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 속 기자들은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진실을 추적합니다.
언론사에 상주하는 중앙정보부 기관원들은 정부 입장에 반하는 기사를 노골적으로 탄압하고 거리낌없이 폭력을 행사합니다.
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는 당시 시대 모습, 어디까지가 사실일까요?
YTN 취재진이 당시 외교통상부 문서를 외교문서 열람청구로 확보해 꼼꼼히 들여다봤습니다.
피격 이튿날 국내 신문 기사들입니다.
모든 국내 언론은 '박 대통령 암살 저격 모면', '범인 23세 문세광', '재일동포' 등 사실 중심으로 보도했습니다.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했습니다.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럴 수가."
이어진 후속 보도부턴 통제의 흔적이 정부 문서에서 드러납니다.
일본 법원을 비판한 조선일보 기사, 논평에 대해, '대일본 비판 기능을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이런 논평 기사의 '많은 게재가 요망됨'이라고 적었습니다.
반면 서울신문 1면 톱 기사인 '한일, 9월 중 고위 회담' 기사는 "대일 강경 대책을 추구하고 있는 정부 기본 방침에 어긋나는 논조"라며, '문제점'이라고 평가하고, '일본 정부 망발을 다른 매체에서 크게 보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심층적인 해설보도를 게재해 정부 입장을 뒷받침할 것이 요망', '언론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국회 법사위를 소집하는 것도 고려', '일본 특파원들이 한국 입장을 뒷받침하도록 법 학자들을 찾아 인터뷰 기사를 송고'.
정부는 사실상 국내 모든 언론의 데스크였습니다.
"배반과 불신 외교로 일관해 온 일본 정부와 편파적인 보도를 해온 일본 언론계에 대해 즉각 시정하고 정식 사과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대일 강경 입장을 통보한 날, 신문 1면 톱으로 보도한 것조차 '문제점'이라고 평가 절하하며, '사설과 전문가 기고를 통해 정부 입장을 더욱 강력히 뒷받침할 것이 요망됨'이라고 적었습니다.
일본이 남북 통일보다 분단 상태를 더 바란다는 동아일보 사설에 대해선, '우리 정부의 대일 정책을 비판했다'라고 지적했고,
'조총련과 산하 단체의 파괴활동과 이색선전을 사건별로 취합해 크게 부각시켜야 할 것으로, 관계기관의 자료 협조가 요망됨'이라며, 이슈를 더 크게 만들기 위한 정부 자료 제공도 목표로 했습니다.
"8.15 사건은 일본이라는 다리를 건너온 북한 괴뢰 국가 변란 획책 사건이라고 지적하고 일본 당국이 사건 수사에 성의를 보이고 조총련 활동을 막으라고 촉구했습니다."
서슬 퍼런 검열의 칼날은 세밀하고 집요했는데요.
당시 언론보도를 신문명과 일자, 제목, 게재되는 면, 단 수, 취재기자 이름까지 표로 만들었고요.
가판과 실제 신문 제목이 바뀌는 것까지 구체적으로 파악해 정부 공식 문서로 남겼습니다.
파놉티콘의 눈은 국내 언론에만 그치지 않았는데요.
정부 발표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한 일본 NHK 방송에 대해선, 문화공보부 장관이 주일 공보관에게 '즉각 조치하고 결과 보고 바람'이라는 문구를 손글씨로 적은 문서도 발견됩니다.
언론에 대한 혹독한 검열은 역설적으로 박정희 정권이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고립되어가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육영수 여사 피습 이튿날, 뉴욕타임스 사설입니다.
박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과 영부인 사망은 한국 독재자가 처한 곤경을 다시 한번 강조해주는 비극이라고 평가했는데요.
박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직면한 문제는 '독재자가 직면한 생존의 문제'라며, 미국이 군사 원조를 계속 제공할 가치가 있는지, 박 대통령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미국의 다른 매체 사설도 비슷한데요.
