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그 시대, 언론을 묻다 3부. 동아투위 이후 2026년 언론 [이부영 위원장] 여기잇슈

2026.10.22 오전 09:22
3부. 동아투위 이후 2026년 언론

▷(한동오 기자)
해직된 지 이제 50년이 넘었는데요. 동아투위는 동아일보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과와 어떤 요구를 하고 계신 건가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사과 요구를 하는데 그 사람들(동아일보)은 이때까지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요. 동아일보나 조선일보도 마찬가지지만. 일제시대 때 그 사람들이 항일 운동을
했다고 막 그러잖아요. 그런데 1936년에 그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을 했다고 그러는데. 그때도 그 말소 사건, 일장기 말소 사건을 일으킨 사람 중에 그때 사회부장이 현진건 씨라고 소설가 유명한 분 아니에요. 우리 문학사에도 많이 나오고. 이상용 씨라고 스포츠 담당 기자 몇몇 사람들을 다섯 명 잘랐어요. 그러고 뒤에서 송진우 사장하고 사주인 김성수 씨가 뭐라고 그랬냐면 어린아이들이 불장난하다가 고루거각을 태워버릴 뻔했다고, 그런 불장난을 했다고, 이렇게 얘기를 한 게 지금 기록으로 남아있어요. 그런데 그 뒤에 자기들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지금 막 동아일보 거사적으로 지금 자랑을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 다음에 그 사람들을 그때 1936년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45년에 해방이 되고 1945년에 동아일보가 복간을 했잖아요. 그 사람들 한 사람도 다시 채용하지 않았어요. 다 살아있는데. 그 전에 또 있었어요, 그런 일이. 1923년인가. 동경 대지진이 일어났었잖아요. 도쿄 대지진이라고. 유명하잖아요. 그때도 이재민 의연금, 이재민을 돕기 위해서 돈을 거뒀는데 그 돈을 전달을 안 하고 동아일보 사주들이 착복을 했어요. 그런데 그 얘기를 그 당시 유명한 친일파 깡패가 있었거든요. 박춘금이라고. 이 사람이 김성수, 송진우를 어디 여기 아서원인가 하는 음식점에 불러내서 음식을 사먹이고 너희 더러운 놈들이라고 폭행을 해버렸어요. 아무 말도 못하고 다 당했어요. 그 친일파 깡패한테. 왜냐하면 자기들이 돈 떼먹은 거, 의연금 떼먹은 게 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들이 들고 일어났었어요. 김성수, 송진우 물러나라고. 그게 송진우, 김성수가 뒤로 물러서고 대신 누굴 사장으로 내세워서 이번에 한 짓이나 똑같지. 그때 나섰던 편집국장에서부터 기자들 다 잘라버렸어요. 그리고 딴 사람으로 채우고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다시 신문을 냈다고. 그게 기록으로 다 남아있어요. 그 사람들이 그만두고 나가서 그 경쟁지였던 조선일보로 가서 다 폭로하고 그랬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돈도 벌고 신문도 계속 낸지는 모르지만 그 뒤를 보면 그런 말로 할 수 없는 그런 게 있어요. 그러고 자기들이 민족지라고 그렇게 자랑을 하잖아요. 이젠 저 기만도 그만둘 때가 됐어요. 그런데 우리가 동아일보 앞에 가서 그렇게 계속 소리 지르고 이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50주년까지 끝내고. 우리도 다 80 넘은 노인들 아니요? 80이 넘은 노인들이 동아일보 앞에 가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얼마 안 있으면 세상을 떠날 노인들이 그 추한 모습을 뒤에 남기는 게 이젠 그만해야 될 것 같더라고. 우리들 추하게 만들려고 응하지도 않고. 그러려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가 더 이상 동아일보 앞에 가서는 하지 않겠지만 자유언론운동은 지금 내가 이렇게 인터뷰를 하듯이 이런 식으로 계속 하겠다 이거예요. 이를테면 우리도 나이를 이렇게 먹은 사람이 저렇게 반성할 줄도 모르고 염치도 없는 저 집단 앞에 가서 사과하라 해봐야 아무 반응이 없으니까 그런 방식은 아니고 좀 더 역사의 심판대에 올리는 방식으로 우리가 자유언론운동, 동아일보의 저 가면 이런 걸 벗겨놓고 싶다 이런 얘기예요.

