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곡가 히사이시 조가 허가도 없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공연들이 성행하자 불쾌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등의 음악감독을 맡아 국내에서도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26일 히사이시 측은 공식 홈페이지와 SNS에 입장문을 게시하고 "히사이시의 이름을 딴 공연이 히사이시 본인이 참여하는 공연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이러한 공연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라고 밝혔다.
또 "적법한 절차 없이 히사이시의 음악을 사용하거나 편곡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라며 "현재 세계 각지에서 히사이시의 음악을 마음대로 편곡하고 사용하는 이벤트가 많이 있는데, 히사이시의 음악을 무단으로 편곡하는 것은 작곡가의 저작권과 저작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히사이시 조 공식 홈페이지
히사이시 측은 끝으로 "우리는 작곡가의 공식 허가를 받고 저작권법에 따라 음악을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며 "합법적으로 음악을 사용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마무리했다.
해당 입장문은 국내에도 번역 전달돼 즉각 논란이 됐다. 히사이시 측의 주장대로 그의 이름을 내건 오케스트라 공연이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성행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히사이시가 직접 지휘에 나선 정식 투어 공연이 세계 각지에서 개최되고 있는 만큼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히사이시의 내한 공연은 2017년이 마지막이었으며, 국내에 예정된 공연 소식도 전무하다.
이 가운데 국내 티켓 예매 사이트들에 따르면 히사이시 조의 이름을 내걸고, 주최사가 서로 다른 공연이 올해에만 4개 이상 예정된 상황이다. 공연명이 살짝씩 다른 수준인 이 공연들은 단발성이 아니라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열리기 때문에 높은 접근성으로 꾸준한 인기를 끌어왔다.
이 중 한 공연의 주최사 측은 최근의 논란에 대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한음협)에 무대이용신청물을 제출하고 공연을 진행하고 있으며, 공연 종료 후 정산자료를 제출해 저작권료를 납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연명에 히사이시 조의 이름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정상적으로 신고하고 있으므로 대답할 의무가 없다"고 일축했다.
히사이시 조가 참여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러나 한음협 측은 "협회와 상호관리계약을 체결한 해외 아티스트의 음악을 사용할 때 협회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서도 "아티스트 성명이나 편곡 등이 해당하는 '저작인격권'은 저작자에게 일신전속되는 권리라 저작권자 당사자에게 허가를 받아야 하며, 협회 측에서 관여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음협은 저작물을 이용하고자 하는 이들과 저작권자의 사이에서 이용허락과정과 저작권료의 징수가 수월하게 이루어지도록 중개하는 일을 맡고 있다. 신탁관리하는 범위는 저작권 중 '저작재산권'에만 한정된다.
따라서 공연 측이 협회에 사용 음악을 신고만 해서는 저작권자의 이름을 공연명에 거는 것까지 합법적으로 해결되는 건 아닌 셈이다.
이와 관련 문화예술 전문 백세희 변호사(디케이엘 파트너스 법률사무소)는 '히사이시 조'라는 이름을 표시할 수 있는 권리인 '성명표시권'과 저작물을 편곡해 변경을 가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동일성유지권'은 '저작재산권'이 아닌 '저작인격권'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며 "저작권자의 승낙 없이 저작권자의 이름을 표기한 음악회를 개최한다면 저작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한 저작권법 위반의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백 변호사는 "나아가 2022년 6월 8일부터 시행된 개정 부정경쟁방지법은 유명인의 초상·성명 등을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율하여 이른바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고 있으므로, 유명인의 성명을 무단으로 사용해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의 소지 역시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한 공연업계 관계자는 "법적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도의적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나. 혼란을 줄 수 있고, 원작자에게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라며 "이런 잘못된 문제가 최근 들어 횡행하고 있다.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생각을 전했다.
디지털뉴스팀 이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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