박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을 두고, 권위주의적 통치 노선이 더 많은 반대와 적대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암살 미수 사건 전, 정부 전복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거의 200명이 사형이나 장기징역을 선고받았다는 한국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포드 대통령조차 우려를 표했고, 미 상원 외교위원회가 한국의 군사 무상원조를 삭감한 사실도 적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인권에 대해 양심선언한 기독교인들을 순교자로 만들었고, 그 결과 우방인 일본과의 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는 논설도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시대착오적이고, '몽골스러운'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야만적이라며,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 상실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사형 선고까지 받는 게 오늘날 한국의 비극이라는 문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신 기사 스크랩에서 이런 뉘앙스의 보도는 점점 사라졌습니다.
당시 외무부 장관이 모든 재외공관장에게 보낸 전보입니다.
"문세광 범행은 북괴 김일성의 직접 지령에 따라 이뤄졌음이 자백으로 명백"하다며, 주재국의 주요인사와 언론기관, 전문가 등과 접촉해 기고, 사설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여론 조성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지시했습니다.
부득이하면 돈까지 지불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날수록 중정의 수사 결과 속보와 과격해지는 반일 시위, 한국과 일본의 첨예하게 갈리는 입장 보도 등으로 외신 보도 비중이 쏠렸습니다.
취재진은 국가기록원에 등록된 당시 사진들도 전수조사했는데요.
'육영수 여사 서거에 관계된 불법 간행물 소각'이라는 사진들도 있었는데, 박정희 정권 시절 '불법 간행물'의 기준은 '유언비어'였습니다.(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유언비어를 판단하는 주체는 정부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피격 일주일 뒤 '장례 보도 협조 언론 및 방송인 접견'이라며 언론인들을 만나 악수한 사진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언론 검열의 시대, '보도 협조'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취재진은 영화의 모티브가 된 당시 동아일보 해직기자, 이부영 동아투위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이부영 /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동아일보 해직기자)
"계엄포고령으로 잡혀갔는데 거기(중앙정보부) 들어가면 우선 기죽이려고 매타작부터 하는 거죠. 그런 걸 많이 당했어요. 매를 때리는데 곡괭이라는 게 있죠, 곡괭이. 나무 자루를 뺐다 끼웠다 할 수 있다고. 이렇게 몽둥이가 이만한 건데 아주 단단한 몽둥이. 곡괭이 자루라고 그러잖아요. 그런 걸로 보통 때린다고.
(어디를 그렇게 때리나요?)
이런 옆에도 때리고 등도 때리고 주로 때리는 게 엉덩짝하고 허벅지를 많이 때리죠. 많이 아프지. 아프고 멍도 들고."
영화와 여러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핵심 의혹은 총알 탄두입니다.
육영수 여사를 피격한 탄두가 발견되지 않은 건데요.
피격 직후 대통령경호실이 수거한 탄두, 당시에 기자들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을까.
이부영 /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동아일보 해직기자)
"그 당시에는 정부에서 발표하고 이러는 거에 대해서 토를 붙이질 못했어요. (토를 못 달았다?) 네, 못 달았어요. 발표하는 거 그대로 받아써라 이 말이야. 그때는 유신체제고 긴급조치가 발동된 시대였거든. 더더구나 국가 원수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그 국가 원수의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고. 그러니까 반공 궐기대회가 계속 일어나고 뭐라고 얘기 조금만 했다가는 그 사람들한테 맞아 죽을 그런 분위기였다고."
"무학여고 학생도, 합창단 학생도 '문세광이가 쏜 총으로 죽었다'라는 식의 발표를 (정부가)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각도로 봐서 문세광이가 그쪽으로 총을 쏠 위치에도 있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았단 말이에요. 분명히 그거는 경호원들이 쏜 총에 죽었거나 그랬을 건데."
실제로 이후 수사당국은 문세광이 쏜 총이 아니라 청와대 경호원이 문세광을 제압하려다 잘못 쏜 총에 여고생이 숨졌다고 기존 발표를 번복했습니다.