▷(한동오 기자)
이런 걸 모르시는 분들도 되게 많을 거고 저도 처음 듣는 얘기가 되게 많은데, 이런 걸 많이 아는 것 자체가 동아일보 입장에서는 되게 압박이 될 것 같다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그렇죠. 그래서 그 앞에 가서 안 해도, 그 앞에 가서 해도 어느 언론도 잘 나오지도 않아요. 아마 지금 10.24 52주년 되고 그랬으니까 조금 언론 나오고 그러지만. 모르겠어요. 조금 지나면 잊어버릴지도 몰라요. 한 가지 우리가 올 초에 10.24를 자유언론의 날로 국가에서 지정해 주길 요청해 놨어요. 지금도 그게 지금 심의 중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나가고 그러면 아마 정부에서는 해줄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언론과 관련된 기념일이 없어요. 국가 지정 기념일이 없다고. 그러면 언론 자유를, 자유언론을 지키자고 했던 이날 정도를 언론인들이 함께 모여서 기념하는 날로 지정해 놓는 게 좋지 않겠나. 물론 언론노조나 기자협회나 이런 사람들만 올지 몰라요. 그래도 이런 날이 지정이 돼서
자유언론이라는 그 깃발을 일선 기자나 이런 사람들이 지키겠다고 하는 기념일로 정해지면 난 그건 앞으로도 계속 자유언론의 깃발 같은 거는 내리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거죠.

▷(한동오 기자)
국가기념일 요청을 드린다는 뉴스를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나는 세월호 이후에 기레기라는 말이 기자들을 비하하고 멸칭하는 되게 보편적으로 굳어진 말로 됐잖아요. 실제로 기자들에 대한 인식 자체도 시민들이 바라보는. 되게 바빠진 게 사실이고. 그래서 이 10.24를 국가 기념일로 만들면 나쁜 기자들, 받아쓰기하는 기자들만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70년대, 80년대는 이렇게 정부랑 싸우고 정치 권력이나 경제 권력이랑 싸웠던 이런 기자들이 있다, 이런 기자들을 우리가 더 기억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테고. 반대로는 또 기자 전반에 대한, 다 기레기들인데 다를 바 있겠어? 이렇게 아예 그냥 포기하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더라고요. 그런 분들을 향해서 혹시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이런 게 있으실까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그런데요. 어느 사회나 모든 어느 한 직군에 속하는 사람들이 다 훌륭할 수는 없는 거예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아니 뭐 80년 해직 언론인들도 그랬잖아요. 80년 해직 언론인이 한 천여 명이 그때 해고가 됐단 말이에요, 각 언론사에서. 그 중에는 5.18 문제를 놓고 제작 거부를 하고 농성을 하고 이런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부패 기자들도 그때 많이 잘렸어요. 그냥 도매급에 다 잘려버린 게 천여 명이 되는 거죠. 그 중에 제대로 된 사람들은 다시 언론에 복귀해서 그 뒤에 좋은
일들을 많이 했잖아요.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이 자유언론의 날을 정해서 같이 기념을 하고 이런 사람들이 단체별로 또 언론사별로 같이 모여서 그날을 기념하고 그리고 자유언론에 대한 그런 뜻을 다시 새기고 다짐 다시 하고 이러고 가는 거지. 그때 자유언론 실천한 사람 몇을 빼놓고는 다 기레기들이다 그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기레기였다가 더 나아지는 사람도 있고 그런 거 아니에요. 모든 사물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항상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게 이 세상이고 좋은 쪽이 더 다수가 되고 언론에 대한 인식들이 국민들 속에서 더 자리 잡을 때 그때 이제 기레기로 소리 듣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가 되고 이러는 거죠.

