을 움직이는 신경과 눈물샘의 신경이 같아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 구조라고 하죠. 그러다 보니 감정 없는 거짓으로 흘리는 눈물을 두고 악어의 눈물이라는 표현을 하곤 하는데요. 방금 듣고 온 그러니까 갑작스레 아버지를 여의게 된 A 씨의 눈물은 어떻게 들으셨나요? 며칠 후 A 씨의 눈물은 그저 악어의 눈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유학파에 존경받던 현직 교수였던 A 씨는 왜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던 걸까요? 오늘 사건 X파일에서 이 사건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안녕하세요.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 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안수진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안수진 변호사(이하 안수진):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 안수진 변호사입니다.

◆이원화: 이런 일이 정말 벌어질까 싶지만 존속 살해 사건 생각보다 많죠?

◇안수진: 예 그렇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작년 한 해 발생한 살인사건 278건 중 존속 살해 사건이 31건으로 살인 미수 등 사건 492건 중 존속 살해를 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28건으로 결코 적은 비중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원화: 오늘 이야기 나눠볼 이 사건도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존속살해 사건인데요. 사실 남들 보기에는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굉장히 부유한 집안에서 일어났던 일이라 더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안수진: 맞습니다. 사망한 아버지는 유명 사학재단의 이사장이었고 그 재산이 최소 수백억 원 규모로 알려질 정도의 부유한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 A 씨 역시 유복한 집안 덕인지 좋은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유학을 떠나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해서 당시 국내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이원화: 완전 엘리트네요.

◇안수진: 이처럼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가족이었으므로 경찰은 A 씨의 아버지가 살해당했을 당시 가족 구성원 중 범인이 있으리라고는 예견하지 못했고 특히 칼로 급소를 찌른 살해 방법이 매우 전문적이고 잔혹해서 A씨의 아버지가 가진 막대한 재산을 노린 청부 살인은 아니었는지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점차 내부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게 되었습니다.

◆이원화: 어떤 점 때문이었습니까?

◇안수진: 큰 가방을 들고 귀가하는 A 씨의 모습을 보았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확보된 것인데요. 또한 또 다른 목격자는 사건 당일 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A씨의 얼굴에 핏자국이 있었다, 운동복 소매에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었다는 진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더불어 A씨가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약 24억에 달하는 빚을 지는 등 어려워했다는 점에서 경찰은 A씨도 수사망에 올렸고 대신 상중인 점을 감안해서 A 씨의 어머니에게 A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있다라는 언질을 주었습니다.

◆이원화: 24억이라는 게 지금도 굉장히 큰 돈인데, 당시 사건이 발생한 게 1995년이니까 30년 전이에요. 그러니까 진짜 큰 돈일 것 같아요. 그런 큰 돈을 빚지게 된 거였는데 쉽지는 않았겠지만 당연히 아버지에게 도움을 구했겠죠?

◇안수진: 맞습니다. A 씨는 사업 과정에 막대한 채무가 발생하고 곧 부도할 위기까지 직면하게 되었고 이를 변제하고 다시 사업을 할 목적으로 아버지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하였는데 아버지가 이를 거절하였고 그러다보니 이제 아버지를 살해해서 그 유산을 상속받아 채무를 변제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원화: 어떤 영화가 생각이 나네요. 이 아들이란 사람이 범행을 굉장히 치밀하게 준비했더라고요.

◇안수진: 그렇습니다. A 씨는 사건 이틀 전 청계천에서 범행 도구는 물론 범행 직후 입을 옷까지 구매하였고, 범행 도구를 승용차에 숨겨둔 채로 예행 연습까지 했다고 합니다. 특히 A 씨는 예행 연습을 하며 범행 당시 침입로로 사용된 베란다를 거쳐 부모님의 방과 연결된 욕실 창문을 뜯어낸 뒤 다시 본인의 방까지 돌아오는 시간을 재보는 등 매우 치밀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사건 당일에는 알리바이를 만들고자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지면서 부모님이 걱정하신다. 잠깐 집에 다녀오겠다며 일어난 뒤 집에 돌아와서 TV를 보는 어머니가 인기척을 듣지 못하도록 미리 거실 목욕탕의 보일러 온도 조절기를 가동시켜두었고, 예행 연습을 했던 것처럼 안방에 침입한 뒤 아버지의 얼굴을 수건 2장으로 가린 채 과도로 살해하였습니다. 이후 A 씨는 혼란한 틈을 타 집 앞에 주차되어 있던 동료의 승용차 트렁크에 범행 도구를 넣은 후 어느 빌딩으로 가서 칼은 인근 하수구에 버리고, 가방은 인근 쓰레기 적하장에 버렸습니다.

◆이원화: 이 정도면 완벽한 계획범죄네요.

◇안수진: A씨는 경찰 조사 당시 무협 소설이나 만화에서 범죄 수법을 배운 적이 있느냐 그런 거 아니냐라는 담당 경찰의 질문에 평소 즐겨보던 TV극인 형사 콜롬보에서 자주 등장하는 범죄자들의 범죄 행위가 이 사건 범행을 결심한 이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라고 진술하였습니다. 당시 언론 보도 내용에 의하면 A씨는 범행을 결심한 이후에도 약간 망설인 것으로 보이고, 사건 전날에도 술까지 마시고 귀가하였지만 집에 있는 부모님을 보니 차마 아버지를 살해할 수 없겠다 라는 심경 변화로 인해 범행을 하루 미루었다고 합니다. 어찌 되었든 A 씨는 아버지를 흉기로 찌른 후 베란다를 통해 본인의 방으로 복귀하였고, 아버지를 발견한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들은 후 곧바로 피가 묻은 옷 위에 범행 도구와 함께 구매해 두었던 큰 옷을 입어서 핏자국을 가렸습니다. 그리고는 본인이 찌른 아버지를 본인이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결국 아버지는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원화: 참 연기력이 대단하다 싶은 게 장례식장에서도 형사님들한테 범인을 꼭 좀 잡아달라, 원한을 풀어달라 읍소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범행 동기는 결국 돈이었던 겁니까?