"그 뒤에도 의문 제기된 거는 문세광 총에서 네 발이 발사됐고 하나가 불발이 됐고 그리고 총 소리는 여섯 방이 났다고 그랬단 말이에요. 한 발이 없는 거예요. 그 육 여사 머리에 맞은 총알이 관통을 해서 회수가 돼서 수사기관에서 이걸 수사를 하고 있다 이런 말만 나오고 끝. 그리고 그 뒤에 나중에 그것이 중앙정보부에 보관돼 있다, 이런 말들이 있었는데 그것도 끝. 그 뒤엔 어디 있냐고 그랬더니 사라지고 없다 이렇게 된 거예요.
(지금 같으면 백브리핑에서 기자들이 질문하고 했을 텐데 아예 질문할 수 없는...)
할 수가 없었어요."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간섭을 배제한다'
'중앙정보부 기관원의 언론사 출입을 엄격히 거부한다'
육 여사 피습 두 달 뒤 동아일보 기자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했습니다.
이듬해 이부영 기자를 포함한 113명이 해고됐습니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결국 복직하지 못했고, 40여 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는 10월 24일은 자유언론실천선언 52주년입니다.
문세광이 총을 쏜 장면이 선명하게 찍힌 이 사진.
이 총에서 육영수 여사를 숨지게 한 총알이 나갔는지 아닌지는, 대통령경호실이 수거한 뒤 사라진 탄두 때문에 5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논란의 영역에 머물러 있습니다.
언론 통제로 취재의 골든타임을 놓친 사건의 진실은 팩트 없는 주장과 음모론에 갇혀 흐릿하게 지워져 가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취재에 들어가기 전 영화 관람)
"암살자들 영화 보러 왔습니다. 저는 86년생이어서 그 당시에 없었거든요. 내용을 잘 몰라요. 백지인 상태에서 영화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암살자들 보고 나왔습니다.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숨은 범인이 있다, 그 숨은 범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라는 주장을 일각에서 계속하고 있잖아요. 허진호 감독은 전혀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 만들었다, 인간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넘어선 상상이다, 이렇게 인터뷰를 했었는데요. 제가 영화를 보고 느꼈던 결론은 충분히 그렇게 느낄 만한 포인트,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서 그 영화에서는. 스포일러가 좀 있습니다. 유해진 씨와 서울경찰청 감식계장이 암실 같은 데서 얘기하는 장면이 있어요. 감식계장이 탄흔, 총알이 딱 충격한 흔적, 그거의 개수와 실제 총알의 개수가 안 맞는다, 육영수 여사를 쏜 총알은 따로 있을 수 있다, 그러면서 유해진 씨한테 그런 말을 하거든요. 이 사건은 우리가 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이런 취지로 얘기를 해요. 윗선의 존재를 더 암시를 하는 거죠. 문세광 외에 제3의 저격수가 있다라고 들을 수도 있고, 그 윗선이 정부 또는 중정, 중앙정보부일 수 있다, 이렇게도 들릴 수 있거든요. 구체적으로 선을 안 그어놨기 때문에 저는 그 장면을 봤을 때 '아, 영부인 피격 사건의 주범, 또는 공범, 또는 이것을 방조한 사람들은 정권이다'라고 저는 느껴졌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 해석이, 감독의 의도는 제2의 저격범, 또는 중정일 수 있겠지만 그 상상력이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거기에서 조금 패착이 있었던 게 아닌가 저는 생각이 들고요.
그 단점 때문에 이 영화 전부가 매도되기엔 좀 아까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 영화는 그 사건이 있을 때 그 당시 진실을 찾아나가는 사람들의 얘기거든요. 그 당시 언론인들이 얼마나 팩트 하나, 진실을 찾기 위한 사실 하나하나를 취재하려고 노력했고 정말 많은 기자가 해고되기도 했고.
