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은교'의 저자, 영원한 청년작가 - 박범신작가
[YTN FM 94.5 '출발 새아침'] (오전 07:00~09:00)
강지원 앵커 (이하 앵커) : 최근 영화 '은교' 의 개봉을 앞두고, 원작 소설 '은교'의 인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지난주 대비 여덟 계단 올라 단숨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는데요. 이 책의 저자, 등단 40년, 40번째 소설을 준비하는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작가 연결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박범신 작가 (이하 작가) : 네, 안녕하세요?
앵커 : 바쁘시죠?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박범신 : 주로 고향 논산에 와서 지내고 있습니다.
앵커 : 글도 열심히 쓰시고요?
박범신 : 하하, 네
앵커 : 영화 '은교'가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책을 읽지 못한 청취자 여러분들을 위해서 간단히 내용을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박범신 : 제목의 '은교'는 사람 이름입니다. 열일곱 살 먹은 아름다운 소녀 이름이고요. 주인공은 일흔 살 된 노 시인입니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시인이고, 평생 결혼도 해 본적 없이 자기 절제를 통해서 시의 세계를 이룬 시인이지요. 그리고 그의 제자 격인 젊은 남자가 나오는데 문학을 꿈꾸지만 특별한 재능은 없어서 자기 꿈을 이룰 수 없는 슬픔을 가진 젊은이입니다. 이 소설은 은교를 중심으로 두 사제 간의 극적인 갈등을 서사 구조로 하고 있는데 사실은 존재론적 슬픔이랄까요, 시간, 생로병사를 오가는 삶의 유한성의 문제가 이 소설의 메인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재능이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지식인 사회의 이중성에 대한 비판들, 억압된 본능과 그것의 발화 이런 문제를 다양하게 담고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 말씀은 그렇게 해 주셨는데요. 가만히 듣다보니까 열일곱 살 소녀를 향한 70세 노시인의 사랑, 이런 건가요?
박범신 : 그것이 소설의 기본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리타 적인 그런 사랑은 아니고요. 평생 동안 오로지 시를 위해서 자기 절제에 성공해 왔던 노 시인이 영원한 처녀라고 느껴지는 열일곱 살 소녀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평생 억압했던 본능이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큰 딜레마에 빠지는 내용이지요.
앵커 : 로리타 적인 사랑이 아니고요. 네. 그럼 평생 억압된 본능이 뭡니까? 하하.
박범신 : 늙어가는 슬픔을 말함에 있어서 육체의 문제보다 더 리얼한 것은 없거든요. 소설은 관념적인 것을 감각적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나도록 표현해야 되기 때문에 삶의 유한성 문제를 육체의 노쇄를 통해서 표현한 소설이라고 봐주시면 될 겁니다.
앵커 : 그렇군요. 언론에서는 영화 은교에 대해서 '파격적이다'라고 평가하고 있어요. 어떻게 받아들이세요? 파격적입니까?
박범신 : 저는 영화에 대해서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감독의 작품인 것이고 저는 텍스트를 제공했을 뿐이고 현재까지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정지우라는 감독이 인간의 내면심리를 리얼하게 잘 그려내는 감독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저급한 멜로로 만들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예고편에서는 충격적으로 소개를 했던 것 같은데 제가 듣기로는 굉장히 좋은 영화로 정 감독이 완성했다고 들었는데, 영화를 보지 못해서 뭐라고 말할 입장은 아닙니다.
앵커 : 그런데 책에 작가의 말에 '내가 미쳤다'라고 쓰셨어요?
박범신 : 이 소설을 제가 한 달 반 만에 썼거든요. 지난 15년 동안 은교에 다뤄지는 여러 가지 존재론적인 번뇌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소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주제는 제 자신의 문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한 달 반 만에 장편 소설을 한 편 썼다면 제 나이로 봐서는 미친 것 같은 상태라는 그런 뜻이죠.
앵커 : 원고를 쓰실 때 원고지에 쓰십니까, 아니면 컴퓨터로 쓰십니까?
박범신 : 계속 원고지로 썼는데 은교에 와서 처음으로 컴퓨터로 독수리 타법으로 썼습니다.
앵커 : 원고지 900매를 한 달 만에 쓰셨다고요? 자신의 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요. 70대의 노인을 바꿔서 작가로 보면 됩니까? 하하.
박범신 : 우리 모두가 중년 이후에 심리적으로 겪는 그런 문제들을 고백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제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제 또래의 모든 사람들이 내면적으로 겪는 문제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어요.
앵커 : 지난해가 등단 39년이셨죠. 그래서인지 서른아홉 번째 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를 펴내셨어요. 금년이 40년 되셨으니까 40번째 소설이 뭐가 될까요?
박범신 : 준비 중입니다. 글쎄요. 요즘 제가 고향 논산에 내려와 있습니다. 논산에서 일주일에 반 이상 생활하면서 과연 무엇을 써야하는가 그런 문제를 고민하는 중입니다.
앵커 : 그런데 논산에 가셔서 웬 SNS를 그렇게 많이 하십니까?
박범신 : 요즘 소설도 안 쓰고 외로운 곳이고 그래서, 저는 글을 안 쓰면 손가락에 가시가 돋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소설을 못 쓰니까 페이스북'에 `논산일기'라고 매일 단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너무 여기가 고전한 곳이어서 소설도 못쓰고 있고 해서 하는 짓이지요.
앵커 : 논산일기를 쭉 올리시는데요. 대 작가님과 SNS 관계를 이룰 수 있는 부분입니다. SNS를 또 그렇게 활용할 수가 있네요?
박범신 : 저는 SNS에 대해서 깊이 잘 모르고, 그런데 작가가 자기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세상과 타협할 수는 없지요. 세상은 어떤 의미에서 강력한 독재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독자에게 보내는 채널이, 출판이냐 SNS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어떤 방식이든지 독자와 나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것이 좋은 것이고 다만 제 문장과 나 사이에 관계는 단독자로서 타협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앵커 : 4월 11일이 열흘이죠. 총선 남았고요. 12월에는 대선이 있습니다. 논산에서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들으시죠?
박범신 : 제가 정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할 입장은 아니고 그동안 너무 센 사람들이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덕성이라고 할까, 어려운 이웃들, 국민들을 마음속에 품고 먼 앞날에 대해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하는 그런 사람들이 좋지 않겠는가, 너무 싸움꾼만 우리가 많이 만들어 낸 것 같고요. 좀 마음도 넉넉하고 덕성 있는 정치가들이 전면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앵커 : 알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은교 원작 소설을 쓰신 분이죠. 박범신 작가와 함께 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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