◇안수진: 경찰은 유학까지 다녀온 교수가 돈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하기는 쉽지 않겠다라는 의문을 품었고, A 씨는 진짜 동기가 무엇이냐는 경찰의 추궁에도 자금 압박 때문이라고만 조서에 기재해 달라고 진술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수사를 이어받은 검찰은 A씨의 채권자들이 A씨의 집에 전화를 걸면서 빚을 갚으라고 하는 걸 알게 된 아버지가 A 씨의 경영 미숙을 심하게 질책하였다는 점, 그리고 아버지의 유언이 장남인 A씨에게 기존에 상당히 불리하게 설정되어 있었던 점, 종교 문제 등으로 고부 간 갈등도 있어 왔다는 점, 미국에 있던 자녀가 척추 수술을 앞두고 있었을 때에도 아버지에게 금전적인 요청을 거부당했던 점 등 A씨의 범행 동기에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하였을 거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이원화: 그리고 이 사람이 정말 생각을 잘못한 게 이렇게 살인을 저지르면 자신이 원했던 상속 이거 아예 못 받게 되는 거잖아요.

◇안수진: 맞습니다. 민법은 고의로 직계 존속 피상속인 배우자 또는 상속인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고 한 자를 상속인의 결격 사유로 규정하고 있고, 해당 조항은 이 사건 당시에도 동일하게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원화: 아버지가 도울 만한 경제적 여건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도와주지 않은 것. 당연히 자식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를 살해해야겠다 마음먹지는 않거든요. 너무나도 잘못된 선택 아니었나 싶습니다.

◇안수진: 예 그렇습니다. 실제로 A 씨는 체포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 돈 때문만은 아니다. 아버지와의 가치관 차이로 인해 생겨난 갈등이 가족 모두에게 미쳤을 때 견디기 힘들었다. 나 같은 놈은 용서받지 못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식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어리석었다 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원화: 늦은 후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안수진: A 씨는 당초 자신의 범행을 강도 사건으로 위장하고자 하였지만 가족 회의를 하면서 이제 경찰로부터 미리 언질을 받았던 어머니가 자수를 이렇게 설득을 하자 수사기관의 금전 문제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하게 되었는데요. 그러나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 기소된 A씨는 법정에서 열 사람이 한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면 그것을 어찌 가족이라 할 수 있겠는가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주장을 개진하였습니다. 이에 검찰은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 범행이라며 A씨에 대해 사형을 구형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원화: 존속 살해라는 게 사실 일반 살인죄에 비해 형량이 많이 무겁죠.

◇안수진: 물론입니다. 특히 당시에는 아직 우리나라의 사형제가 시행되고 있을 때이기도 합니다. 다만 A씨의 어머니는 권위적인 남편이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라고 증언하였고, 결국 1심 재판부는 A 씨에 대해서 치밀한 사전 계획을 세워 잔인한 방법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사실은 인정이 되나 가족들의 선처 호소 등을 감안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히며 무기징역을 선고하였습니다.

◆이원화: A 씨가 이 무기징역 형량 받아들였나요?

◇안수진: 그렇지 않습니다. A 씨는 이에 불복하여 상소하였으나 대법원에서 그대로 형이 확정되었습니다.

◆이원화: 그런데 감형돼서 출소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안수진: A 씨는 종국적으로 사형이 아니라 무기징역에 처해졌기 때문에 가석방의 대상이 됩니다. 가석방은 일정 기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수감자가 충분히 교화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임시적으로 출소시키는 제도인데요. 무조건적으로 내보내는 것은 아니고 가석방 후 해당 수감자가 또다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남은 형기를 보내었다면 석방 처리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 즉 무기수가 가석방을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20년은 복역을 하여야 합니다.

◆이원화: 20년이면은 당시가 95년이니까 2005년 이후에는 가석방이 실제로 됐을 수도 있는 거네요. 무기수 가석방에 대한 논란 굉장히 뜨겁잖아요. 이 사건 같은 경우도 찬반이 많이 갈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수진: 그렇습니다. 무기수 가석방에 대해서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고 하더라도 복역을 하며 교화가 된 사람들을 사회로 돌아오는 것이 마땅하다는 찬성 의견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정도의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영구적으로 사회와 격리가 필요하다는 반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법무부는 작년에 묻지마 범죄들이 잇따르면서 그 처벌 방안으로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을 추진하였으나 21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여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습니다. 한편 이 사건의 경우 A 씨가 가석방된 후 A 씨의 어머니가 사학재단 소속 학교들의 운영권을 130억 원에 매각하였는데,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 A씨에게 그중 76억 5천만 원이 증여되어 형제 간 갈등이 발생하는 등 논란이 일기도 하였습니다.

◆이원화: 사건 X파일 오늘은 대학 교수였던 아들이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아버지를 무참히 살해했던 존속 살해 사건 살펴봤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울먹이며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달라 말했다는 A 씨. 과연 그 눈물 가운데 단 1%라도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존재했을까요?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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