50여 년이 넘게 흘렀잖아요. 많이 달라졌을까요? 기레기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기자에 대한 멸칭이 됐잖아요. 기자들 스스로가 자초한 부분이 있죠. 받아쓰기 정권에 맞는 기사만 쓰고. 정치 권력이나 경제 권력에 부딪치는 기사를 안 쓰려고 하고 스스로 그것들을 체화해서 결국 안 쓰고. 그러면 시청자들은 그런 것들을 알 수가 없고. 더 열심히 취재하고 더 열심히 싸워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영화관 나오는 출구에 써 있던 말)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
-아쉬가르 파라디"
※ 한국의 비극 (뉴욕타임스 1974.8.16 사설)
한국의 인기 없고 억압적인 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그러한 지원이 보장하려는 집단안보상의 이익을 오히려 훼손할 위험이 있다. 어제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과 이어진 그의 부인의 사망은 한국 독재자가 처한 곤경을 다시 한번 강조해 주는 비극이다.
박 대통령이 직면한 문제는 단순히 국제사회에서의 좋지 않은 이미지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통치의 유일하게 실행 가능한 수단이 탄압과 긴급조치(명령)뿐일 때 모든 독재자가 직면하게 되는 생존의 문제이다. 역대 미국 행정부가 세계 곳곳에서 여러 차례 뼈아픈 경험을 통해 확인했듯이, 국민의 지지를 잃은 정권을 끝없이 떠받치는 노력은 미국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이 25년 전 한국전쟁 이후 한국과 유지해 온 긴밀한 관계와 이해관계에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한국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 발전은 아시아 전체의 안보 체제에서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한 이익도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박정희 정권이 더 이상 안정이나 발전을 제공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기를 거부한다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다.
탄압이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한국 정부의 정책이 바로 북한 공산주의 세력이 악용할 수 있는 국내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국내 정책을 지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 역시 미국이 본래의 목적을 더 이상 달성하지 못하는 군사 원조를 계속 제공할 가치가 있는지를 스스로 판단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 한국에서 미국의 딜레마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1974.8. 사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와 그의 부인이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은 한국에서 고조되고 있는 증오와 적대감으로 가득 찬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끔찍한 사건은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 노선이 그 자신과 국가 모두에 더 많은 반대와 적대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정부 전복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현재 거의 200명이 사형이나 장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잔혹한 정책은 불필요하고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며, 한때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던 이 나라의 용기와 재능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한국의 모든 우방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한국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은 거세지고 있다. 포드 대통령과 미국 국무부는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는 한국에 대한 군사 무상원조를 삭감했다. 프랑스와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 정부도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이 모든 신호에도 불구하고, 냉혹한 현실은 박 대통령이 더 이상 세계 여론에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는 미국의 원조가 줄어들 가능성마저 감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은 이처럼 악화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기본적인 관심사는 세계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에서 적대 행위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미국은 주한미군 일부 철수와 같이 평양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무모함으로 잘 알려진 북한 지도자의 무모한 행동을 자극할 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키프로스에서와 마찬가지로, 강대국들이 작은 나라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막지 못하는 현대의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미국이 독재 정권을 지원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해야 하는 상황에 너무 자주 처한다는 사실은 미국 외교가 짊어진 무거운 부담 가운데 하나다.
포드 대통령이 임기 초기에 직면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러한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
"이러한 국민에게 권위주의는 더 이상 한국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다.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의 현 독재 정권은 시대착오적이고 몰이해하며 '몽골스러운(야만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타고난 신념으로 가진 이들이 정부 참여 권리를 빼앗기고, 이 권리의 상실에 항의한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까지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바로 오늘날 한국의 비극이다.
...
박 대통령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100% 권력을 독점하려 함으로써, 이 자발적인 지지(한 외국 외교관이 '90%의 통제력'이라 표현했던)를 탕진해 버렸다. 그의 탄압 행위는 얼마 되지 않던 반대 세력을 억누르기는커녕 실제적인 반대 운동으로 부채질했다. 특히 인권에 대한 양심을 선언한 저명한 기독교인들을 순교자로 만듦으로써, 박 대통령은 인구의 중요한 13%를 차지하는 한국의 보수적 기독교인들마저 등 돌리게 만들었다.
그 결과 외교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우방인 일본과의 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국내적으로는 정부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광범위한 혐오와 반발이 일어났다. 이 모든 것은 한국인의 감성과 역량에 대한 왜곡이자 모독이다. 박 대통령과 한국 국민 모두는 이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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