▷(한동오 기자)
국가기념일 지정이 되고 이런 기자들이 우리가 기억해야 될 기자들이라고 생각하고 기자들 스스로가 이런 거를 더 많이 알면 이런 거에 대해서 공감하시는 시민들도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저는 그것이 그냥 언론의 문제로만 그치는 게 아니고 국민 복지의 문제라든지 또 우리 남북문제에서도 평화공존의 문제라든지 혹은 복지를 더 확대하고 젊은 사람들이 취업하는 데도 훨씬 더 문호를 더 열게 만든다든지 또 혹은 생태기후문제 이런 것도 더 활짝 열린 눈으로 보고 인류가 당한 위기 같은 거, 지구가 당한 위기 이런 것도 그런 걸 통해서 깨달아지는 거란 말이에요. 그만큼 대중적 자각이랄까, 이런 게 넓어질 수 있는 거고 그래서 언론이라는 게 중요한 거다. 국민 개개인이 다 언론인처럼 될 수는 없는 거 아니에요. 언론 역할을 한 사람들은 언론인으로 있는 거고. 올바로 된 언론이 전해지는 것, 그것이 국민들한테 조금 아까 얘기한 여러 가지 수준에서 자각이랄까 각성, 서로의 이해 이런 걸 높여주는 거 아니겠나 싶어요. 역시 언론인은 바른 가치나 이런 것을 전달하는 전달자죠. 전달자로서 사명을 다하는 게 자기 자신이 언론인이라는 걸 택한 이유이기도 하고 그걸 또 보람으로 생각하고 언론인 노릇을 하는 거니까. 뭐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힘든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이 불완전하게나마 이렇게 긴 세월에 걸쳐서 이런 것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전달하려고 애쓴 거 아니겠어요. 뭐 팔자가 그러니까 또 그런 팔자대로 산 거고 지금 이후에 어떡할 거냐 그러면 우리는 배운 게 그런 거여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고 우리가 이루어지길 바라고 사는데 전달이 안 되면 어떨 거냐. 난 뭐 그런 거에 대해서 너무 유감으로 생각하고 없다고 봐요. 반드시 어떻게든가 전달이 될 거라고 봐요, 이런 거는. 우리 역사가 그렇잖아요. 없어진 것 같다가 또 다시 생겨나고. 어렵게 어렵게 그래서 우리 역사가 이 좁은 한반도 안에서 강대국들의 등살 그런 걸 통해서 강대국들의 편을 드는 사람들이 지워버리려고 그랬던 거 다 뚫고 다시 일어났잖아요. 우리 역사가 지금 기적 같은 역사 아니에요. 그런 걸 믿어야죠. 꼭 무슨 학교에서 가르친다 안 가르친다 이런 것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우리 안에 그런 유전인자, DNA가 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좀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될 것 같아요.

▷(한동오 기자)
위원장님이 젊은 기자이실 때는 기사 한 줄을 쓰기 위해서 직장도 걸고 여러 가지 투쟁을 하셨었는데, 사실 오늘날의 기자들은 그거랑은 상대적으로 좀 더 편하게 기사를 쓰고 있는데,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건 똑같잖아요. 요새 기자들이 어떤 부분을 걸고,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기사를 써야 할까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그때처럼 너무 이렇게 기죽을 필요도 없는 분위기는 된 것 같아요, 지금. 우리의 여건도 일단 기자라는 선택된 직역에 들어와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좋은 조건이 된 것 같아요. 나는 좋은 조건이라는 게 기사를 접할 많은 수단이 생긴 거죠. 근데 너무 편해져서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사를 베끼고 이런 일도 많지 않은가 싶어서. 기사들을 올바르게 베끼면 모르겠는데 그냥 잘못된 것도 베껴버리면 악을 더 증파시키는 일이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정말 기자들은 확인하고 확인하고 남의 기사를 참조를 하더라도 베끼지 말아야 된다. 이게 제1원칙이 돼야 될 것 같아요. 너무 편해졌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사실. 그리고 지금은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아도 주변에 여러 가지 다른 일들이 있잖아요. 유튜브를 만든다든가 아니면 작가가 된다든가 하다못해 예술적 부분하고 접합을 시켜서 영화를 만든다든가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든가. 이런 식으로 기자의 역할이 다변화됐다고 봐요. 기자들의 역할이. 어디가 예술이고 어디가 기사인지가 나누기가 불분명한 이런 시대. 이번에 암살자(들)도 그런 부분이 많이 있잖아요. 사실과 사실 아닌 것 사이에 그런 것도 많아요. 이게 기자 직역이 넓어진 것 같단 말이에요. 저는 그냥 어디 들어가서 좋은 직장에서 월급 많이 받고 이렇게 사는 것도 요새는 많은 일 아니에요, 그런 게. 흔한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굳이 기자라는 직업을 택해서 진실을 추구하고 사실을 좀 더 명확히 하고 그것이 다른 다큐멘터리 부분이라든지 유튜브 부분이라든지 이런 데까지 확산되고 진실이
더 많이 세상에 노출이 되고 사람들이 접하게 되고 이런 게 기자들로서도 좀 옛날보다 더 보람이 더 크게 사람들 사이에 누려지고 이런 거 아니에요? 확산되고. 요새 난 여기 뉴스타파 옆에 있지만(※동아투위 사무실은 뉴스타파 건물에 있다) 이분들이 하는 역할을 보면서 굉장히 보람이 있겠구나. 탐사보도 아니에요. 탐사보도. 지금 많은 뉴스가 생산이 되고 이러지만 뉴스 뒤에 뉴스, 뉴스 뒤에 배경 이런 것은 그냥 흘려버려지고 지나가버리는 일이 많은데 그걸 뒤에서 꼼꼼히 캐고 확인하고 진실 아닌 것, 진실인 것을 가려내는 일들을 하고
있잖아요.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봐요. 우리도 그 탐사보도 분야가 이제 거의 자리 잡아가는 것 같지 않아요? 여기 같은 데가 많이 생기고 있죠? 여기저기.

