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랑해 딸, 다음 생에도"…'싱글맘 불법사채' 1년 반 만의 단죄 [와이파일]

2026.04.10 오후 05:30
딸아, 죽어서도 다음 생이 있다면 사랑한다.
비가 추적이던 날…끝내 눈물 떨군 유가족
"아이 보러 가겠다"…유치원까지 침범한 추심
"싱글맘, 다급하게 도움 요청"…치밀했던 수법
"한 달 수입 3천만 원…배운 건 협박 방법뿐"
사망 뒤에야 보고된 첩보…외면받은 피해자들
싱글맘 사망 1년 반 만에 이뤄진 단죄, 징역 4년
불법추심 끝에 숨진 싱글맘 유서 일부 (YTN 보도 캡처)
■딸아, 죽어서도 다음 생이 있다면 사랑한다.

어린아이의 손때 묻은 인형과 장난감이 가득한 곳. 여느 평범한 가정의 따뜻한 보금자리였습니다. 가장 잘 보이는 찬장 유리에는 알록달록 색연필로 그려진 아이와 엄마가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딸을 미소 짓게 해줄 엄마의 모습은 이제 집안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대신 눈물로 꾹꾹 눌러쓴 8장의 유서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내 똥강아지, 너로 인해 울고 웃었고, 사람이 됐다 생각했는데…."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보는 너의 얼굴이, 목소리가, 웃음이, 장난치는 짓궂음이 하나하나 모든 게 대못처럼 박힌다."
"주말 동안 먹고 싶어 했던 빼빼로, 젤리 직접 전해줄 수 없어 정말 미안하고, 사랑한다, 내 새끼"

지난 2024년 9월, 전북 완주군에 있는 펜션에서 3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서 세상을 등진 이 여성은 마지막 순간까지 여섯 살 딸을 그리워했습니다.

떨치지 못한 회한과 '보고 싶다'는 말이 수없이 되풀이됐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만 남겨두고 왜 그토록 모진 선택을 한 걸까.

조 대리 90만 원, 고 부장 40만 원…. 노트 마지막 장에 적힌 불법 사채업자들의 명단과 빌린 금액이 비극의 단서였습니다.
■비가 추적이던 날…끝내 눈물 떨군 유가족


아이의 그림으로 남은 엄마와의 행복했던 순간 (YTN 보도 캡처)

무작정 기차를 타고 여성의 유가족을 찾아가던 길, 창밖으로 내내 비가 내렸습니다. 어렵게 연락처를 얻어 전화해 봤지만, 혹여나 아이에게 해가 될까 취재를 완강히 거부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유가족은 심장병과 뇌경색으로 몸이 성치 않은 데도, 남겨진 아이를 돌보기 위해 휴일조차 잊은 채 배달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이 세상에 꼭 알려져야 한다며 나서 준 가게 사장님 덕분에 가게 한쪽에서 겨우 마주 앉을 수 있었습니다. 굳게 닫혔던 입술은 결국 여성의 고단했던 삶을 털어놓으며 눈물로 젖어 들었습니다.

"딸을 낳은 지 얼마 안 돼 전남편과 이별했고, 양육비 한 푼 보내지 않아서 혼자서 아이를 키웠어요. 평일엔 서울에서 일하고, 주말엔 집으로 달려와 딸과 시간을 보내는, 아이를 지극히 사랑하는 엄마였습니다."

사채에 처음 손을 댔을 때도, 경찰서 앞에서 머뭇거리다 결국 발길을 돌렸을 때도, 이미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라 소진된 상태가 아니었을까. 불법 사채업자들이 무참히 파괴한 한 가족의 일상, 취재가 계속돼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아이 보러 가겠다"…유치원까지 침범한 추심


유가족은 아이 엄마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YTN 보도 캡처)

'싱글맘 연속보도'의 출발점이 된 유서를 확보한 건 그로부터 한 달여 만이었습니다. 계속 전화와 문자로 진심을 전하자, 유가족이 마침내 "인터뷰하겠다"며 용기를 내준 겁니다.

수십만 원으로 시작한 빚은 연이율 수천 %에 달하는 살인적 금리에 한 달이 안 돼 천만 원이 넘는 빚더미로 불어났습니다. 돌려막기를 시도했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고,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무차별한 추심이 시작됐습니다.

"유치원 선생님에게까지 전화해 아이를 보러 찾아가겠다고 협박했어요."

잔혹한 추심은 여성의 가장 소중한 곳까지 침범했습니다. 딸이 다니는 유치원에 아이를 보러 가겠다며 전화하고, 다른 엄마들과 지인들에게도 가족사진은 물론 집 주소까지 포함한 협박 메시지를 하루에 수백 통씩 뿌렸습니다. 지인들은 여성이 딸에게까지 피해가 번졌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했고, 결국 무너져 내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싱글맘, 다급하게 도움 요청"…치밀했던 수법


사채업자가 싱글맘에게 보낸 불법추심 문자 (YTN 보도 캡처)

여성은 숨지기 전 채무를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불법 사채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취재진은 이 사실을 포착하고 카페 운영자 남성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처음 연락했을 때는 협박이 시작됐다고 불안해하면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어요.
책정된 이자는 연 3천~4천%, 법정 이자율을 한참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남성은 드문 일이 아니라며 불법 사채 피해자들의 부고장이 한 달에 한 장씩은 날아온다고 말했습니다.

수법은 싱글맘의 사례와 유사했습니다. 차용증에는 이자율과 원금은 쏙 빼고 '갚아야 할 돈'만 적었으며, 문서를 들고 있는 채무자 사진을 꼭 요구했습니다. 채무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직장 등 개인정보와 친인척 연락처도 받아 갔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원금이라도 대신 갚으라'며 거짓말로 협박하기 위한 교묘한 덫이었습니다.
■"한 달 수입 3천만 원…배운 건 협박 방법뿐"


전직 사채업자도 불법추심에서 발을 빼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YTN 보도 캡처)

어떤 사람이 불법 사채업자가 되고, 이렇게 악랄하게 추심을 하는 걸까. 취재진이 만난 전직 사채업자 A 씨는 인터뷰 내내 착잡한 표정이었습니다.

"피해자 중에 의사 선생님도 있었어요.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식물인간이 된 모습을 가족이 촬영해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큰돈에 눈이 멀어, 해선 안 되는 일을 너무 많이 했다며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불법 사금융 업체에 들어가자마자 배운 건 나체 사진을 퍼뜨리겠다며 채무자 숨통을 조이는 수법이었습니다.

가명과 대포폰, 대포 통장을 쓰는 건 기본이었고 사채업자들 8백여 명이 모인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채무자의 개인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했습니다. 외모 비하와 인격모독은 물론, 누가 돈을 잘 갚는지, 누가 절박한 상황인지에 대한 비정한 계산도 오갔습니다.

잘못이란 걸 알면서도 한 달에 1천만 원에서 3천만 원이 들어오자, 죄책감은 무뎌졌습니다. 여기에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자신의 유심이나 통장도 범행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아, 더욱 발을 빼기 쉽지 않다는 게 A 씨 설명이었습니다.
■사망 뒤에야 보고된 첩보…외면받은 피해자들


싱글맘 지인이 경찰 정보관에게 공유한 불법추심 문자 (YTN 보도 캡처)

불법 사채가 독버섯처럼 번지는 동안 수사기관과 금융기관은 뭘 했던 건지 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싱글맘이 숨지기 전에도 경찰에 일부 피해 사실이 전달됐지만,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경찰 정보관이 서울경찰청에 첩보를 올린 건 여성이 숨진 뒤였고, 정식 수사는 그로부터 또 한 달이 지나서야 시작됐습니다.

"대포 통장이라서 (사채업자를) 잡을 수가 없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냥 50만 원 드리고 말라고, 말을 막 하는 거예요."

취재진이 만난 다른 피해자들도 수사기관의 미온적인 대응에 더 큰 절망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YTN 보도 이후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유감의 뜻을 밝혔고 대통령 지시에 따라 금융위와 법무부 등 관계 기관들이 앞다퉈 대책을 내놨습니다. 사채업 진입 장벽을 높이는 대부업법 개정안도 국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출 중개 플랫폼을 접속하면 정식 등록 업체인 것처럼 행세하는 불법 사채업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징역형의 집행유예, 벌금형에 그치는 처벌 수위가 불법 사금융의 생명력을 연장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싱글맘 사망 1년 반 만에 이뤄진 단죄, 징역 4년


싱글맘 불법추심 등 혐의로 기소된 사채업자 김 모 씨 (YTN 보도 캡처)

YTN의 연속 보도 이후 대대적인 수사 끝에 싱글맘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불법 사채업자 10여 명이 줄줄이 붙잡혔습니다.

가장 먼저 검거된 30대 김 모 씨는 취재진을 마주칠 때마다 부리나케 꽁지를 뺐습니다. 명품 클러치로 얼굴을 가리려 애썼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황급히 법원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사건 발생 1년 반 만에 이뤄진 1심 선고 결과는 징역 4년이었습니다. 취재진에게 "협박한 적 없다"고 단언했던 김 씨는 그 자리에서 법정 구속됐습니다.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내용의 인격 모독적인 욕설과 온갖 협박을 일삼았으며, 결국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한 채무자가 생을 포기하는 비극적인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재판 전부터 법정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만석으로 차마 들어가지 못한 이들까지, 여성을 잊지 않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탄식하며 법원을 나선 한 지인의 말을 끝으로 '싱글맘 불법 추심 사건'의 취재 파일을 맺겠습니다.

"밝은 아이였거든요. 아직도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나요.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각나요. 제발,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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