▷(한동오 기자)
그렇죠. 뉴스타파 같은 경우는 워낙 탐사보도를 잘하시고 워낙 성과도 많으시고 하니까. 사실 저희 같은 YTN에서도 예전에는 탐사보도팀이 따로 있었거든요. 그거 할 때 '아 저런 뉴스타파 기사를 보고 저렇게 취재를 해야겠다' 되게 영감을 많이 느끼곤 했었어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저런 분야도 단순히 우린 지금 정(치), 경(제), 사회 이런 부분인데 저것이 생태기후 문제라든지 아니면 기업에 너무 전문성이 있어서 알려지지 않아서 국민들이 불편해하는 그런 부분도 밝혀내고. 그런가 하면 개인의 잘못된 부분들을 탐사해서 보도내는 그건 무서운 거 아니에요, 또. 개인들 잘못하고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런 일도 필요한 것 같고. 탐사 보도가 더 영역이 넓어지고 더 이렇게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 전체적으로 사회를 정화시키고 사회를 좀 더 그 자연 친화적이고 기업도 기업주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 혜택을 공유하고 이런 쪽으로 넓히는 일 같아요. 그래서 이 탐사보도 영역 같은 것도 좀 넓어지고 그랬으면 좋겠더라고.

▷(한동오 기자)
YTN 기자들한테도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YTN이 오히려 정부가 바뀌고 그러는 과정에 YTN이 원래 가지고 있던 공중파적 성격, 이런 거를 지켜내느냐 못하느냐가 이게 지금 굉장히 큰 관심사인 것 같아요. KBS, MBC라는 거대 공중파 거기에 이제 중 정도의 수준이 SBS, JTBC 이것도 준공영 수준이었는데. YTN이 이제 그 수준에서 이렇게 공중파로 끼느냐, 못 끼느냐를 가지고 굉장히 관심거리가 돼서 보고 있는데 난 사실은 잘 몰라요, YTN의 지금 성격은. 근데 지금도 내연되고 있는 것 같아요, YTN 내부는. 근데 나는 어찌됐건 YTN이 그전엔 꽤 단단한 기반을 가진 회사로 서울역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가 요즘은 좀 이렇게 힘들어 하는 것 같은데. 제대로 그 공중파 쪽으로 이게 자리잡았으면 나름대로의 거기는 특수한 그런 영역이 있을 것 같아요, YTN은. 그런 쪽으로 좀 YTN 보도 종사자들이 좀 힘을 좀 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한동오 기자)
아까 말씀한 것처럼 탐사보도도 많이 하고 다양한 방면으로 저희가 기사 활동을 해서 위원장님한테 기억될
수 있는 기사로 남을 수 있는 언론사가 되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인데요. 1974년, 75년으로 돌아가신다고 해도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하시겠어요?

▶이부영 / 동아투위 위원장
그때보단 우리가 나이가 뭐 한 5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반세기 전 까마득히 먼 시절이긴 하지만. 그걸 하면서 많은 고통도 겪게 됐죠. 우리 주변에 있는 동지들은 거의 그때 그 한참 시절에 우리들이 보람있게 몸을 던졌던 그런 일에 그 이상의 보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좀 의식적으로라도 이렇게 옆에 다른 길 열리는 것을 보지 않고 그 길만 보고 이렇게 살았다 그럴까. 남들은 외고집이라는 말을 쓰거든요. 그런데 한국처럼 이렇게 험한 사회, 툭 하면 살육이 벌어지고 툭 하면 감옥에 가고 고문 받아야 되고 이런 사회 속에서 쉽게 외고집 소리를 안 들어가면서 쉽게 지금 걸어왔던 길을 걸어올 수 있었을까? 따라서 그냥 우리가 생각하고 그랬던 걸로 사람이 뭐 백년 천년 사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산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것이 옳다 그르다 이렇게 평가하지 말고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봐주는 것도 어떨까 싶어요. 그리고 또 우린 그렇게 사는 거를 아마 또 그 시절로 돌아가도 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뭐 특별하게 우리가 잘나려고 그러진 않았으니까. 기껏해봐야 감옥 가고 뭐 매 맞는 것밖에 더 있었겠어요? 죽지 않았으면 다행이지.

HOT 연예 스포츠
지금 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